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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저야 순문학이건 장르문학이건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건 없건 다분히 SF-밀리터리 따위의 취향편중적 성향이 있어 아는 게 얄팍하니 이런 거 따지긴 애매하지만, 어쨌건 올해 영화가 개봉한다는 이 소설도 신문에 광고 거창히 때리고 베스트셀러로 서점 앞켠에 쌓여있건 아니건 SF 장르문학의 탈을 쓰고 있다고 볼 수는 있겠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흔히 SF 앞에 붙는 S가 Speculative인지 Science인지 시끄러운 덕에 종종 튀어나오곤 하는, 세계관의 엄밀성이니 참신함이니 하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소설 속 배경으로부터 10여 년쯤 전에 밀어닥친 재앙은 빛이 번쩍이고 시계가 멈추었단 짧은 묘사만 보면 핵공격 같기도, 혹은 소행성 충돌이나 초대형 화산 폭발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무엇에도 딱 맞아 떨어질 설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방사성 낙진도 없고,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것도 이상하고, 이런 세계관에선 사방에 피어오를 것 같은 이끼나 곰팡이도 없고 해서 생각해보면 머리만 아프지만, 작가가 확고히 결정했고 독자도 어렵잖게 알 수 있듯이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중요한 건 지난 십수년 간 하늘엔 짙은 구름만 끼어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고, 식물들은 빛을 보지 못해 죄다 말라죽었고, 당연히 그걸 먹고 사는 동물들도 살아남을 수 없으며, 인간은 동물에 속한다는 겁니다. 태양광 유입이 차단되어서 먹이피라미드가 주춧돌부터 날아가 버렸다는 설정은, 여태껏 봐온 수많은 디스토피아 묵시록 인류멸망 시나리오들에 비해서도 거창한 설명 붙일 필요조차 없이 끔직합니다. 오늘 핵전쟁이 터져도 우리는 낙진을 긁어낸 밭에 씨를 뿌릴 테고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죠. 하지만 그게 자라지 않으면 대체 무슨 희망이, 그리고 그 희망엔 무슨 소용이 있나요.

 네, 희망이 없는데 사람은 어떻게 사나요. 결국 이야기는 그겁니다. 햇빛이 없고, 미래도 없고, 새싹도 없고, 내일을 위해 그 무엇도 아낄 수 없고 준비할 수 없는 세상의 녹아내린 도시들 사이 고속도로에서 유통기한 얼마나 남았을까 싶은 통조림으로 연명하며 멀쩡한 신발을 찾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판국에 말이죠. 작가는 이 지옥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져 있지 않을 법한 세계를, 살기 위해 걷고 또 걷는 한 부자를 초점으로 지독하게도 담담하게 서술해나갑니다. 제목이자 배경인 길 자체가 인생을 의미하는지 고난을 의미하는지...뭐 그런 건 전 모르겠지만서도...한편 아버지는 모든 아들이 어렸을 때 아버지에 대해 믿고 있듯이 유능하고 똑똑하며 헌신적이지만 문제는 그 세계가 개인이 아무리 유능하다 한들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란 거죠. 그리고 아들은, 모든 아버지가 어렸을 때 아들에 대해 믿고 있듯이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희망이지만 문제는 희망이란 건 눈 속에 파묻힌 죽은 나뭇가지들을 아무리 긁어모아 봐야 나오지 않는다는 거고요.

 그래서 이 이야기엔 GECK를 구하러 간 볼트 주민도 없고 모든 재난을 피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섬도 없으며 가죽재킷에 개 끌고 다니는 아저씨 또한 없는 바, 이야기는 기막힌 반전 따윈 없이 묵묵히 예상되는 결말로 나아가긴 합니다...만, 작중에서도 언급되지만 행운일 수 있을까 싶은 행운들, 활약이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를 아버지의 다분히 맥가이버스런 활약,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 앞에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를 부자간의 정이 끝까지 읽게 만드는군요. 잔뜩 마른 문체는 읽다보면 영어 원문이 어떨까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건조하고 간결하며, 여백을 잔뜩 남긴 묘사는 여운을 깊게 남깁니다. 번역어투 따지고 할 필요조차 없다 싶었어요.

 세 번 읽었습니다.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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