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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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을 좋아하고, 주로 사서 읽는 습관이 있습니다.
덕분에 다른 사람에 비하자면 상당히 많은 책을 사는 편에 속합니다.
그리고 책을 사서 읽는 습관이 생긴 것은 1987년부터이니까... 24년 되었습니다.
24년 전 주로 읽던 학원사, 범우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는 죄다 완역을 지향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학원사 책은 가격이 3천원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범우사 책은 4천원 내외였습니다.
또한 삼중당 베스트문고, 마당문고, 글방문고 1천원, 일신그랜드북스, 범우사루비아문고 1천 5백원이었죠.
그 당시 쓸만한 단행본은 거의 다 3천원 수준이었고 1989년 무렵에는 묘하게도 3천8백원이어서,
제 머리 속에는 모든 책들의 기준 가격은 3~4천원으로 셋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20 년 넘게 계속 책을 사 읽었습니다.
솔직히 책에게 미안하게도... 비싼 책에 대해 비싼 가격 기꺼이 지불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 대신 수도권의 왠만한 헌책방, 나까마 시장, 알라딘 중고매장, 대학천 도매상 등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죠.
도서정가제를 하면 책 값의 거품이 정말로 빠질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되면 거의 제 값에 책을 사는 빈도가 더 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다른 루트로 책을 사곤 하는데, 정가 구매를 더 안하게 되겟죠.
사실 저 같은 사람은 책 상태 괜찮고 작가 쓸만하고 내용 좋으면 굳이 신간에 목매지 않거든요.
저는 100 년, 200 전에 쓰여진 책도 좋고, 40 년 전 번역본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은 구자운 시인이 일본어 텍스트를 중심에 놓고 러시아 원본은 참고 용도로 확인하면서
"한밤중에도 쉬지 않고 기름때 톱니바퀴"처럼 졸면서 번역한 중역본의 유려한 우리말 구사와 감칠맛을 좋아하는 걸요.
그냥 쓸만한 책을 어디서든 돌아다니면서 사서 보면 되기 때문에, 도서정가제 때리면 신간은 잘 안 사게 될 것 같습니다.
정 뭣하면.... 책을 안사고 몇 년 집에 있는 책을 읽기만 해도 됩니다.
소설만 수 천 권 되는 데 도서 구입은 몇 년 쉬죠 뭐... SF 팬터지도 원 없이 쌓여 있어요.
이런 심정을 뒤집어 표현한다면,
지나치게 비싼 책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사고 싶지 않습니다.
책은 즐거우려고 가까이 하는 것이지 스트레스를 받으려고 사 읽는 것은 아니거든요.
다시 말해책 책 값이 정상적인 가격이어야... 즐거운 마음으로 책도 사고 즐기고 그럴 수 있는 것이죠.
도서정가제 이야기가 나와서 문득 비슷해 보이는 옛날 책과 요즘 책을 집었습니다. 1994년에 나온 <백경>이 7,500원이네요. 2005년에 나온 <바다의 노동자>가 18,000원입니다. (역시 두꺼운 책은 가격도 어마어마.) 근 10년 사이에 두 배 넘도록 오른 셈이죠. 요즘에 가끔 책을 집을 때마다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을 하긴 합니다. 아무래도 사람 심리가 좀 더 싸게 구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보니….
하지만 어차피 책 가격만 오르는 게 아니라 다른 가격도 덩달아 올라가죠. 텍스트 매체는 찍기 편하지만, 그렇다고 경제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을 겁니다. 솔직히 저도 책을 많이 구입할 여력은 안 되긴 합니다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게 나오면, 그게 정가든 비싸든 구하는 편입니다. 비싸면 아깝다고 생각하지만, 출판시장이 워낙 어렵다는 말을 들어서 할인 생각은 좀처럼 못해봤네요.
정말 누군가를 보호하고 싶다면, 도서정가제를 그냥 할인 없이 실행하는 게 어떤가 싶습니다. 지금처럼 신간, 구간, 기간 이런 거 나누지 말고요. 정말 동네 서점 육성할 방법을 제대로 찾거나. 정 안 되면, 구간은 그냥 놔둬서 소비자 이익이 되게 하든가. 지금 도서정가제는 이도저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제도는 실행하고 싶은데, 어쩐지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30년전에는 짜장면 가격이 500원이었을걸요. 지금은 5~6000원하죠.(사실 전대머리 시절에 자장면이 물가통제품목에 들어가서 가격을 못 올려 싼거였지만..) 그렇다고 짜장면이 비싸져서 안먹고 대신 짜파게티 끓여먹는다고 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수십년간 물가 오르고 시장과 환경이 변화했는데 수십년전 가격에 비해 비싸다고 '비싸서 안산다' 라고 하면 그냥 그 제품에 정가로 소비하기에는 좀 인색한것 아닐까요.
저는 SF 신간은 당장 읽을 시간 없어도 무조건 사두는 편입니다. 절판 리스크도 있지만 그것보다 시장 작은거 뻔한데도 이런 책을 내주다니 한권이라도 더 사줘야 다음에 책이 또 나오겠지 싶어서요. 최근에는 책을 더 늘리지 말라고 해서 가급적 전자책으로 사고 있지만요..(결혼이 이렇게 무서운겁니다 여러분..)
모출판사가 'SF 팬들이 책을 사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생각보다 책이 안팔려서 사업을 접었을때 우리나라 SF 시장이 이렇게 작은가 했는데, 진짜 한 10년 지나면 국내 SF 출간은 멤버쉽제로 전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