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로 레전드> 시리즈 중 하나인 <변종 등장(Odd One Out)>은 아마 헤일로 프랜차이즈 중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작품일 겁니다. 아무리 사람마다 주관이 달라도 헤일로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할 듯. 우주 항해 중 실수로 외딴 행성에 떨어진 스파르탄-II 병사가 신체 개조한 코버넌트(지랄하네인 듯하군요. 여하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와 맞서 싸운다는 내용인데…. 내용 자체야 그리 큰 문제가 안 됩니다만, 문제는 연출 방식. 미국식 스페이스 오페라에 가까운 작품을 일본식 무협 코미디로 바꾼 게 영 적응이 안 되네요. 어렸을 적부터 군사 훈련을 받았기에 목석 같아야 할 스파르탄 병사가 온갖 썰렁한 개그를 펼친다거나, 사제와 신종 코버넌트가 엉터리 만담을 주고 받거나, 난데없이 원시 행성에 사는 인류가 초인적인 무공을 발휘한다거나 등등 상식 밖의 요소가 계속 등장합니다. 그런 요소가 참신한 설정으로 쓰이면 모를까 지나친 코믹 노선에 할애하여 원래 색이 흐려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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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 스파르탄 1337. 하는 행동은 저 자세 그대로입니다]

 

우선 주인공인 스파르타 병사가 큰 일낼 인물인데, 툭하면 우주선에서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것도 실수로. 아니, 우주선에서 행성으로 추락하는 게 무슨 아이들 장난인가요. 행성 강하는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고, ODST는 목숨 걸고 이를 실행하는데, 실수로 빈번하게 떨어지다니요. 게다가 그렇게 떨어져도 몸은 멀쩡합니다. 물론 마스터 치프도 묠니르 강화복 입고 하늘에서 추락한 적이 있기야 합니다. 강화복 덕분에 별 부상 없이 살아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건 어쩌다 한 번 뿐이었고, 그야말로 운이 좋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던 시도였습니다. <변종 등장>의 스파르탄 병사가 툭하면 떨어진다고 했으니까 치프보다 운이 더 좋다고 해야 하나요. 무엇보다 이렇듯 중대한 실수를 자주 범하는 인물이 어떻게 훈련 과정에서 살아남았고, 그 치열한 코버넌트와의 전투에서 지금껏 버텼는지 신기합니다. 그토록 정교하고 치밀하게 전술을 짜고 작전을 실행시키는 이들도 죽어나가는 판에 이렇게 허술한 자가 살아남다니…. 그것도 후방을 지키거나 지원 부대에 있는 병사가 아니라 무려 스파르탄이란 말입니다. 항상 선두에서 온갖 위험한 일은 다 처리한다는 거죠. 그런 스파르탄 병사에 이런 인물이 있다는 건, 음… 고소공포증 환자가 ODST로 뽑히는 거랑 비슷하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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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걸로 보면 지랄하네와 비슷한 코버넌트. 단순무식의 결정체.]

 

적으로 나오는 지랄하네(생긴 걸 보면 아마 지랄하네 맞을 것 같습니다)는 그냥 힘만 세고 멍청한 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지랄한다는 우리 욕이 잘 어울리는 캐릭터. 어떤 공격을 받아도 죽지 않고, 무지막지한 파괴력으로 모든 걸 부숩니다만, 존재감은 0에 가깝습니다. 무섭다고 하기엔 하는 짓이 너무 멍청하고, 웃기다고 하기엔 파괴하는 것밖에 모릅니다. 한두 번 작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개그를 하기도 하는데, 거기까지가 한계입니다. 차라리 엉고이가 나와서 이랬다면 귀엽게 봐주기라도 할 텐데요. 이 브루트 전사가 처음 나와서 사제와 대면하는 광경을 보면, 어떻게 사제가 코버넌트의 지휘층인지 이해가 좀 안 가기도…. 과연 이 에피소드에 나오는 사제가 온갖 계략과 음모로 휩싸인 그들이 맞는지 의심이 갑니다. 그 외에 다른 코버넌트는 안 나오는데, 나왔다면 또 얼마나 망가졌을지 궁금합니다. 자칼이나 렉골로야 그렇다 치더라도 잘만 하면 개그하는 샹헬리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제도 이렇게 망가졌는데, 엘리트라고 별 수 있을까요. (뭐, 이미 <듀얼>에서 엘리트는 망가져 버렸지만. 코버넌트 최고 전사 그룹이 이렇게 에피소드 하나씩 망가지는군요)

 

아니, 뭐,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가끔은 <헤일로>를 웃으면서 볼 수도 있어야죠. 진짜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배경이 되는 행성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함선이 불시착하고, 함선의 인공지능이 나름대로 행성에 적응한다는 설정 자체는 참 좋습니다. 잘 다듬으면 눈시울이 붉어질 수도 있는 아이디어였어요. 허나 원시인 아이들과 도대체 어떻게 그런 능력이 생겼는지 별반 설명이 없던 오빠·언니는 과연 이 작품이 헤일로 시리즈가 맞는지 눈을 의심할 정도. 차라리 이게 <드래곤볼>이라든가 그런 부류의 프렌차이즈였으면 좀 나았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일본 만화를 많이 모르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런 <드래곤볼>식 개그/액션을 헤일로 시리즈에 접목시키고 싶었나 봅니다. 허나 이 두 작품은 그렇게 비교하기엔 서로 개성이 달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죠. 스파르탄 병사는 SF 밀리터리고, 베지터나 야무치 등은 무협인인데, 당연히 어울릴 리가…. 장르를 구분하자는 게 아니라 서로 간의 특색을 말하는 겁니다. 아무리 퓨전이 좋아도 그렇지, 아무거나 막 섞어서 잡탕찌개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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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은 화려합니다. 그게 스파르탄과 별로 상관이 없는 액션이라서 그렇죠.]

 

액션은 꽤 화려합니다. 기본적으로 그림체가 뛰어나고, 연출도 역동성이 충만합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스파르탄 액션이 아니라는 것 정도. <헤일로 워즈>에 나왔던 레드 팀 전투를 기대했거든요. 빠른 속도로 달리며 코버넌트의 공격을 회피한 후 총을 쏘거나 유탄을 던지는 방식일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전투가 아니라 격투였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병기를 이용하기보다 주먹 대결의 비중이 크고, 돌려차기나 발차기까지 나오다 보니 무협이라는 느낌이 더 커집니다. 그나마 거품 보호막 쓰는 장면은 안 빼먹고 꼬박꼬박 나오네요. <헤일로 3> 예고편이 그렇게나 멋있었나. 여하튼 강화 병사가 아니라 고수를 보는 기분이네요. 거기다 행성 거주민들도 붕붕 날아다니니…. 드러내놓고 무협임을 강조하진 않지만, 액션 연출의 감수성이 <듀얼>과 비슷합니다. 6편이나 되는 <헤일로 레전드> 에피소드에서 제대로 된 스파르탄 전투가 나오는 건 <패키지> 하나 밖에 없네요. 도대체 군인들을 데려다 칼싸움이랑 주먹 대결 시키는 이유가 뭔지? 이렇게까지 할 거면 굳이 <헤일로> 프랜차이즈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드래곤볼> 같은 만화에서 손오공과 피콜로가 주먹 지르기나 발차기 등 격투술 대신 엄폐물에 의지해 총격전만 펼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야무치, 이쪽에 탄약이 바닥났어!", "피콜로가 유탄을 투척한다, 다들 엎드려!") 그러면 그걸 <드래곤볼>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너무 안 좋은 말만 한 것 같은데, 솔직히 <헤일로>라고 해서 항상 진지해야 한단 법은 없습니다. 저 스파르탄 병사의 몸개그만이 목적이라면 꽤 재미있었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거기서 더 나가 무협까지 승화(…)시키려고 했던 건 너무 지나쳤습니다. 이건 외전이니까 다른 작품들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겁니다. (아마도요) 하지만 아무리 외전이라고 해도 설정이 이렇게나 막 나가는 에피소드를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패키지>, <오리진>과 함께 무려 마스터 치프가 나오는 3개 에피소드 중 하나입니다. 치프가 이런 개그맨의 소개까지 해야 하다니. (옆에는 코타나까지 나옵니다!) 누군가 이걸 보고 '헤일로 시리즈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할까 봐 무섭기까지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