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라이프라는 시작은 포르말린이라는 단편이었지만, 실제적으로 라이프라는 이름을 묶게 된 계기는 바로 이 넥타이라는 글입니다. 이 글을 썼을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연애 문제가 좀 안풀리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죽으려고 마음먹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렸구나 싶었던 결심이었습니다만(지금도 여전히 피터팬이지만..), 그 당시에는 비장한 각오와 얼굴을 한채 집을 나섰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해가 정 동쪽에서 뜬다는 정돈진으로 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일출을 보고 죽고 싶었거든요. 도착하자마자 밤 12시.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동진.. 말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다지 재미있는 동네는 아닙니다. 매년 새해마다 해 뜨는거 보러 오는 관광객들 아니면 거의 의미가 상실된 곳입니다.

바다가 있다고 하지만, 겨울 바다는 그 바닷 바람에 얼굴이 얼어 터질 지경입니다.-_-

아무튼 도착하자마 다음 날 일출 보기로 마음먹고, 민박집을 하나 잡았습니다. 누우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지면 참 보기 흉하지 않을까라는 것 부터, 유서를 참 안썼으니 시체 조사 하는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꼴갖지 않은 걱정도 했더랬지요. 가장 중점적으로 고민했던건 과연 어떻게 죽어야 잘 죽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였습니다.

이리 저리 머리를 굴리면서 나름대로 평가해 보고 고민하기를 3~4시간.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이대로 내가 죽어 버리면 이 자살 방법들이 그냥 묻히는 거아니야? 이런 독특한(지금 생각하면 그저 그런) 아이디어가 묻히는건 뭔가 아쉽다."

그러다가 노트를 꺼내들고 끄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인드 스토밍으로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쓰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더군요. 네. 일출 못봤습니다.-_-a

다음 날을 기다리자 라고 마음먹고 정동진을 어슬렁거렸습니다만, 거긴 굉장히 좁은 곳이지요. 한 두시간이면 동네를 다 돕니다. 다시 민박방안에 틀어 박히고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심심해 지더군요.

볼펜을 꺼내서 자살방법 1번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했습니다. 교살. 도구로는 밧줄은 너무 흔하니 넥타이로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쓰다 보니 어느 새 밤이 되고,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절대 일출을 놓치니 않기로 마음먹고 초저녁 6시부터 나와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1시간을 기다려도 해가 안뜨더군요.-_-a

나중에 알았지만, 해뜨는 시각은 겨울이라서 7시 30분정도라고 역에 써 있었습니다.(그것도 나중에 집에 갈때나 봤습니다.) 한 참을 씩씩대다가 다시 들어가 마저 쓰던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이번에는 기필코 일출을 보겠다는 신념으로 옷 단단히 입고 조각 공원(아마 정동진 가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곳은 굉장히 높은 절벽 위에 있습니다.)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완전한 일출은 아니지만 태양이 지평선으로 올라오는 모습을 생애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멋지더군요.

그 조막만하고 재미없는 정동진에 대한 짜증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인간이 슬플때가 아니더라도 눈물을 흘릴때가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눈에 닿는 가시 광선을 뇌가 해석하고 어쩌구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지식을 그 자리에서 되내이면서도 아름답다라는 말 한마디를 능가 할 수가 없더군요.

아니, 오히려. 그러한 얄팍한 과학 지식으로 둘러 치려는 의도가 치졸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다시 방에 들어와 마저 글을 완성했습니다. 노트를 덮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 내가 지금 이러고 있지?"

많은 변명거리가 쏟아져 나왔지만,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내가 죽으려고 했던거지?"

역시나 답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단순히 짝사랑 했던 여자한테 차여서 죽을려고 했다는 것만으로는 답이 되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근본적으로 왜 죽으려고 했는지 조차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거지요.

노트와 짐을 챙기고 다시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노트 안에 아이디어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거든요.(이른바 라이프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