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습작전 개시 일주일 후.
  작전 개시 첫날 궤도 함대와의 격전에서 승리했던 탓인지 호루스 인들은 엘리네프 행성을 포기한 듯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거센 지상군의 저항 덕분에 이 작전이 끝을 맺지 못한 만큼 자신과 부하들에게 돌아가는 피해도 꽤 늘어난 느낌이 들었다. 첫날의 대공습에서 페드릭과 아이오와 벤젠을 잃었다. 정확히 말하면 페드릭은 뭔가에 폭행당해 중상을 입고 벤젠의 경우 전송비콘에서 생체 신호가 반응하지 않아 실종된 것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 덕분에 칼은 수많은 보고서들을 상부에 제출해야 했다.
  작전 개시일 D-65 에 최대 정원에 달하는 인원을 싣고 엘리네프로 도약한 <콜로수스>는 지금 6만 명에 달하는 인원 중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2개 강습 사단을 지상에 보내는데 성공한 후 지상지원 임무와 페드릭이 찾아낸 기지에서 호루스의 자료를 찾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실 상 함대에 위협이 될 만한 적의 세력이 전무한 지금 칼 어니스트 대령은 함의 지휘를 부함장에게 맡기고 함내 의료 센터에서 페드릭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와서도 대체 그가 어떻게 저런 상태가 됐는지 외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아는 한 페드릭은 각종 살인 기술에 통달하고 거기에 덤으로 에스퍼라는 사기성 능력까지 견비 했기 때문에 맨몸으로는 그에게 적수가 될 만한 존재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군의관이나 장교들은 페드릭을 보며 하나같이 괴물이라고 일축했다. 뭐…, 좋게 말하는 거겠지.
  하지만 심장을 비롯한 각 급소들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간 지라 몸이 계속 버틸지도 의문이고 의식이 깨어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군의관으로부터 듣는 말 중 하나이다.
  칼 어니스트는 약 3달 전 쯤 벤젠과 얘기하던 때를 기억해냈다.

  『아하. 전 포터 대령님에 대해선 자세히 아는 게 없지만 칼 대령님께서 말한 걸 듣고 보니 포터 대령님도 저와 크게 다른 것 같진 않군요. 염력은 크게 내염력과 외염력으로 나뉩니다. 따라서 저나 포터 대령님 같은 경우엔 외염력 계열의 에스퍼이죠. 외염력 계열은 대충 주변 동네의 물체에 간섭을 하는 개념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흠…. 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긴 하네요. 그때 페드릭 녀석이 호루스 보병 부대를 상대로 질식을 시켜버린 게 염력으로 진공상태를 만들어버린 거였구먼….』
  『아무래도 전자의 경우인 것 같군요. 하지만 특정 공간의 대기상태를 진공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통제력이라니. 웬만한 증폭기 없이 그런 짓을 했다간 바로 정신 줄을 놓는 게 정상인데.』
  『그럼 페드릭 녀석이 제국군 내에서도 강한 편에 속하는 건가요?』
  『당연하죠! 무의식중에도 몸에서 흘러나오는 영체의 강도가 9.6 마이톤. 제가 증폭기를 착용해도 8마이톤을 채 못 넘기니까 그 정도면 실전에서는 수치가 10배 이상 나올걸요. 맨몸에 이런 수치가 나온 거는 기록된 것 중에는 역사상 최고입니다만.』
 『확실히…, 숫자가 높긴 높군요. 그런데 외염력 말고도 내염력 계열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건 뭔가요?』
 『내염력 계열은 외염력과는 반대로 영체를 몸 안에서만 운용을 시킬 수 있는 능력자들을 의미합니다. 흔히들 신체강화 능력자를 뜻하죠. 이론은 많이 있는데 제국에선 아직 실제로 나타난 경우가 없어서 설명하기엔 좀 무리가 있네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 녀석 심심해서 제 부하들과 교련을 시켜봤을때 움직임이 장난이 아니던데 이것도 내염력이라 분류할 수 있는 건가요?』
  『에이. 설마요. 제가 말한 것을 잘못 이해하셨나 봅니다만 내염력으로 인해 신체가 강화되는 것은 움직임이 장난이 아닌 개념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이론에 있는 걸 말하자면 한마디로 초인이 되는 겁니다. 장난이 아닌 수준의 인간적 상식이 아니라 초현실적인 경지에 이른다고 보면 딱 적당할걸요. 마치 실제로 저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는 것처럼 말이죠. 제가 접한 대로 말하자면 번개 같은 움직임에 괴물 같은 생명력과 괴력을 지니게 되고 심지어는 시간을 내다볼 수도 있게 된다고 하더군요. 만약 저한테 이런 기회가 온다면 모든 걸 포기하고서라도 가지고 싶은요. 하지만 역시 먼산이죠. 게다가 인간의 몸으로는 내염력과 외염력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답니다. 저는 원소계열 외염력자인데 말 다했죠 뭐…. 그러고 보니 제가 말이 너무 길었군요.』
  『하하. 아닙니다. 벤젠 씨 힘내세요. 안되면 되게 하면 되잖습니까. 뭐 설명을 들어보니까 다른 성격의 능력자들도 꽤 많이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전 벤젠 씨와는 달리 지구인이라서 염력 비슷한 것도 못봣으니 원.』
  『대령님. 그건 단지 착각일 뿐이에요. 생명체는 모두 무의식적으로 영체를 조종할 줄 안답니다. 허나 그 수치가 너무나 미미해서 티가 안날뿐이죠. 대표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수면 상태에서 꿈을 꾸죠? 그것도 인간이 영체를 부린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에요. 꿈은 시공계열 인자로 인해 다른 평행우주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머릿속으로 투사되는 현상이에요. 수면 상태만큼 극히 안정적인 상태를 의식이 있는 상태엔 구현해낼 수가 없으니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고요. 애스퍼는 여기서 더 발전한 개념일 뿐 막상 알고 보면 별거 아니에요. 칼 대령님도 그런건 많이 겪어 보셨을 거라 믿어요. 포터 대령님의 평소 모습을 보면 일반인과 전혀 없어 보일 테니까 말이죠. 아! 생각해보니 저는 일이 있어서 그만 가봐야할 것 같네요. 무슨 일이든 희망을 가지세요. 주위에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체들은 언제나 생명체의 감정에 미세하게 반응하니까요. 제가 볼 때엔 칼 대령님도 만만찮은 능력자이신데요? 함의 지휘를 맡은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전투에서 패한 적이 없었다라…. 앗. 말이 길어서 죄송! 그럼 전 서둘러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심하게 낙천적인 성격이었던 아이오와 벤젠. 비록 벤젠은 그날 이후로 행방이 묘연해졌지만 칼은 그의 말대로 페드릭에게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언젠가는 멀쩡히 일어나서 자신에게 하나같이 귀에 거슬리는 욕설을 해댈 것이라고. 외관상 페드릭의 가슴은 살아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흉측하게 함몰되어 있었다. 대체 뭐에 맞아야 저런 상태가 되는 걸까. 그의 몸속으로는 지금 의료용 나노머신들이 삽입되어 뼈의 재생을 유도하고 몸을 치유시키고 있었다.
  대체 누가 그랬을까.
  페드릭이 저 꼴이 되고나서 칼은 정보 분석에 최대한으로 힘을 쏟았다. 호루스인들에 대한 정보고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는 이때에 현재 행성 표면에서 여전히 전투에 임하고 있는 병력들의 보고는 아주 도움이 되는 유용한 정보들이 많았다. 특히 호루스 병력의 전술이나 주요 배치도, 기계화 병력의 정보 분야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 중에는 괴담이라 불릴만한 것들도 꽤 많았다. 특히 어느 한 섹터에 포진해있던 연대 병력이 하룻밤 새에 초자연적인 ‘뭔가’에 의해 절멸했다는 보고가 인상 깊었다. 그 날은 총성조차 없었다. 더군다나 생존자 또한 없었고 이 현상은 현재 자신들이 어떻게 관측조차 할 수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현재까지 행성 표면으로 내려간 모든 보병에게는 생체신호를 발신하는 신호기가 탑재되는데 이런 신호기조차도 전혀 쓸모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 쪽 주변의 섹터에서는 그 일로 인해 크게 난리가 난 것 같았다. 사단장들이 함대사령부에 24시간 궤도관측을 요청했지만 그것마저도 해결이 나질 않았다. 그 어디서도 특수한 에너지의 이상 현상이 관측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칼은 페드릭을 저 꼴로 만든 게 지금 저 짓을 하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 싶어 <콜로수스>의 모든 관측 부서에 명령을 내려서 그쪽 섹터에 대기 중이던 한 연대장과 함대 사령부의 정보부서 대령이 대화하고 있는 것을 보던 도중에 그만 끔찍한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칼을 비롯한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은 당시의 오싹함을 잊지 못했다.
  반으로 분할된 스크린에서 느긋하게 정보부서 소속 장교에게 말을 걸던 이름 모를 연대장의 화면에 갑자기 검은 안개가 지나가자 순식간에 피가 빠져나가듯 안색이 창백해지며 실 끊긴 인형마냥 쓰러지던 그 섬뜩한 모습을.
  그리고 그 다음날. 그 연대장이 있었던 곳을 기준으로 3킬로미터의 범위 내에 있던 모든 군인들이 사망했다.

  칼은 한 1~20분 정도를 그의 옆에 있는 간호석에 돌처럼 앉아 있었다가 일어나 다시 전투정보실로 몸을 향했다. 더 있는 것도 가능했지만 지금 밖의 상황은 마냥 한가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콜로수스>는 페드릭이 발견한 호루스의 지하기지에서 올라오는 정보들을 해독하는데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AI나 승무원들이나…. 대부분의 정보부 대원들이 정보실에서 작업에 집중하고는 있었지만 호루스 원어였기 때문에 제국군에게 도움을 받는데 더 집중했기 때문이다. 허나 그 작업 속도는 전체적으로 매우 저조했다. 하지만 며칠 전 우연히 알게 된 인간 하나 때문에 자신은 여러모로 불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이 함선으로 배치될 때 그쪽에서 직접 소개하던 게 아마 언어나 역사 쪽에서 굉장히 유능한 인물이라고 했었나. 그쪽 분야에선 심하게 알아준다던 닥터…, 뭐시기라고 했더라?
  아아, 닥터 리.
  풀 네임이 이경헌이라고 했다. UK 국가 소속의…. 가이아 연방군 기술력의 90%는 그쪽에서 나온 거니까 총 인구는 5억도 안 되는 숫자인데 그 기술력에 관해선 아직까지도 베일에 싸인 국가라고. 그는 한참을 걸어가야 할 거리를 한번 걸어가 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칼의 표정은 점차 변해갔다. 총길이 2.8 킬로미터, 폭 1.4 킬로미터의 대형 항공모함에서 각 분야 섹터간의 거리는 인내심에 문제를 안겨다 줄 정도로 함선은 심각하게 넓었던 것이었다. 일단 2달치의 식량만 해결된다면 이 함선에는 최대 35만 명에 달하는 인원을 수용할 수도 있다. 양쪽 항공갑판도 거주구획으로 개조해버리면 말이다. 그 정도로 <콜로수스>는 심하게 큰 전함이었다.
  위이잉!
  “몸이 예전 같지가 않군….”
  “대령님?”
  전투정보실에 힘겹게 도착했더니 반겨주는 부하들은 드물었다. 뭐…. 며칠 만에 등장한 것도 아니고 한 시간도 안되서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나마 좀 반기는 승조원들이라곤 매일 3교대로 되는 대원들밖에 없었다.
  “상황은?”
  항상 뻔한 상황이겠지만 언제나 절차 상 밟는 일이다. 뭐 케이스의 입에서 튀어나올 말들도 대부분은 예상하고 있었다. 이그라스 레이더에 잡히는 이상 현상은 없고 얼마 전에 도약한 아군 함대는 행성 표면에 군수물자를 보내고 있다고 하고 결국은 잠재적인 위험 수치는 매우 낮은 편일 것이라고.
  “아…, 별거 없습니다. 8시간 전에 이쪽으로 도약한 아군 보급함대들이 행성 표면에 군수물자를 전송하고 있고 이그라스 레이더는 액티브 스캐닝 모드로 전환. 반경 6광분까지 범위를 높인 상태입니다. 뭐…, 일단은 한가한 상태입니다. 지휘는 계속 맡고 있을까요?”
  “그래. 계속 맡고 있게. 최소한 이리시스 제국군 전투함대가 버티고 있는 한은 호루스도 어떻게 못할테니 말이야. 그보다…. 닥터 리에게 넘겨받은 정보들은 얼마나 있나? 상부에서 그를 억수로 띄워주던데 먼진 모르겠지만 한번 구경이나 해보고 싶구만.”
  “아. 닥터 리요? 그 사람 지금 보내주는 것들은 많은데 죄다 암호화가 돼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까지는 자신이 어떻게 하지 못한다던데요? 무의미한 단어들이 무차별적으로 배열되어서 일단 그거라도 보내주고 있습니다.”
  이것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적의 지상군 사령기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나온 정보들이 암호화되있는건 이쪽에서도 그랬으니까. 각 정보들을 파괴시키지 않은게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칼은 통제패널에 몸을 기대는 동안 몇 가지 시나리오를 더 생각해냈다. 페드릭이 의식이 있었다면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텐데….
  “자네가 보기엔 암호 배열이나 그런 거는 뭐, 어떻게 해볼 만한 것 같나?”
  이 함에 오기 전, 정확히는 알티미리스 기지로 이전되기전 암호해독반 소속이었던 케이스 소령은 칼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단번에 답하였다.
  “부정적입니다. 각 글자들이 3차원 배치로 엉켜있는데 이런 건 저는 처음 보는 방식입니다. 기존에 반정부군에서 주로 쓰이던 암호방식과는 격이 틀립니다. 정보부 쪽에서도 이거 보내주면 심하게 힘들어할 것 같습니다만….”
  “그런가…. 젠장, 역시 페드릭 녀석이 있어야해. 그놈이라면 어떻게든 잘 할 텐데.”
  “대령님. 그런데 포터 대령님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분을 언급하시는 겁니까?”
  “안대단해. 자네도 그 녀석은 꽤 많이 봤을 텐데 느끼지 못한 건가?”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잠깐만. 일단 그런거 때려치우고 한번 생각해봐. 어떤가?”
  케이스 소령은 칼의 말에 페드릭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무감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흠…. 평상시 하루도 빠짐없이 부지럽게 군자산 파손 및 동력 남용, 그에 맞게 성격은 매우 포악하고 평소 욕설과 독설을 입에 달고 삽니다. 여러 면에서 따져봤을때 확실히 포터 대령님은 타고난 악질입니다. 그런데 대령님께서는 어째서…?”
  칼은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아까보다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아마 주위에 근무 중인 각 부서원들에게까지 알려주긴 싫은 듯 했다.
  “괴물이니까. 신체적 자질이나 지능, 망각이 거의 없는 기억력. 그놈의 성격이 그 녀석에 관한 인상을 죄다 붸려 놓아서 문제지 적진에 단신으로 풀어 놨을 때 그 어떤 부대보다도 효과적으로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그뿐이지. 게다가 그는 천재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순간대처능력은 물론이고 제국어와 연방공용어, 그리고 덤으로 호루스언어도 완벽히 구사할 줄 알지. 세비어인이 나타나고 나서 <콜로수스>가 개장하는 내가 그를 데리고 놀러간 줄 알았나? 사실, 아니야. 심심해서 그를 연방성에 보내서 개인전투력을 측정해봤는데 그 수치가 장난이 아니더군. 내 부하인 사일러 렉싱턴 소령의 총합 전투력이 4932였어. 거기서 듣기로는 연방군 전체에서 2번째로 높은 수치라더군. 하긴…. 원래 그는 반정부군 출신이었으니까. 여기서 매기는 점수에 관한 기준은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잊을 리가 없었다. 사관생도에게 매기는 총 전투력은 생도과정을 끝내고 나서 받는데 케이스 에비게일 소령의 점수는 1922였다. 물론 이 점수에 들어가는 기준들은 신체적인 요소만 보는 게 아니라 전략, 전술 및 돌발 상황에 따른 순간대처능력 같은 것들도 굉장히 많이 포함되었다. 한마디로 저 점수는 측정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는 가상의 적보병을 얼마나 많이 처치하는 가에 대해서 기준하는 점수였던 것이다. 케이스는 마른 침을 삼키며 칼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사일러의 경우 파일럿이기 때문에 그랬지. 하지만 페드릭은 달라. 그의 전투력은 4105로 전체 3위에 달했지만 그는 오직 맨몸으로 놀더군. 오직 맨몸으로 말이야. 상상이 가나?”
  “잘 모르겠습니다.”
  “몸에 총하나 걸치지 않고 시스템이 만든 지형에서 단신으로 4105명을 제압하고 그 다음에서 전사했다는 뜻이야. 게다가 그 녀석. 호루스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줄도 알더라고. 내가 지금 원하는 건 그뿐이야. 현재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가진 자는 그밖에 없으니까 말이지. 한마디로 호루스인의 사고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이 필요해.”
  칼의 말이 끝나자 케이스는 입을 다물질 못했다. 한마디로 그놈의 악질적인 성격만 빼곤 모든 면에서 천재라는 것 아닌가. 뒤늦게 정신이 돌아오자 그는 열려있던 입을 살며시 다물었다. 칼은 케이스의 표정을 살핀 뒤 재밌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냥 그렇다는 거야. 그 녀석은 지금 누워있는 순간에도 우리에겐 영원한 악질이라고. 그렇게 신경 쓰지 말게. 아마 놈도 그걸 원할 거야.”
  “옛 서.”
  아무래도 칼 어니스트 대령은 간접적으로 자신을 떠본 것 같았다. 그 심도는 무척 약했지만 케이스는 그 의미가 무얼 뜻하는 건지 진즉에 깨달았다. 겉으로 보면 분명 좋아해야 할 일이겠지. 이후에 함의 지휘는 칼이 맡았다.

  3395년 10월 7일 지구표준시각 1620시.
  엘리네프 행성, 섹터 226-022.
  지평선 저편으로 붉은 색 항성이 사라진지 벌써 4시간 째. 지구로 치면 벌써 11시 쯤 됐겠지만 여기는 지구와는 모든 게 다른 행성이었다. 제 1023 사단 2연대 소속인 에이만 카펠 병장은 임시로 만들어 높은 벙커에서 적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그 벙커에는 그 혼자뿐이었지만 에이만은 소대 무전 채널로 인해 혼자 있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지금 시간은 지구로 치면 초저녁에 해당하는 시간이었다. 자전 시간이 무려 30시간이나 되는 바람에 시간 상 그렇게 된 것이었다. 덕분에 밤 시간은 14시간 이상 지속되었고 그로 인해 일교차는 지구보다 2배 이상 컸다. 새로운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강습병들이었지만 과연 그 말대로 적응하는 인원들은 얼마나 될까.
  강화복의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외부 기온은 영상 8도. 낮에만 해도 35도까지 올라갔던 고온은 이 행성의 토착생물이 아닌 것들에게 가혹한 대접을 가했다. 한 5~6시간만 더 흐르게 되면 기온은 영하권으로 쭉 떨어질 것이다.
  “!?”
  처억.
  인기척이 느껴졌다. 에이만은 강화복 밖으로 소리가 새나가지 않게 조용히 소대 무전 채널에 이쪽으로 오는 아군이 있는지 물었지만 없다는 답만 나왔다. 그는 디스플레를 열탐지 모드로 전환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리플렉터였다. 이런 우거진 밀림에서 리플렉터를 탐지하는 수단은 단 2가지뿐이었다. 육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 이건 오히려 자신의 감이 더 정확했다. 호루스 보병이라면 오히려 발견은 편했으니까….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면 오히려 선공을 가할…!?
  순식간에 시야를 덮는 검은 안개와 강화복을 때리는 둔중한 충격. 에이만은 대응할 시간도 없이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뒤늦게 루만 소총을 발사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검은색 깃털의 호루스인 하나가 자신의 목을 발로 밟고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황금색 깃털과는 완전히 차별된 순흑색의 깃털. 기존에 익히 들었던 황금색의 갑옷과는 달리 검은색을 띄는 갑옷. 게다가 그 호루스인은 두려울 정도로 붉은 색의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윽….”
  몸을 버둥거려보지만 마치 가위에 눌린 듯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처음 보는 강화복, 깃털의 색과 양쪽 눈동자가 금빛과 붉은색을 띠고 있다.
  “아브라카다브라….”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악마의 목소리라고 하면 저런 걸 말하는 걸까. 에이만 병장은 그 호루스인의 몸에서 검은 뭔가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검은 안개도 분명 그의 몸에서 나왔거나 하겠지.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 호루스인은 윤기 없는 검은색의 아대에 검은 안개를 집중시키자 곧바로 에이만의 심장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심장이 파열되며 쇼크 상태에 몸이 제멋대로 경련하며 에이만은 한 점으로 축소 되가는 시야에도 의식이 사라져가는 마지막까지 저 호루스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허무의 세계로 떨어지기 직전 수많은 기억들이 그를 스쳐가 다른 곳으로 사라져가고 그 기억들을 마지막으로 그의 생명은 함께 어둠 속으로 꺼져갔다.
  검은 깃털의 호루스인은 채 식지 않은 인간의 피를 대충 털어내며 뒤따라온 호루스 보병의 보고를 받았다. 그들은 호루스 언어로 이렇게 말했다.
  “아브라크 집행관님. 오르페우스 병력들 출전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우리 쪽에서 먼저 습격을 가한다면 곧 인간의들 함대에도 침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르페우스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인간들은 그걸 손쉽게 막아날 거야. 이리시스 제국 녀석들은 계속된 승리로 우리를 과소평가했다. 적들의 계획은 이미 간파했다. 기간테스를 배치시켜라. 통신망을 재구축해서 준비시키라고 전해라. 신께서 나를 보내게 한 이상 지금 성지에서 제멋대로 날뛰는 적들을 극도의 공포로 미치게 만들 것이다. 이 모든 뜻이 네프닉스의 뜻대로 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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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5 끝.
군대가기 전 마지막 회입니다.

막장전개에 요상한 필체 감상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에피소드 6 1화로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