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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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하고 멸망한 세상. 사람들은 묵시록 장르를 왜 좋아할까요.]
세상에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많고도 많습니다. 소설, 만화, 영화, 게임 등등 어디 매체든 넘쳐납니다. 우울하고 절망적인 것도 있고, 해학적이고 유쾌한 것도 있습니다. 생존자 몇 명만 살아남을 정도로 폭싹 망한 것부터 그저 사회 구조가 바뀌어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설정까지 있죠. 그런 걸 볼 때마다 가끔 의문이 듭니다. 사람들이 왜 묵시록 장르를 좋아하는지 말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처럼 화려하고 멋진 것도 아닌데 말이죠. 작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추하고, 더럽고, 황량하고, 기괴하잖아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름답고 멋진 걸 선호합니다. 그러니 굳이 황폐한 세상에 열광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겠죠. 물론 뻔한 답변도 있습니다. 교과서적인 이유를 들자면, 묵시록 장르가 현대 문명을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현대 문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딘가 고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계속 미쳐 돌아가요. 그래서 결국 세상이 망하는 이야기에 눈을 돌리고,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거야 진부한 답변이고, 그 밖에 다른 이유도 많을 겁니다. 가령,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생존 본능을 자극합니다. 그 어떤 장르보다 주인공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세상에 폭력과 광기와 죽음이 만연합니다. 이미 문명이 사라졌기에 주인공을 도와줄 존재나 장치가 없습니다. 돌연변이가 공격하든,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든, 기아에 허덕이든 간에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독자는 곤경에 처한 주인공에게 자신을 대입하고, 생존자의 쾌감과 스릴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생존이 꼭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몇 천 년 동안 인류는 갖은 역경에 처했고, 지금도 죽기살기로 절정에 매달린 사람들이 숱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생존기는 어디까지나 개인 영역에 국한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개인의 죽음이 곧 세계의 멸망으로 귀결합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손조차 내밀 수 없는 막막함과 고립감. 마음 깊숙이 자리한 무언가를 건드리는 암울한 상황. 주인공이 위기에 처할수록 작품의 몰입감이 커지고, 묵시록 장르는 거기에 충실합니다.
또한 질서가 무너지고 약탈자가 빈번하니, 쌈박질이 일어나기 좋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은 뭐니뭐니해도 싸움 구경입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변하지 않을 진리일 겁니다. 그래서 온갖 창작물에는 다양한 인물과 세력이 별별 거창한 명분부터 쓰잘데기 없는 시비거리로 치고 받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굳이 골머리를 썩히지 않아도 자연스레 폭력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어차피 세상은 만인이 만인을 향해 투쟁합니다. 이를 저지할 어떤 권력이나 법규가 없으니, 서로에게 주먹을 뻗습니다. 더군다나 자원까지 모자랍니다. 먹을 게 풍족하고, 날씨가 따스하고, 살기 좋은 곳이 널린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평소에도 자원을 차지하려고 상대를 죽이기 바쁜데, 자원이 극도로 모자라면 오죽하겠습니까. 독재 정부든, 반란군이든, 약탈자 무리든 간에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기 바쁩니다. 싸우지 않거나 힘을 기르지 않는 자는 목이 달아나기 쉽습니다. 그 사람이 멸망 이전에 어떻게 살았든 상관 없습니다. 멸망 이후에 살아 남으려면, 세상의 혼란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멸망한 세상에는 약탈자가 넘칩니다. 폭력성을 배출하기 딱 알맞죠.]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니, 아무리 싸움과 멀어보이는 사람도 결국 폭력을 휘두릅니다. 평생 언성을 높이지 않았거나 피를 보지 않은 사람조차 싸움에 가담합니다. 약탈자가 득실거리는 마당에 혼자 러브 & 피스를 외칠 수야 없는 노릇입니다. 국가 간의 전쟁이라면, 명분이나 실리 등을 거론하겠죠. 하지만 멸망 이후의 싸움은 추레하고 비열한 진흙탕입니다. 음식을 사이에 두고 으르렁거리는 아귀나 다를 바 없습니다. 당장 배가 고파 죽겠는데, 명분을 따지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즉, 묵시록 장르는 주인공을 싸움터로 끌어내기 적합합니다. 아무리 폭력과 인연이 없어도 폭력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독자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 그러니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싸움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민족을 지키기 위한 싸움도 아니고, 시민에게 봉사하려는 싸움도 아닙니다. 내가 먼저 찌르지 않으면 곧장 칼침이 들어오는 다급한 상황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질서나 이상 따위는 도와주지 않습니다. 자기 목숨을 자기가 지키는, 원초적이고 간단한 상황입니다.
평소에 모범생처럼 살던 월급쟁이도 멸망 이후에는 싸움꾼으로 변합니다. 싸움꾼으로 변하지 않았다면, 진작 죽었겠죠. 군사 정부나 약탈자가 제일 흔한 적이지만, 그 외에도 싸울 대상은 많습니다. 핵탄두가 터지면 방사능 돌연변이가 튀어나오고, 질병이 퍼지면 좀비가 스물거립니다. 인공지능을 잘못 만들면, 헌터 킬러가 하늘을 날아다니겠죠. 외계인이 침공하면, 그야말로 적 아니면 아군일 테고요. 평화롭던 세상에 난데없이 우후죽순 적들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어디서 본 평론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이게 사람들의 폭력성을 해방시키는 탈출구 역할도 한답니다. 사실 사람들은 언제나 폭력의 분출구를 찾았고, 그래서 걸핏하면 외계인과 돌연변이 괴물과 살인 로봇을 소환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단조롭고 따분하고 지겨운 일상을 날려버림과 동시에 아무런 갈등 없이 쏴죽일 수 있는 적들을 선물 세트로 제공합니다. 폭력을 향해 질주하는 일탈이라고 할까요. 누구나 일탈을 꿈꾸는데, 거기다가 총격전까지 듬뿍 양념으로 뿌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질풍노도 같은 설정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 속에 작게나마 중2병(?)을 품었을 테니까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총격전을 보면서 그런 부분을 만족하는 거죠. 특히, 남성 독자라면 더욱 그럴 테고요. 쌈박질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 뭐, (다시 말하지만) 싸움 구경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약탈자나 돌연변이와 항상 투탁거리지 않습니다. 그 중에는 싸우고 싶지만 기회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독재 정부 밑에서 고생하는 소시민이 무슨 수로 총을 잡겠어요. 언젠가 반기를 들 수 있겠지만, 그 전까지는 그냥 숨 죽이고 사는 게 최선이죠. 폭력보다 회피와 도주를 모토로 살아가는 생존자도 있겠고요. 그런 생존자는 벙커 몇 개 차려놓고, 아무도 믿지 않고 혼자 살아갈 테고요. 생존자가 워낙 없어서 아예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허공에다 칼을 긋거나 총을 쏠 수야 없지 않겠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아포칼립스가 아비규환 난리법석 싸움판을 다루기에 좋다는 거야 분명한 사실입니다.
[세상이 천지개벽하는 모습과 기상천외한 발상도 SF의 본질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재미에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보는 독자도 많습니다. SF 창작물은 자고로 세상 뒤집기를 좋아합니다. 그게 내부 심리든 외부 우주든 간에 발상의 전환을 시도합니다. 독자는 그런 이야기를 읽고, 인식의 지평선이 넓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SF 소설을 사변소설로 부르는 겁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세상 뒤집기의 궁극에 도달합니다. 말 그대로 인류 문명이, 아니, 때로는 우주조차 홀라당 망하니까요. 망했으니까 이전과 전혀 다른 뭔가가 튀어나오겠죠. 그게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작가들도, 독자들도 상상하는 바가 각자 다릅니다. 민주주의가 모두 사라지고, 대륙 천지에 군사 정권들이 득실거릴 수 있습니다. 그 동안 뭍에서 살았던 인간이 육지를 버리고 바다에서 살아가야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멸망 이전과 다름 없이 깔끔하고 조용하게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천지가 격변하고,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육지가 바다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기상천외한 과학적 상상력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전혀 다른 각도로 조명합니다.
밑도 끝도 없는 암울함 때문에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여부를 떠나, 그냥 단순히 비극적인 것을 접하고 싶다는 마음이죠. 사람이 항상 밝고 활기찬 면만 보고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비극은 희극을 위한 자양분이 될 수 있습니다. 어둡고 불쾌한 이야기는 도리어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부정함을 분출하는 한 가지 방법이죠. 뚫어뻥으로 막힌 변기를 뚫듯이 카타르시스를 통해 자기 내면의 꽉 막힌 부분을 비우는 행위입니다. 변기가 더럽다고 해서 화장실 없는 집을 만들 수야 없잖아요. 냄새가 좀 나긴 해도 시원하게 뒷일을 볼 공간이 필요하죠.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그런 심리적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활용할만한 창작물이 비단 묵시록 장르만 있는 게 아닙니다. 공포물이나 다크 판타지, 디스토피아도 얼마든지 뒷일을 볼 수 있어요. 포스트 아포칼립스 중에는 사실 디스토피아랑 별로 구분이 안 가는 것도 있고요. 허나 둘째 문단에서 말했듯 아포칼립스는 세계 멸망이라서 디스토피아와 암울함의 정도가 남다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중에는 펑크가 끼어든 것도 많습니다. 세계가 멸망한 원인이 있을 테고, 그런 원인은 과학 기술일 수 있습니다. 정점에 다다른 과학 기술이 멸망 상황에서 변질되면, 얼마 못 가서 펑크로 이어지겠죠. 핵전쟁 아포칼립스에 뉴클리어펑크가 끼어들거나, 생태학적 재난 때문에 바이오펑크가 되거나, 기술 수준이 후퇴해 스팀펑크가 되는 식입니다. 뉴클리어펑크에서는 사람들이 죄다 방독면 쓰고, 방호복 입고, 가이거 계수기를 차고, 배낭에 깨끗한 물과 각종 약품을 구비하겠죠. 이런 식의 코스플레이도 자주 벌어집니다. 바이오펑크에서는 웬 돌연변이 괴물들이 설치면서 서민들을 괴롭힙니다. 특정 독소나 질병 때문에 생긴 돌연변이일 수도 있고,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뛰쳐나온 피조물일 수도 있죠. 평소라면 군대/경찰이 때려잡았을 테지만, 그런 게 없으니 아주 물 만난 생선처럼 날뜁니다. 스팀펑크에서는 진공관 컴퓨터를 쓰거나, 태엽 로봇이 움직이거나, 증기 기관 열차가 달릴 겁니다. 전기와 석유가 부족하니, 별 수 있나요.
[세상이 망했으니, 기술도 이상하게 변질되겠고, 자연히 펑크로 흘러갑니다.]
이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여러 미덕을 갖추었습니다. 어둡고 광기에 절었으며, 생존 본능을 강렬하게 자극하고, 세상이 화끈하게 뒤집어지고, 과학 기술을 다양하게 변조합니다. 무엇보다 싸움과 약탈이 만연해서 폭력적인 일탈을 선사합니다. 아마 이 마지막 미덕이 제일 클 것 같습니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아주 대호평이던데, 위에서 언급한 미덕을 아주 골고루 충족하죠. 그저 액션이 대단하다는 이유로 그만큼 인기를 끄는 건 아닐 겁니다. 박력 넘치는 액션도 장점이지만, 작품의 다양한 감성 또한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특히, 그 미칠 것 같은 기운과 갖가지 역겨운 디자인과 서슴 없는 폭력과 날고기 같은 생존 본능은 참…. 유행에 따라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인기가 저조할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런 미덕을 제공하는 만큼,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겠죠. 인류가 정말 멸망하기 전까지.
2015.05.16 16:23:06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사람은 참 많은 제약-시스템에 묶이게 되죠. 학교를 가야 하고, 엄청나게 많은 지식을 외워야 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어야 하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돈을 벌고, 법을 지키고.. 시스템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데,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그 시스템이 무너진 세계라 해방감이 느껴지는 거 아닐까 싶네요. '야생'이니까요. 뭘 해도 체포될 걱정도 없고, '힘겨운 생존자'라는 근사한 명분까지 있으니. 말씀하신 '폭력의 분출구'에는 딱이군요.
어렸을때 <매드맥스2>를 비디오로 보고 나서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그 후 <폴아웃>시리즈가 나왔을때 게임상에서 후반되면 아무리 쓸모가 없더라도 가죽옷과 쏘우드오프 샷건은 늘 가지고 다녔었죠. '도그밋'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문명의 멸망 그 후의 약육강식 시대, 무법자들과 약자들 사이의 한가운데 서있는 외로운 방랑자는 언제봐도 매력적인 소재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