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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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저......전 모르는 일입니다."
"이놈이 끝까지......안되겠구만! 순순히 실토 할때까지 더 지져야 겠어."
"아아아악!"
한 남자가 모두 잠든 막사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무언가에 놀란 듯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는 다름아닌 태성이었고, 그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한 이후로 그 과거가 자꾸 떠올라서 인지 며칠째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태성은 군수 행정 소대에 들어간 이후로 예전 경험을 바탕으로 남들보다 더 빨리 직무에 적응을 하였고, 후지와라 중위는 그에게 남들보다 더욱 많은 일을 맡기고 있었다.
태성에게 있어서 그 많은 일들을 처리하는게 고역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후지와라 중위가 태성을 남들보다 신임한다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태성은 일을 할때마다 점점 가슴 한켠에 묻어왔던 과거의 아픈기억들이 다시한번 고개를 들어 그의 복잡한 속을 자극하고 있었다.
"난 억울해, 5년동안 묻어왔던 일이야. 앞으로도 계속 묻어버릴 일이며 이제는 새 삶을 시작하려고 하고있어. 하지만 자꾸만 과거의 기억들이 다시한번 나를 괴롭히고 있어. 이제는 잊을때도 되었건만......그래, 일에 전념하자. 그딴 빌어먹은 기억 따윈 싹 잊고 일에만 집중하는거야."
하지만 태성은 여전히 괴로움을 씻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무한의 비행장 에서는 며칠째 초조함으로 괴로워 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원진이었다. 그는 중대장에게 야마구치의 신병 시신 유기사건을 신고한 이후로 그 이전보다 식은땀을 흘리고 정신없이 행동할때가 더욱 많아졌다.
그는 야마구치 상등병을 볼때마다 더욱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야마구치는 아직까지 원진의 이상한점을 느끼지 못한 듯 싶었다.
더더구나 며칠째 중대장으로부터 뾰족한 해답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야마구치는 아직도 부대내를 당당하게 활보하고 다녔다.
"지금쯤......지금쯤 해답이 나와야 하는데......"
"형님, 무슨일입니까? 안색이......"
"어? 아, 아냐......아무것도......"
경훈은 요즘들어 원진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원진이 그 이유를 시원하게 털어놓지 않고있어 답답해 하고 있었다.
"형님, 그럼 전 중대장 호출 때문에......"
"뭐? 주......중대장?"
"왜 그리 놀라시우 형님? 설마 중대장과 안좋은 일이라도?"
"아......아니......그래, 가봐."
"형님도 참 싱겁기는......"
경훈은 서둘러 중대장실로 향했다.
경훈은 그동안 중대장이 내린 명령으로 볼때 이번에 자신에게 맡길 임무 역시 불상사가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책임을 다 떠넘기려는 수작이겠지 하는 생각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응, 어서와."
의외로 중대장은 경훈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래, 요즘 부대 일은 요즘 힘들지 않고?"
하지만 경훈은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 이유는 힘들지 않다고 대답 할 경우에는 더욱 힘든 일을 시킬것이고, 그 반대로 힘들다고 대답 할 경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 아 대답하기 어려우면 안해도 돼."
지금 중대장의 모습은 평소와 달라 보였다. 그 어느때보다 나긋나긋 해 보였고, 이번에는 일부러 말 실수를 유도하는거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다름이 아니고, 내가 이렇게 부른것은......이번에 자네가 이 일좀 맡아 주면 안될까 해서......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지만 말이야."
경훈은 중대장이 자신에게 이번엔 무슨 기가막힌 일을 시킬지 궁금해 답답해 하였다.
"저기......요 전에 돼지 잡아올때 그 같이 데려온......그래, 그 처녀들 있잖아. 자네가 책임지고 맡아주면 안될까?"
"그 말씀은......"
"그러니까 상부에서 그 처녀들을 만주 어디? 하여간 어느 부대로 보낼꺼라고 하던데 그때까지만 자네가 밥도 주고 했으면 해서......어떻게......안될까?"
얼핏 들으면 노역에서 빼 주겠다는 달콤한 이야기 같았지만, 한편으로 이 말은 곧 그 처녀들 중 누구 한명이라도 병에 걸리거나 자살 등으로 죽는 일이 발생 시 책임을 경훈에게 다 떠넘기겠다는 말과 같았다.
심지어는 만주로 운송하기 직전까지 그 여인들의 건강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도 그 책임을 져야 했다.
하지만 경훈은 거절을 할 수 없었다. 상대는 일본인 장교고 자신은 조선인 병사였다.
"네, 하겠습니다. 중대장님 명령이신데......"
"그래? 고맙네, 고마워. 그럼 오늘 점심 배식 부터 하도록 하지."
중대장은 뛸 듯이 기뻐하였다. 하지만 그 기쁨은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데서 비롯된 속이 훤히 보이는 기쁨이었다.
경훈의 속은 찝찝함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노역 사고로 개죽음 당하지는 않겠지......"
경훈은 여인들이 감금된 창고로 향하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 계속 혼잣말을 하였다.
어느 사무실 안으로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젊은 남자가 들어갔다.
그리고 또다른 한 중년의 남자가 그를 맞이하였다.
"어, 그래. 자네가 태성군인가? 여기 좀 앉지."
중년의 남자는 태성을 앉히고는 비서에게 아무도 사무실 주변을 얼씬도 못하게 하도록 지시를 하였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음, 그래 이 장부......은행 경영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장부라네. 이게 없으면 이 은행은 살아님기 어렵지......이것만 안전하게 보관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이거 한번 맡아주지 않겠나?"
"어찌 이제 막 은행에 들어온 제가 감히 그런 중요한 장부를......"
"그래서 자네에게 맡기는 것이야. 이런걸 은행 중진들과 간부들에게 맡겼다가는 쉽게 발각......아니 도둑맞게 되는거지......아무도 자네같은 말단 은행원이 이러한 중요한 장부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안할 것 아닌가?"
"하지만 저희집에는 금고도 없고......"
"그냥 장롱 속에 깊숙히 넣어두게나. 그거면 돼. 어때, 간단하지 않은가?"
"은행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이 친구 보기보다 시원시원하고 아주 마음에 드는구만 허허허."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뒤 사복 형사들과 순사들이 태성의 집을 급습했다.
"한태성 안에 있나? 한태성! 안에 있는거 다 알고있어!"
더 이상 부를것도 엎다는 듯 경찰들은 태성의 집 문을 박차고 들어가 태성의 집을 샅샅히 뒤지기 시작했다.
한편, 태성은 웬일로 다른때보다 봉급을 더 많이 받고는 기쁜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봉급도 많이받고. 도대체 이게 얼마야?"
태성은 돈 액수를 세가며 싱글벙글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다 자신의 집 문앞을 지키고 있는 순사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슨일이지?"
태성은 대문을 지키고 있는 순사 쪽으로 다가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시죠?"
"거 알거 없으니 그냥 가던 길이나 가쇼."
"아니, 여기는 내 집인데 어디로 가란 말이오?"
"혹시 성함이......"
"한태성이우. 한 태 성."
"아 아......한태성?"
그러자 별안간 순사가 집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한태성이다! 한태성이 나타났다!"
"뭐? 어서잡아! 잡고있어!"
순사들은 강제로 태성의 팔을 뒤로 젖혔다.
"아니, 이거 왜 이래요. 이거 좀 놓고 이야기 합시다!"
"시끄러! 서로 가서 할 이야기 많으니 잔말말고 따라와!"
순사들이 강제로 팔을 비트는 통에 손에 쥐고있었던 봉급 봉투가 떨어졌다. 봉투안에서 돈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호......이 돈은 다 뭐야? 모두 압수해! 이건 증거물로 가져가야겠군."
대문 밖으로 나온 조금 높은 듯한 사복 형사 한명이 돈을 챙겨 들었다.
그때 집 안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경부님! 장부 같은걸 발견했습니다."
"뭐야? 이리 가져와봐."
집 안을 뒤지고 있었던 순사 중 한명이 장부를 가져오자 그 경부라는 사람이 장부를 펼쳐 들어 태성의 눈 앞에 들이댔다.
"자, 이렇게 증거가 나왔다. 이렇게 증거가 뻔히 있는데도 발뺌할 셈이냐?"
"아니 누가 발뺌했다는 것입니까? 저는 형사님들이 무슨일로 우리 집에 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장부는 은행장님이 저에게 그냥 보관하라고 해서 보관만 한것이지 그 장부를 펼쳐서 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거좀 풀고 이야기 하자구요."
하지만 경부는 그러한 태성의 말을 믿어줄 기세가 아니었다.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서로 가서 하자니까. 뭐해? 어서 끌고가!"
"네!"
순사들은 태성의 팔을 더욱 세게 잡고는 태성을 차에 태웠다.
"난 진짜 억울합니다. 억울하다구요! 억울해!"
태성이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던 동네사람들은 그러한 태성이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이제 순순히 불 때가 되었는데? 그 임시정부인지 뭔지 하는 괴뢰 불령선인 집단은 언제부터 알게 되었나? 그리고 그놈들과 언제 접촉을 했으며 어느 장소에서 만났는지 낱낱히 불어야 할 것이야."
햇볕이 들지 않는 지하 취조실에서 온몸이 피와 땀으로 젖어있는 태성은 자신을 끌고온 경부에게 취조를 받고있었다.
그 둘 사이에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 유일한 빛을 밝혀주는 전등과 타자기, 그리고 증거물로 가져 온 장부만이 놓여져 있었다.
취조실 벽에는 고문을 할 수 있도록 각종 무시무시한 장비들이 걸려 있었다. 심지어는 전기장비까지 갖추고 있었다.
"저는 진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임시정부인지 뭔지도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구요. 불령선인이 누군지도 진짜 모릅니다."
"이놈이 보자보자 하니까......이렇게 증거가 뻔히 있는데도 발뺌할 생각이냐!"
"아, 글쎄 저는 정말 이 장부가 뭔지 모른다니까요."
그러자 경부는 장부를 펴서 태성의 눈 앞에 들이밀었다.
"그럼 여기 이부분......갑자기 거액의 금액이 빠진건 어떻게 설명하나? 이와 비슷한 액수의 돈이 상해에서 항주로 가는 열차편에서 붙잡힌 불령선인의 가방에서 발견된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냔 말이다!"
"저는 진짜 모른다니까요. 상해건, 항주건......그리고 불령선인도 저는 정말 모른다니까요!"
"아직 매운맛을 덜 봤나 보군. 전기지짐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겠나?"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형사들이 전기장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순간 태성은 타자기에서 손을 떼었다.
모든게 태성의 악몽같은 기억들이었다.
더욱 그를 억울하게 했던 것은 그 사건이 결국 은행과 상관 없다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은행장의 개인적인 비리가 밝혀졌음에도 은행장은 어떠한 징계를 받지 않았다.
다만 태성만이 이 일을 평생 묵인할 것이라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을 하고 풀려났을 뿐이었다.
악착같이 태성을 괴롭히는 이 기억들을 태성은 가슴 한켠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다만 깊이 묻어두는게 최선의 선택일 뿐이었다.
태성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후지와라 중위가 자신에게 맡긴 일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