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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하는 장전음이 나 밖에 없는 빈집에 메마르게 울렸다. 나는 잘 손질된 권총을 손에 쥐고 현관문을 나와 문손잡이를 세 번 돌려보고 문이 잠긴 것을 확인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와 차를 몰고 평창동으로 향했다. 자정이 넘은 3월말의 서울은 아직 차가웠지만 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밤늦은 도심의 소통은 시원스러웠다.

평창동사무소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밖으로 나오자 북악산의 상쾌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숲의 냄새가 날 터였다. 하늘에는 유성 하나가 긴 꼬리를 자랑하며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그어대듯 떨이지고 있었다. 서울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 원과 함께 이곳에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그런 생각을 지우고 목적지로 빠르고 조용히 이동했다.

제이가 준 지도와 사진을 비롯한 자료들은 종이로 출력해 깔끔하게 접힌 채로 재킷 속주머니에 들어 있었으나 굳이 꺼낼 필요는 없었다. 평창동에 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철저히 지도와 자료를 분석하고 암기했기에 낯익었다. 일 때문에 가는 곳은 처음이라도 지도와 자료 덕분에 익숙한 공간이 되어버린다. 제이가 준 메모리스틱에는 골목 구석구석까지 녹화된 평창동 일대의 동영상과 대상의 집의 3D도면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상을 처리하는 것에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처럼 회사 직원 서넛이 승합차에 타고 이동한다면 다른 요원이 알아서 나를 목적지에 내려놓겠지만 이제 더 이상 회사는 그런 식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따라서 철저한 사전 자료 분석이 없다면 자칫 내 목숨뿐만 아니라 회사의 존폐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봉투 속에 들어 있던 카드키로 대상의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제약 회사의 중역으로 나이는 51. 이름은 김승수. 이 사내는 회사의 주력 약품에 위험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식약청 조사 결과 밝혀지자 무마하기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댔다는 것이다. 여권의 실세 중진에게 달러 케이크 상자가 전달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사실이 폭로되면 당내 경선의 불리함을 딛고 승리해, 최종적으로 대통령을 당선시킨 중진 박 의원의 정치 생명이 위협받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1층은 불이 꺼진 채 아무도 없었다. 2층에서는 나라면 절대 보지 않을 자정 무렵의 시끌벅적한 토크쇼 소리가 들려왔다. 김승수는 이미 가족들을 미국으로 도피시킨 뒤였는데 자신이 출국 금지 대상에 오르자 절망에 빠진 나머지 술에 절어있다고 자료에는 씌어져 있었다. 2층에 올라가자 그는 권위적으로 보이는 커다란 검정색 가죽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눈을 감은 채 침을 흘리며 졸고 있었다. 형광등은 모두 꺼진 채 울긋불긋한 TV 화면의 빛이 네온사인처럼 그의 얼굴을 두어 번 스치고 지나갔다. 난 권총을 꺼내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쳐 들고 가슴에 두 발, 머리에 한 발의 총알을 정확히 꽂았다. 침을 흘린 채 잠들어 있던 그의 자세는 총알이 가슴과 머리에 박히면서도 약간 움찔거린 것 외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출혈도 거의 없었다. 아마도 술에 너무 취해 고통도 모른 채 죽었을 것이다. 설령 술을 먹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가 처리하는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즉사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트리플 텝을 밟기 때문이다. 권총을 재킷 속의 홀스터에 집어넣으며 테이블을 보니 발렌타인과 위스키 잔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나는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이 집에는 피비린내보다 위스키 냄새가 더욱 심하게 진동할 것 같았다. 이제 곧 직원들이 뒷정리를 하러 올 테고 내일 아침에는 ‘비리 의혹 제약 회사 중역, 자살’이라는 기사가 사회면에 1단 정도로 뜰 것이다. 그리고 3일만 지나면 관련 기사는 더 이상 신문과 뉴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겠지. 차의 시동을 걸었다.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떨어지는 유성을 차창 밖으로 보면서 일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일 만날 원이 그리워졌다. 집에 돌아와 베일리스를 마시며 크라이테리언의 dvd ‘제3의 사나이’를 멍하니 보다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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