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 상황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나는 그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마실 것을 홀짝대고 있었다. 방에는 나와 그 둘 뿐이었고, 거기에 눈앞에 놓인 맥주를 홀짝이는 것은 나뿐이었다.

“사양 말고 들게나. 그런데, 술 마셔도 되나?”
“나이는 됩니다.”
“흐음… 동양계들은 어려 보여서 말이야. 그런데 대체 그 눈 색은 어디서 나왔나?”
“슬라브계 혼혈이니까요. 그건 그렇고, 그쪽은… 아무것도 먹지 않나요?”

그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뜨더니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아주 날 놀리자는 것인가, 난 전혀 웃길 말을 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아주 잠깐을 웃던 그는 숨을 고르며 손가락을 퉁기며 말을 이었다.

“역시 늑대들은 그렇다니까, 하기사, 어차피 너희들에게 우리들은 다 쓸어버려야 할 것들이니 굳이 우리들에 대해 알 필요는 없겠지.”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어이, 어이. 여태 우리 뱀파이어들을 잔뜩 때려잡았을 텐데, 좀 관심이라도 좀 가져 주는 게 어떤가? 자네들한테야 우리는 뭐 시체냄새 풀풀 풍기는, 사람 피나 빠는 거머리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비장하다고.”

내가 어떻게 아는가, 그들이 아무리 비장하다고 해도, 그의 말 맞다나 우리에게는 어차피 숙청해야 할 거머리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실은 애초에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지 않았나. 뭐, 우리야 잘 때려잡는 법만 알면 되니 말이다.

“도대체 자네가 우리에 대해서 아는 게 뭔가?”
“사람 피 빨고, 초자연적 능력이 있고, 심장에 나무말뚝을 박으면 쥐약이라는 거.”
“정말로 때려잡는 법만 아는구만….”

나를 보고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것이 참 난처하다. 나보고 어쩌자는 것인가? 공부를 더 하자고? 그럴 이유가 있나? 곱게 때려잡으면 그만 아닌가?

“그냥 몇 가지만 가르쳐 주지, 우리들은 피밖에 먹지 않아 심지어 음료나 술도 마시지 않지.”
“마약도요?”
“물론. 가끔 생전에 마약이나 술 맛을 잊지 못한 녀석들은 가끔 술이나 마약한 녀석들만 골라 피를 빨고는 하지.”
“그리고요?”
“응?”
“‘몇’ 가지 가르쳐 주신다면서요?”
“지금 그거 개그 하는 거지?”
“그럴걸요.”

그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같이 째려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눈싸움은 그가 한숨을 내쉬면서 끝이 났다.

“궁금하긴 한 건가?”
“알면 좋죠, 뭐.”
“알고서 어따 쓰려고?”
“때려잡는데요.”

반은 농담, 반은 진담인 나의 대답이 끝나고 나서, 나와 그는 서로를 응시하면서 약간의 침묵이 유지했다. 내가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었던 그 침묵을 깬 것은 그였다.

“아하하하! 이거야 원!”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큰 웃음소리가 어두운 방을 가득 메웠다. 실은 그것은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도 최소한 그것이 내가 그에 비해서 약하다는 것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좋아. 좋아. 대답 자체는 맘에 안 들지만, 자네는 마음에 드는구만.”
“….”
“뭐, 자네가 이곳의 늑대들 전부를 대표할 수 있는 지위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어쨌건 우리는 자네를 설득해서 우리를 좀 좋게 봐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야. 그저 자네 윗사람에게 내 말이나 전해주게.”
“무슨 말을 말입니까?”
“다른 세력들이 오고 있다고 전해주게, 자네가 아까 보았던 그놈들이야.”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는 알 것 같았다. 내가 몇 시간 전에 보았던 그 떼거지들은 지금 내가 들어와 있는 이 건물을 감시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볼 때, 그들은 이들과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이들로 보였다.

“그러니까…아까 그 녀석들을 처리하는데 좀 도와달라는 예깁니까?”
“그랬으면 오죽 하겠냐만, 최소한 우리들 세력을 줄이는 일 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네. 그들은 숫자가 워낙 많고, 이미 인간성을 포기한 녀석들이기에 피는 닥치는 대로 빨아대지. 그리고 이들은 자네들의 적수인 ‘오염된 늑대’라고 불리는 녀석들과도 연관이 깊으니 자네들도 알아 두는 게 좋을 거야.”

오염된 늑대, 아마도 블랙 스파이럴 댄서들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떻게 뱀파이어들과 얽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은 최근 그들의 수가 이 주변에서 많이 늘기는 했다. 한 Cub이 시험을 치르다 그들에게 발각되어 무참하게 찢어진 적이 있기도 했고, 실제로 나도 한 무리와 접촉하기 직전 회피한 적도 있으니까 말이다.

“좋습니다. 일단은 엘더에게 전하도록 하죠.”
“오. 그렇게 해 주면 고맙겠네.”

이곳에 조금 더 있어도 될 듯한 분위기였고, 실은 그 ‘다른 세력’들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조금 더 있었지만, 나는 이대로 이곳을 뜨기로 했다. 이 사실은 역시나 급히 전할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 그러고 말이지.”
“?”
“윗분이 누가 전한 것이냐고 묻거든 프린스가 전한다고 말씀 드려라.”
“그게 이름인가요?”
“비슷한 거다.”
“전혀 프린스같이 안 생겼는데요?”

어두운 가건물을 거칠게 울리는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그곳을 떠났다. 이미 지시를 받은 것일까, 시비를 건다거나 막아서는 녀석들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생각을 해 본다고는 했지만 역시나 초조했던 탓일까, 그런 생각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나는 풀숲을 내달려 장로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용케도 살아 돌아왔군.”

내 말을 들은 장로는 매우 퉁명스러운 어조로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실은 이것은 그다지 자랑스러울 것이 못된다. 아마 그것들을 때려잡았다면 어께를 당당히 펴고 다닐 수 있겠지만.

“안 그래도 그 사항 때문에 이번 무트에 여러 곳의 분들을 초청한 거다. 그 일 자체는 이미 꽤나 전에 알고 있었지. 라가바시들은 네 생각보다 부지런해서 말이야.”

뭐, 예상 못한 일은 아니지만, 맥이 좀 빠지는 말이었다. 장로의 표정을 보아 그다지 대수로운 일로도 치는 것 같지 않는 듯, 우리는 그저 평소에 하던 대로 찾아서 때려 부수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았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라.”
“예?”
“프린스라면 이 주변 전체를 관리하는 등급의 뱀파이어다. 너 같은 풋내기가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라.”
“이름이 아니고요?”
“그녀석도 꽤나 풋내기인 모양이군, 그런 걸 뭔가 큰 정보랍시고 너한테 가르쳐 준다니.”

오늘은 아주 이래저래 망신살이 뻗쳤다. 그다지 알 필요가 없다고는 생각 한 것들이지만, 막상 자신이 그것에 무지하다는 것이 상기되고 나니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뭐, 장로들도 설마 뱀파이어들하고 술 한 잔이라도 하면서 배운 건 아닐 테지만, 어쨌건 나 같은 풋내기와는 꽤나 거리가 먼 것이었다. 아, 참. 뱀파이어들은 술을 안 하지.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는 않다. 그것을 자각하기도 쉽지 않으며, 그 무지를 고치기도 쉽지 않다. 그런 짜증나고 어려운 일을 오늘 또 겪은 탓에 꽤나 씁쓸해진 기분으로 오두막에 몸을 눕혔다. 오늘따라 나무 바닥에서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들이 짜증이 나고 있었다. 정령을 묶어놓은 구슬을 던져서 피운 벽난로에 불에 몸을 쪼이며 평소 습관처럼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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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돌아왔긴 돌아왔습니다만, 그다지 별것도 없군요... 어째서 이 모양인걸까... OTL...

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