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해보자는 시도는 오래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쉽게 설명하다 보니까 거기서 끝났다. 딸이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배웠다면서 이야기하는데, '유레카' 단어의 뜻만 알고 부력이 뭔지조차 모르더라. 과학 주변의 일화들만 이야기한다. 과학의 대중화도 필요하지만, 대중의 과학화도 필요하다. 과학만 끌어내릴 게 아니라 과학의 대중화도 끌어올려야 한다. 과학관에서만 기다리니까 사람들이 안 오더라. 지적인 사람들이 곳곳에 있는데, 합리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환경 운동과 먹거리 운동하는 분들이 참 좋은 사람들인데, 너무 터무니없이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적극적으로 다가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질문할 때까지 기다렸다. “화학 조미료 어때요?”하고 물으면 “드시면 돼요.”라고 답한다. 과학관이나 자연사 박물관의 역할은 합리적인 세상을 만드는 거다.



위 발언은 <시사 IN> 인터뷰에서 발췌했습니다. 인터뷰 대상은 이정모 서울 시립 과학관장입니다. 스스로를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르더군요. 그만큼 과학과 대중의 소통을 꾀하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과학의 대중화는 우리 클럽에서도 가끔 이야기를 하죠. 과학은 어렵습니다. 사실 모든 학문은 다 어렵지만, 특히 자연 과학 분야는 그런 관념이 더욱 짙습니다. 저는 그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인문학이나 사회학은 그 대상이 우리 인간입니다. 인간의 행동이나 심리, 사회 질서, 제도, 경제 등을 다루죠. 어차피 그것들은 우리의 삶이고, 그래서 비교적 접근하기가 쉽거나 친숙하게 보입니다. 그렇다고 인문학과 사회학이 무조건 쉽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겉보기가 익숙하다는 겁니다. 반면, 자연 과학의 연구 분야는 인간이 아닙니다. 자연 과학을 연구하고 싶다면, 인간 이외의 요소들을 쳐다봐야 합니다. 현미경 속의 세계를 들여다봐야 하고, 머나먼 해저로 내려가야 하고, 외계의 별들 사이를 올려다봐야 합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낯설다고 느끼겠죠. 자신이 속한 세계가 아니라고 느낄 테니까.


사회학자가 대중에게 어떤 나라의 사회 제도를 설명한다고 하죠. 사람들은 그 설명을 가깝게 받아들일 겁니다. 왜냐하면 대중도 사람이고, 그 나라에도 사람들이 살 테니까요. 동질감을 쉽게 느낄 수 있겠죠. 만약 생태학자가 어떤 밀림의 생태계를 설명하면 어떨까요. 사람들의 흥미가 금방 떨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인간이 없으니까. 태양 에너지, 생산자, 각종 소비자와 포식자, 미생물 분해, 영양소 순환 등은 인간이 끼어들지 않아도 저절로 돌아가는 법칙입니다. 이미 35억 년 이전부터 그렇게 지구는 굴러왔죠. 인간이 없는 세계에 대중이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아, 물론 사람들은 자연 그 자체를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거대한 자연 풍경을 멋지다고 생각하고, 유명한 자연 관광지는 널리 인기를 끌죠. 사람들은 숲과 바다와 산과 사막을 느끼고 체험합니다. 다만, 이때 대중은 자연에게 아름답다는 감정을 이입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적인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면, 대중은 자연과 우주를 좀 더 가깝게 바라볼 수 있어요. 아이들은 그래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에 열광하죠. 자기를 사상 최고의 육식공룡에게 대입하니까요. 거대 로봇이 괴수보다 인기를 끄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겁니다. 거대 로봇은 괴수보다 좀 더 인간적이니까.

다만, '과학'이라는 학문 분야로 접어들면, 인식이 확 바뀝니다. 밤하늘의 별자리는 아름답지만, 그 별자리까지의 거리 및 광속과 별의 등급과 생성 원인과 상대성 이론을 따지기 시작하면, 머리가 지끈지끈해집니다. 각종 원소, 동물과 식물과 균류, 다양한 파동과 힘, 저 외계의 행성들은…. 인간적인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고 할까요. 인간적인 친근함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이 다소 부족합니다.


더군다나 자연 과학 분야는 여러 함수, 그래프, 수식, 외래어 등을 빼놓지 않습니다. 저는 이공계 근처에도 못 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이공계 학생들은 외국어 서적으로 공부하더군요. 아무래도 각종 외래 학술 용어가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그나마 이런 게 좀 덜 하죠. (알고 보면 그렇지 않지만, 자연 과학 분야보다 사정이 나을 겁니다.) 따라서 자연 과학 분야는 겉모습부터 뭔가 무시무시하고, 대중이 접근을 꺼리는 것 같습니다. 과학자들도 이 점을 충분히 인지했고, 그래서 여러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애썼습니다.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는 과학자들도 많고, 그런 주장을 하는 책들도 많죠.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대중의 범위입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대중으로 지정해야 할까요. 언젠가 듀나는 인터뷰에서 대중은 명확한 실체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어디 인터뷰였는지 잊어버렸는데, 아마 저렇게 말했을 겁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그 사람들의 지식과 성향과 관심도는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요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건 사이비 종교일 뿐이죠.


똑같이 과학에 흥미가 없어도 누군가는 좀 더 과학을 잘 알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대중 과학자는 누구를 대상으로 이야기할지 고민하겠죠. 그렇다고 아예 밑바닥부터 이야기할 수 없고, 너무 어려운 용어를 쓸 수 없고, 어느 정도 적당히 가르쳐야 하고…. 음, 비단 대중 과학자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선생님들도 이런 고민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들도 저마다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수업이 아이에 따라서 다른 영향을 미치니까요. 저는 이런 분야를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자세히 말할 수가 없네요. 여하튼 저는 '과학의 대중화'라는 말을 듣고, 과학을 어떻게 대중의 눈높이에 맞출지 종종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위 문단의 인터뷰어, 서울 시립 과학관장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는군요. 과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과학화'입니다. 과학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중을 과학의 수준까지 끌어올립니다. 저 분은 책을 쓸 때 일부러 쉽게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수식을 집어넣는다고 합니다.


물론 출판사 쪽은 책을 좀 더 쉽게 쓰라고 요구합니다. 수식이나 그래프가 들어가면, 독자들의 흥미가 팍팍 떨어질 수 있거든요. 수식이 하나 들어갈 때마다 책 판매 수량이 팍팍 줄어든다고 합니다. 허허…. 하긴 저처럼 과학 까막눈인 사람은 어지간해서 어려운 책을 못 봅니다. 고생물학 연대표 같은 것만 봐도 골치가 지근지근 아픈데, 어렵고 복잡한 수식을 어떻게 보겠어요. 출판사가 왜 책을 쉽게 쓰라고 요구하고 왜 수식을 빼라고 간섭하는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 과학관장은 그렇다고 절대 쉽게 쓰지 않습니다. 인터뷰 발췌에서 볼 수 있듯이 자꾸 쉽게 쓰면, 대중은 한계를 돌파하지 못합니다. 그냥 한계 밑에서 머물 뿐입니다. 그래서야 대중과 과학은 제대로 소통할 수 없을 겁니다. 결국 자연 과학은 어려운 혹은 어렵게 보이는 학문이고, 어느 정도 진입 장벽이 있습니다. 과학자는 대중이 그걸 깰 수 있도록 계속 격려하고 가르치고 이끌어줍니다. 그러나 대중 본인들이 장벽을 넘지 않으면,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겠죠. 이정모 과학관장은 대중을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중을 믿는다'는 말은 한편으로 '대중을 기다린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대중이 자연 과학의 장벽을 쉽게 넘지 못할 겁니다. 그리 호락호락한 장벽이 아닙니다. 즉, 대중은 장벽을 넘기 위해 계속 시도하고, 실패하고, 시도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단번에 장벽을 넘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못하겠죠. 따라서 대중의 과학화는 쉬운 길이 아니고, 짧은 길도 아니고, 과학자와 대중 모두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겁니다. 세상 모든 일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대중의 과학화…. 이게 얼마나 사람들의 인식이나 시선, 지식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정치 혐오증이 있는 사람을 정치 문제에 끌어들이는 것보다 더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정치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자연 과학의 영향력은 쉽게 실감하기 어렵거든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치는 사람 냄새가 나지만, 자연 과학은 그렇지 않으니까. 사실 자연 과학도 인간 사회를 엄청나게 바꿨지만, 사람들은 인간적인 부분만을 바라보기 쉽죠.


두서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꽤나 신선한 인터뷰였습니다. 저는 항상 과학의 대중화만 생각했거든요. 대중의 과학화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물론 과학계는 이미 저런 논의를 진행했겠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잘 몰라서…. 아울러 환경 운동가와 먹거리 운동가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귀 담아 들을 만합니다. 프랑스의 녹색당 의원이 그런 말을 했죠. 환경 운동가는 과학을 모르고, 생태학자는 정치를 모릅니다. 환경 운동은 정치 행위지만, 자연 과학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환경 운동도 사상누각입니다. 환경 운동가가 어느 정도 생태학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지식을 습득하지 않는다면, 사이비 광신도랑 다를 바 없을 겁니다. 논리적인 근거나 구체적인 사례도 없이 무작정 자기 주장만 하는 꼴이니까요. 그런 사람들도 많죠. 사례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면, 그냥 무턱대고 자기 주장만 줄줄이 늘어놓습니다. 그건 주장이 아니라 그냥 신념이죠. 예수쟁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생태적 사회주의자들도 생태 문제를 거론하고 싶다면, 마르크스 사상만 아니라 자연 과학을 꾸준히 주시해야 할 겁니다.


아마 여기서 더 나가면, 대중이 과학자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을 겁니다. 대중이 과학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를 믿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과학자를 불신하는 대중들도 많습니다. 달 착륙 음모론부터 유전자 조작 의심까지…. 과학자를 불신하는 대중은 과학자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듣지 않아요. 무조건 그들이 대기업이나 정부의 하수인이라고 의심합니다. 물론 그런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혹은 잘못된 연구 결과에 빠지거나 자기 명예를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과학자들도 있어요. 뭐, SF 작가들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을 보세요. <공포의 제국>을 썼죠. 이상 기후 따위는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학계의 여론은 이상 기후를 지지함애도 말입니다. 크라이튼은 유명한 SF 소설가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혹시 잘못 판단할 수 있죠. 그런 불신을 깨기 위해서 대중은 과학의 수준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이러면 어쩐지 도돌이표 논쟁이 되는 것 같습니다. 과학자가 대중을 이끌어야 하고, 대중은 과학자를 못 믿고, 대중이 스스로 공부해야 하고,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고, 대중은 과학자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러나 대중은 과학자를 불신하고….


에헤라, 세상은 돌고 도는 요지경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