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는 과학 소식이나 정보를 소개하고, SF 속의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상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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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돌고래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알려져있는 온순한 이미지에 착한 이미지 말고도 사람들이 공격당해서 실제로는
조심하라고 경고를 주던 책이 생각나네요 그 책 말고도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서 가족들이 돌고래와 놀다가 돌연 돌고래가
갑자기 가족의 어머니 다리를 물고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려 해서 죽을 번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그것도 두세번 시도했다고 합니다.
돌고래도 야생동물인 이상 절대적인 호의는 없을듯 하네요 호의를 부렸다고 해도 그 동물 입장에서 프로그램된 이런 행동을 하면
나에게 득이 된다 라는 프로그래밍으로 행동을 취했을겁니다.
익사할 위기에 처했는데 돌고래가 떠밀어서 수면까지 올라가 살았다 라는 이야기는 어디서 보았는지 생각은 안나지만
돌고래가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가 숨을 쉴수있도록 하기위해 떠밀어 올려주는데 그 사람을 보고서 새끼의 모습을 발견하게되엇고
돌고래에게 입력된 본능이 일어나 구해준거라고도 할수있더군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타행위에 대해서 잘나오죠 개인적으로 이런 부문의 설명에서 깜짝 놀랐었습니다.
읽기전까진 상상도 못했었거든요
그냥 동물들중 성격이 온순하냐 마느냐의 차이 아닐까요?
사람에게도 호의적인 사람이있느냐 공격적인 사람이있느냐 의 차이처럼요
몇가지 제가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른게 있어서 덧글 답니다. ^^;
사람이 말하는 음파와 초음파의 차이는 음파 진동수 밖에 없지요.
초음파는 인간 기준에서 초음파지 뭐 텔레파시 같이 특이한 능력은 아닙니다.
그리고 고래들이 다양한 노래와 소리를 내긴 하지만, 아직까지 이게 언어라고 보지는 않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늑대들도 하울링 하면서 의사소통 하고 우리집 금붕어만 해도 유리창 두들기는 '톡톡' 소리 들으면 밥먹으러 몰려옵니다.
종별로 의사 소통에 약간의 차이는 다 있습니다.
이제 문자나 뇌파통신쯤 되어야 고등한 의사소통이구나... 하겠죠 (응?)
고래들은 습성적으로 바다위에 떠있는 물체를 해안선으로 끌고오곤 합니다.
사람만 해안가로 끌고가는게 아니라 쓰레기도 해안으로 몰고오기도 하지요.... 만약 연안으로 나가는 습성이 붙었더라면
각종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었겠지요 -_-;;
거기에 대구시님 말대로 새끼를 수면으로 띄워주는 습성에다가
먹잇감을 뺏아서 사냥을 훼방놓곤 하는 상어때까지 쫒아주니 뱃사람들이 무척 좋아하게 된거지요
(제 아무리 백상어라고 해도 돌고래 떴다 하면 꼬리말고 도망갑니다... 3~4m정도에 불과한 노즈보틀돌핀도 백상어를 이겨버리니 -_-;;)
고래들은 지능이 높다 보니 호기심도 강하다 보니 사람하고 잘 놀지요
제가 기르던 강아지도 지나가는 황소개구리를 보니까 신기해가지고 입으로 물어서 하늘로 던져서 비행기 놀이도 시켜주고
앞발로 툭툭 건드리면서 두꺼비를 막 쓰다듬어 주더라구요
고래도 그것 처럼 자기네들 보다 작아서 위험해 보이지도 않은데다가 막 만져주고 먹이도 주니까 사람을 좋아하는거지요
신기해서 놀다 보니 무지해서 실수 하기도 합니다.
사육사 혹은 관광객을 바다로 물고 들어가거나 보트에 브리치(점프해서 '등짝'을 바다로 향해 떨어지는 것)
해서 보트를 격침시킨적도 있습니다. (해당 영상들은 youtube에도 당당히 올라와 있습니다)
범고래팩이 고래를 공격하는 장면은 3~20마리 수준으로 구성되는 소형 수컷 집단에서 가끔 발생하는거고, 암컷을 우두머리로 하는 대규모 범고래 무리의 일반적인 주식은 혈류개선 및 DHA가 다량 함유된 오메가3를 보유한 물개나 바다에 넘쳐나는 생선들입니다.
제 아무리 범고래라도 돌고래 무리 잘못건드리면 죽을 수 있거든요...
이전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고래 구경을 하다가 위기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았는데 '고래 입장에서는 인간이 탄 배나 물에 뜬 통나무나 차이가 없다.'라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돌고래나 고래 곁에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했다가는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라는 만화에서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주인공의 집에서 시베리안 허스키를 기르는데, 고양이와 함께 자라다 보니 시베리안 허스키인 주제(?)에 고양이가 하는 행동을 따라하게 되었지요. 고양이가 대부분 그렇듯 그 고양이 역시 놀이에 빠지기 시작하면 주인의 머리 같은 건 강가의 돌에 지나지 않고 주인공 친구는 깔개나 다름 없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고양이의 행동을 개가 따라하게 되었지요. 엎드려 있는 주인공의 친구를 짓밟고 주인공의 머리에 뛰어들고...
여기서 머리에 매달린 개를 떼어내면서 주인이 생각합니다.
'지금은 괜찮다. 하지만 덩치가 커진 다음에도 계속한다면, 넘어져서 뇌진탕이되거나 목이 부러지거나... 여하튼 수의사가 되기 전에 죽고 말 것이다.' (친구도 수의사가 될 수 없겠지.)
시베리안 허스키는 체격이 꽤 큰 개입니다. 그런 개가 사람의 머리에 올라타면 무사할리가 없지요. 하지만, 개는 그런 걸 모릅니다. 그러니 그게 위험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화장실 아닌데 X를 누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듯...)
돌고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동물원에서 보는 돌고래들은 모두 훈련된 돌고래입니다. 그들은 해서는 안 될 일을 알고 있으며, 해도 되는 일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참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가령, 말이 날뛰면 사람이 떨어져 크게 다칠 수 있지만(그래서 사람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훈련시키지만) 눈 앞에서 불꽃을 터트리면 놀라서 사람을 떨어뜨리겠지요.
동물원의 돌고래도 마찬가지입니다. 똑똑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상황에 따라 조련사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관객을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 아무리 자신에게 친근한 존재라도...
하지만, 이따금 사람들은 자기가 친하게 대하면 동물들도 자신을 기억하고 해치지 않을거라 생각하지요.
돌고래의 의사소통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가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병원에서 쓰는 초음파 영상장치처럼 돌고래들은 초음파 영상을 만들어내어 의사소통을 한다는 가설입니다. 음절이 연속적으로 한줄로 모여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언어와는 전혀 방식이 다를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인간으로 치자면 눈에 힘을주며 허공을 째려보면 사진이나 동영상이 뿅 나타나서 다른 사람이 그걸보고 의사소통 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쯤 될겁니다. 이런 초음파 영상을 보내는 방식으로 돌고래 무리들이 자신과 동료의 위치, 먹이, 지형같은 정보를 의사소통 하는게 아닐까 하는 것이죠.
박쥐가 초음파 영상을 시각처럼 쓰듯이 일부 고래들도 초음파를 소나로 씁니다. 즉 소리를 듣고 영상에 가깝게 인식합니다.
이가설에 관해 연구가 더 이루어 진다면 상당히 흥미로울 겁니다. 그냥 가설로 끝날수도 있습니다마는...
그럼이만.
저는 포경 문제에 대해서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돌고래는 똑똑한 짐승이기 때문에 죽이면 안 된다.'라는 견해에 반대합니다. (또는 "개는 인간의 친구이니 죽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백인은 살려주고 흑인은 죽여.", "기독교인은 살리고 이교도는 노예"라는 인종 차별이나 종교 차별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지요.
가령 개는 인간의 친구이니 살려야 한다면 왜 소나 돼지는 잡아먹는 것일까요? 소나 돼지는 멍청하고 우둔하기 때문에? 또는 인간의 친구가 아니라 단순한 노예이기 때문에?
멸종 위기에 몰린 종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포경 금지'는 타당했습니다. 문제는 그 포경 금지의 이유 중 하나가 '똑똑하다.'라는 것이라는 점이지요. "똑똑하다."거나 "인간의 친구" 같은 것은 타당한 보호 이유가 될 수 없는데도 말이지요.
한가지 추가하자면 포경 금지 단체의 주장 중 하나가 "돌고래를 먹는 일본인은 야만인이고 잔인한 민족이다."입니다. "개를 먹는 한국인은 야만인이고 잔인하다"라는 말도 흔히 듣는 이야기지요.
왜 "소나 돼지"를 먹는 건 잔인하지 않고, "돌고래나 개"를 먹는 건 잔인한 것일까요? 결국 생명을 죽이고 그것을 먹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말입니다. 소나 돼지를 죽이는 건 끔찍하지 않고 돌고래나 개를 죽이는 건 끔찍한 것일까요? (어느 쪽을 보아도 죽이는 행위 자체는 그다지 고결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개패듯 한다."라고 하지만, "돼지 멱따는 소리"라는 말도 있지요.)
사실, 멸종 위기를 기준으로 보면 돌고래나 고래보다는 상어를 보호해야 합니다. 참치가 더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참치는 최근 양식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그런데 "상어를 죽이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라는 말을 하던가요? "참치를 먹는 것은 야만인"이라고 하던가요?
어떤 것이든, 생명체를 죽이는 것은 잔인한 일입니다. 슬픈 일이지요. 배추 한 포기라고 해서 다를 게 없습니다. 식물에게도 의식이 있으며 죽어가는 식물이 신호를 발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은 적어도 먹을 것에 대해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설사 동족의 시체라도 먹을 것은 먹을 것이며, 먹을 게 없다면 새끼조차 잡아먹기도 합니다. 인간이 보기엔 잔인할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요.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인간이라도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합니다. 언젠가 물질을 조합한 합성 식량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다른 생물을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지요. 어차피 먹고 살아야 하는데 상어면 어떻고 돌고래면 어떻습니까? 개고기면 어떻고 오리의 간이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생물의 차별이 아닐 것입니다. 자연과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며, 우리가 먹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겠지요.
여담) 그런 점에서는 불교의 가르침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 불교에서는 채식만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식탐 등의 욕심을 갖지 않는 것이지요. (육식 금지는 나중에 나온 말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죽이고, 가능하면 자연의 여러 존재를 학대거나 괴롭히지 않는 것. 한 가지(가령 참치)를 좋아한다고 해서 하나만 골라 먹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골고루 먹는 것... 그것이 자연스럽고 좋은 삶이 아닐까 합니다.
돌고래의 지능이 높다 낮다에 대한 의견은 일단 접어두고(<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따르면 돌고래는 생쥐 다음으로 머리가 좋은-지구에서 두번째로 머리가 좋은- 동물입니다만...) 돌고래나 고래가 정말로 엘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까요?
돌고래는 본래 육상에서 생활하던 동물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동물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왔고, 그 중 일부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 돌고래나 고래가 된 것이지요.
그들은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여러가지 이점을 얻었는데 그 중 하나가 거대한 몸집입니다. 대신에 그들은 한가지를 잃어버렸는데 바로 '손'이지요.
돌고래가 인간보다 똑똑한지 어떤지는 모릅니다. (아이큐 검사라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아이큐 검사 자체가 인간의 일부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 뿐이니까요. 아이큐 검사로 기네스북에 오른 사람이 아인슈타인보다 총명할까요? 에디슨의 아이큐 검사 결과는 없지만, 아마도 현행의 아이큐 검사 결과가 좋을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에디슨은 바보일까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손이 없기 때문에 도구를 쓸 수 없습니다. 바다에 살기 때문에 불을 쓸 수 없으며, 문자를 남길 수 없지요.
음파를 통한 통신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기록 매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으며, 당연히 세대를 넘어서 전달되지 못합니다.
때문에 그들의 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것은 대개 그들 1대에 그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뭇가지를 다듬어서 흰개미를 잡는 원숭이처럼 일부 지식은 후대에도 전달될 수 있겠지만.)
인간과는 다르지만 분명히 독자적인 문명을 건설하고 남기게 되는 엘프 같은 존재와 비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요.
물론, 돌고래가 염력 같은 것을 가졌다면 문명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르지만 텔레파시를 이용해서 머나먼 저편의 존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르지요.(어떤 SF 소설에서 이런 내용이 나온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에서 볼때 돌고래는 문명을 갖지 않았으며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돌고래는 적어도 '문명을 지닌 지적 존재'는 아니겠지요.
여담으로... 우리 인간은 포경 금지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동물 보호라는 말을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지요.
그것은 인간에게 '상상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상상을 통해 '미래'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대로 가면 고래는 멸망한다."라는 상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포경 금지라는 조치를 내릴 수 있었고, "이대로는 큰일 난다."라는 인식으로 인해 자연 보호 운동이 등장한 것입니다.
늑대건 돌고래건 원숭이건...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은 이런 인식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눈 앞의 것 만이 제일이지요.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행동을 바꿀 수는 있지만, 미래에 어떻게 될지를 예측해서 극복하지는 못합니다. 눈 앞의 사실만이 아니라 그 너머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은, 그래서 그것을 행동에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 뿐이지요.
상상력은 문화를 만들어내는 기틀이기도 합니다. 상상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도구를 만들거나 기술을 발전시킬 수 없었습니다. 문학 같은 예술도 등장할 수 없었겠지요. 그런 점에서 상상력은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우주 먼 곳 어딘가에는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면서도 문명을 만든 존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존재가 만든 문명이 어떤 건지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만...)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세계의 모든 동물들은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며 문명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와 지구 상의 다른 생물이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된... 그래서 보호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근본적인 이유이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래는 그냥 동물입니다. 다만, 인간에게 좀 우호적으로 보이는지라 과장된 이야기가 떠돌 뿐이지요. 이는 호랑이나 늑대 같은 맹수는 피에 굶주린 악마이므로 모두 처단해야 한다는 거랑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고래는 보호해야 할 동물입니다만, 지능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다른 동물에게도 다 해당합니다. 생명의 가치에 조건을 매길 수야 없는 노릇이죠. 지능도 낮고 인간에게 유용한 능력이 없는 동물이라고 해서 학살할 이유는 없습니다.
인간이 고래를 보호하자고 하거나, 개를 보호하자고 하면서도 상어를 보호하자고 하지 않는것은
(요즘 슬슬 나타나기도 합니다만...) 인간이 당사자이냐 아니냐의 차이죠.
만약 어떤동물이 내앞에서 아가리를 쫘악 벌렸는데 그게 초식에다가 온순하면 이빨구경부터
할테지만, 그게 육식에다가 나보다 상위 먹이사슬이라면 비명부터 지르겠지요!
고래를 보호하자는 것은 고래 개체가 줄기도 했지만 성체로 크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고래는 그 웅위한 크기만큼 번식개체수도 적지요.
만약 개처럼 다산에다 성숙시기도 빠른 동물이라면 개의할바가 없을 것이고, 하두마리 잡아먹었다고
전 개체의 유전자 풀에 영향을 줄수 없겠지요.
지금 일본이 '고래를 먹을 권리'를 운운하는것은 에스키모가 고래를 먹을 권리를 운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에스키모에게 고래가 바로 그 생존을 가름하는 지표였다면, 일본인에게 고래는 미식가의 식도락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지요. 이것은 내입맛을 위해 원숭이 골을 파먹든, 거위의 발에 못을 박고 키워낸 간을 꺼내
프와그라 소테이를 먹던 무슨상관이냐고 하는것 처럼 비도덕 적입니다.
적어도 그것이 없어도 사는데 지장 없다면 삼가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19세기 이래 팽창주의는 이제 한인간의 식생활 까지 이어져 상관없는 극심한 소모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내 한끼를 줄여 굶주리는 두사람을 채워줄 생각 보다는, 내 한끼를 위해 두사람의 식량을 희생할수 있다는 심뽀가
일본인의 마음속에 있기에 그들은 욕을 먹습니다.
사실, "적어도 그것 없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다면"이라는 기준에서 가장 삼가야 할 것은 고래 고기를 먹는 것보다는 쇠고기를 먹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단백질 섭취를 위해서는 고기를 먹어야만 합니다. 콩 같은 식물성 단백질만으로는 섭취하기 힘든 영양소가 많고, 특히 성장기에는 동물성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쇠고기를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돼지나 닭이라도 충분하지요. 쇠고기는 가장 비효율적인 단백질 섭취 수단이며, 소를 기르는 목축업은 환경을 파괴하고 식량의 낭비를 가져오는 주범이기도 합니다.
고래 고기를 먹는 것은 비도덕적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겠지요. 고래의 개체수를 줄이게 될테니까요. 하지만, 참치처럼 지나치게 잡지 않는다면 그래서 씨를 말리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이처럼 '단백질 섭취 수단을 다양화'하는 것은 도리어 자연 생태계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사실, 일본인들이 고래 고기에 익숙해진 것은 전쟁 전후 먹을 게 없었던 시절 고래 고기를 많이 공급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당시 일본인들은 고래 고기로 살았던 것이라고 해도 좋지요.)
여담) 내 한끼를 줄여 굶주리는 두 사람을 먹인다는 발상은 사실 일본인보다는 -포경 금지를 그렇게 강조하는- 미국인들이 먼저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흔히 나오는 말 중에서 미국인 한 명이 비만으로 고생할 때 남아메리카인들 6명이 굶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이 남아메리카를 착취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미국인들이 낭비가 심하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미국이 쇠고기의 소비를 아주 조금만 줄이더라도 전세계의 곡물 가격은 엄청나게 낮아집니다. 그만큼 가난한 나라에서 식량을 얻기 쉬워지고, 원조 같은 것도 더 쉬워지겠지요. (물론, 미국인들의 비만도 더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
미국인들이 자동차 사용을 아주 조금만 줄여도 탄소 발생량은 비약적으로 낮아집니다. 지구 온난화에 대비할 수 있는 여유도 늘어나겠지요. 미국인들이 낭비를 조금만 줄여도 파괴되는 숲의 면적이 엄청나게 줄어듭니다.
일본만 포경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노르웨이나 아이슬란드 같은 국가들도 있지요.
그리고 일본의 고래고기 소비량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고래 보호 논의에 관하여는 단순히 고래가 멸종위기에 있느냐 아니냐보다 더 적극적인 기준이 필요합니다.
육지에서는 (궁극적으로) 숲이 태양에너지를 축적합니다. 살아있는 나무와 죽은 나무를 모두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동물들도 죽으면 결국 숲으로 돌아갑니다. 바다에선 어떨까요? 바다식물들이 육지의 숲 역할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바다 대부분은 식물들이 활발히 광합성을 하기엔 너무 깊고, 죽은 동물들이 영양분의 형태로 다시 식물에 흡수되는 순환계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결국, 바다에서는 동물들이 태양에너지 축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태양 에너지는 식물성 미생물에서 동물성 미생물로 작은 어패류로, 다시 더 큰 어류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책임져야 하는 건 ‘가장 덩치가 큰’ 고래류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의 고래 개체 숫자는 - 멸종위기는 아닐 수도 있지만 - 바다의 에너지 순환계를 책임지기에는 너무 적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풍성한 바다 생태계를 위해서는 고래 숫자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져야 합니다. 오대양 어디를 가든 고래떼를 노상 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지요.
즉 인간이 숲을 가꾸는 데 들이는 노력을 비슷한 방식으로 고래에게도 투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능을 말하는게 IQ라면 200이라는 수치는 실수 이신듯 하군요..
그리고 IQ는 지능지수이지 지능을 가졌는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지는 못합니다.
거기다가 훈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올릴수도 있습니다. 이종지성체라는 말 자체에 은근한 차별이 담겨 있기도 하죠.
그 외에도 IQ90이 안되는 인간은 지능이 없는것인가라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근데 별로 실생활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포경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닙니다. 일본만의 문화도 아니고 미국이 일본에 강제로 문호를 열은것도 포경때문이었습니다.
중간에 땔감과 물을 보충할 기지가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일본이었죠. 미국이 일본을 식민지 개념으로 접근한것은 아니었죠.
현재 미국은 이제 포경의 필요성이 0이 되었기 때문에 일본 포경을 가장 비난하는 정부이자 그것을 경제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죠.
애초에 지금 고래수가 이렇게 줄어들은것에 가장 큰 몫을 한 국가중 하나가 바로 미국입니다. 지구 온난화와 마찬가지...
현재는 고래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하자는 것이 주류고 고래 자체가 존중받아야 한다고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일부 있고 이들이 같은 목적하에서 같이 주장하는 것이죠.
고래가 안정적인 숫자가 되면 그럼 일본의 포경은 허용이 될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현재 이에 대해서 일본은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그렇지 않다라고 이야기하죠.
또하나 지금 참치가 남획으로 팍팍 줄어드는데 곧 있으면 스시와 한국에서도 참치먹는 사람들도 곧 고래먹는 사람과 동급이
될것 같은데 그때에도 과연 같은 논리가 얼마나 작용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톨킨이 엘프를 바꾸기 전까지 엘프는 조그만 요정이었습니다. 사실 톨킨도 엘프가 그 엘프가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미 늦었었고..
산타에 나오는 녹색옷입은 작은 요정들의 역사가 더 깊을것이고 그 요정들이 보다 원래 의미의 엘프입니다. 실제 그들 이름도 엘프고..
인간은 같은 인간한테도 사기치고 범죄를 저지릅니다.
인종청소같은일이 불과 십여년전에도 벌어졌었습니다.
인류의 도덕성은 그다지 진보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이런일의 발생이 줄어든(정말 그런지는 알수 없지만 그렇다고 치면) 이유도 도덕성이 진보된게 아니라
필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 자체를 떨칠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