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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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추레하고 쓸쓸하지만, 그래서 매력적인 스토커.]
멋지다는 표현은 반듯함이나 화려함을 포함합니다. 누군가를 보고 멋지다고 말하면, 얼굴이 잘 생겼거나, 좋은 옷을 입었거나, 능력이 좋다는 뜻이죠.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이 추구하는 미학의 기준이 언제나 똑같지 않습니다. 못 생기고, 추레하고, 칙칙하고, 비열한 가운데서 멋을 찾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렇게 추레한 미학의 결과물 중 하나가 스토커 아닌가 합니다. 에, 특정 대상을 졸졸 쫓아다니는 범죄자를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재난 지역이나 위험 지역에 출몰해서 값진 물품을 챙기는 사람들을 일컫는 표현이죠. 우리말로 번역하기 쉽지 않은데,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유물 사냥꾼 정도. 어원은 소설 <노변의 피크닉>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에는 정체 모를 외계인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지구를 잠깐 방문했는데, 그 바람에 몇몇 지역에 이상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그 지역은 이상한 만큼 위험하지만, 대신 기이한 물건이 널렸어요. 그걸 가져오면 횡재하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외계인 출몰 지역 '존'에 진입합니다. 거기서 물건을 챙겨오는 이들을 유물 사냥꾼이라는 의미에서 스토커라고 부르죠. 러시아에서는 사냥꾼을 스토커라고 부른다고 그러더군요. <노변의 피크닉>이 만들어낸 설정은 이후 여타 SF 작품과 실제 사건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체르노빌 발전소가 붕괴하자, 프리피야트 등 발전소 부근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방사능 위험을 무릅쓰고, 경비대를 회피하면서 이것저것 수집품을 챙깁니다. 이들이 현실 세계의 스토커들이죠. 또한 다른 창작물의 핵전쟁이나 방사능 아포칼립스 캐릭터들도 비슷한 칭호를 얻었습니다. 소설 <메트로 2033>에서 핵전쟁 때문에 지상이 방사능 폭풍에 휘말립니다. 온갖 돌연변이 괴물들이 설치는 건 덤입니다. 인류는 지하철로 피신했으나, 생계 필수품은 모조리 지상에 남았죠. 지하철 주민들은 그걸 가져오는 이들을 스토커라고 부릅니다. 용감하게 지상으로 올라가 온갖 괴물과 맞서 싸우니, 거의 영웅 대접입니다.
아예 제목부터 <스.토.커>인 게임은 당연히 주인공들이 스토커입니다. 이쪽은 현실의 대참사인 체르노빌 발전소 붕괴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방사선이 퍼지자 체르노빌 근처에 이상 지역이 생겨나며, 한편으로 기이한 유물들도 나타납니다. 방사선 오염 지역 '존'에 침투해서 유물을 챙겨오는 이들이 바로 스토커입니다. <노변의 피크닉>에서 핵심 소재를 그대로 가져왔죠. 소설에서 생겨나 실제 사건을 거쳐 게임으로 정착한 스토커는 이제 동구권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동구권 그러니까 러시아와 동유럽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끌고, 서구권에서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팬이 많은 듯합니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스토커가 어떤 인물인지 금방 알 수 있으니까요. 스토커라는 단어로 구글링을 하면, 프리피야트를 배경으로 비장하게 서있는 유물 사냥꾼 그림이 주르륵 뜰 겁니다. 이를 모방한 코스플레이도 유행인데, 방독면과 후드 코트, AK-47과 AKM 혹은 SVD, 방사능 패치만 있으면 오케입니다.
[동구권 스토커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소설 <노변의 피크닉>입니다.]
다만, 인기를 끈다고 해서 스토커가 뭐 그리 대단한 인물인 건 아닙니다. 위에서 줄곧 말하지만, 스토커는 어디까지나 위험 지역에 진입하는 보물 사냥꾼에 불과합니다. 그 중에는 고등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나 전투 전문가도 있겠지만, 그냥 총잡이들이 훨씬 많습니다. 어디까지나 운을 믿고 돈벌이를 위해 돌연변이 괴물과 싸울 뿐이죠. 기껏해야 무장이 AK-47이라는 것에서 뭔가 감이 오지 않습니까. (위 그림에서는 AK-74를 들었지만, 찾아보면 AK-47로 무장한 팬 아트나 코스플레이가 훨씬 많습니다. 오죽하면 스토커의 친구는 AK-47이라고 할 정도.) 레일에 부착물을 덕지덕지 바르고, 온 몸에 전술 장구를 주렁주렁 차고 다니는 미국식 해병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옷차림도 꾀죄죄한데, 죽지 않기 위해 방독면 쓰고 코트 입고 소총을 들 따름입니다. 태크노 스릴러에 흔히 나오는 영웅적인 전투원들과 전혀 다르죠. 하긴 주변이 방사능으로 망해가는 와중이니, 겉모습이나 무장 수준이 초라할 수 밖에 없겠네요. 무장에 걸맞게 사격술이나 싸움 실력도 그저 그렇습니다. 성격도 그리 정의로운 편이 아니며, 어떤 이들은 유물을 위해서라면 뒷통수 때리기나 비겁한 행위도 감내합니다.
한마디로 스토커의 미학이란 황폐한 세상을 떠도는 생존자/총잡이의 낭만이라 하겠습니다. 칙칙한 코트를 걸치고, 얼굴에는 괴상한 방독면을 쓰고, 두 손에는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들고, 기이하게 비틀린 수풀과 황야를 떠돌고, 징그러운 괴물과 폭력적인 약탈자들에게 맞서고…. 일반 대중에게는 음산하고 희한하겠지만, 그렇기에 더욱 정감(?)이 간다는 뜻입니다. 동구권의 스토커가 이런 모습으로 정착한 이유는 소련의 과오와 유산 때문일 겁니다. 소련 자체가 이것저것 사고도 많이 쳤고, 학살도 많이 했고, 억압도 숱했고, 무엇보다 체르노빌이 있으니까요. 소련의 비극이 스토커의 낭만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겠죠. (이걸 낭만이라고 부르는 게 과연 옳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냉전 시기부터 쌓인 동구권의 이미지, 그러니까 어딘지 우중충하고, 차갑고, 폐쇄적이고, 오싹하고, 거친 느낌이 스토커에게 겹친 게 아닌가 합니다. 우크라이나 본토 사람들은 이런 SF 설정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자기들이 직접 게임을 만들었으니, 그런 '동구권 이미지'를 스스로 이용하는 셈이잖아요.
서구권에서는 저런 스토커 설정이 나오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과연 저렇게 구질구질하고 쓸쓸한 설정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미국과 서부 유럽도 숱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내놨지만, 글쎄요. 아무래도 풍토나 문화가 현저히 다르잖아요. 설사 만들었다고 해도 그 설정의 배경은 소련이나 동유럽이 아니었을지…. 똑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해도 서구권과 동구권은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서구권은 그래도 자유주의 진영이라서 세상이 멸망해도 그나마 유들유들한 구석이 있습니다만. 동구권은 사회주의 체제를 오래 겪었기 때문인지 좀 경직되었다고 할까요. 그런 경향이 강하더라고요. 체제를 겪은 아픔이 몸에 배었다는 느낌? 솔직히 동구권 SF를 그리 많이 접한 편이 아니기에 선입견이나 오해일 수 있습니다. 서구적인 잣대로 동구권 SF를 재단하는 실수일 수 있죠. 어디든 사람 사는 동네는 다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소련 치세가 SF 설정, 특히 디스토피아나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분명히 영향을 줬을 겁니다.
[이쪽은 메트로 스토커지만, 이 정도면 거의 노숙자 분위기네요.]
물론 스토커라고 해서 항상 꾀죄죄하고 볼품 없는 건 아닙니다. 그 중에는 테크노 스릴러의 특수부대 뺨치게 대단한 인물들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폭력과 총격전이 중심인 설정이니까요. 최신식 기관총을 쓰거나, 육중한 방탄복을 입거나, 각종 장구를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걸친 자들도 있죠. 스토커를 무슨 영웅처럼 떠받들기도 하고요. <메트로 2033>의 스토커는 아이들이 선망하는 대상이더군요. 다만, 그런 자들은 예외적인 사례이고, 대부분의 일반적인 스토커는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총잡이에 불과합니다. 초라한 옷차림을 하고, 생존 장비 몇 개 들고, 돌연변이 괴물에게서 달아나며, 어디 쓸만한 유물이 있는지, 오늘도 내일도 두리번거리죠.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불안함과 그저 살기 위해 소총과 방독면을 드는 수수함이야말로 사람들이 스토커에게 주목하는 이유 같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테크노 스릴러와 정반대의 매력을 풍기는 게 스토커인 셈입니다. 테크노스릴러가 화려한 최신식이라면, 스토커는 칙칙한 구시대적이에요.
사람들이 하필 칙칙한 스토커를 좋아하는 이유는 일종의 해방감 때문일 듯합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멋지고 화려한 게 좋겠지만, 항상 그런 것만 보고 살 수 없습니다. 때로 비극적인 경험을 곁들이는 게 효과적이죠.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 하겠습니다. 황폐하고 쓸쓸한 스토커를 보며 부정적인 감성을 해소하는 겁니다. 사실 카타르시스로 부정적인 감성을 해소하는 방식은 스토커만 아니라 여느 포스트 아포칼립스에도 모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아니, 원래 비극이란 게 카타르시스 정화가 목적이죠. 하지만 스토커는 그저 비극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멸망한 지역의 생존자이고, 이상 현상을 회피하는 사냥꾼이며, 온갖 약탈자나 괴물과 맞서는 총잡이죠. 방사능 아포칼립스, 그것도 동구권 아포칼립스의 정수를 고스란히 담은 캐릭터입니다. 생긴 것만 봐도 굉장히 독특하지 않습니까. 방독면만 해도 특이한데, 거기다 길다란 코트를 펄럭이고, AKM이나 VSS를 들고, 배경에는 프리피야트의 붉은 숲이나 회전 관람차가 서있고…. 특히 동구권 캐릭터라는 점에서 서구권 아포칼립스에 익숙한 사람들의 호기심까지 자극하는가 봐요.
2015.03.13 14:40:38
스토커는 역시 좀 추레한 맛이 있는게 리얼해보여서 좋네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넝마주이처럼 떠돌면서 이것저것 주우러 다니노라면 자연스레 태가 나기 마련이니 말이죠. 어찌보면 서부의 카우보이를 동구권 식으로 해석한듯한 느낌도 듭니다. 카우보이가 육혈포(혹은 윈체스터 장총)에 스테드슨 모자를 쓰고 말을 벗삼아 떠돈다면, 스토커는 Ak소총에 후드를 눌러쓰고 가이거 계수기를 길잡이 삼아 떠도니까요.
2015.03.13 15:35:14
캐릭터 자체는 스토커가 아니지만 <매드맥스> 시리즈의 맥스 같은 캐릭터와도 비슷한 이미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이쪽도 황량한 서부극의 떠돌이 총잡이에서 모티브가 됬을테니 충분히 그럴 만 하겠지만...
여느 비디오 게임이 그렇듯이 스토커에도 모드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유명한 축에 드는 미저리 라는 모드가 있는데 제작자나 이용하는 사람들이 피학적인 성향이 있나? 라고 생각이 들정도로 난이도를 비상식적으로 높이더군요.
한두대 맞으면 사망하는정도야 다른 하드코어 모드들이 이런 수준이니 기본 시작 모드야 그럭저럭 플레이 할수 있지만 다크 모드라고 해서 온갖 방사능 괴물에 특이현상들이 나타나는 스토커의 배경에 달랑 나이프 하나 주고 시작하더군요. 그것도 좀비들이 둘러싼 집안에서요. 더욱이 스토커 세계관의 좀비는 총도 쏩니다.
본편에서는 기본으로 주던 PDA 도 여기선 배터리를 사야되서 길도 못찾구요. 먹을것도 먹어줘야 합니다. 무게 제한도 팍 줄여놓아서 총2개 들면 헉헉 거리구요.
스토커가 오픈월드 라는 개념으로 인기를 많이 끌긴했지만 애초에 즐길거리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게임이란게 레벨 1에서 99로 올라가는 맛에 하듯이 컨텐츠가 적은 스토커에서 즐길거리를 늘리려고 시작 레벨을 -30으로 맞춘 감이 없지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