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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각부터 아침을 시작해야 했다. 동쪽 하늘이 밝아오기도 전인 새벽 4시쯤 하여 나는 강상택 교수의 전화를 받고 작업실로 달려가야 했다. 탐사선 ‘리유니언’호가 지난 몇 달간 보내온 지구의 스펙트럼 패턴을 정리하는 작업 때문에 어제도 새벽 2시 가까이 되어서야 침대에 들어올 수 있었다. 강교수는 이 한밤중에 나를 급히 부르긴 했으나, 내가 꼭 봐야 할 것이 있다고만 했을 뿐 정확한 용건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나는 그가 어쩌면 이틀 전에 연락이 끊긴 리유니언Reunion호에 관해 작은 실마리라도 찾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강교수의 악마심보는 학생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적어도 오밤중에 불러서 술셔틀이나 시킬 정도로 못돼먹은 인간은 아니란 걸 알기에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세수만 대충 한 부스스한 꼴로 통근열차에 올랐다. 며칠간 잠을 자지 못한 탓에 목이 칼칼하고 어깨는 바위로 누르는 듯 무거웠으며 목과 등어리는 몹시 뻐근했다. 차창 너머 태양이 힘을 잃은 하늘 뒤로 출렁이는 별들을 멍청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교수가 이런 시간에 급하게 나를 필요로 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의 작업실에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풋내기 학부생이었고 프로젝트 리유니언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기껏해야 교수들의 이런저런 잡일을 도맡아 하는 수준에 불과할 뿐인데, 오밤중에 깨워서 잠도 못 자게 만들만큼 급한 일이라면 왜 하필 날 찾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슬며시 생겼던 것이다. 그것도 내게 보여줄 무언가가 있다니 무슨 일인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가 강교수의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는 동쪽하늘이 희미하게 붉은 색조를 띄기 시작할 무렵으로 5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도착하고 보니 데이터분석반 사람들이 긴 테이블 근처에 모두 모여 있었다. 그 중에는 강교수와 조교 요르젠센, 그리고 나와 동기인 지혜도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스크린 근처에 서있었다. 몰골을 보아하니 나와 비슷하게 새벽에 전화를 받고 모여든 모양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어딘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먼저 나서서 그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그러자 몇 초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리유니언호의 최종 발신기록을 몇 시간 전에 해독했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확실히 모르겠네만…… 안 좋은 운명을 맞은 것 같긴 해.”

  강교수가 말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조작했다. 그의 뒤에 놓인 스크린에 화면이 나타났다. 그것은 리유니언호 선체 외곽에 설치된 10개의 서베이카메라 중 하나가 찍은 영상이었다. 카메라는 심하게 직직거리면서 검은 우주공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검은 화면 군데군데에는 매우 밝은 별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처럼(분명히 별은 아니었다) 짧은 간격으로 번쩍거리는 불빛들이 명멸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스크린에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리유니언호를 책임진 마틴 베이커 선장의 목소리였다.

― ……에이프릴 컨트롤, ……공격받고 있다…… 우현 외벽이 심각한…… 파괴하고 있다 ! 관측……. -

  송신문은 잠깐 끊기더니 귀를 막은 듯한 조용함이 이어졌다. 화면은 여전히 명멸하는 불빛들로 가득했다. 그러다가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 카메라가 심하게 흔들렸다. 화면의 일부분을 차지한 선체 외벽에서 새빨간 불기둥이 치솟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 격렬한 화면속의 움직임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작은 파편조각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보였고 희미한 가스가 칠흑 같은 우주로 분출되는 것이 화면에 잡혔다. 카메라의 노이즈가 증가하고 진동이 전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 ……에이프릴 컨트롤 나와라, 여기는 리유니언의 마틴 베이커다. 굉장히 유감스러운 소식을 전하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

  이번엔 조금 더 선명한 신호가 잡혔다. 그의 목소리에서 침울하면서도 알 수 없는 침착함이 베여 나왔다.

― 본 함은 식별 불가능한 외계 존재들로부터 몇 시간째 공격받고 있다. 에너지 빔이 사방에서 조사되고 있다……. 안정시스템과 유도컴퓨터가 손상되었다…… 그들이……그들은 분명 지구인은 아니다……. 지구는 우리의 관측 자료가 정확하다면 이미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있다. 관련 데이터 전송은 이미 시작되었다……. ―

  송신문은 잠깐 끊기더니 이번엔 더욱 선명한 목소리로 다시 이어졌다.

― ……나와 나의 승조원들은 본 함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우리는 비록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이곳에 와 있지만 끝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심심한 애도와 사과를 여러분에게 전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한 줌 먼지로 되어 사라지지만 선조들의 하늘까지 우리를 이끌어온 노력은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신이 인류를 보호하여 길이 은총이 계속되길 바라노라. ―

  그리고 송신문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노이즈 가득한 검은 화면도 곧 꺼지고 말았다. 나는 방금 전까지 나를 짓누르던 피로와 쏟아지던 잠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게 그 모든 것의 원인이었어.”

  요르젠센이 말했다.

“리유니언을 공격한 건 뭐죠? 사우르인가요?”

  내가 물었다.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확실한 보장은 없어.”

  강교수가 대답했다.

“믿을 수 없어요. 우린 이 일을 해내기 위해 400년을 기다렸는데…….”

  지혜가 다소 절망적인 심정으로 말했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리유니언 프로젝트는 400년 하고 약 50년이 더 걸린 셈이었다. 52광년이나 떨어진 지구와 재회하기 위한 티라노스인의 끈질기고 오랜 노력의 결정체가 바로 탐사선 리유니언과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 그 자체였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단 몇 시간 만에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자칫하면 무한한 어둠에 묻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이 희미하게나마 지구가 보이는 목성궤도 근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 그럼…… 지구인이 아니라고 한 말은요? 지구가 사람이 살 수 없다는 말은 뭐죠?”

  나는 머리가 띵해지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그걸 지금부터 우리가 알아낼 거야.”

  강교수가 말했다.

“격침되기 3주 전부터 리유니언호가 지구에 관해 조사한 광학 데이터를 얼마 전에 받아서 모두 변조해 놓았다네. 이걸 분석해서 불충분하게나마 지구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조사할걸세. 대기의 조성이나 태양 에너지 반사비율을 확인하고, 우리가 티라노스계에 도착할 때 갖고 있던 지구의 정보와 대조해서 변화된 부분을 이끌어 낼 거야. 태양계 행성들뿐만 아니라 지구의 공전궤도도 많이 변했을 테니 그것도 관심 대상이 될 걸세. 태양계 전체에 대해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 연구를 해야 한단 말이야.”

  나는 흥분에 휩싸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상황에 맞게 취해야 할 행동을 설명하는 강교수의 태도에서 약간의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우리들만으로는 턱도 없을 겁니다.”

  요르젠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물론 우리가 한다고는 얘기하지 않았네. 그 전에 온 세상에 이 놀랄만한 일을 알려야겠지. 스콧은 나랑 같이 가지.”

  강교수는 의자에 걸쳐둔 외투를 챙기며 요르젠센과 함께 작업실의 문을 나섰다. 남겨진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갑갑하고 냄새나는 작업실에 남아있는 대신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9월 아침의 공기가 피부를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동쪽 하늘 끝에선 오렌지색 태양이 뾰족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리유니언호의 비극으로 인해 보게 된 아침 해돋이였다. 언젠가 비디오 화면을 통해서만 보아온 푸른 지상낙원의 행성을 살아생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 지금은 저 길바닥에 나풀거리는 신문쪼가리만큼이나 부질없어졌음이 한탄스러웠다. 리유니언호 승선을 거부당한 이후로 가장 큰 좌절의 순간이었다. 게다가 그 기대는 나 혼자만이 품은 기대는 결코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것은 감마티라노스IV에 인류가 발을 딛던 순간부터 세대와 세대의 가슴을 거치며 모든 사람들의 깊숙한 내면에 새겨진 과거에 대한 염원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전에 무언가가 나타나서 리유니언호를 순식간에 파괴해버렸다. 모든 티라노스인이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온 재회의 희망이 그 짧은 시간 안에 리유니언호와 함께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사우르족일까? 변방개척행성에 간간히 나타나서 민간도시에 무차별적인 포격을 퍼붓고 연맹함대와 무력대치를 이루는 그 키 큰 외계인들이 그곳까지 와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지구인들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티라노스인의 눈부신 번영을 낳게 한 그들은 지금 모두 쇠퇴하여 역사의 한 장으로만 남게 된 것일까? 나는 몰려오는 궁금증에 머리 뒷꼭지가 지끈거렸다. 그때 뒤에서 문이 열리는 작은 소리가 났다.

“교수님이 우리보고 오늘은 집에서 쉬어도 된대. 방금 전화해봤어.”

지혜가 말했다.

“……그래? 좀 의외였네. 오늘은 가장 긴 하루가 될 거라고 방금 전까지 생각했는데 말이야.”

“우리가 여기서 할 일은 모두 끝났다고 봐도 돼. 리유니언호는 이제 더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을 테니까.”

  지혜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물었다.

“프로젝트는 중단 될 거야. 아마 그렇겠지. 지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르겠어.”

  말끝머리에서 패배감 같은 것이 묻어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리유니언호 뿐만이 아니라, 지구조차도 말이야.”

  내가 말했다.

“곧 알게 될 거야.”

  그녀는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어제 늦게 들어갔다던데 좀 쉬지 그래? 애도는 자고난 다음에 해도 돼.”

“고맙지만 오늘은 교수가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잠을 깨워줘서 아마 다시는 못 잘 것 같아. 원래 모닝콜에 소질이 있는 양반인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말하자 그녀가 희미하게 웃었다.

“프로젝트가 이렇게 끝나서 정말 안 됐어. 너도 가서 잠이나 자. 이게 얼마 만에 있는 공휴일이야…….”

  오늘이 티라노스연맹(Tiranos Confederate)의 건국기념일이라는 사실이 방금 떠올랐다. 정말 희한한 우연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층계를 내려와 기차역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나는 이 모든 일이 아직도 꿈같이 느껴졌다. 잠이 덜 깬 탓인지도 모르겠다. 리유니언호는 정말로 재회를 눈앞에 두고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나. 마틴 베이커가 쓰레기 같은 장난을 쳤거나 무슨 트릭은 아닐까 하는 이상한 망상조차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나는 지혜가 한 말을 곱씹어 보았다. ‘지구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모를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당장에라도 지구로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불과 한 100년 전에 우리는 광속을 초월할 수 있는 추진기술을 실용화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광속을 능가하는 정보전달 기술은 리유니언호가 출항하기 수십 년 전에 이미 상용화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새로운 배를 보내더라도 이제 막 태양계 진입을 코앞에 둔 리유니언호를 앞지르는 것은 무수한 세월을 견뎌낸 그들의 노력과 명예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제 2의 탐사선을 출항시킬 아무 이유가 없었다(물론 이 문제를 놓고 의회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로 심우주 탐사선을 보내면 아마 2년 만에 지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내심 기대해보았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내가 그곳에 탈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라는 예측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내게 그런 기회가 찾아온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승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굳게 믿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사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두 달아났던 잠은 몇 번 걷고 나자 부메랑처럼 다시금 찾아왔다. 몸이 고단하고 등짝이 결리기 시작했다. 나는 단말마의 욕지거리와 함께 이불이 널브러진 침상으로 몸을 던졌다. ‘지금 자면 오후에나 깰 텐데…….’ 하는 생각과 그때 엄습해올 깨질 듯한 두통을 떠올리니 걱정이 앞서긴 했지만 어차피 오늘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마치 산타클로스의 실체를 파악해버린 어린이가 느낄법한(나조차도 어떤 기분인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실망감과 약간의 분노, 당혹감이 뒤섞여 싱숭생숭한 기분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만큼은 망할 놈의 강교수도 날 막을 순 없어’ 라는 생각에 전화도 모두 꺼버리고 방안을 환하게 비추는 태양을 외면하면서 눈을 감았다.

  생명의 흔적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 황무지가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새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어렴풋이 여기가 지구라는 사실을 난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말라비틀어진 땅 위에 홀로 서서 저 먼 곳에서 피어오르는 불덩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이었다. 하지만 태양일리가 없지 않은가? 태양은 이미 내 머리 위에 떠 있었고, 태양계는 쌍성을 이루는 별이 아니다. 불꽃은 솟아오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글거리는 지옥의 불길처럼 불그스름한 주홍색으로 하늘을 물들이며 점점 팽창하고 있었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를 둘러싼 온 세계가 주홍색으로 변해버렸다. 땅과 하늘의 색이 구분되지 않았다. 불꽃은 버섯모양을 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구름으로 물감이 번지듯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다. 구름의 허리춤에서는 도넛모양의 흰 띄가 하나씩 생겨 점점 그 크기를 확대해 나갔다. 순식간에 산을 깎아내릴 듯한 바람의 충격이 세상을 휩쓸었다. 먼지가 하늘로 올라가고 하늘의 색이 점점 바래졌다. 메말라버린 땅과 민둥산의 흙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거대한 진공청소기속에서 요동치듯 격렬한 먼지바람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정화의 움직임이었다. 지상에 남아있는 만물을 쓸어 담는 듯한 폭풍 앞에서 벽에 그려진 낙서가 모두 지워져 하얀 배경만 점차 남게 될 때의 희열이 느껴졌다. 폭풍은 나의 손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보호되고 있듯이. 그 때 내 앞에 시커먼 물체가 나타났다. 어두운 청남색의 도마뱀 피부를 가진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눈동자가 없는 두 눈은 엷은 파란색으로 유난히 밝게 빛났고 3미터 즘 되는 큰 키를 하고 있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괴물의 눈으로부터 공포와 전율이 내 몸으로 타고 흘렀다. 나는 꼼짝달싹 못하고 굳어서 그 사우르를 바라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괴물이 내게 기다란 손을 내밀었다. 마치 악수를 청하려는 모습으로 내게 손을 내민 것이다! 나는 그 알 수 없는 공포를 참을 수 없었다.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꼼짝 조차 하지 않았다. 사우르의 고개가 갸우뚱 하는 것을 본 듯 만 듯한 찰나 나는 비명을 지르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눈이 번쩍 뜨이고 잠에서 깨어났지만 눈동자조차 마비되어 시선은 컴퓨터 책상에 고정되었다. 비명을 지르려고 했는데 웬 괴상한 소리만 목에서 나오고 턱을 움직일 수 없었다. 엎어진 자세로 가위에 눌린 것이다. 그 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머리를 프레스기로 누르는 듯한 두통도 같이 찾아왔다. ‘아, 시발 누구여……’ 가까스로 가위로부터 해방되어 겨우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두꺼운 문을 사이에 두고 수화를 하고보니 지혜가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문을 열어주고 나니 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지혜가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뭐야, 왜 그래?”

  내가 그렇게 물으니 그녀가 따지듯이 되물었다.

“너 왜 전화 안 받은 거야? 강교수가 너 찾은 지 세 시간째야.”

  또 그놈의 강교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과 선배들이 강교수 밑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충고했을 때 이미 들었어야 했건만 지금 와서 그런 개탄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강교수가 왜 또 나를 찾어? 집에서 쉬라고 했다며.”

  나는 잠에서 불편하게 깬 짜증을 2% 담아서 말했다.

“너 강교수한테 줘야할 거 안 준거 있다던데? 광학도표 정리한 거 있잖아.”

“아, 그거, 여기 다 있어. 다 가지고 가.”

  난 방으로 들어가서 아무렇게나 모아져있는 프린트 쪼가리들을 대충 모아서 지혜에게 던지듯이 떠맡겼다. 그녀의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섞이기 시작했다.

“……너 어디 안 좋냐?”

  난 굳이 대꾸하려고 하지 않았다. 지난 몇 시간동안 내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표현하기란 나조차도 썩 쉽지 않았다.

“자다 일어났구나?”

  난 그저 ‘응’하고 대답하고 냉장고에서 찬 물 한 컵을 따라 마셨다.

“난 아까 아침에 네가 안 잘 거라고 말하길래, 진짜 그럴 줄 알았는데.”

  난 그 말에 ‘풉’하고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가끔 지혜는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주께는 농담이나 헛소리를 진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어서 여러 가지로 해프닝을 일으켰던 아이였는데, 나이를 먹어도 바뀌는 게 없다니 내심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지 미안해하는 지혜를 보니 오히려 짜증을 낸 내 스스로가 경멸스럽게 느껴졌다.

“미안, 원래 내가 말하는 거랑 행동하는 게 좀 다르잖아. 쨋든 우리의 강교수님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기다리실 텐데 얼른 가보는 게 어때? 참, 난 안가도 되지?”

  지혜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 쉬라는 말만 던지고 황급히 가버렸다. 나는 다시 돌아와 침상에 걸터앉아서 해질녘의 고요함을 벗 삼아 눈의 초점을 풀고 족히 한 시간이 지나도록 멍하니 앉아있었다. 나는 그동안 리유니언호와 통신을 담당한 데이터분석반의 마지막 인원이라는 자부심과(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작업실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지구인과 재회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그것도 눈앞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가 된다는 기대에 부풀며 힘들어도 악착같이 수고로운 노력을 다해 마다하지 않던 지난 3년간의 인생을 낱낱이 회고해 보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모든 것이 이제는 다 꿈처럼 느껴질 따름이라. 삶이란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그러지 않았던가. 그러자 나는 문득 방금 나를 가위에 눌리게 만든 고약한 꿈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꿈이었다. 내 내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파괴적인 충동이 되살아나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악수를 청하던 그 외계인과 그 태도에서 느껴진 잔혹하리만큼 몸을 떨게 만드는 공포는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소름이 돋는 것인지라 나는 꿈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마침 8시 뉴스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그제서야 자신이 하루 종일을 잠으로 때웠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뉴스를 바라보는데 역시나 예상했던 것처럼 리유니언호의 격침사태에 관한 특집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혹시나 강교수가 보이는가 싶어 화면 구석구석을 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극적인 참사의 원인에 대해서도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바로 새로운 지적 생명체와의 조우를 암시하는 단서가 될 만한 기록을 리유니언호가 폭발하기 직전에 이곳으로 전송해왔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화면에는 내가 오늘 아침에 봤던 그 노이즈 섞인 비디오화면이 앵커의 얼굴을 뒤로하고 가득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불빛들, 간격을 두고 흔들리는 화면 그리고 불기둥이 치솟는 장면을 다시 보게 되니 마음 한 구석이 매우 쓰려왔다.

― ……불빛들과 관련을 맺고 있을 것으로 강하게 추측하지만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된 뉴버지니아 국립대학의 강상택 교수는 현재로써 그들이 사우르인지 또는 제 2의 외계문명인지 확신할 수 없으며, 좀 더 시간을 둔…… ―

 나는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렸다. 역시 그곳에서도 가장 먼저 들은 단어는 ‘리유니언호’였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나에게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다.

― ……지구가 생명체가 살기 힘들 정도로 변모했다는 것은 우리의 첫 분석결과로 볼 때 지표면의 70퍼센트 이상이 불모의 땅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바다가 거의 사라져버렸다는 사실과 지구의 공전궤도가 예상보다 적게 뒤틀린 것으로 볼 때 이러한 변화는 매우 오래 전에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화면에는 리유니언호에서 마지막으로 보내 온 사진―7AU 밖에서 찍어 매우 희미하고 알아보기 힘든 지구의 망원촬영영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그곳이, 여태까지 상상하고 스크린으로 보아온 푸른색과 흰색으로 가득한 지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대신 황백색의 작고 왜소한 별 하나만이 쓸쓸하게 어두운 공간을 홀로 떠돌고 있었다.

― 좋습니다, 강교수님. 그렇다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연대를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까요? ―

―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의 계산 추정치로는 약 8퍼센트의 오차로 서기 2500년대 즈음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고려에 넣지 않은 계산이 몇 가지 있기 때문에 좀 더 정확한 연대를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료의 분석과 연구가 이루어 져야 한다고 봅니다. ―

― 서기 2500년이라면 티라노스인의 유전자가 우주공간속을 표류하던 때로군요? ―

― 그렇죠. ―

  놀라운 사실이었다. 지구인의 유전자를 태운 우주선이 지구 정지궤도에서 발사되던 해가 서기 2231년이었음에 비추면 우리를 떠나보낸 직후 그들은 어떤 연유로 인해 곧 멸망해버렸다는 뜻이 아닌가. 어쩌면 우리와 같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태어나고 자라온 그곳은 너무나도 황량하고 쓸쓸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지구에서 사라지도록 만들었을까. 인류의 생성, 인간의 진보와 문명의 탄생, 이성의 발현과 과학의 진보 그 모든 것이 깃들어 있는 지구는 이제 불모의 땅으로 모든 진보를 완성한 다음 이 우주에서 휭 하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불현듯 방금 전의 불쾌한 꿈이 떠올랐다. 핵전쟁―그렇다. 그들은 자멸한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는 태양으로부터 52광년이나 동떨어진 머나먼 항성계로 후손을 남기려 하면서도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인류는 같은 인간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우스꽝스러움과 괴기스러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표본인 것이다.

 

 

장편을 쓰려고 했지만 2편이 언제 올라올지는 동생댁도 모르는 관계로 고스트라이터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추석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