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속의 상상 과학과 그 실현 가능성, 그리고 과학 이야기.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는 과학 소식이나 정보를 소개하고, SF 속의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상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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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대한민국 현 언론 사정은 이렇습니다.
-종이신문과 TV 뉴스를 보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뉴스가 SNS와도 경쟁하게 되면서 극단적인 속도전이 되게 되고 그로 인해 기사의 정확성이나 출처가 중요하지 않게 됨.
-절대 다수의 언론사들이 인터넷에게 정보 전달, 유통의 자리를 빼앗기게 되면서 운영난에 처해 있는 중.
-대형 언론일수록 운영비 지출에 대한 압박이 심하고 광고주로부터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운영 문제가 심화됨에 따라 경제적 -> 정치적 경향을 띄게 됨.
-정치계로부터의 간접적인 압박 외에 직접적인 압박도 심해졌고 운영난 때문에 여기에 대항하기도 어려워짐.
-인터넷 언론의 경우 트래픽량이 광고 수익과 직결되므로 검색어 순위나 낚시 제목으로 오보나 쓰레기 기사를 양산중.
-언론사 전반의 사정이 어려워짐에 따라 대형 언론들조차 이런 흐름에 동참.
-대다수 기성 언론들의 정확성이나 기사 의도의 신뢰성이 떨어지면서 수익이 적어도 운영 가능한 소형 언론이나 팟케스트 등이 오히려 성장하게 되는 아이러니.
-공교로운 시기에 만들어진 중소 언론사 제한법.
단편적인 얘기들을 늘어놨지만 간단하게 쳐내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 언론들의 수익 루트가 끊기게 되었고 언론이 밥 주는 손과 권력에 대항할 힘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살아 보겠다는 발버둥 속에 점점 저질화 되는 중.
본래 언론의 역할은 나팔수가 아니라 진실을 전달함으로서 대중들이 옳다고 여기는 쪽으로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 나팔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은 돈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부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첫번째로 요구되는 필요조건이 경제적으로 자립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발악하면서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경쟁 상대를 따라가다 보니 똑같이 저질화 된 결과랄까.
시발점은 기성 언론들이 속도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새로운 경쟁자들을 상대로 기존과 똑같이 속보 경쟁을 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진짜 언론이 살아 남으려면 속보전이 아니라 정확도와 퀄리티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함.
어차피 쓰레기 정보는 블로그나 SNS를 통해서 그 어떤 언론보다 광속으로 퍼집니다. 그리고 쓰레기 정보는 진짜 정보의 생성 속보다 압도적으로 빠르고요.
예전에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루트 자체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기자가 직접 발로 뛰고 전화해서 얻는 정보가 가장 빠른 정보였지만 이젠 아니죠.
이제 진짜 정보라고 할 수 있는 건 뭐가 쓰레기 정보가 아니고 뭐가 진짜 정보인지 가려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가려내기가 더 어렵고 그걸 밝혀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보들이야말로 정말로 가치 있는 정보들이죠.
그래서 아마 앞으로 언론이 살아남으려면 속보가 아니라 느리지만 정확하고 가치 있는 정보로 승부를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속도로는 경쟁이 안 되니 다른 부분에서 경쟁력을 갖춰야죠.
그리고 이를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은 다수의 대중들이 진짜 정보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고 거기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에 대한 갈망이 일정 이상 되면 사람들은 느리더라도 정확도와 퀄리티가 높은 정보에 돈을 지불하게 될 것이고 이러면 오늘같은 정보 포화 시대에도 언론사가 살아남고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거대 광고주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언론사가 운영될 수 있다면 언론의 자유도 더 강해질 겁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다시 돈주고 종이신문 사서 보던 시대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직접 돈 주고 보는 구매자들이 많아질수록 광고 수입에의 의존도는 내려갈 수 있고 언론 본분에 더 신경쓸 수 있겠죠.
그리고 실제로 그런 시도나 사례들이 몇몇 선진국들에서는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링크된 기사가 소개하는 언론만이 아니라 이 기사가 실린 슬로우 뉴스라는 매체 자체도 이런 새로운 형태를 지향하는 하나의 실례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사의 대상이 되는 언론사와 이 기사를 내보낸 슬로우 뉴스라는 국내 언론사의 차이가 바로 제가 국내 언론사의 향방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 뉴스의 가치에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는 곳에서는 저런 언론이 저렇게 크게 흥하게 되겠지만..... 사람들이 쓰레기 정보에 만족하는 나라에서는 이제 제대로 된 언론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질 것인데
이미 그 차이가 저 기사가 소개하는 언론사와, 저 기사를 낸 언론사의 규모와 수익 차이에서 그 사실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전망에 더 무게를 싣는 요소는 사람들 전반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고될수록 진짜 정보에 대한 가치를 잊기 쉽다는 거죠.
당장 내가 먹고 살기 힘들면 정확한 정보를 알고자 하는 욕구도 여유도 사라지고 그저 쓸데 없는 지출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 힘들때 가장 먼저 쳐내는게 문화 생활 소비죠.
근데 한국 국민들 상황이 점점 소비를 줄여야 하는 상태로 돌입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될수록 국민들은 뭐가 진실이고 뭐가 진짜 문제인지에 대해서 점점 무감각해지며 멀어질 것이고....그건 다시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으로 되돌아오게 될 겁니다.
매사가 그렇듯이 이것 역시 순환의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 번 돌기 시작하는 순환은 그것을 반대로 되돌리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국내 언론 상황을 보면 우린 이미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의 고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중소 언론사들중 유능하고 곧은 어딘가가 어떻게 잘 살아 남아서 인터넷의 힘을 빌어 소규모지만 점점 신뢰도를 쌓게 되고 이걸 토대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정도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2016.04.19 20:44:37
진보 성향의 <인디펜던트>가 종이 신문 발행을 중단했죠. 요즘 언론들은 종이 신문 때문에 고민이 많은가 봅니다. 온라인 위키 백과와 일반 종이 백과의 갈등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요.
일전에 제가 '미래에는 작가의 체험이 중요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모초무님의 게시물이었죠. 모초무님은 미래에 인공지능이 작가로 등극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인공지능은 얼마든지 소설을 쓸 수 있죠. 그것도 평론가들조차 호평하는 소설입니다. 그렇다면 인간 작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체험과 행동, 실천입니다. 인공지능은 아무리 잘나도 결국 기계입니다. 기계는 인간처럼 세계 문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이육사처럼 독립 운동을 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이 예브게니 자마친처럼 사회주의 혁명에 참가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못합니다. 설사 인공지능이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인공지능의 방식은 인간과 다를 겁니다. 독자는 작품의 내용만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시대 배경, 상황, 작가의 인생관과 사상을 수용하죠. 그래서 작가의 체험은 작품에 어떤 특정한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작품은 그렇지 못하죠.
이걸 '느린 언론'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는 기자의 체험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언론계에는 탐사 보도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솔직히 번역이 좀 요상하죠. 본래 수사 보도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어쨌든 그만큼 깊이 조사한다는 뜻입니다. 과학자가 생태계를 탐사하듯, 형사가 살인 사건을 수사하듯, 기자는 대상을 밑바닥까지 낱낱이 조사합니다. 당연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만 두드린다고 저런 수사 보도 기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기자가 제 발로 뻘뻘 뛰어야 진정 깊이 있는 기사가 나올 겁니다. 이를 다룬 영화가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스포트라이트>죠. 저도 안 봐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그 영화의 수사 보도 기사가 온라인 뉴스마냥 하루 아침에 뚝딱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심지어 신문이 나오기 전에 편집국장인가 하는 사람이 기자들에게 연설합니다. "이런 거 해도 괜찮을까?" 뭐, 이런 식으로요. 조회 숫자에 민감한 온라인 뉴스는 절대 저런 걸 할 수 없겠죠.
마침 얼마 전에 한겨례 쪽의 정은지 기자가 세월호 사건을 깊이 취재했죠. 사실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족들을 취재해야 하는데, 유족들이 워낙 민감하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지내고, 시위에도 참가하고, 그랬다고 그러더군요. 이런 식의 취재가 더러 있습니다. 사회에서 낙오된 청소년을 취재한다고 하죠. 기자가 그 청소년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이 선뜻 취재에 응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일단 기자를 경계하겠죠. 기자는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 묵묵히 청소년들과 함께 먹고, 자고, 일합니다. 그러면 청소년들이 마음을 조금씩 열고, 기자의 취재에 응하죠. 당연히 이런 보도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온라인 뉴스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오프라인 뉴스 혹은 정통 언론의 미래는 저런 체험 보도, 수사 보도일 수 있습니다. 어차피 하루 아침에 뚝딱 올리는 뉴스는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느린 언론은 그런 기사를 양념으로 삼고, 시간이 걸리지만 깊이가 있는 기사를 주식으로 삼으면 되겠습니다.
문제는 그런 기사가 과연 잘 팔리는가, 이겁니다. 저런 조사는 비용이 많이 들 테고, 구독자가 계속 지지를 보내야 합니다. 이건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다를 겁니다. 사람들이 그런 방식의 기사를 원한다면, 수사 보도 언론도 계속 유지할 수 있겠죠. 하지만 사람들이 이런 기사를 원하지 않는다면, 경쟁력 하락 때문에 그냥 흥미 위주의 언론만 살아남을 테고요. 사실 출판계도 비슷한 문제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리 두껍고 진중한 책이 나와도 독자가 외면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 출판사는 경쟁력을 잃고, 다음에 그런 책을 출판하지 못하겠죠. 그래서 도서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가치 있는 책이 나오면, 시장의 구매력이 하락한다고 해도 도서관이 구입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의 구입 비용은 그리 크지 않겠지만, 최소한 출판사에 미약하나마 금전적 이익을 주겠죠. 이 부분은 저도 자세히 잘 몰라서 뭐라고 말을 못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확대하면 어떨까요. 사회가 일하는 개인들에게 일정한 소득을 무상으로 부여하고, 더 많이 일하는 사람에게 수당을 추가합니다. 자기 발로 열심히 빨빨 뛰는 기자들은 더 열심히 일했으니까 더 많은 수당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수사 보도 기사들은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고 발전하는 데 크나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추가 수당을 받을 자격이 있겠죠. 누구나 금방 만들 수 있는 뉴스는 그만큼 작은 수당을 받거나 기본 소득만 얻을 테고요. 물론 이런 사회 구조는 너무 이상적입니다. 이런 사회가 당장 도래할 리 없죠.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는 겁니다. 한국의 상황은…. 글쎄요, 저는 한국 사회가 그나마 정상적이고 보수적으로 돌아가려면, 20년 정도 걸린다고 봅니다. 그때까지 <한겨례> 같은 언론은 힘들게 버텨야 할 겁니다. 그렇다고 20년이 지나면 바로 꽃 피는 봄이 아닐 테고, 얼마 정도 다시 진통을 겪어야 하겠죠.
결국 최종적인 결론은 자본주의 타파인데…. 이걸 구체적으로 설명할 지식도 없고, 너무 거대한 이야기니까 그냥 여기서 생략하겠습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언론사니, 뭐니 보다는 '정확한 정보'의 값어치가 더욱 상승하고 요구가 거세지지 않을 까 봅니다.
일례를 든다면, 연금보험 해약율이 갈수록 느는데 그 이유를 전문가들은 '미래에 내가 얼마나 받을 수 있나? 얼마나 사는 거지?'라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확실하다는 점과 현실의 당장 끼니도 힘든 것이 맞물린다는 점인데..
이게, '내가 죽는 날은? 내가 얻을 병은?' 이걸 정확히 볼 수 있다면 해결될 문제인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