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유전자 구조를 인간 유전자와 결합해 막강한 야수-인간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SF/판타지 작품에서 그리 드문 소재가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구조로 흘러갑니다. '어떤 비밀 프로젝트 때문에 동물과 인간을 결합한 괴물이 탄생한다. 동물의 유전자를 인간에게 삽입하면 인간이 동물과 같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괴물은 인간다운 삶을 찾아 실험실에서 탈출하고 수많은 사상자를 낸다. 결국 괴물은 죽거나 사회의 구원을 받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이런 생명체를 윤리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묻는 주제이겠습니다만. 정작 이런 작품들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심오한 주제보다 화끈한 액션이 있어서 그럴 겁니다. 이런 종류의 야수-인간들은 생체병기나 다름 없습니다. 성인 남성의 몇 배나 되는 힘을 내고, 철판을 가를 정도로 발톱이 날카롭고, 건물 사이를 날아다닐 정도로 민첩하고, 빗발치는 총알을 맞아도 축지 않고 등등….

특히 이런 야수-인간 중에 유명한 게 늑대인간입니다. 판타지 세계에서 뱀파이어 다음으로 유명한 괴물이라서 이미지를 부여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늑대 유전자와 인간 유전자를 혼합해서 강화를 했더니 맨손으로 탱크도 때려잡는 괴물이 나타나더라… 이런 식인 거죠. 좋은 예시라면 리메이크 게임 <수왕기>에 나오는 늑대인간이 있습니다. <맥시멈 라이드>라는 소설에도 유전공학으로 만든 늑대인간들이 악당으로 등장하고요. 하지만 이런 작품들을 볼 때마다 의문이 생깁니다. 늑대 유전자를 인간과 조합한다고 해서 정말 1개 중대와도 싸울 수 있는 슈퍼 괴물이 등장할까요. 그런 괴물을 만드는 데에 꼭 공물 유전자를 사용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는 '아니다'입니다. 야수-인간은 어디까지나 허울만 그럴듯한 대체제입니다. 그냥 괴물을 집어넣으면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무섭게 보이려고 야수 이미지를 뒤섞은 거죠.

사실 '야수'들은 위협적인 이름과는 다르게 그리 막강한 상대가 아닙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사냥에 이롭도록 감각기관과 이빨이 발달한 생명체에 불과합니다. 표범은 날쌔기 때문에 총알을 피하며 접근한다거나 늑대가 엄청난 힘으로 큰 짐승들을 쓰러뜨린다는 묘사는 근거 없는 공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게 진짜 공상 과학입니다) 특히 야수-인간 이야기의 단골 손님인 늑대는 생태계 안에서도 그리 강한 존재가 아닙니다. 어지간한 동물들과 싸우면 늑대는 집니다. (팀버울프라도 혼자서는 쿠거를 당해내지 못해 죽기도 합니다) 이 동물이 자연 속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협동을 잘하고 영민하기 때문이지 힘이 세거나 싸움을 잘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사람을 잡아먹는 늑대는 문제입니다. 무방비 상태의 마을이라면 늑대 무리에게 당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늑대가 뛰어난 포식자인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군대를 습격해서 이긴다는 말은 몽상입니다.

따라서 이런 늑대의 특징을 인간과 합쳐놨다고 해봤자 생체병기로는 쓸모가 없습니다. 신체적으로 좀 더 뛰어나고, 협동심도 있고, 감각도 발달한 인간이 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날아오는 총탄을 맨몸으로 받아내며 거침없이 돌진하는 건 무리입니다. 정작 그런 성질은 늑대와 아무런 연관도 없거든요. 유전자를 강화시켰다고요? 그러면 차라리 그 강화 기술을 이용해 뭔가 다른 실험을 하는 게 낫습니다. 늑대 인간이 총알을 튕겨내는 건 늑대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그 강화 기술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요. 개과 동물은 민첩성이 부족해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멀쩡하다거나 먼 거리를 도약하는 일은 무리입니다. 그런데 늑대 인간이 그런 일을 한다면? 그건 늑대 유전자가 아니라 강화 기술 덕분입니다.

이왕에 유전자 이야기를 하면서 과학적으로 보이려면 동물학에도 좀 더 신경을 쓰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괴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든가요. 실제 사실이 어떻든 재미가 최우선이겠지만,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듭니다.

※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배트맨은 참 편리합니다. 배트맨은 박쥐의 힘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저 상징으로 사용할 뿐이니까요. 스파이더맨처럼 거미 능력 이외에 다른 능력을 발휘하는 오류가 없죠. 배트맨이 잠수 기계를 만들어서 사용해도 '박쥐는 잠수 능력이 없다'며 따질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