※ 영화 <미스트>, 소설 <로드>, 게임 <데드라이트>, 인디영화 <카고>의 치명적인 결말 누설이 있습니다!


‘부모’란 단어는 곧잘 책임감과 연결됩니다. 가정을 보살피고 지켜야 하는 역할이라서 그렇죠. 어리고 약한 아이를 위험한 상황에 방치하는 것만큼 부모에게 큰 죄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부모가 아이를 돌보지 못할 환경에 처하면 어떻게 될까요. 주변은 험악하기 짝이 없고, 어떻게든 품에 안아주고 싶은데, 불가항력으로 그럴 수가 없다면…. 자신의 존재 이유가 힘없이 떨고 있는데, 무력하게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면요. 아마 부모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프다 못해 찢어질 겁니다. 이 때문에 부모-자식 간의 애정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창작물의 주된 소재로 쓰입니다. 특히 재난물, 종말물에서 이게 극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자신이 언제까지 보살핀다는 장담도 못하고, 이 절망스러운 세상에 아이 혼자 살아갈 걸 생각하면 미쳐버릴 노릇이겠죠. 이런 작품들은 막판에 아이의 생사를 두고 충격적인 결정을 내리며, 여러 논란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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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하고도 극단적인 선택으로 호불호가 갈렸던 <미스트>]


저는 이런 결말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영화 <미스트>입니다. 군사 실험 도중 다른 세계로 통하는 포탈이 열렸고, 거기서 안개를 비롯해 각종 괴물들이 튀어나온 거죠. 주인공 부자는 우연히 마을 슈퍼마켓에 들렀다 고립되고, 바깥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처합니다. 간신히 슈퍼마켓을 탈출하지만, 아무리 가도 안개는 끝이 없고, 결국 탈출한 일행 모두 좌절합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고뇌가 절정에 달하는데, 과연 이렇게 비참한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옳은지 고민하죠. 그리고 고민 끝에 결국 방아쇠를 당기고 짐승처럼 울부짖는 것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이 작품이 개봉했을 당시, 저 선택을 두고 말이 꽤 많았죠. 천지사방 괴물이 들끓는 가운데 아이를 편히 떠나 보낸 심정이야 이해 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란 사람이 아들 목숨을 직접 끊는 게 도의적인 행동인가 싶으니까요. 원작 소설가인 스티븐 킹은 어울리는 결말이라고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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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두고 떠난다는 아버지의 두려움을 섬세하게 표현한 <로드>]


요즘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그린 종말 작품이라고 하면, <로드>가 제일 유명할 겁니다. 작가인 코맥 매카시는 자기 아들이 곤경에 처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소설 곳곳에 아버지의 걱정과 근심이 절절합니다. 주인공 남자의 독백은 절반 이상이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소년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이고, 자신이 살아가야 할 근거입니다. 남자가 살아가는 까닭도 그렇습니다.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소년에게 보호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소년 역시 의존할 사람이 아버지 밖에 없기에 부자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입니다. 그냥 일반적인 사회였다면, 병들고 굶주린 아버지 따위 내팽개칠 수도 있겠죠. 허나 이 세계는 처참하게 불타버렸고, 다른 어른들은 아이를 식량이나 노리개 정도로만 취급합니다. 이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 가긴 어딜 가겠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결국 기아와 병세,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이 장면이 안쓰러운 건 남자는 오롯이 혼자가 아니라 자식을 담보했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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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라이트>는 아이를 잃은 절망과 자기희생의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데드라이트> 역시 암울하기는 마찬가지인 게임입니다. 좀비가 만연한 세상, 주인공인 아버지는 캐나다 출신으로 미국 국경을 넘어 피신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가족과 헤어졌고, 그들의 행방을 찾아가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위의 두 작품과 달리 주인공이 자식을 데리고 다니지 않으며, 오직 회상에서만 등장한다는 게 차이점이네요. 가족, 그 중에서도 어린 딸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라서 걸핏하면 환상까지 보는 지경입니다. 나중에 가서야 왜 그리 딸의 환상에 시달렸는지 밝혀지는데, 자기 손으로 직접 끝장을 냈기 때문이었죠. 곳곳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니, 어린 딸을 괴물이 되도록 놔둘 수가 없었거든요. 비록 굳은 결심으로 행한 일이지만,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기억상실에 걸리고 환상까지 본 거고요.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주인공이 뒤늦게 진실을 깨닫고 다른 생명을 구했다는 점입니다. 딸의 목숨 대신 살렸기 때문인지, 훨씬 구원적인 결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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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한 아버지의 사소한 행동 하나도 인상 깊었던 <카고>]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한 까닭은 얼마 전 <카고>라는 인디영화를 보고 삘(?)을 받아서입니다. 여기 작품 게시판에서 모초무님과 빔나이트님이 소개해주셨죠. 대사도 없고, 분량도 7분 밖에 안 되는 짧은 영화입니다. 소재도 너무 유행을 타서 질릴 것 같은 좀비 아포칼립스.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봤는데, 딸을 등에 업고 고난을 헤쳐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에 점점 몰입했습니다. 주인공에게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데, 딸은 잘 걷지도 못하는 아기에 불과하거든요. 그나마 유아라면 어떻게든 제 앞길을 헤쳐나가겠지만, 아기는 무력하기 짝이 없죠. 게다가 자신도 감염되어서 언제 좀비로 돌변할지 모릅니다. 이대로 가면 자기가 딸을 물어뜯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 솔직히 <미스트>나 <데드라이트>처럼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만. 모든 게 절망스러운 가운데서도 자기를 희생해가며 딸을 구하는 모습이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예시로 든 작품 중에서 어느 아버지가 제일 낫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가장 이상적인 건 역시 마지막까지 딸과 함께 한 <카고>가 아닌가 합니다만. 다른 아버지들도 자식을 살리려고 최선을 다하긴 했으니까요. 물론 <미스트>는 그 결말을 싫어하는 관객도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허망하고 뜬금없다고 해야 하나. 허나 사방에 이계의 괴물 밖에 없고, 앞길이 막막하다면 그런 선택도 어쩔 수 없겠지요. 저야 아직 자식이 없어서 그 심정이 어떤지 막연히 추측 밖에 못 하겠지만요. 음, 그나저나 열거한 작품이 전부 아버지가 주인공이네요. 부성애를 강조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다 보니 이리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지키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도 있을 듯한데요.

부모의 사랑을 애틋하게 묘사하는 작품은 많습니다. 하지만 상기와 같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는 사랑보다 책임감에 더 중점을 두죠. 멸망한 세상에서 무언가를 지킨다는 행위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런 작품들을 보면, 부모의 애정도 애정이지만, 자식을 책임진다는 게 정말 어깨가 무거울 것 같습니다.

※ 개인적으로 올 여름, <라스트 오브 어스>라는 작품을 기대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이상 포자가 세상에 퍼져서 인류 문명이 망하고, 살길을 찾아 헤매는 어느 남자와 소녀가 주인공입니다. 두 사람은 부녀가 아니라 남남이긴 하지만, 언뜻 보면 의사(擬似) 부녀 관계처럼 보이기도 하죠. 둘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파국을 맞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