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생존 요소로 의식주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아마 그 중에서 식량이 제일 중요할 겁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물론 외부 세계에서 신체를 지켜줄 의복도 중요하고, 위험에서 피할 수 있는 안락한 보금자리도 중요합니다. 옷과 보금자리와 식량 모두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집이 있더라도 먹거리가 없다면 굶어죽을 겁니다. 그래서 노숙자는 근근이 살아갈 수 있지만, 빈민은 그렇지 못합니다. 주택 보급도 심각한 문제지만, 기아는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오죽하면 나랏님도 가난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겠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도 있고요. 그래서 장 지글러 같은 양반은 기아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심각한 범죄라고 비난하죠. 사이언스 픽션의 관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SF 작품들은 언제나 식량이 생존의 열쇠라고 생각했고, 식량이 문명을 지탱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쌀, 밀, 옥수수 등의 작물이 없었다면, 인구도 늘어나지 않았을 테고 제국 건설도 불가능했겠죠. 괜히 농업 혁명이 1차적인 혁명이겠어요. 그래서 여러 SF 작품들은 농업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SF 작품이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농업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농사를 지을 것이냐, 농산물을 가지고 뭘 할 것이냐, 농사 짓다가 뭔 사고가 터지느냐. 이 세 가지입니다. 일단 농사를 짓는 이야기는 생존/표류물이나 테라포밍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로버트 하인라인이 쓴 <우주의 개척자>는 이 분야의 아주 단순하고 정석적이고 유명한 사례일 겁니다. 원제는 '하늘의 농부' 정도 됩니다. 하인라인의 청소년 소설답게 주인공은 진취적이고 용감무쌍하고 똘똘한 소년입니다. 지구인들은 한창 태양계의 다른 행성으로 진출하는데, 당연히 소년도 외계 행성 개척에 자원합니다. 그런데 개척자들이 아무리 물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도 언제까지 보급품만으로 먹고 살 수 없습니다. 당연히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해야죠. 개척자들은 외계 행성을 테라포밍하고, 아직 환경이 완전히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악조건을 뚫고 농사를 짓습니다. 주인공은 그야말로 열악한 장비와 극악한 지질에 맞서는데, 작물 한 포기 키우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사실 행성 개척은 문명의 여명이나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1차 산업이 중요하기 마련입니다.


하드한 사건 전개로 큰 인기를 끌었던 <마션>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우주 탐사대원이 홀로 화성에 고립되었습니다. 잠깐, 그런데 이 양반은 식물학자입니다. 물론 다른 분야도 전공했지만, 왜 하필 식물학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했을까요. 이유야 뻔하지 않나요. 그래야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농사를 지어야죠. 그리고 주인공은 일단 숨 쉴 공간을 마련하자마자 농사 문제에 골몰합니다. 자기 응가(…)를 흙과 섞고, 미생물을 키우고, 실험용 씨앗을 뿌리고, 결국 싱싱한 감자를 재배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야말로 <마션>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단지 먹고 사는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토록 황량한 불모지에서 인간이 극악한 조건을 뚫고 새로운 생명을 키웠습니다. 즉, 이건 어느 정도 생명 창조의 영역입니다. 뭐, 그렇다고 저 주인공이 신세계의 신이 되었다, 이런 뜻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도 생명인 이상, 황무지에서 자라는 생명에게 경외에 찬 시선을 보내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비단 <마션>만 아니라 여타 생존 및 테라포밍 소설에서도 생물학자나 식물학자들이 여러 작물 사이를 바쁘게 오가곤 합니다. 그런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죠.


대재앙이 지구에 찾아와도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결국 먹거리가 없으면, 인류 문명은 물론이고 한 개인의 삶도 이어질 수 없죠. 하지만 대재앙은 모든 생물을 억압할 테고, 당연히 작물도 자라기 힘들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별 수단을 고안하겠죠. <최후의 Z>는 핵전쟁 아포칼립스이고, 주인공 소녀는 마을에서 홀로 살아갑니다. 소녀는 마을 물품을 넉넉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언제까지 거기에만 매달릴 수 없습니다. 마을은 다행히 청정 지역이지만, 다른 지역에는 낙진이 넘치기 때문에 소녀는 밖에 나갈 수 없거든요. 따라서 먹거리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고, 농사에 매진하기 마련이죠. 실제로 이 소설은 상당한 부분을 농사에 할애합니다. 그만큼 종말 상황에서 농사 짓기가 힘들다는 뜻이겠죠. <메트로 2033> 같은 소설에는 농사 이야기가 별로 안 나오지만, 그래도 버섯과 돼지를 키운다고 언급하죠. 어두운 지하철 세계에서 그나마 버섯 농사가 희망인가 봅니다. 버섯은 빛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돼지는 아무거나 잘 먹고 잘 크니까. 그래서 메트로 거주민들의 주요 식량이 아닐까 싶군요.


이러한 작물과 가축은 끊임없는 개량의 결과입니다. 흔히 유전자 조작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21세기의 첨단 바이오 기술만 떠올립니다. 하지만 작금의 옥수수나 소 역시 유전작 조작의 결과죠. 사람들은 언제나 생산성을 위해 노력했고, 농업 혁명과 녹색 혁명은 식량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물론 완전한 해결은 아닙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환경 오염이 훨씬 심각해졌다고 경고하니까요.) 사람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고, 다들 더 큰 생산성을 위해  애쓰죠. 문제는 자원이 유한하다는 점입니다. 토지의 영양분은 날아갈 테고, 땅은 모자라고, 물도 부족합니다. 사람들은 화학 비료와 각종 기술, 건축으로 그걸 해결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요. 유전자 조작이 해결책일 수 있겠지만, 잘못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겠죠. <생각보다 싱싱해!> 같은 소설은 바로 그런 위험을 경고합니다. 생산성을 늘리는 결과까지 좋았지만, 작물이 너무 빨리 자랐기 때문에 도시마저 작물 천국이 되고 맙니다. 이런 SF 소설은 인간의 무리한 자연 조작이 치명적인 화를 부른다고 경고합니다. 아마 이런 SF 소설들도 지금의 GMO 반대 심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겠죠.


<트리피드의 날>도 비슷한 상황이죠. 트리피는 식물 괴수라고 알려졌지만, 괴수이기 이전에 작물입니다. 사람들은 이걸 키우고 유용한 기름을 뽑아냈죠. 양질의 기름을 저렴하게 추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트리피드 사육 공장까지 차렸지만, 냉전의 여파로 결국 작물이 괴수로 탈바꿈하고 맙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죽어라 도망… 치지도 못합니다. 눈이 안 보이니까. 비록 이 소설은 농사 짓는 소설이 아니고 바이오펑크 면모도 약하지만, 그래도 트리피드는 작물이고 농업 사고의 위험을 보여줍니다. <생각보다 싱싱해!>와 <트리피드의 날>은 모두 포스트 아포칼립스인데, <최후의 Z>와 <메트로 2033>도 그렇습니다. 하여간 농사를 짓는 도중 문제가 생기든, 문제가 생겨서 농사 짓기가 힘들든, 먹거리와 환경의 관계는 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역사학자, 농업학자, 생태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결국 농업은 토지, 용수, 삼림, 사막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농업 문제는 곧 생태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를 날카롭게 지적한 소설 중 하나가 <와인드업 걸>이죠. 이건 질병 디스토피아로군요.


<와인드업 걸>에서 질병이 전세계를 덮치자 수많은 작물과 가축이 사라졌습니다. 다국적 식량 회사는 유전자 조작 작물을 만들고 로열티로 먹고 살지만, 일부 국가는 다국적 기업의 작물을 거부합니다. 자신들의 조작 작물과 가축이 있거든요. 하지만 다국적 기업들은 이런 국가를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 무슨 해괴망칙한 일이란 말입니까. 회사들은 온갖 로비와 횡포로 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박하고, 심지어 다른 국가의 유전자 조작 식물마저 해킹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유전자 조작 생명들이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고, 다시 질병이 퍼질 수 있고, 그러면 또 다시 유전자 조작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1차 산업의 암울한 상황과 거대 기업의 탐욕이 서로 맞물려 자연 환경을 나날이 망가뜨립니다. <와인드업 걸>은 한편으로 생태를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으로 미쳐 날뛰는 자본주의를 비판합니다. 하긴 지금도 시장 개방 문제는 수많은 농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토양이나 삼림을 망가뜨리죠. 신자유주의가 더욱 확대된다면, 이런 상황 역시 더욱 심각해질 테고요. 결국 미쳐버린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 외에도 수많은 SF 작품들이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그걸 가지고 뭘 하는지, 왜 농업 사고가 터지는지 이야기할 겁니다. <월-E> 같은 애니메이션은 새싹을 희망의 상징으로 봤고,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는 주인공이 (전직 우주 비행사이자) 현직 농사꾼이죠. 아울러 소설 이외에도 전략 게임 등도 농업의 중요성을 어필하지 않습니까. <던전 오브 엔들리스> 같은 인디 분대 전술부터 <스텔라리스> 같은 거대한 4X 게임까지, 식량은 기초적인 자원입니다. 은하 제국 황제도 먹고 살아야죠. 인류가 유년기를 뛰어넘지 않는 이상, SF 작품들도 낫과 호미를 버리지 못할 겁니다. (아니, 사이언스 픽션이니까 낫과 호미보다 트랙터나 농업 로봇이라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