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숫타니파타 중에서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산산이 흐트려 놓는다.
욕망의 대상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다투는 철학적 견해를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
도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 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속의 다섯 가지 덮개를 벗기고
온갖 번노를 제거하여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며,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벽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슷타니 파타는 부처의 열반 후 50년 안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경전이다.
총 1149개의 짧은 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초기 불교의 교리와, 고행자의 자세등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디씨 판무겔에서 퍼왔습니다.)

과연... 뭐랄까. 수천년 전의 사람이 이런 고명한 사고를 할수 있었다는걸 보면 우리가 진보 혹은 발전이라고
칭하는 물질문명의 발달이 사실은 도구의 발달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 인간의 이성이나 진정한 의미의 문명은
답보 상태 내지는 퇴화를 한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듭니다.  암튼 불경에도 상당히 인상적인 내용이 많네요.
뭐 대부분 영웅문 같은 소설 속에 인용된게 전부지만요. ^^

  석가모니 자신이 전사계급의 정점인 왕자 였으니 그자신이 탁월한 무사 였으리란건 어렵지 않게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후 불문의 무예가 나름대로 맥을 잇고 있는것도 사실이고요.
참고로 불교란 원래 힌두교의 신분제에 대항해서 일어난 프로테스탄트적 종교라고 하더군요. (로저젤라즈니왈^^)
실제로도 그런점이 있습니다. 불교에선 '혁명' 이란  말하자면 구 브라만교에 억압되고 경직된 신분사회,
정신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수행조차 신분에 따라 할수 있는자와 없는자로 나뉘는 사회에 불만을 품고
일어선 종교라고 할수 있습니다. 브라만과 크샤트리아가 사회의 모든 특권을 쥐고 일반평민이나 수드라(천민)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분개한 석가모니(세존)이 떨쳐 일어선 것이 불교의 기원이죠.

따지고 보면 소림사나 뇌음사같은 유명사찰의  승려는 몽크라기 보단 팔라딘이나 템플러에 가깝지 않을까요?

하이텔의 '장혁'님 글을 보고 가입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