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귀족들을 '푸른 피'라고 부르곤 합니다. 이것이 귀족은 서민들과 핏줄이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말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 '파란 피'라는 용어의 전통은 이렇게 시작된게 아니라고 합니다.


  오랜 옛날, 로마 말기 로마는 수많은 야만족의 위협에 몰리고 있었습니다. 한때 용병으로 고용했던 그들 야만족이 로마에 칼을 들이댄 것이지요. 그 중 로마를 짓밟은 고트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후 유럽 각지의 지배 계급으로 올라서 군림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 고트 족은 로마인들이 보기에 조금 이상했습니다. 피부는 마치 탈색된 것처럼 창백했고, 피부 밑으로는 푸른 색의 핏줄(정맥)이 들여다 보였던 것이지요. 로마인들은 고트족을 보며 외쳤습니다.


  "저 야만족들은 파란 피를 가진 괴물이다!"


  그렇게 파란 피는 고트족을 비롯한 북방의 야만족을 부르는 명칭이 되었고, 고트족을 비롯한 북방 야만족들이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면서 그들 계급, 즉 '귀족'을 부르는 명칭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판타지 속에서 '파란 피'라는 말을 흔히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중 얼마나 많은 이가 '파란 피'의 뜻을 알고 있을까요?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로마라는 제국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 말이 우리와는 다른 역사를 갖고, 다른 상황을 가진 하이 판타지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많은 판타지 게임이나 만화, 소설 등에서는 기사들이 '십자가 문양'을 새기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중세 시대 기사들이 십자 문양을 달고 다니던 것을 참고했기 때문인 것 같지만, 사실 '십자 문양'을 달고 다니는 기사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십자가 문양의 전통은 주로 십자군 전쟁에서 활약했던 기사들이 '신의 이름으로 싸운다.'라는 뜻에서 달고 다닌 것이었지요. 십자가 문양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리스도교'의 상징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 작품에서도 십자가 문양이 무수하게 쏟아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실 십자가 문양은 그리스도교가 등장하기 전에는 그다지 대중적인 문양도 아니었으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세계의 신화나 전설을 살펴보자면 십자 문양보다는 소용돌이나 갈고리 십자 문양을 더 많이 볼 수 있죠. 세계의 신화나 전설에서 공통적인 이 문양을 나치 독일이 상징으로 사용하면서 지금은 '나치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고대 세계의 많은 유물에서 '자연의 순환'이나 '힘의 순환'을 뜻하는 갈고리 십자를 많이 써왔습니다.



  판타지 세계에서 십자 문양이 등장한다고 해서 뭔가 이상할 건 없습니다. 누군가 한 가문에서 -뭔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십자 문양을 썼다고 해도 되겠지요. 하지만 십자 문양의 의미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지구라는 세계에서 십자 문양은 '그리스도교'를 뜻하는 만큼 판타지 세계에 '그리스도교'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십자 문양은 피하는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오래 전 한 작가가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강력한 힘을 가진 고대룡을 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에인션트 드래곤(Ancient Dragon)'이라 불렀지요. 다른 작가들은 이 말이 멋있다고 생각하며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중 한 사람이 실수로 '에이션트 드래곤'이라고 기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본 다른 작가들은...



  판타지건 SF건 아니면 추리건 스릴러건... 다양한 창작 작품 속에 뭔가 특이한 용어나 상징, 문양이 등장하곤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그들 상징이나 용어들을 아무런 생각없이 사용합니다. 그 본래의 뜻이나 감추어진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고.


  물론 모든 용어나 상징의 역사를 생각하고 의미를 따져야 하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을 생각하고 의미를 고민하면서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그만큼 자연스럽고 새로운 느낌이 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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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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