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부터 되풀이되는 기상청의 결정적 오보는 과연 원인이 무엇일까요?

분명 기상청에 대한 투자는 꾸준히 이루어져 왔습니다. 몇년 전에 세계에서 손에 꼽힌다는 슈퍼 컴퓨터를 도입하기도 했죠. 통계적으로는 그렇게 되면서 적중률이 올라갔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꽤나 높은 수준이라고 기상청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계치가 어찌 되었던, 체감으로 느끼는 적중률은 낮아졌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 적중률은 큰 의미가 없는게, 그다지 큰 변화가 없는 날씨 - 맑은 날, 흐린 날, 안개 심한날 등등 - 에서 맞추는 경우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100일동안 맑은 날이 80일이었고, 그 중에서 75일을 맞추면 이건 단순히 75%겠지요.

그러나 앞서 말한 그런 일기의 경우는 예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날씨는 일상 생활과 경제 활동에 어떤한 지장도 주지 않기 떄문입니다(물론 우산 장사하시는 분들은 싫으시겠지만...). 오히려 그런 날은 틀려도 큰 욕을 먹지는 않을 겁니다.

근자에 기상청이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소수지만 큰 영향을 주는 일기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가령 몇년 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강원도나 경기도 지역의 국지성 집중 호우라던가, 올 겨울 들어 두세번 일어난 돌연한 폭설같은 상황은, 최소한 하루 전에는 예측을 해 줘야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죠. 2주 전에 있었던(하필 대입 논술고사날에!) 대폭설 시에 기상청에서는 전혀 예측을 하지 못해서 말이 많았습니다. 기상청에서는 눈이 그렇게 많이 오지 않을거라고, 내려야 오후부터 좀 내리고 그칠 거라고 했었거든요. 개뿔 -_-;

그렇다면 이런 오보는 왜 발생할까요?

일단 기상청에서는 급격한 기후 변화를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반도는 반도라는 특성상 원래부터 국지적인 변동 요인이 많이 분포하는 지역입니다. 거기에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가 겹쳐지면서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것이죠.

이 말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만....

보통 이런 말을 하면, 이런 반응이 나오죠
"비싼 돈 주고 산 슈퍼컴은 어디에 팔아먹고 그런 소리를 하냐" 라는 반응이죠.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지만, 일기 예보의 방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인 것도 맞습니다.

일기 예보는 컴퓨터가 알아서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컴퓨터는 그저 사람이 명령한 연산을 수행해 그 결과를 보여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컴퓨터에 담겨 있는 기후 모델이죠. 이 모델을 돌렸을 때의 예측 결과에 바탕해서 일기 변화를 예보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사람이 보정을 하지만, 기본은 모델의 결과값입니다.

그렇다면 해답은 나왔군요. 모델이 문제네요. 그럼 모델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

문제는 이런 기후 모델은 만들기가 매우 힘들고, 만든다고 해도 정확한 예측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에서야 주인공이 두두두두 키보드 두들겨서 만든 프로그램 돌리면 다 예측하고 그대로 다 맞아 떨어지지만(가령 투모로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애시당초 모델이란 것이 매우 복잡한 현실을 가능한 한 단순화해서 컴퓨터상으로 구현한 것이니까요. 요즘 들어 카오스니 복잡계이니 하는 것들이 등장했다 해도, 여전히 현실은 모델화하기 힘든 대상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일기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인간이 다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어떤 요소는 영향을 주는지 조차 모를 수도 있고, 영향의 정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도 있죠. 설사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해도, 이 모든 요소를 포함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 자체도 어렵습니다. 그들간의 관계를 집어넣는 것도 힘들거니와, 연산을 수행했을 때 걸리는 시간 - 현실적인 구현의 장벽 - 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결국 모델은 현실을 단순하게 바꿔 만든 것이고, 고로 모델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 정확한 것이 되기 힘듭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예보가 되는 것은, 넓은 지역에 대한 대규모 모델링의 경우, 작은 요인들을 생략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현실에서도 국가 이상의 규모라면, 작은 요인들은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할테니까요.

하지만 이런 모델들도 만들기가 쉬운 것은 아니어서,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산 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수입을 해서 쓰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모델과 일본의모델을 들여와서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가 다르니만큼 한국 실정에 맞게 현지화를 시켜서 사용하고 있지요.

문제는, 이 현지화라는 부분입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예보가 실패하는 것은 현지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컴퓨터가 좋아도 모델 자체가 맞질 않는데 예보가 될 턱이 없지요.

그럼 왜 현지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저는 나름의 추론을 해 보았습니다.

1. 슈퍼컴퓨터를 비싼 돈을 주고 도입하였다.
2. 근데 슈퍼컴 들여오고 나니, 예산이 부족하다.
3. 대충 생각을 해 보니까, 컴퓨터 사줬으니까 사람 줄여도 예보 잘 할거 같다. 비싼 컴퓨터잖아.
4. 그래서 사람 잘랐다. 근데 이 과정에서 나이든 예보관들이 상당 수 정리되었다. 어차피 이 사람들 컴퓨터 못 쓰잖아.
5. 그리고 컴퓨터 잘 하는 젊은 애들 좀 데려와서 모델 만들라고 시켰다. 잘 하겠지 뭐.
6. 하지만 이들은 기상예보에 대한 노하우가 없다. 노하우 있는 나이든 양반들은 아까 잘렸으니까.
7. 그래서 대충 책 보고 로컬라이징 했다. 뭐 설마 미제 모델인데 틀리겠어?
8. 제대로 될 리가 있나.....(먼산)

또는
7. 이거 로컬라이징 해야 하는 건 안다. 근데 노하우도 없다. 사람 더 쓰게(또는 옛 양반들 초빙하게) 돈 달라니까 안준다. 컴터 사느라고 다 썼덴다.
8. 그래도 어떻게 고쳐 볼라고 밤새 매달렸다. 죽겠다. 근데 예보 잘 안된다. 매달리는 것만으로는 확실히 부족하다.(근데도 위에서는 몸으로 떼우라고 한다. 썅 어쩌라고)


물론 이것은 추론이고, 다소 거칠게 표현되었습니다. 절대 지금 기상청에 있는 분들이 무능력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저도 첫번째 7.8번 보다는 두번째 7,8번이 진짜 이유일 거라고 생각합니다(첫째 7.8번은 개그).

(근데 쓰고 보니 상당히 한국적이고 그럴 듯한 추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한국적 상황 아닙니까? )

어찌 되었건, 기상정보를 소비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상청의 오보는 짜증나고 화날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이 문제든 사람이 문제든 제대로 된 예보를 내 줘야 기상청의 존재 의의가 충족될텐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기상청을 욕하는 건,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좋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화가 나고 욕을 하고 싶어도, 일단 문제의 원인을 찾고 그 해결을 위해 다같이 고민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 물론 우리가 욕 안하고 이런 말 한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열 사람의 입이면 쇳덩이도 녹인다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결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제발 좀 맞춰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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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보그랑 도미니언이랑 싸울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