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이 쓴 단편 <마지막 늑대>는 용이 길들인 애완인간을 소재로 합니다. 뒷이야기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이 세계는 용이 정복하고, 인간은 애완용으로 전락(?)했습니다. 작금의 인간이 개를 기르듯, 용은 인간을 기릅니다. 주인공도 그 중 하나이나 평범한 애완인이라면 재미없겠죠. 주인공은 스승들의 가르침을 따라 용의 보살핌을 받지 않는다는 늑대를 따라 나섭니다. 짧고도 험한 여정을 거쳐 마침내 늑대로 보이는 듯한 인물을 만나지만, 바깥 세상은 주인공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결국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긴 하지만, 여전히 인간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딘가로 떠납니다.

 

주제를 간단히 말하면 다른 종족과의 소통. 혹은 소통의 단절이겠네요. 용과 인간은 주인과 애완용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지만, 사랑의 정도는 다릅니다. 게다가 둘 모두 세상을 인식하는 주요 감각기가 달라 서로의 세계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없습니다. 이러다 보면 감각을 공유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지치기 마련일 테고, 거기서 충돌과 갈등이 생깁니다.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관계라 세상에 여파를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작중 상황 묘사를 보면 그런 아픔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듯 보이네요. 수많은 아픔이 산재했으나 누구 하나의 의지로 그걸 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꽤 우울하게 마무리를 짓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까지 확 깨는 아이디어는 아니었습니다. 인간과 개를 비유한 작품이 처음도 아니고, 감각기 때문에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는 생명체 묘사도 드문 건 아니니까요. 저는 오히려 아이디어보다는 감성적인 서술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랑을 표현하고 싶지만, 서로를 제대로 볼 수가 없어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는 막막함. 거기에 일말의 개선 여지도 안 보이는 절망감. 이런 것들이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사랑 이야기면서 연애소설과는 다릅니다. 대등한 관계의 사랑이 아니라 절대자에게 바치는 무한한 동경에 가깝죠. 신이 확실히 존재하고, 신에게 계속 기도를 하는데도 그걸 몰라준다면? 아마 신도는 답답해 죽을 겁니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대략 이런 식의 사랑입니다.

 

묘사를 보면, 배경은 현대 그것도 한국인 것 같네요. 광화문도 아니고 지하철도 나오고. 용과 인간 관계를 묘사하는 부분이 꽤 환상적이라서 가상의 어느 나라인 줄 알았더니 광화문이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도대체 인간이 왜 용에게 지배를 당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안 나옵니다. 용과 인간의 전쟁은 주제랑 별 상관 없거든요. 그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었더라~ 하는 식입니다. 용에 관한 비밀이나 전쟁을 좀 기대한 터라 이 부분은 실망. 주제에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해도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설정을 너무 과감하게 생략해서 아쉽습니다. 작중에 용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잘 안 나옵니다. 추측하기론 서양의 드래곤보다는 동양의 용에 가까운 존재인 듯.

 

용과 애완인의 관계는 인간과 개의 우스꽝스러운 비유이기도 합니다. 현재 인간이 개를 기르며 느끼는 감성을 그대로 빼다 박았네요. 읽다 보면 인간이 그토록 오랜 시간 개와 함께 하면서도 얼마나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우리 식대로만 생각하는지 통렬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로지 유희를 위해 교배를 하고, 겉모습을 바꾸고, 근친이 이루어지고, 신체 부위를 절단하는 광경이 약간 징그럽기도 합니다. 인간의 감각을 알지 못한 채 용의 감각으로만 인간을 판단하는 장면에선 용의 어리석음이 곧 현재 인간의 어리석음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분명히 인간의 감각을 연구하는 과학자 용도 있을 텐데, 그 부분은 설명을 안 했네요. 이런 부분까지 이야기했으면 더 재미났을 텐데.

 

궁금한 건 인간이 개의 감각을 이용하는 것처럼 이 세계에도 인간의 감각을 이용하는 용이 있느냐는 겁니다. 작가는 계속해서 두 종족의 감각이 다르고, 그 때문에 공유하는 세계가 다름을 강조하는데, 그렇다면 이를 역이용할 수도 있잖아요. 실제로 현재 인간은 그렇게 하고요. 용이 볼 수 없는 것, 들을 수 없는 것을 인간이 할 수 있다면, 이를 전쟁에 활용하는 것도 그럴 싸하지 않나요. 뭐, 용이 인간만큼 전쟁에 관심 있는지 모르겠으나 무릇 생명체는 자원 쟁탈을 위해 끊임없이 다투는 법. 용이라고 전쟁을 안 하진 않을 테고, 그렇다면 이렇게 인간을 활용하는 것도 가능할 텐데, 흐음. 역시나 작가는 거기까지는 관심이 없는가 봅니다. 이왕에 감각의 상이성을 주제로 한다면, 이렇게 전쟁에 참여하는 극적인 캐릭터가 더 좋았을 법도 한데요.

 

감각이 다른 터라 서로가 이름을 짓는 법도 특이합니다. 물론 주인공은 용의 말을 따라 할 수 없으므로 자기에게 지어준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합니다. 그런 탓에 작가는 특수기호로 이름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별로 튀어 보이는 장치는 아닙니다. 이걸 보고선 <파괴된 사나이>가 생각나기도 하더군요. 작명이 꽤 희한한 작품이었죠. 이것도 활용을 좀 더 했으면 좋으련만, 탄성을 터뜨릴만한 묘사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주제 하나에 집중하기 위해 너무 여러 부분을 생략하는 게 아쉬워요. 곁가지가 하나도 없고 줄기만 쭉 뻗어있어서 심심한 느낌. 단편집 모음이니까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늑대라는 건 어디까지나 비유일 따름입니다. 개의 원조인 늑대가 야성을 이어가는 것처럼 인간 본연의 모습을 이어간다는 뜻이죠. 주인공이 찾던 것은 그게 아니었으니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감각의 상이성보다는 사랑에 가까운 동경 묘사가 더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