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구궁!
  콰아아앙!!
  “진로 015-000으로 디코이 발사해!”
  순간 발키리의 함수에서 1초에 12개 간격으로 3초 동안 미사일 같이 생긴 물체가 튀어 나아갔다. 20발 가량의 길쭉한 디코이 드론은 모함인 <발키리>를 대신해 일정하게 대형을 갖추자 자동으로 후미 부분의 추진기를 작동시켰다. 두께 40 센티미터, 길이 3.6 미터의 디코이 미사일은 <발키리>가 내뿜는 전파와 완전히 일치하는 크기의 전파를 온 사방에 뿌려대며 <발키리>에게서 서서히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디코이 미사일은 추진기의 동력이 모두 소모되는 한은 계속해서 목적을 달성해 나갈 것이었다.
  시도는 좋았다.
  가장 우려했던 호루스 함대의 집중포격을 피할 수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적 사령관도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호루스 전함에서 퍼붓는 무기들은 골 때리게도 죄다 무유도 무기여서 디코이가 전혀 효과가 없었다. 적함대는 디코이에서 내뿜는 전파와 <발키리>에서 내뿜는 전파를 구분하지 못했는지 화력을 분산시켜서 모든 목표를 향해 쏴댔다. 잠시 후 그녀는 상갑판 쪽에서 불길한 진동을 느꼈다. 익숙한 패턴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적의 의도를 알아내고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이런 젠장! 상갑판으로 모든 방어막 출력 최대치로! 전원 충격에ㅡ”
  순간. 그녀의 눈에 함내의 모든 내벽이 순간처럼 뒤틀리는 현상이 보였다. 마치 타이탈리움 합금이라는 초고강도의 금속이 고무라도 되는 마냥 춤을 추자 벽 근처에 있던 그녀가 익히 알고 있던, 부하라고 부르던 육체가 그대로 기화해버리며 사방으로 핏빛 안개가 퍼져나갔다. 1초가 1분처럼 느껴지고 10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핏빛으로 물든 전투정보실.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본 마지막이었다.
  갑작스레 올라간 기온으로 인해 함내의 공기 중에 떠있던 수증기들은 <발키리>가 한 번 더 적함대로부터 강렬한 타격을 받자 치명적인 충격파가 되어 <발키리> 내에 탑승하고 있던 거의 모든 승무원들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다.
  “……!!”
  정적.
  한 5분 정도가 흘렀을까. 함선의 벽과 바닥, 천장은 온통 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도 눈앞에 끔찍한 광경이 펼쳐지자 제정신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어떤 이들은 미친 듯이 웃고 어떤 이들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있었다는 증거는 곳곳에 페인트로 칠한 듯 묻어있는 피 뿐이었다. 전투정보실에는 80여 명의 사람들 중 3명만이 살아남았다. 단 3명만 말이다. 다른 2명은 이미 실성해서 자신이 할 일을 잊은 듯 했다.
  “으아아아아!!!!”
  소름 끼치는 비명소리, 함선 전체에 입은 인명피해와는 달리 멀쩡하다시피 간략한 경고만 내고 있는 비상경고음.
  탕!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아마도 이성을 잃지 못한 승무원이 견딜 수 없는 현실에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소리이겠지.
  “빌어먹을….”
  전투 정보실 한가운데. 가장 충격파의 영향을 받지 않은 위치에서 한 남자가 바닥에 주먹질을 하며 엎드려 있었다.
  “빌어먹을…!”
  아마 그는 유감스럽게도 미치지 못한 사람 중 하나였던 것 같았다. 아니면 너무나 강력한 정신력 때문에 미칠 수 없었을 수도….
  배가 찢어지듯 아프고 목은 완전히 쉬어서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래선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미친 듯이 우는 것 외엔 다른 게 생각나질 않았다. 콧물범벅, 눈물범벅이 되면서도 그는 미친 듯이 울었다. 왜 자신만 멀쩡한 건지. 어째서 자신만 멀쩡해야 하는 건지.
  “빌어먹을…!!”
  반년 전에도 혼자만 살아남아 이곳에 정착했다. 생명유지장치가 제 기능을 다해 죽어가던 상황 속에서 정말 우연히 ‘반정부군’이라는 세력에 의해 목숨을 건지고나서 말이다. 이미 떠나간 사람들 때문에 미안해할 감정도 시간이 흐르게 되면 단순히 추억으로만 인지할 뿐이었다. 당시에는 그렇게 견디기 힘든 사실이었는데도. 그런 것을 지금 또 경험하고도 자신의 정신 상태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는 더 이상 이러고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여겨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농구장 8개를 합쳐 논 크기의 전투정보실은 온통 피범벅이 되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시켰다. 시체 따윈 일절 보이지 않는다. 수증기가 일으킨 가공할만한 충격파가 인간의 육체를 사정없이 부숴버린 것이다. 초속 수십, 수백 킬로미터로 움직이는 대형 함선이 관성제어장치가 박살난 채로 적함대로부터 초고속탄을 받아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런 상황을 불러일으키기엔 결코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극초음속의 충격파가 가지는 에너지는 두께 1미터의 철판이라고 해도 사정없이 찢어버릴 정도로 충분하니까.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다시 극히 냉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했다. 저기서 실성한 채 초점을 잃은 눈동자를 한 곳에 자리 잡은 채 어딘가를 쳐다보는 승무원을 뒤로하고 그는 방금 전까지 레베카 블레어 대령이 서있던 곳으로 걸어갔다.
  지난 반년 동안 호루스인들이 이룬 과학적 업적은 비상식적으로 빨랐다. 이미 태양계로 진격한 함대 중 반수를 제거한 것은 이쪽에서는 굉장히 큰 이점이었지만 말이다. 그는 <콜로수스>에 있었던 제어패널과 똑같이 생긴 장치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전투정보실의 스크린 중 하나가 붉게 물들어가며 기묘한 문자들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마나파동 인식. 명령 대기 상태입니다. 생명유지 시스템 정상 작동 중입니다.)
  “이디이아. 이젠 괜찮아. 시스템 접근코드 모두 해제한다.”
  그가 스크린에 대고 말하자 짙은 붉은 색으로 물든 스크린은 다시 푸른색으로 변하며 어디선가 감정 없는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승인. 시스템 접근 코드 모두 해제합니다. 오랜만이군요.)
  “그래….”
  AI의 말에 그는 힘없이 대답했다. 주위 풍경을 보면 오히려 노토르의 AI 패널에서 나오는 억양 없는 목소리가 분위기를 더 침울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AI가 먼저 말했다.
  (명령을 내려주시겠습니까?)
  “…외부 상황은?”
  (호루스의 신형 전함 126척이 연방군 함대를 상대로 일방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척의 호루스 전함이 이쪽으로 경로를 향하고 있습니다.)
  “…….”
  (함선 내부로 침입할 확률은 95% 이상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함선을 포획할 확률이 과반수를 차지합니다. 즉시 피난하십시오. 계속 이곳에 머물다간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델.)
  이디이아라는 이름의 AI가 자신을 걱정해주자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후…. 그것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닌걸. 나보다 먼저 가버린 사람들을 두고 나 혼자 남아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말이야.”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우울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벽이나 천장 할 것 없이 온통 핏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온 사방에서 역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러댔지만 후각이 마비된 것은 이미 한참 전이었다. 바로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를 간신히 동료라고 불러주던 사람들은 이제 망자가 되어 이 세상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는 아까부터 머릿속에서 맴도는 ‘자살’이라는 단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계속해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히 잠깐이나마 그에게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고 그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자신을 증오했다.
  쉬익!
  어디선가 익히 들어본 계열의 무기가 발사되는 소리가 내벽을 통해 전해졌다. 호루스 인들이 함선을 탈취하기 모선에서 전송되어 왔을 것이라. 호루스인에게 이 함선의 가치는 상상 이상이니까.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델. 함내에 1개 중대 급의 열원이 감지되었습니다. 여기서 약 80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즉시 피난해주십시오. 지금이라면 이쪽의 빔전송으로 탈출을 도울 수 있습니다. 함선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디이아가 말하는 것은 자폭을 뜻했다. 이 전함을 무력화시킬 정도의 힘이라면 자폭을 저지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쉐엑!
  이번엔 좀 더 가까운 부분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이 함선 내부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하며 전진하는 것 같았다. 보나마나 저 병력 중에는 오르페우스도 포함되어 있겠지.
  (경고. 적이 이곳의 생체신호를 탐지했습니다. 적 보병부대는 총 1개 중대입니다. 즉시 피난하십시오. 즉시 피난ㅡ!)
  쿠앙!!
  순간 이디이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위치한 곳에서 약간 떨어진 해치가 폭발과 함께 날아갔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수그리며 말했다.
  “이디이아! 다시 침묵해.”
  (…….)
  그는 적병들의 예상되는 심리상태, 무기, 진형들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자신에게 유리할 법한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방금 폭발한 해치와는 정반대의, 위치상으로 치면 가장 거리가 멀고 장애물이 많은 위치였다. 실성한 승무원 2명의 생명은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불행히도 자신에게 무기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듯 호루스가 얼마나 강하든 간에 헬리오스 앞에서는 새발의 피였다. 자기 주제를 모르고 끊임없이 설쳐대는 것들. 피조물 따위가 얼마나 진화를 했든 간에 그는 전혀 상관할 바 아니었다. 해치 건너편 복도 벽에서 그림자가 움직이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온 몸에서 그동안 묶어두고 있었던 염력 에너지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저 정도 병력쯤이야…. 전혀 문제없다. 복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저것들에게 충분히 깨우쳐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단순히 이것으로 끝내기엔 먼저 간 이들이 자신에게 뭐라 할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삶의 미련따윈 없었으니까. 이왕 죽을꺼 최대한 저놈들의 속을 뒤집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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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벌려보아요!//(뭔가 이상한 점을 찾으시지 않으셨습니까//)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