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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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전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하긴 했지만 제독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대화는 끝났다. 어차피 이런 하잘 것 없는 일로 분개할 알렉산드로비치 제독도 아닐뿐더러 주하 또한 대화의 완급 조절이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탁월한 경지에 올라 있었으니 저것 이상으로 대화가 전개될 일은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방금 말씀드렸던 대로 제독께서 수신하신 내용은 태평양 사령부 전략정보과에서도 입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저희는 그 내용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에만도 많은 역량을 소모했고, 무엇보다 그 내용을 파악하고서는 어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몰살을 당했지."
함장은 입 속에서 웅얼거리듯 말했지만 그녀의 말을 정면에서 가로막을 의도로 크게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교적 청력이 좋은 편인 정은 위 함장의 말을 모두 알아들었고 그의 심중을 짐작하며 약간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안이 비록 중요하다고는 해도 지금은 생사불명이 되어버린 파일럿에게 떳떳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전략정보 1과를 대신해서 사과 드립니다."
딱히 누구를 쳐다보려고 한 의도는 아니었지만 시선이 겹치는 곳에 앉아있던 함장은 퍽 켕기는 심정이 되었고 그의 속을 들여다보듯 하며 있는 정은 함장의 반응에 숨 죽여 웃었다.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제독은 이놈들이 뭘 잘못 먹었냐는 식으로 둘을 쳐다봤고 결국 아주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소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함장은 죽어버린 이들을 대신해서 말을 받았다.
"고맙네."
그는 그녀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대답을 듣지는 않았다. 속에서 웅얼거린 것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전략정보과가 뭐든 다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우리가 구명해낸 사안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페르카 고원으로부터 시작해서 각 유산들의 발견지의 위치를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페르카 고원에 대한 항목의 정리 중에 중대차한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페르카 전쟁을 유발한 동기가, 바로 그 유산이 소각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추론이었습니다."
주위가 웅성거렸다. 페르카 고원에 대한 전략위성 묠니르의 마이크로웨이브 폭격은 악랄하다고 표현해도 마땅찮을 정도로 철저했다. 극초단파 공격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은 비살상 무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궤도상에서 뿌려대는 압도적일 정도의 출력을 동반한 공격은 살상무기로서의 전환에 충분했다. 결국 묠니르가 뿌려대는 전자파 아래 그 모든 것이 들끓어버렸다. 게다가 페르카 고원 상에서는 핵병기도 폭발했다.
그 위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아무것도 없다고 알고 있다.
"출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전해진 편지가 우리의 추론을 뒷받침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지요. 그 익명의 제보자의 정체는 아직까지도 불명으로 지문 스캔과 같은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서 제보자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었지만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해봐야 했고 그래서 제독께서는 유산의 존재 유무를 판별하기 위해 2개 편대를 출격시키셨습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입니다."
정은 입이 바싹바싹 타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바로 핵심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애가 타는 심정은 모두가 똑같았다. 그리고 모두가 학수고대하던 사실은 드디어 그들에게 드러났다.
"그리고 이번의 대규모 전자전을 통해서 사태는 명약관화해졌습니다. 태평양 사령부의 마더 컴퓨터는 적의 해킹의 질적 수준과 그 기법에 대해 분석했고, 그녀는 적이 ICRC-3식 수준의 양자컴퓨터에 해당하는 시스템을 앞세워 공격해오고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음울하게 말했다.
"유산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유산의 건재함. 그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피난처라는 고약한 손님이 인류에게 남긴 악의 담긴 선물은 정말로 처치가 곤란한 것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나을지도 모른다. T.S.S의 선물 처리반은 언제나 큰 리스크를 지고 있다. 조금만 잘못해도 그들은 판돈으로 인류의 존망을 송두리째 강탈당하게 되니까 그들로서는 채산이 맞지 않는 도박이었다. 물론 자의로 도박판에 끼어 든 것이 아니니까 더욱 속이 쓰린 것이다.
그리고 유산의 건재함이 의미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지금 정이 내뱉은 말 그 자체였다.
"… 2차 페르카 전쟁이 발발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되겠군."
"그래요. 그것도 이번에는 더욱 질이 나쁘죠. 페르카 전쟁에서 유산이 담당했던 것은 단지 말살밖에 없었지만, 이번의 유산은 똑같은데도 더욱 진일보했으니까."
그녀의 친절한 설명에 정은 머리를 짚었다.
"최악이군…. 그런데 말이지."
미간에 땀이 흐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고, 만져보자 아무것도 없었다. 관자놀이를 짚은 상태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인 모습으로 그는 웅얼거리듯 질문했다.
"왜 아까부터, 아니 처음부터 말이 새는지 모르겠군. 대위. 나는 줄곧 기다리고 있었어. 새벽 1시부터 끓일 줄 아는 게 피밖에 없는 머저리 녀석들을 데리고 버티고 있었단 말야. 속으로 삭이고 있었지. 명분도 정말 좋았어. 아군을 구하러 간다, 이것만큼 좋은 임무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꾹 참고 기다리고 있었어. 왜냐고? 태평양 사령부에서는 여자 둘, 그것도 하나는 꼬맹이다. 그런 둘을 보내고서는 그들을 마냥 기다리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기다린 끝에 내가 듣게 된 대답은, 유산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말뿐이지."
고개는 들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살아남은 사람은 둘이 있다.
"… 생존 여부도 불투명하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선은 똑바로 맞췄다. 굳이 도전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도 없었다. 김 정 소령이라는 인간은 T.S.S 전 군에 알려진 대로의 인간이다. 이 남자 앞에서 거스를 수 있는 인간은 몇 되지 않는다. 당사자도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거만하게 굴지 않았다.
"그따위 대답은 필요 없어.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다."
그가 우울하게 말하자 그녀는 제독을 쳐다봤다. 제독은 어깨를 으쓱였고 그 옆의 함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의 협박조 섞인 말에도 그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같이 가 줘야해요. 정확하게는 802 독립중대원들의 조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지만."
"… 하아?"
그녀는 틈을 주지 않고는 계속 이어서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제독님의 의견을 묻겠습니다. 여자 둘이서 떠나는 여행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제독님?"
"물론."
제독의 승인이 떨어졌고 정은 반대하는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의문은 내비쳤다.
"우리 중대가 필요하다고? 지금 페르카 고원 내라면 우리 중대원들이라곤 해도 거기서 거기일텐데, 하필이면 왜 우리 중대지?"
"그래서 전 분할운용을 권유하고 싶습니다만."
"분할하라고?"
"예. 지금 에스코트 및 수색 보조역으로 필요한 병력은 1개 소대 정도면 족합니다. 김 정 소령께서는 필수로 와주셔야 하지만, 렌디지 셰퍼 대위가 중대 통제를 맡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제의하는 것인데요."
"… 다 알아보고 왔나보군."
"준비는 철저하게. 제 삶의 신조라죠."
아무리 봐도 작전토의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정은 피식 웃었고 주하도 피식 웃었다. 함장도 피식 웃었다. 제독은 그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출석만 한 셈인 함내 요원들은 그들을 지긋이 바라볼 뿐이었다. 생각 후 대답하기까지 약간의 침묵이 감돌았고 누구도 그 침묵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이 입을 열고자 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우웅-!]
"- 전투배치! 전투배치! 총원 전투배치! 각 대원들은 각자의 자리를 고수하라! 반복한다! 전투배치! 전투배치! 1급 경보 발령! 1급 경보 발령! 각 대원들은 각자의 자리를 고수하라! 전투배치! 전투배치!"
"뭐지…!?"
"부함장 목소리인데?"
갑작스레 함내 스피커를 타고 1급 경보가 발령됐다. 경보음에는 여운이 있었다. 원색적인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금새 시끄러워진 브리핑 룸은 소음의 도가니 안에 잠시 어수선해졌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다들 자신의 위치로 뛰어 내려갔다. 함장과 작전관, 제독, 정과 주하 그리고 아직 이름도 밝히지 않은 소녀는 아일랜드의 CIC를 향해 서둘러 달려갔다. 계단을 구르듯 하며 뛰어내려가고 열려있는 문의 턱을 넘어 내달린다. 좁아 터진 미로 같은 구조였지만 그들은 잘도 나아갔다. 발소리가 쿵쾅쿵쾅 울렸다. 그 끝에 이윽고 다다랐다.
"함장님!"
"무슨 일이야!"
CIC의 문은 열려있었지만, 그런 문이 거의 두들겨 부서지는 수준의 박력을 내뿜으며 함장이 들어섰다. 다른 이들도 그의 뒤를 따라 CIC 안으로 난입했다. 내부는 난장판이었다. 미칠 듯이 통신을 해대는 오퍼레이터의 고함소리에, 각종 지시들이 난무하는 혼란의 도가니탕. 부함장은 헤드폰으로 듣고 있던 보고를 개방회선으로 바꿔버렸다. 그는 냅다 난입한 함장을 쳐다보며 덜덜 떨면서 말했다.
"AWACS로부터의 보고입니다…!"
스피커를 통해 터져나오는 상황보고는 거의 비명소리나 진배없었다.
"- … 한다! 탄도미사일 공습! 탄도미사일 3발이 접근중이다! 피격까지 앞으로 30초 남았다! 탄도미사일 접근중! 전 함대에 수신한다! 탄도미사일 접근중! 탄도미사일 접근중!"
추신:
레비아탄 편도 슬슬 끝나가는군요.
비축분을 향해 힘내라(...)
어쨌든 그녀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방금 말씀드렸던 대로 제독께서 수신하신 내용은 태평양 사령부 전략정보과에서도 입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저희는 그 내용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에만도 많은 역량을 소모했고, 무엇보다 그 내용을 파악하고서는 어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몰살을 당했지."
함장은 입 속에서 웅얼거리듯 말했지만 그녀의 말을 정면에서 가로막을 의도로 크게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교적 청력이 좋은 편인 정은 위 함장의 말을 모두 알아들었고 그의 심중을 짐작하며 약간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안이 비록 중요하다고는 해도 지금은 생사불명이 되어버린 파일럿에게 떳떳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전략정보 1과를 대신해서 사과 드립니다."
딱히 누구를 쳐다보려고 한 의도는 아니었지만 시선이 겹치는 곳에 앉아있던 함장은 퍽 켕기는 심정이 되었고 그의 속을 들여다보듯 하며 있는 정은 함장의 반응에 숨 죽여 웃었다.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제독은 이놈들이 뭘 잘못 먹었냐는 식으로 둘을 쳐다봤고 결국 아주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소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함장은 죽어버린 이들을 대신해서 말을 받았다.
"고맙네."
그는 그녀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대답을 듣지는 않았다. 속에서 웅얼거린 것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전략정보과가 뭐든 다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우리가 구명해낸 사안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페르카 고원으로부터 시작해서 각 유산들의 발견지의 위치를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페르카 고원에 대한 항목의 정리 중에 중대차한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페르카 전쟁을 유발한 동기가, 바로 그 유산이 소각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추론이었습니다."
주위가 웅성거렸다. 페르카 고원에 대한 전략위성 묠니르의 마이크로웨이브 폭격은 악랄하다고 표현해도 마땅찮을 정도로 철저했다. 극초단파 공격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은 비살상 무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궤도상에서 뿌려대는 압도적일 정도의 출력을 동반한 공격은 살상무기로서의 전환에 충분했다. 결국 묠니르가 뿌려대는 전자파 아래 그 모든 것이 들끓어버렸다. 게다가 페르카 고원 상에서는 핵병기도 폭발했다.
그 위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아무것도 없다고 알고 있다.
"출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전해진 편지가 우리의 추론을 뒷받침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지요. 그 익명의 제보자의 정체는 아직까지도 불명으로 지문 스캔과 같은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서 제보자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었지만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해봐야 했고 그래서 제독께서는 유산의 존재 유무를 판별하기 위해 2개 편대를 출격시키셨습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입니다."
정은 입이 바싹바싹 타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바로 핵심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애가 타는 심정은 모두가 똑같았다. 그리고 모두가 학수고대하던 사실은 드디어 그들에게 드러났다.
"그리고 이번의 대규모 전자전을 통해서 사태는 명약관화해졌습니다. 태평양 사령부의 마더 컴퓨터는 적의 해킹의 질적 수준과 그 기법에 대해 분석했고, 그녀는 적이 ICRC-3식 수준의 양자컴퓨터에 해당하는 시스템을 앞세워 공격해오고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음울하게 말했다.
"유산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유산의 건재함. 그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피난처라는 고약한 손님이 인류에게 남긴 악의 담긴 선물은 정말로 처치가 곤란한 것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나을지도 모른다. T.S.S의 선물 처리반은 언제나 큰 리스크를 지고 있다. 조금만 잘못해도 그들은 판돈으로 인류의 존망을 송두리째 강탈당하게 되니까 그들로서는 채산이 맞지 않는 도박이었다. 물론 자의로 도박판에 끼어 든 것이 아니니까 더욱 속이 쓰린 것이다.
그리고 유산의 건재함이 의미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지금 정이 내뱉은 말 그 자체였다.
"… 2차 페르카 전쟁이 발발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되겠군."
"그래요. 그것도 이번에는 더욱 질이 나쁘죠. 페르카 전쟁에서 유산이 담당했던 것은 단지 말살밖에 없었지만, 이번의 유산은 똑같은데도 더욱 진일보했으니까."
그녀의 친절한 설명에 정은 머리를 짚었다.
"최악이군…. 그런데 말이지."
미간에 땀이 흐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고, 만져보자 아무것도 없었다. 관자놀이를 짚은 상태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인 모습으로 그는 웅얼거리듯 질문했다.
"왜 아까부터, 아니 처음부터 말이 새는지 모르겠군. 대위. 나는 줄곧 기다리고 있었어. 새벽 1시부터 끓일 줄 아는 게 피밖에 없는 머저리 녀석들을 데리고 버티고 있었단 말야. 속으로 삭이고 있었지. 명분도 정말 좋았어. 아군을 구하러 간다, 이것만큼 좋은 임무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꾹 참고 기다리고 있었어. 왜냐고? 태평양 사령부에서는 여자 둘, 그것도 하나는 꼬맹이다. 그런 둘을 보내고서는 그들을 마냥 기다리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기다린 끝에 내가 듣게 된 대답은, 유산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말뿐이지."
고개는 들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살아남은 사람은 둘이 있다.
"… 생존 여부도 불투명하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선은 똑바로 맞췄다. 굳이 도전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도 없었다. 김 정 소령이라는 인간은 T.S.S 전 군에 알려진 대로의 인간이다. 이 남자 앞에서 거스를 수 있는 인간은 몇 되지 않는다. 당사자도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거만하게 굴지 않았다.
"그따위 대답은 필요 없어.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다."
그가 우울하게 말하자 그녀는 제독을 쳐다봤다. 제독은 어깨를 으쓱였고 그 옆의 함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의 협박조 섞인 말에도 그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같이 가 줘야해요. 정확하게는 802 독립중대원들의 조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지만."
"… 하아?"
그녀는 틈을 주지 않고는 계속 이어서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제독님의 의견을 묻겠습니다. 여자 둘이서 떠나는 여행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제독님?"
"물론."
제독의 승인이 떨어졌고 정은 반대하는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의문은 내비쳤다.
"우리 중대가 필요하다고? 지금 페르카 고원 내라면 우리 중대원들이라곤 해도 거기서 거기일텐데, 하필이면 왜 우리 중대지?"
"그래서 전 분할운용을 권유하고 싶습니다만."
"분할하라고?"
"예. 지금 에스코트 및 수색 보조역으로 필요한 병력은 1개 소대 정도면 족합니다. 김 정 소령께서는 필수로 와주셔야 하지만, 렌디지 셰퍼 대위가 중대 통제를 맡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제의하는 것인데요."
"… 다 알아보고 왔나보군."
"준비는 철저하게. 제 삶의 신조라죠."
아무리 봐도 작전토의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정은 피식 웃었고 주하도 피식 웃었다. 함장도 피식 웃었다. 제독은 그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출석만 한 셈인 함내 요원들은 그들을 지긋이 바라볼 뿐이었다. 생각 후 대답하기까지 약간의 침묵이 감돌았고 누구도 그 침묵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이 입을 열고자 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우웅-!]
"- 전투배치! 전투배치! 총원 전투배치! 각 대원들은 각자의 자리를 고수하라! 반복한다! 전투배치! 전투배치! 1급 경보 발령! 1급 경보 발령! 각 대원들은 각자의 자리를 고수하라! 전투배치! 전투배치!"
"뭐지…!?"
"부함장 목소리인데?"
갑작스레 함내 스피커를 타고 1급 경보가 발령됐다. 경보음에는 여운이 있었다. 원색적인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금새 시끄러워진 브리핑 룸은 소음의 도가니 안에 잠시 어수선해졌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다들 자신의 위치로 뛰어 내려갔다. 함장과 작전관, 제독, 정과 주하 그리고 아직 이름도 밝히지 않은 소녀는 아일랜드의 CIC를 향해 서둘러 달려갔다. 계단을 구르듯 하며 뛰어내려가고 열려있는 문의 턱을 넘어 내달린다. 좁아 터진 미로 같은 구조였지만 그들은 잘도 나아갔다. 발소리가 쿵쾅쿵쾅 울렸다. 그 끝에 이윽고 다다랐다.
"함장님!"
"무슨 일이야!"
CIC의 문은 열려있었지만, 그런 문이 거의 두들겨 부서지는 수준의 박력을 내뿜으며 함장이 들어섰다. 다른 이들도 그의 뒤를 따라 CIC 안으로 난입했다. 내부는 난장판이었다. 미칠 듯이 통신을 해대는 오퍼레이터의 고함소리에, 각종 지시들이 난무하는 혼란의 도가니탕. 부함장은 헤드폰으로 듣고 있던 보고를 개방회선으로 바꿔버렸다. 그는 냅다 난입한 함장을 쳐다보며 덜덜 떨면서 말했다.
"AWACS로부터의 보고입니다…!"
스피커를 통해 터져나오는 상황보고는 거의 비명소리나 진배없었다.
"- … 한다! 탄도미사일 공습! 탄도미사일 3발이 접근중이다! 피격까지 앞으로 30초 남았다! 탄도미사일 접근중! 전 함대에 수신한다! 탄도미사일 접근중! 탄도미사일 접근중!"
추신:
레비아탄 편도 슬슬 끝나가는군요.
비축분을 향해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