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이곳은 무엇이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 게시판입니다. (댓글 기능을 다시 활성화시켰습니다.)
스토리 자체는 재미있는데..
함선의 구조를 설명할 때나, 복잡한 알파벳들이 이리저리 오가는 장면만 보면 갑자기 분위기가 축 쳐져 버립니다.
밀리터리 S F의 정수인 밀리터리를 끔찍하게 치부해서야..
여러분들은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그냥 시원하게 넘어가시나요?
익숙함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거든요. 우주선 항해 같은 게 나오면, 골치가 꽤 아팠습니다. 소위 공돌이 타입이 못 되는 터라서요. 항법 컴퓨터, 회피 기동, 가속이나 웜홀 점프, 엄청난 거리를 날아가는 우주 어뢰 등등. 아예 이런 부분을 건너뛰고, 괴물이나 지상군 나오는 부분만 따로 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행성 탐험이나 밀리터리 SF 자체는 좋아하기에 자꾸 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적응하더군요. 오히려 우주 함선의 장대함이 친숙하더라고요.
만약 소설로 읽는 게 버겁다면, 다른 매체를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삽화를 찾아보거나, 영화를 본다든가, 게임을 한다든가. 아무래도 그림이나 영상 매체를 감상하고 나면, 읽는 게 훨씬 쉬워지기도 합니다.
밀리터리 SF에서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일반적인 밀리터리물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이야기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실은 제대로 된 밀리터리 관련 책들은 군대에서 사용하는 장비와 전문용어가 꽤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혼블로워> 시리즈는 군함에 관련한 용어가 굉장히 많지만 제대로 번역하기 어렵고,
심지어 평생 해군으로 있다 전역한 제독 출신이 번역했는데도 함선 용어 번역이 쉽지 않았습니다.
전쟁 장면을 철저히 고증한 <휘파람>, <지상에서 영원으로>, <씬 레드 라인> 시리즈도 만만치 않죠.
하지만... 적어도 유명한 밀리터리 SF의 경우에는 말씀하신 문제가 상대적으로 훨씬 덜합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미래 시대의 군사 장비를 아무리 세밀하게 상상해서 그려낸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현실세계에서 직접 사용하고 있는 장비보다 더 많은 것을 상상만으로 묘사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에 소개된 밀리터리 SF 중 세계적이라고 할만한 작품은 대략 너 댓 편 정도 됩니다.
* 로버트 하인라인 <스타십 트루퍼스>
* 조 홀드먼 <영원한 전쟁>
* 올슨 스콧 카드 <엔더의 게임>
* 존 스칼지 <노인의 전쟁> 4부작
* 제리 퍼넬 <용병(제니서리즈=예니체리)>
여기에 밀리터리와 스페이스 오페라를 결합한 작품으로 넓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데이비드 웨버 <아너 해링턴> 시리즈
*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보르코시건> 시리즈
일본에서 쓰여진 SF 중에도 유명한 전쟁물이 좀 있습니다.
*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 사쿠라자카 히로시 <엣지 오브 투머로우(All You Need Is Kill)>
위에 언급한 책들은 한국에 소개된 밀리터리 SF 분야의 책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중에 함선이나 장비의 구조를 설명하는 게 어려워서 책을 읽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을만한 작품은 없습니다.
미래의 군사 장비를 상상해서 쓰는 서술이 현재나 과거를 군사 장비를 고증하여 쓰는 서술보다 더 복잡하거나 많이 다루기는 쉽기 않고,
그렇게 쓰는 거장 레벨의 SF 작가도 사실상 없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거장으로 알려진 유명 SF 작가들도 '핵심적인 미래 장비'만 세밀하게 묘사할 뿐 나머지는 대충 넘어가죠.
그 결과... 널리 알려진 밀리터리 SF 소설들은 현대나 과거를 다루는 전쟁물에 비하여 오히려 읽기 수월한 편입니다.
벌거지님도 말씀하셨지만 밀리터리물은 원래 난이도가 굉장히 높고, 밀리터리 SF는 오히려 그런 어려운 부분들을 작가 마음대로 쳐낼 수 있으므로 쉬워지죠. 스타워즈처럼 활극을 위한 배경으로 처리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고...
하드한 SF가 드물고, 하드한 밀리터리가 드문 만큼 하드한 밀리터리 SF는 정말로 드뭅니다. 아너 해링턴은 해양 활극의 성향이 강한 혼블로워를 따라했고 올 유 니드 이즈 킬도 결국은 전쟁 배경의 주인공 둘의 활약상이고, 엔더의 게임은 전쟁 배경의 성장물의 성향이 강하고, 전쟁답게 전쟁을 다루려는 건 정말 드뭅니다. 그만큼 관심 있는 사람들만이 즐기는 장르에 접근해가죠.
함선의 구조나 복잡한 알파벳들을 굳이 이해해야만 플롯이 이해가 된다면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겠지만(그리고 부록으로 삽화이라도 좀 추가해놓으면 어디 덧나냐고 화낼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걍 휭 하고 넘어갑니다.
휭 하고 넘어가는 경우에는 영상매체에서 보여지는 클리셰적인 이미지를 기반으로 상상하곤 합니다.
스타2의 마린 전투복과 스페이스마린의 아머에서 닮은구석은 외형뿐이라지만, 소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이게 동네북인지, x나 짱센 장갑인지 이정도 차이만 구분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기의 종류가 레이저건 플라즈마건 타키온이건 그게 큰 상관이 있을까요? 실탄병기보다 우월한 무엇이 적을 찢어발긴다는게 중요하지요. 플롯 전개상 상 명백히 중요한 설정이 아닌이상 나머지는 그냥 무의미한 기호의 나열에 가깝지 않을까요?
제가 밀리터리 sf를 많이 읽진 못했지만, 이런 방면에서 가장 나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을 꼽자면 나이트런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을 위한 설정인지도 모르겠고.. 또 설정끼리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도 모르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