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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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할리퀸 로맨스의 남자 주인공들 중에는 과학자도 있다고 합니다. 할리퀸 로맨스라 하면, 소녀들의 로망이고, 따라서 남자 주인공은 무조건 멋있어야 하는데, 과학자가 남자 주인공이면… 흠, 멋진 과학자라는 뜻이 되겠군요. 소녀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은 대개 재벌 2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직업까지 나오다니 뜻밖이긴 합니다. 다만, 그 묘사라는 게 통상적인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SF물에 나오는 거랑 그리 차이가 없다고 할까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SF물에 흔하디 흔하게 나오는 과학자가 너무 상투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굳어진 정형이 소녀 로맨스에도 이어지는데, 주변에서 실제 과학자를 만나볼 기회가 없는 작가들의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과학자란 인물의 제대로 된 모습을 알려면 지인으로 사귀어야 하는데, 이 직업군은 소수라서 찾아보기 힘들죠. 그러니 흔히 보는 매체에 의존해야 하는데, 과학자가 제일 많이 나오는 매체를 꼽아보자면… 으음, 그렇게 되는군요.
과학자는 희귀 인종(?)이라 재벌 2세와도 묘사가 다르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남자 주인공 즉, 재벌 2세는 일단 잘 생겼습니다. 꽃미남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소녀가 꿈꾸는 남자라면 외모가 되어야죠. 예쁘면 용서한다는 말은 여자에게만 통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옷도 잘 입습니다. 그냥 좋은 옷 입는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탈리아 수제 명품 양복과 구두를 걸쳐야죠. 그리고 그런 옷을 걸치려면 부자여야 합니다. 섬 하나쯤은 통째로 빌리는 게 예사. 헌데 과학자란 직업은 이것과 좀 거리가 멀지 않나요? 얼굴이야 뭐, 예, 잘 생겼다고 칩시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 방송을 맡았을 때는 영국 부인들의 시선이 온통 쏠렸다고도 하니까요. 하지만 명품 옷으로 들어가면 슬슬 재벌 2세와 차이가 나기 시작합니다. 토니 스타크쯤 되면 모를까 과학자에겐 연구비마저 빠듯합니다. 이탈리아 수제 구두를 신을 돈이 있다면 연구비로 충당하겠죠. 그래서 그런지 로맨스 소설에도 과학자는 평소 꾸밈새에 신경을 안 쓴다고 하더군요. 어쩌다 외출복으로 입어도 그냥 평범한 캐주얼이 보통. 섬은 고사하고 별장이나 제대로 빌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남자가 어떻게 소녀의 로망이 될 수 있을까요. 대개 로맨스 소설의 남성 과학자는 열정에 가득하다고 합니다. 비록 얼굴만 잘 생겼을 뿐, 돈도 없고 명품 구두도 없지만,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창의적인 사고와 불타는 열정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합니다. 이런 부류의 로맨스를 읽어본 적이 없는지라 그 뒤에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연구 성공하고 그 덕분에 돈도 많이 벌고, 결과적으로 (소녀들이 감정 이입하는) 여주인공과 잘 먹고 잘 살겠지요. 희한한 건 소녀의 로망과 학구적인 열정은 아무래도 거리가 멀 것 같다는 겁니다. 지금껏 많은 할리퀸 부류를 봤습니다만, 겉모습 허름하고 지식에만 불타는 인물에게 소녀가 꽂히는 경우는 기억에 없네요.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등에선 이 바닥의 대명사로 꼽히는 ‘F4’를 보세요. 위에서 줄줄이 설명한 과학자 타입이랑은 거의 안드로메다 정도의 거리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뷰티풀 마인드>라면 모를까. 하지만 이건 소녀 로맨스에 들어가지도 않죠.
물론 과학자가 나오는 소녀 로맨스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재벌 2세보다 인기가 밑바닥일 테고, 그러니 쉽게 읽어볼 수도 없는 것이겠죠. 좌우지간 그걸 떠나서 과학자 자체가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여성이 머리 좋은 남자에게 끌리는 경우야 있다고는 하나 그게 로망으로까지 승화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