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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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장님."
짧은 물음에 정은 두말할 것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는 그 상태
그대로 가속을 하다가 벽에다가 머리를 들이박을 뻔한 아찔한 상황을
한번 겪었다. 소리 없이 입 속에서 욕설을 웅얼거려 벽을 대상으로 파
괴공학적 지식이 압축된 저주를 퍼붓고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물었다.
"몇 시냐?"
부중대장인 렌디지 셰퍼 대위는 그의 냉랭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외모
에 맞는 어조로 짤막하게 대답했다.
"7시입니다."
"애들은 아침 구보하고 있… 아니 잠깐. 데프콘 떴지? 젠장맞을."
"경계상태로 대기중입니다."
"뜬금없이 초병 세우고 난리를 치니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군. 그
런데 그냥 깨우러 온 거냐?"
제 3 함대는 지금 데프콘 2가 발령된 상태다. 승무원들의 구획 이동
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당연히 아침 구보도 불가능했다. 그리
고 802 독립중대는 그 특수함에 힘입어 함내 경비병보다 더욱 핏발 선
눈으로 대기하고 있어蔘?했다. 지상 작전을 펼친다면 레비아탄이 가
장 먼저 투입할 부대가 바로 802 독립중대인 것이다.
정이 눈을 비비적거려 눈곱을 어찌어찌 떼어내고는 곧장 렌디지 대위
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렌디지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눈썹하나 꿈틀
거리지 않으며 시선을 받았다. 일견 보기에 좋은 상급자와 하급자 간
의 관계로 비치지는 않았다. 그 모습에서 이들이 장장 6년의 세월동안
서로에게 등을 맡기고 사선을 넘나든 사이라는 것을 짐작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침묵 속에서 렌디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태평양 사령부에서 출발한 요원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제법 빨리 왔군. 하긴 작전 내용도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는데 이 정
도는 해줘야겠지."
"… 불쾌하십니까?"
그 물음에 정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전혀."
그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벽에 걸린 거울에 흘끗 비친 모습을 보니
머리에는 새집이 차려져 있었다. 당장 둥지를 틀어도 될 모양이라서
정은 피식 웃어줬다. 별로 길게 잔 것도 아닌데 숙면을 푹 취한 듯이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뒷모습으로는 여유로움보다 부스스함에 중점적
으로 할애를 하면서 세면실을 향해 비척비척 걸어갔다.
몇 분 후에는 훨씬 말쑥해진 모양새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중대
장 전용실에서 밖으로 나와서는 급하게 기울어진 계단을 타고 좀 걸어
올라가자 식당이 나왔다. 정은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발작하겠다는 표
정을 짓더니 넌지시 말을 꺼냈다.
"뭔가 논의를 해보자고. 내가 먼저 첫 번째 논제를 제시하지. 아침
식사는 무엇으로 할 것이며 그 무엇이며라는 구절은 아침 식사의 내용
물에 대한 논의일지 아니면 사용할 수저에 대한 논의일지에 대한 형이
하학적 난상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거창한가?"
"기각하겠습니다."
실제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는 해도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전
시다. 2급 경계배치 상황에서 여유로이 식사를 할 마음은 없었기 때문
에 정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으며 등뒤를 향해 내뱉었다.
"그렇다면 그만두지. 무슨 일 있었나?"
"손님이 왔습니다. 곧 브리핑을 하는 듯 합니다."
"모호하군. 브리핑을 할 것 같다는 말이야? 추측은 안 하는 편인 걸
로 알고 있었는데."
정은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종이컵을 손에 들고 걸어가서는 가까운
테이블의 의자 하나를 끌어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컵을 입가로 가져가
기 전에 그의 입매가 씨익 웃고있는 것을 본 렌디지는 만지면 딱딱할
것 같은 얼굴빛 그대로 대답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만 둬. 농담도 못하겠군. 그건 그렇고 손님이 왔다는 건… 흐음.
보고 왔냐?"
"예."
"어떻게 생겨먹은 샌님들이었나?"
그 물음에 대해서 렌디지는 말을 하지 못했다.
"왜 그래?"
입을 열려고 하다가도 흐릿하게 말을 목구멍 속으로 까먹어버리는 그
의 모습은 당혹감 그 자체였다. 6년 동안 그를 알고 지내면서도 처음
으로 보는 모습에 정은 오늘 아침 식사가 대체 뭐였기에 렌디지가 저
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새삼스레 궁금해졌다. 혹시라도 아침 식사가
잘못된 것이었다면 미리 메뉴를 기억해뒀다가 나중에라도 먹여봐야겠
다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가 스스로의 실없음에 피식 웃어버릴 정
도가 되자 렌디지는 결국 그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한 채로 입을
열었다.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꺼낸 건 말이라고 하기보다는 황당함을 언어의 형태로 짜내고
짜낸 무언가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만 같았다. 정의 관심사는 그
의 반응 이외에도 다른 요소, 곧 자신 대신으로 수색에 파견될 요원의
신상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딱
히 뭔가를 하지는 않기로 했다. 브리핑에서 볼 지도 모른다고 하니 그
저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은 다른 일을 묻기로 했다.
"중대 현황은?"
"만전입니다. 많이 심심했던 모양입니다."
정은 자신의 전우이며 든든한 오른팔인 부중대장 렌디지 셰퍼 대위는
유머감각이 대단히 부실한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렌디지가
할 수 있는 농담조의 말로는 이 정도가 한계라는 것 또한 매우 잘 알
고 있었기에 정은 피식 웃어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래 가지는 않을 테니까 경계태세 유지하고 출동 준비 완료해둬."
렌디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이 쑤시는 것이 사실은 사실이지 말입니다."
잭슨은 그의 본명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명인 것도 아니었다. 그럼
답은 별명 정도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언젠가 잭슨이라는 이름에 대
해서 본명이 아니라면 별명이냐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당사자인 잭
슨은 그에게 말하길 '이건 제 콜사인입니다.' 라고 대답해서 중대원들
의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802 독립중대는 굳이 갖다 붙이려고 든다면
하늘에 가장 근접한 보병 중대이긴 했다. 하지만 콜사인을 가진다고
해서 없는 날개가 돋아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누가 첫 번째로 시작한 것인지는 아마 그들만이 알고 있을 테
지만 어쨌든 그런 자칭 콜사인은 잭슨 하나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정
은 1소대에 대해서 여러 차례 생각해봤고 그러면 가장 첫 번째로 떠오
르는 것은 언제나 '톰슨, 잭슨, 존슨' 이상 3명이었다. 이번에도 별로
다를 것은 없었다.
어쨌든 이 자칭 콜사인 잭슨은 정에게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레비아탄에 배치 받은 건 일단 편해서 좋지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
이 너무 편하다보면 나태해지고 좀이 쑤시고 나른하고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증상이 합병증으로 나타나시지 말입니다."
그래서 정은 잭슨의 완곡한 어조에 대해 딱 한마디로 논평했다.
"욕구불만이냐?"
"요약을 잘 하시지 말입니다."
"말입니다 말입니다 좀 하지 마시란 말입니다. 대체 어느 놈이 가르
쳐 준거야?"
"스미스입니다."
"… 걔는 또 누구야?"
잭슨은 대답하지 않았다. '슨' 트릴로지 중에서 제일 대화하기 쉬운
상대는 바로 이 눈앞의 검은 거구다. 예의도 바르고, 인상에 비해서
지적인 느낌이 강하니까 일단 말만 붙이면 누구에게라도 좋은 대화 상
대가 될 것이다. 실제로도 그는 인텔리였다. 정은 언젠가의 기억을 떠
올렸다. 그는 잭슨의 출신 대학에 대해서 질문했었고 UCLA 출신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렌디지가 중대 관리를 못하는 건지 네놈들이 말년병장 뺨치는 건지
모르겠군."
"부중대장님은 좋은 분이십니다. 중대장 본인은 팽개치듯 한 중대 관
리를 대리로 도맡기를 밥먹듯 하시지만, 대체 어디 갔는지 모를 중대
장이 직접 중대를 관리할 때보다 더 빳빳하게 중대를 유지하는 분이시
지요."
잭슨의 말에 정은 참으로 비참한 신세라는 듯 대답했다.
"중대장이 없어도 중대가 잘 굴러가는 걸 보니 평소 중대장이 어떤
마음가짐과 인품으로 업무에 임했는지 능히 짐작이 되는구만. 훌륭한
중대장이야."
"부중대장님이 들으셨으면 거품을 물어도 쌀 발언이군요."
"뭐 어떠냐."
정은 껄껄 웃었다.
"어쨌든 너무 놀았습니다. 중대원들은 레비아탄에 배치된걸 대부분
회의적으로 여기고 있고, 여러 가지로 모양새가 영 안 좋습니다."
"젠장. 어쩔 수가 없다고. 3함대는 임무량은 많지만 그 특성상 우리
가 직접 투입돼야 할 일은 거의 없어. 게다가 이 지역은 딱히 분쟁지
역도 아니고 말야. 어쨌든 모양새가 안 좋다라… 대충 언제부터 그런
건가?"
"음. 말씀을 이상하게 드렸군요. 욕구불만이라 폭주하고 싶다는 뭐
그런 건 아닙니다. 인내력 하나는 발군인 녀석들이니까요. 하지만 이
대로라면 전투력 저하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군."
잭슨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었기에 정은 가슴속으로 쓰린 표정을 지
었다. 군인이라는 직업은 적을 맞아 싸워야 하는 직업이긴 하다만 굳
이 일부러 없는 적을 찾아 나설 필요는 없었다. 오랜 기간의 실전경험
부재로 인한 전투력 저하라고? 802 독립중대는 전투력 상승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전투력 저하를 목표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자문해본 적이 있는 정에게 그건 어불성설로 들릴 따름이었다.
중대원들이 지루해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
만 그래도 석연찮은 구석은 있었다.
"죽이고 싶나?"
"예? 무슨…."
"아무것도 아냐."
그리고 갑작스레 함내방송이 터져 나왔다. "브리핑이 있겠습니다. 페
르카 고원 작전과 관련 있는 함내 요인들은 브리핑 룸으로 출두해주시
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브리핑이 있겠습니다. 이하 호명하
는 분들은 브리핑 룸으로 출두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은 스피커 소
리에 귀를 기울였다. 에이미드 위 함장과 알렉산드로비치 제독의 이름
은 맨 처음으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도 불렸다. "802 독립중대
중대장 김 정 소령." 브리핑 룸은 아일랜드 위쪽에 있었다.
"가봐야겠군. 별로 출동할 것 같지는 않다만, 어쨌든 긴장 타고 있으
라고."
"알겠습니다."
잭슨이 경례하자 정은 빠르게 손을 올려 경례하고는 그를 지나쳐 브
리핑 룸을 향해 걸어갔다.
추신:
오늘 레비아탄 편을 끝내려고 했는데 잠이 이만저만 오는 게 아니구만요. 분량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최소 2편은 더 써야 레비아탄 편이 끝날 것 같심다.-_-);
추신2:
편협한 분류지만, 자연과학적인 모티브에서 시작해서 인문학,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 철학에까지 도달하려 시도하는게 SF라면 이 소설은 SF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도는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바램에 다름아닙니다만. ㅠ_ㅠ
추신3:
802 독립중대를 보면 "대체 왜 항모전단이라는, 그것도 배수량 60만 톤짜리 깡패같은 항공모함을 끌고다니는 녀석들이 중대 하나 가지고 빌빌거리냐?" 라는 의문이 들기 십상이죠. 이건 버그가 아닙니다. 본문중에 언급될테니 지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_-;
추신4:
톰슨 잭슨 존슨을 알고 계신 분이라면 스미스도 아시겠죠 뭐(...)
짧은 물음에 정은 두말할 것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는 그 상태
그대로 가속을 하다가 벽에다가 머리를 들이박을 뻔한 아찔한 상황을
한번 겪었다. 소리 없이 입 속에서 욕설을 웅얼거려 벽을 대상으로 파
괴공학적 지식이 압축된 저주를 퍼붓고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물었다.
"몇 시냐?"
부중대장인 렌디지 셰퍼 대위는 그의 냉랭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외모
에 맞는 어조로 짤막하게 대답했다.
"7시입니다."
"애들은 아침 구보하고 있… 아니 잠깐. 데프콘 떴지? 젠장맞을."
"경계상태로 대기중입니다."
"뜬금없이 초병 세우고 난리를 치니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군. 그
런데 그냥 깨우러 온 거냐?"
제 3 함대는 지금 데프콘 2가 발령된 상태다. 승무원들의 구획 이동
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당연히 아침 구보도 불가능했다. 그리
고 802 독립중대는 그 특수함에 힘입어 함내 경비병보다 더욱 핏발 선
눈으로 대기하고 있어蔘?했다. 지상 작전을 펼친다면 레비아탄이 가
장 먼저 투입할 부대가 바로 802 독립중대인 것이다.
정이 눈을 비비적거려 눈곱을 어찌어찌 떼어내고는 곧장 렌디지 대위
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렌디지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눈썹하나 꿈틀
거리지 않으며 시선을 받았다. 일견 보기에 좋은 상급자와 하급자 간
의 관계로 비치지는 않았다. 그 모습에서 이들이 장장 6년의 세월동안
서로에게 등을 맡기고 사선을 넘나든 사이라는 것을 짐작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침묵 속에서 렌디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태평양 사령부에서 출발한 요원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제법 빨리 왔군. 하긴 작전 내용도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는데 이 정
도는 해줘야겠지."
"… 불쾌하십니까?"
그 물음에 정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전혀."
그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벽에 걸린 거울에 흘끗 비친 모습을 보니
머리에는 새집이 차려져 있었다. 당장 둥지를 틀어도 될 모양이라서
정은 피식 웃어줬다. 별로 길게 잔 것도 아닌데 숙면을 푹 취한 듯이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뒷모습으로는 여유로움보다 부스스함에 중점적
으로 할애를 하면서 세면실을 향해 비척비척 걸어갔다.
몇 분 후에는 훨씬 말쑥해진 모양새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중대
장 전용실에서 밖으로 나와서는 급하게 기울어진 계단을 타고 좀 걸어
올라가자 식당이 나왔다. 정은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발작하겠다는 표
정을 짓더니 넌지시 말을 꺼냈다.
"뭔가 논의를 해보자고. 내가 먼저 첫 번째 논제를 제시하지. 아침
식사는 무엇으로 할 것이며 그 무엇이며라는 구절은 아침 식사의 내용
물에 대한 논의일지 아니면 사용할 수저에 대한 논의일지에 대한 형이
하학적 난상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거창한가?"
"기각하겠습니다."
실제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는 해도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전
시다. 2급 경계배치 상황에서 여유로이 식사를 할 마음은 없었기 때문
에 정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으며 등뒤를 향해 내뱉었다.
"그렇다면 그만두지. 무슨 일 있었나?"
"손님이 왔습니다. 곧 브리핑을 하는 듯 합니다."
"모호하군. 브리핑을 할 것 같다는 말이야? 추측은 안 하는 편인 걸
로 알고 있었는데."
정은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종이컵을 손에 들고 걸어가서는 가까운
테이블의 의자 하나를 끌어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컵을 입가로 가져가
기 전에 그의 입매가 씨익 웃고있는 것을 본 렌디지는 만지면 딱딱할
것 같은 얼굴빛 그대로 대답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만 둬. 농담도 못하겠군. 그건 그렇고 손님이 왔다는 건… 흐음.
보고 왔냐?"
"예."
"어떻게 생겨먹은 샌님들이었나?"
그 물음에 대해서 렌디지는 말을 하지 못했다.
"왜 그래?"
입을 열려고 하다가도 흐릿하게 말을 목구멍 속으로 까먹어버리는 그
의 모습은 당혹감 그 자체였다. 6년 동안 그를 알고 지내면서도 처음
으로 보는 모습에 정은 오늘 아침 식사가 대체 뭐였기에 렌디지가 저
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새삼스레 궁금해졌다. 혹시라도 아침 식사가
잘못된 것이었다면 미리 메뉴를 기억해뒀다가 나중에라도 먹여봐야겠
다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가 스스로의 실없음에 피식 웃어버릴 정
도가 되자 렌디지는 결국 그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한 채로 입을
열었다.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꺼낸 건 말이라고 하기보다는 황당함을 언어의 형태로 짜내고
짜낸 무언가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만 같았다. 정의 관심사는 그
의 반응 이외에도 다른 요소, 곧 자신 대신으로 수색에 파견될 요원의
신상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딱
히 뭔가를 하지는 않기로 했다. 브리핑에서 볼 지도 모른다고 하니 그
저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은 다른 일을 묻기로 했다.
"중대 현황은?"
"만전입니다. 많이 심심했던 모양입니다."
정은 자신의 전우이며 든든한 오른팔인 부중대장 렌디지 셰퍼 대위는
유머감각이 대단히 부실한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렌디지가
할 수 있는 농담조의 말로는 이 정도가 한계라는 것 또한 매우 잘 알
고 있었기에 정은 피식 웃어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래 가지는 않을 테니까 경계태세 유지하고 출동 준비 완료해둬."
렌디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이 쑤시는 것이 사실은 사실이지 말입니다."
잭슨은 그의 본명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명인 것도 아니었다. 그럼
답은 별명 정도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언젠가 잭슨이라는 이름에 대
해서 본명이 아니라면 별명이냐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당사자인 잭
슨은 그에게 말하길 '이건 제 콜사인입니다.' 라고 대답해서 중대원들
의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802 독립중대는 굳이 갖다 붙이려고 든다면
하늘에 가장 근접한 보병 중대이긴 했다. 하지만 콜사인을 가진다고
해서 없는 날개가 돋아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누가 첫 번째로 시작한 것인지는 아마 그들만이 알고 있을 테
지만 어쨌든 그런 자칭 콜사인은 잭슨 하나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정
은 1소대에 대해서 여러 차례 생각해봤고 그러면 가장 첫 번째로 떠오
르는 것은 언제나 '톰슨, 잭슨, 존슨' 이상 3명이었다. 이번에도 별로
다를 것은 없었다.
어쨌든 이 자칭 콜사인 잭슨은 정에게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레비아탄에 배치 받은 건 일단 편해서 좋지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
이 너무 편하다보면 나태해지고 좀이 쑤시고 나른하고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증상이 합병증으로 나타나시지 말입니다."
그래서 정은 잭슨의 완곡한 어조에 대해 딱 한마디로 논평했다.
"욕구불만이냐?"
"요약을 잘 하시지 말입니다."
"말입니다 말입니다 좀 하지 마시란 말입니다. 대체 어느 놈이 가르
쳐 준거야?"
"스미스입니다."
"… 걔는 또 누구야?"
잭슨은 대답하지 않았다. '슨' 트릴로지 중에서 제일 대화하기 쉬운
상대는 바로 이 눈앞의 검은 거구다. 예의도 바르고, 인상에 비해서
지적인 느낌이 강하니까 일단 말만 붙이면 누구에게라도 좋은 대화 상
대가 될 것이다. 실제로도 그는 인텔리였다. 정은 언젠가의 기억을 떠
올렸다. 그는 잭슨의 출신 대학에 대해서 질문했었고 UCLA 출신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렌디지가 중대 관리를 못하는 건지 네놈들이 말년병장 뺨치는 건지
모르겠군."
"부중대장님은 좋은 분이십니다. 중대장 본인은 팽개치듯 한 중대 관
리를 대리로 도맡기를 밥먹듯 하시지만, 대체 어디 갔는지 모를 중대
장이 직접 중대를 관리할 때보다 더 빳빳하게 중대를 유지하는 분이시
지요."
잭슨의 말에 정은 참으로 비참한 신세라는 듯 대답했다.
"중대장이 없어도 중대가 잘 굴러가는 걸 보니 평소 중대장이 어떤
마음가짐과 인품으로 업무에 임했는지 능히 짐작이 되는구만. 훌륭한
중대장이야."
"부중대장님이 들으셨으면 거품을 물어도 쌀 발언이군요."
"뭐 어떠냐."
정은 껄껄 웃었다.
"어쨌든 너무 놀았습니다. 중대원들은 레비아탄에 배치된걸 대부분
회의적으로 여기고 있고, 여러 가지로 모양새가 영 안 좋습니다."
"젠장. 어쩔 수가 없다고. 3함대는 임무량은 많지만 그 특성상 우리
가 직접 투입돼야 할 일은 거의 없어. 게다가 이 지역은 딱히 분쟁지
역도 아니고 말야. 어쨌든 모양새가 안 좋다라… 대충 언제부터 그런
건가?"
"음. 말씀을 이상하게 드렸군요. 욕구불만이라 폭주하고 싶다는 뭐
그런 건 아닙니다. 인내력 하나는 발군인 녀석들이니까요. 하지만 이
대로라면 전투력 저하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군."
잭슨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었기에 정은 가슴속으로 쓰린 표정을 지
었다. 군인이라는 직업은 적을 맞아 싸워야 하는 직업이긴 하다만 굳
이 일부러 없는 적을 찾아 나설 필요는 없었다. 오랜 기간의 실전경험
부재로 인한 전투력 저하라고? 802 독립중대는 전투력 상승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전투력 저하를 목표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자문해본 적이 있는 정에게 그건 어불성설로 들릴 따름이었다.
중대원들이 지루해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
만 그래도 석연찮은 구석은 있었다.
"죽이고 싶나?"
"예? 무슨…."
"아무것도 아냐."
그리고 갑작스레 함내방송이 터져 나왔다. "브리핑이 있겠습니다. 페
르카 고원 작전과 관련 있는 함내 요인들은 브리핑 룸으로 출두해주시
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브리핑이 있겠습니다. 이하 호명하
는 분들은 브리핑 룸으로 출두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은 스피커 소
리에 귀를 기울였다. 에이미드 위 함장과 알렉산드로비치 제독의 이름
은 맨 처음으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도 불렸다. "802 독립중대
중대장 김 정 소령." 브리핑 룸은 아일랜드 위쪽에 있었다.
"가봐야겠군. 별로 출동할 것 같지는 않다만, 어쨌든 긴장 타고 있으
라고."
"알겠습니다."
잭슨이 경례하자 정은 빠르게 손을 올려 경례하고는 그를 지나쳐 브
리핑 룸을 향해 걸어갔다.
추신:
오늘 레비아탄 편을 끝내려고 했는데 잠이 이만저만 오는 게 아니구만요. 분량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최소 2편은 더 써야 레비아탄 편이 끝날 것 같심다.-_-);
추신2:
편협한 분류지만, 자연과학적인 모티브에서 시작해서 인문학,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 철학에까지 도달하려 시도하는게 SF라면 이 소설은 SF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도는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바램에 다름아닙니다만. ㅠ_ㅠ
추신3:
802 독립중대를 보면 "대체 왜 항모전단이라는, 그것도 배수량 60만 톤짜리 깡패같은 항공모함을 끌고다니는 녀석들이 중대 하나 가지고 빌빌거리냐?" 라는 의문이 들기 십상이죠. 이건 버그가 아닙니다. 본문중에 언급될테니 지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_-;
추신4:
톰슨 잭슨 존슨을 알고 계신 분이라면 스미스도 아시겠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