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흔의 전장 (목숨이 붙어있고 생활환경이 보장되는 한 연재는 계속됩니다.) - 08년 10월 27일 공군입대 합니다.
부상자 16명, 전사자 9명.
“저 큰놈부터 없애야 돼! 저궤도에 순항중인 함대에 궤도폭격 재개시키라고 해. 여긴 정말 위험하다고. 조금만 늦으면 살고 뭐고 없어!”
일개 소대 병력이 간신히 구축한 저지선은 몇 분도 채 되지 않은 채 무너져 내렸다. 여기서 보고 있는 리플렉터들은 전에 보던 그 둔한 리플렉터들이 아니었다. 외관도 자료상에 나와 있던 것과는 세세한 부분이 틀렸고 움직임이나 지능도 전보다 훨씬 앞서갔다
이것들은 앞을 막는 모든 장애물을 닥치는 대로 초토화시켰다. 이게 바로 이리시스 제국에서 그토록 주의하라고 강조했던 호루스의 기계화 병력이라는 건가. 그들은 아직 호루스 인 비슷한 것도 구경하지 못했다. 지하에서 페드릭 일행이 나름대로 위험에 빠진 동안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리플렉터들의 파도에 맥을 못 추리고 있었다.
소대장은 눈물을 머금을 시간도 없이 후퇴하면서 열심히 사격을 했다. 델도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할 겨를이 없었다. 자신의 능력은 이 리플렉터에겐 아예 통하지 않으니까. 지능은 있지만 자아가 없는 인공 생명체라니…. 자신의 종족에 비해 저능했다고 여기던 것들이었는데 피조물들을 통제하는 것에 관해서는 그 체계가 아주 훌륭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동족들은 이것들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이들은 다른 건 몰라도 기계화병력의 기술만큼은 정말 뛰어났다. 델은 긴장 반, 감탄 반으로 소대장을 따라 죽어라고 후퇴를 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저 쇳덩어리들에 의해 몸이 갈기갈기 찢기게 된다. 델이 속한 소대는 전력으로 후퇴를 하던 도중 다행히도 지상에 내려오는데 성공한 몇몇 부대와 조우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쪽도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각 병력들의 배치는 나름대로 훌륭하였으나, 리플렉터가 저렇게 나오는 이상 지형이 주는 전략적인 이점은 더 이상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중화기 사수들은 나무 사이로 들려오는 리플렉터 특유의 소리에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델은 부대가 합쳐지자 곧바로 자리를 배정받고는 후퇴 병력반에 포함되었다. 왠지 자신에게만 이렇게 꼬이는 느낌은 뭘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죽음의 냄새가 쫒아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섣불리 정을 주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델은 우거진 나무 사이사이로 은청색의 반사광을 발견하자 거리가 머지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몇 분 안에 여기서 격전이 발생하겠지. 자신이 가진 능력이 미래를 예견하지는 못했지만 델은 곧 있을 전투 현황을 대충이나마 예측할 수 있었다.
자신이 아는 한 리플렉터는 근접전 위주로 설계된 전투로봇에 불과하다. 이것들은 숫자로 승부하는 놈들이다. 전술 따윈 애초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델은 주위를 둘러보며 아군 병력의 규모를 파악해봤다. 대충 어림잡아 볼 때 2개 중대 병력, 400명 정도의 병력.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견줄 만하다. 사기만 해결된다면 상대해볼만 할 텐데….
리플렉터가 적을 인식하는 감지 기준은 리플렉터를 관리하는 서버 개념의 메인 루틴에 저장된 정보이다. 아주 오래전 교육 받을 당시 기준으로 볼 때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대략적으로 리플렉터가 감지하는 목표는 무기의 에너지원이나 외형의 모습, 그리고 일정 시간당 내뱉는 이산화탄소의 농도였다.
-전 대원 발포 대기.-
긴장을 깨고 채널에서 소대장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꽤나 긴장한 느낌이었다.
델은 복사자세로 리플렉터 무리를 향해 정조준 한 채 대기했다. 그리고 발포 허가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폐허를 만들며 전진하는 리플렉터들에게 1.85 밀리미터 의 레일건 탄환이 극초음속으로 날아가 리플렉터들을 관통했다.
스르릉….
파바바바!!
위이잉…. 콰과과과아아!!!
1소대의 사격이 시작되자 뒤에 있던 지원화기들도 불을 뿜기 시작했다. 고막이 찢어지는 통증과 함께 1선에서 몰려오던 리플렉터들 중 대부분이 분대지원중화기, M266 마울건이 조준하는 방향대로 주저앉았다. 먼지가 일어나고 그 먼지 사이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2선의 리플렉터들이 돌격해온다. 진정한 물량공세. 델은 공포로 물든 병사들의 심리를 적절히 가라앉혀 주었다. 적에게 피해를 줄 수 없는 이상 아군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역시 역부족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까 봤던 초거대 리플렉터는 이쪽에는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지 한발 한발 천천히 움직이며 몸체를 고정시켰다. 관절 부위마다 튀어나오는 리플렉터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초거대 리플렉터의 크기는 실로 장관이었다. 웬만한 고층 빌딩들은 명함도 못내밀만한 다리 한 짝의 길이. 웬만한 프리깃만한 크기의 함체가 울고갈만한 거대한 몸통. 게다가 가장 심적인 압박을 주었던 것은 저게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 킬로미터는 될법한 거리에서 자그마하게 보이는 것들이 살짝 많았다. 웬만한 작은 산이 울고갈만한 크기. 물밀듯 밀려온다는 표현은 이럴 때에 쓰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던 중 하늘에서 뭔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랄까. 아직 폭풍이 몰아치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진 지금 당장 알 수는 없었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 속에서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전투기인가…?
워낙 악천후여서 하늘의 상황이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극초음속 비행으로 인해 쩌저적거리는 소리가 땅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직 후에 저 멀리서 수킬로미터 밖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찰나의 시간에 일자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자리를 따라 꽤 큰 폭발이 그 뒤를 이었다. 지평선이 조금 못 미치는 거리에선 폭발염이 자리를 매꿨다. 부족한 공군지식을 뒤져볼 때 저건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함재기에서 발포된 대구경 코일건 포탄이었다. 12.8 밀리미터의 레일건 포탄은 시속 32,000 킬로미터의 속도에 기체의 속도가 더해져 무서울 정도의 관통력을 자랑했다. 게다가 착탄 순간 지면과의 충돌이 엄청난 마찰을 일으키면서 방사능 없는 핵폭발을 일으켰다. 초거대 리플렉터가 전투기의 폭격에 움찔거리자 일순간 멈칫하는 리플렉터들.
(저 조금한 것들은 큰놈들 목숨에 왔다갔다 하는 건가…?)
쩌저저적!!!
음속으로 인해 뒤늦게 울려 퍼지는 폭발 소리. 소대원들은 저 전투기들을 조종하는 인간이 누군지는 몰라도 눈물 나게 고마워했다. 델은 멀리서 폭발이 일어나는 광경을 쳐다보았다. 방금 전까지도 위풍당당해보이던 초거대 리플렉터들이 아군 전투기의 코일벌컨포를 뒤집어쓰자 구멍이 숭숭 뚫리며 중심을 잃고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군 전투기들은 1분도 채 안되어 신속하게 눈에 보이는 초거대 리플렉터들을 모두 제거하고는 다른 섹터를 향해 날아갔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시끄럽던 전투기 엔진 소리가 멀어지는 걸로 파악할 수 있었다.
델은 이제 4번째 탄창을 갈아 끼우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탄창은 2개. 이제 이것마저 다 떨어지면 존재유무조차 모르는 이 부대의 대대본부에서 보급물자를 얻어야 한다. 허나 현황으로 비추어 볼 때 그런 바램들은 현실성이….
지평선이 울렁인다.
“!?”
“으아아악!!”
두 번째 이변은 그렇게, 갑작스레 찾아왔다. 머리카락이 주뼛 서는 것 같은 비명소리. 의문의 충격파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단 한명도 빠짐없이….
특히 주변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던 물체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는 것은 델에게 묘한 공포감을 주었다.
‘정신파 폭풍인가. 하지만 어째서 저 리플렉터들까지…?’
전에 이런 현상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허나 어째서 리플렉터들의 움직임가지 일제히 멈춘 것인지는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
멈춰버린 공간 속에서 그는 하늘이 바뀌어버린 것을 눈치 챘다. 게다가 아까까지만 해도 익히 겪고 있었던 그 날씨도 아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자신이 밟고 있는 곳을 제외한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같은 시간. 엘리네프 지표면, 15킬로미터 상공.>
3분 전에 일어난 사건 하나가 그 곳을 주시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불과 5킬로미터 밖에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던 지휘본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문제의 장소가 있었던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일러 렉싱턴 소령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146 함대의 강습편대를 엄호하던 중 비행 궤도에 있던 섹터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똑같은 질문을 수차례 받았다. OUD에 표시된 비행고도는 15킬로미터. 자신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다.
-지표면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강습대원들의 생체신호가 모두 끊어진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라.-
연대본부에서 이것저것 묻는다. 하지만 아는 게 있어야 뭘 설명하든 하지. 자신이 목격한 거라곤 뒤따라오던 편대기들이 그 어떤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편대기 중에 사라진 기체의 숫자는 16기 중에 12기. 그들은 귀함도 거부된 채 저속으로 상공을 맴돌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4기의 F/A-26d 기체는 음속의 80% 속도로 주위를 선회했다.
기형적으로 거대한 적란운 덕분에 육안시야는 제로에 가까웠지만 사일러의 기체와 편대기들 간의 거리는 불과 200미터도 되지 않았다. 사일러는 <콜로수스>의 이그라스에서 보내는 행성의 지리 좌표와 행성 표면에 있는 연대본부의 광학 측정 자료를 기체의 AI에 입력시키며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내려 했으나 희한하게도 모든 게 일치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사일러는 비구름 속에서 OUD에 산출되어 나오는 지리 도표가 눈에 들어오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유는 마치 바꿔치기라도 한 듯 지표면의 경계를 칼로 도려낸 듯 한 느낌이었다. 진원지로 추정되는 곳을 기준으로 반경 5킬로미터의 원이 정확히 그렇게 교체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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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혼자 심각해져서 분발 중입니다.
에피소드 5는 아마 10화에서 끝을 맺을 것 같습니다.
항상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