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 관광 온다는 내용이 나오더군요. 중국 관광객 인터뷰가 나오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중국인은 촌티를 벗을 수 없다.", "마데 인 치나가 다 그렇지, 뭐.", "역시 짱개놈들은 안 돼." 같은 말을 하더군요. 제 주변사람들만 그러는 건지 몰라도 한국인이 중국을 너무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중국은 신흥 강대국으로 몇 해 전부터 위협론이 대두되었으며, 테크노 스릴러에서는 이미 미국과 세계 최고를 다투는 나라이기도 한데 말이죠. 그래서 중국에 관한 테크노 스릴러를 좀 찾아 돌아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SF에 나오는 다른 강대국들 이야기도 읽게 되었습니다.


테크노 스릴러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 중 하나가 가상 전쟁입니다. 강대국끼리 전쟁을 벌여놓고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여주는 거죠. 저는 이런 부류의 물꼬를 튼 작품이 <붉은 폭풍>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도 가상 전쟁을 쓴 소설은 있었으나 이렇듯 여러 시점에서 전문적으로 서술하기 시작한 작품은 <붉은 폭풍>부터 본격적으로 비롯된 것 같아서요. 이 책에서는 미국을 침공한 러시아를 다루었고, 이는 고전적인 대결 패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제 정세가 변함으로써 다른 대결 구도도 생겨났는데, 그 주인공이 중국과 중동입니다. 그래서 요즘의 테크노 스릴러는 미국, 러시아, 중국, 중동의 4파전인 듯 보입니다.

 

미국이야 뭐, 두 말할 필요 없는 초강대국입니다. 자유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이른바 세계 경찰 노릇을 하며, 테러를 근절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여기저기 침공하기 바쁩니다. 베트남전을 빼면 참전해서 패배했던 전투가 하나도 없다고 하며, 엄청난 신무기를 제조하고 병사 하나하나를 엘리트로 만드는 근미래 전투 체계로 도약하는 중이죠. 전투력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무엇을 따지든 1위를 차지하는 국가. 어찌 보면 세계 자체가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도 있으며, 그래서 그만큼 다른 나라에 반감을 많이 사기도 합니다. 자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SF와 테크노 스릴러 때문에 지구방위군이란 별명이 붙었네요. 덕분에 대부분의 가상 전쟁 시나리오에서 안 빠지는 인기 스타.

 

여기에 맞서는 상대로 러시아가 있습니다. 과거 미국 그리고 자유주의 서방 세계와 냉전을 치른 전적이 있어 영원한 맞수 내지는 라이벌 취급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러시아를 위해 싸우는 단체주의적인 면모가 강하기도 해요. 역시나 엄청난 땅덩이를 자랑하는데, 환경이 혹독한지라 동장군이라는 천혜의 전력도 보유했습니다. 작금의 러시아는 독재에 가까운 정치에다가 암울한 경제 상황과 군대 내부의 부조리, 무기 체계의 후진성으로 문제가 많은 나라입니다만. 그래도 과거에 한가락 한 경력을 무시할 수 없어 미국과 맞설 나라를 꼽을 때 항상 우선순위로 꼽힙니다. 러시아는 시대에 따라 두 가지 모습으로 나오는데, 소비에트 연방과 현 러시아로 나뉩니다. 매니아층도 소비에트와 러시아로 갈리는 듯?

 

여기에 떠오르는 신흥세력이 있으니 바로 중국. 아니, 예전부터 대륙의 기상을 자랑하곤 했으니 신흥세력이라고 하기엔 아귀가 안 맞는군요.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황하가 있는 곳이며, 그에 따라 길고 긴 역사를 자랑하고, 그 때문에 문화적인 영향력이 실로 대단합니다. 특히, 그 거대한 대륙과 거기에 주거하는 인구수는 압도적이어서 인구와 무역 규모는 세계 1위를 놓치지 않습니다. 잠재력이란 단어 하나로 보자면 이미 무시무시한 초강대국. 물론 문제는 그 잠재력이 제대로 터져주느냐, 아니면 그냥 잠재만 하고 끝나느냐 이겁니다. 경제 성장 속도가 빠르다곤 해도 거기에 따라붙은 인권, 환경, 분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휘청거리기도 하니까요. 중국은 테크노 스릴러나 SF에서 본의 아니게 북한으로 수정되는 때도 있는데, 아이러니하게 이 역시 중국의 영향력을 말해주는 부분.

 

마지막 주자는 중동인데, 중동은 사실 하나의 국가라기보다 그냥 지역이죠. 딱히 어느 한 나라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중동 지역의 연합 단체가 창작물에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강대국도 아니에요. 이러한 중동이 다른 강대국들과의 싸움에 끼는 이유는 그만큼 국제적 이슈가 심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계의 화약고라는 별명이 지겨울 정도로 갈등이 심화되는 중인데, 정말이지 슈퍼맨이 나서도 해결이 안 난다고 합니다. 자유 수호자인 미국과 대립하기 때문인지 악역이나 테러범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 전면전보다 게릴라를 주로 펼치는 편. 중동을 지지하는 매니아가 있는지는, 글쎄요. 창작물에서 워낙 괴악하게 나오는 때가 많아서 말이죠.

 

, 이 4파전의 주변부에 남아메리카의 폭력조직이라든가 일본의 군벌이라든가 유럽 연합 세력이 곁다리로 나오긴 합니다만. 남아메리카는 주요 산유국도 아니고, 중동만큼 분쟁이 치열하지 않아서 제외. 일본은 선진국이긴 하나 한방 크게 깨진 적이 있고, 중국의 스케일을 도저히 못 따라가니까 제외. 유럽 연합은 미국과 우방인데, 미국만큼 독보적인 면이 없어서 제외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조연으로 나올지언정 주연은 못 된다는 거죠. 가끔 주연을 맡기는 해도 그렇게까지 이슈가 되지는 않고요.

 

테크노 스릴러 작품들에서 이 4대국이 어떻게 싸우는가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4파전에서 가장 흔한 떡밥을 뿌리는 게 아마 미국 대 러시아일 겁니다. 세기의 대결이고, 역사의 라이벌이고, 언제 들어도 논쟁이 마르지 않는 대결 구도. 무기 체계, 사상, 전투 방식 등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지라 로망을 더 부채질하는 것 같습니다. 주된 플롯은 러시아 내부에서 반란군이 득세. 이들이 정부를 장악하고 곧이어 미국과 유럽을 침공한다는 겁니다. 미국은 부랴부랴 이를 막아내고, 처음에는 연패를 거듭하지만 점차 승기를 잡아나가 마침내 러시아 반란군을 몰아냅니다. 그리고 러시아 정부가 숨통이 트이면서 반란군은 소멸되고, 미국과 러시아는 세계 평화를 다짐했더라~ 하는 것으로 결말. 과거에도 나왔고, 지금도 나오고, 앞으로도 나올 영원한 이야깃거리. 축소 버전(?)으로 아말라이트 소총 대 칼리시니코프 총기도 있습니다. 이쪽도 언제나 활활 논쟁이 불타는 중.

 

미국 대 중국은 중국이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최근 주요한 논쟁으로 떠올랐습니다. 미국이 신용 화폐 때문에 삽질을 반복하는 사이, 중국이 성장을 가속화하여 미국을 추월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미국이 마침내 몰락하기 직전, 최후의 수단으로 중국을 봉쇄! 이에 중국이 미국과 맞서 싸운다는 식. 미국 대 러시아만큼 공식화된 플롯이 없어서 창작물에 따라 설정이 좀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 여하튼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질과 양의 싸움으로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은 첨단 기술을 보유했고, 중국은 인구 규모로 밀어붙이는 만큼 그런 쪽으로 상상하기 쉽죠. 하지만 중국이 제아무리 인구가 많고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도 미국은 그리 호락호락한 제국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가상 전쟁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상황.

 

미국 대 중동의 특징은 전쟁이 아니라 어느 한쪽이 쳐들어가는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중동이 미국을 테러해 상처를 입히자, 정의의 복수를 하기 위해 미국이 중동을 침공하는 거죠. 창작물이라고 해도 중동의 가상 단체가 미국과 대놓고 싸우는 건 무리인지라 게릴라전을 자주 벌입니다. 하지만 이런 게릴라전으로는 미국을 꺾기 힘드니까 중동도 뭔가 거창한 무기를 하나 챙기려고 하는데, 그게 바로 핵미사일. 중동의 전투는 사실 최종병기 핵탄두를 득템하기 위한 레이드에 가깝습니다. 미국은 정규군을 투입해 테러 단체를 와해시키는 한편, 이들이 핵탄두를 얻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결국 중동은 두 가지 비참한 최후를 맞는데, 핵을 쏘지 못하거나 쏴도 애먼 곳에 떨어진다는 거죠. 그리고 테러 단체는 와해되고, 미국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것으로 결말.

 

러시아 대 중국은 공산권의 대결이라는 점이 주목할 거리입니다. 미국과 다른 나라의 전쟁은 아무래도 공산권이라 대결 명분이 뚜렷해 보이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둘 다 빨갱이(?)니까요. 그리고 그 공산권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강대국들의 충돌이라 미국 전쟁과는 양상이 좀 달라집니다. 일단 두 나라는 딱 붙어있기에 영토 분쟁이 일어나기 쉽고, 불꽃이 튀었다 하면 곧바로 쳐들어갈 수 있거든요. 사소한 다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거대한 전쟁으로 변모하기 십상이라는 뜻입니다. 이 대결의 문제는 러시아가 핵무기든 재래식 무기든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 일단 불꽃이 제대로 터졌다 싶으면 중국은 멀리서도 아니고 바로 이웃에서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서로 침공해 한쪽이 패망하는 것보다는 다른 나라(미국)의 평화 중재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중동의 테러 단체가 미국을 겨냥하는 까닭에 러시아와 엮이는 창작물은 적은 것 같습니다. 러시아와 대립하는 약소국이라면 동유럽 쪽이 더 어울려요. 하지만 러시아는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주변 국가를 끊임없이 침공하고, 남쪽으로 징검다리 몇 개만 지나면 바로 중동이 있죠. 물론 미국이 침공해서 한창 시끄러운 와중에 러시아가 이쪽으로 쳐들어간 공산은 낮습니다. 그래도 아프가니스탄처럼 전략적 요충지가 있으니 아예 침공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순 없겠죠. 이런 침공은 러시아 정규군과 중동의 게릴라군의 싸움인데, 게릴라군은 험악한 자연 환경을 방패 삼아 정규군의 공습을 계속 버티는 식으로 흘러갑니다. 애초에 테러 단체가 아닌지라 핵탄두를 득템하려는 모험을 하진 않고, 그냥 러시아가 지칠 때까지 우주 방어만 시전하는 거죠. 이러면 그럴 듯한 시나리오가 나오긴 하는데, 창작물로서의 인기는 별로 없을 듯.

 

마지막 조합은 중국 대 중동. 에, 이건 러시아와 중동의 싸움보다 더 인기 없을 것 같네요. 일단 지리적으로 중국이 중동까지 쳐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한국이나 일본, 티베트, 인도라면 또 몰라도 말이죠. 하지만 사상적으로는 대립할 명분이 생기는데, 튀르크 계열이 중국과 치열하게 싸우기 때문입니다. 위구르 민족은 중국의 간섭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고, 중국은 이들을 흡수하려고 시도 중이죠. 따라서 튀르크 계열 국가나 단체들이 중국을 노릴 수 있고, 터키나 중동의 테러 단체라면 중국과 한 판 붙기는 좋습니다. 물론 터키가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과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낮으나 테러 단체라면 과격행위를 한두 번 해볼 수도 있고, 그러면 곧 불이 붙겠죠. 만약 중국과 중동 테러 단체가 붙는다면, 미국전과 비슷한 식으로 흘러갈 듯해요.

 

, 이만하면 테크노 스릴러의 4개 세력을 대략 살펴본 것 같은데. 사실 저는 국제 정세나 병기 체계 같은 걸 제대로 모릅니다. 그저 소설이나 게임에서 대충 본 걸 가지고 이야기한 겁니다. 아마 잘못된 부분이나 오류가 꽤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차후로도 테크노 스릴러는 저 4개 세력이 계속 얽히는 식의 내용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 중국은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패권을 쥘 지도 모르는 세력입니다. 소설이나 게임에선 이미 이런 문제를 예견하는데, 정작 현실의 한국인은 중국을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