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beast)과 번역문(괴물)

에일리언 시리즈나 프레데터 시리즈에서는 제목과 다르게 크리쳐들을 직접 저런 식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가령, 프레데터를 프레데터라 하지 않고, 대신 사냥꾼이라고 부른다든가 하는 식이지요. 이런 호칭은 영화에서 어떤 분위기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프레데터> 1편에서는 악마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미신이 주는 공포감을 불어넣기 위한 방편이었지요. 이건 나머지 시리즈도 비슷합니다.

<에일리언 3>에서는 독버스터를 가리키는 명칭이 여러 가지로 나오는데, 제일 많이 나오는 명칭이 짐승(Beast)입니다. 짐승이란 말도 분명히 무언가를 비유하는 의미일 겁니다. 주제를 전달하거나 특별한 연출을 위한 장치이죠. 이 짐승이 무얼 뜻하는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에는 두 가지를 상징합니다. 사람들을 습격하는 야생동물로서 짐승, 그리고 성경에 등장하는 용을 상징하는 짐승입니다.

먼저 <에일리언 3>는 어둡고 금욕적인 중세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런데 중세 시대에는 야생동물, 즉 짐승이 사람을 종종 습격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에게 이런 짐승은 악마처럼 보였고 온갖 전설이 생겨났지요. 따라서 독버스터를 짐승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지 모릅니다. 야생동물이 한밤중에 사람을 해치듯 독버스터도 그리하니까요.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유일하게 ‘불’을 가지고 맞서 싸우는 걸 보면 그런 느낌이 더합니다. 총과 달리 불은 참으로 원시적인 무기니까요.

다음으로 성경에서 언급한 짐승일 수도 있습니다. 666말입니다. <에일리언 3> 중반부에 보면 에일리언을 용(dragon)이라고 부르는 대목이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목사가 이끄는 사회, 금욕적인 중세 분위기, 리플리의 자기 희생 그리고 용…. 여기에서 용은 분명 성경에 등장하는 악마를 비유하는 말입니다. 너무 과장해서 해석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여러 면면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아요. 종교 이미지를 이토록 내세우는 영화에서 용이란 단어를 어떻게 그냥 흘려보내겠습니까.

이렇듯 <에일리언 3>에서 짐승이란 나름대로 큰 의미를 지녔습니다. 영화 주제를 파악할 때 꼭 필요한 도구인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자막에서는 이를 그냥 괴물로 번역했습니다. 짐승과 괴물, 어감이 너무 다르지 않나요. 이런 부류의 영화에서 ‘괴물’이란 표현은 너무 진부하고 뻔합니다. (제목 자체가 The Thing이나 괴물이라면 모를까요) 짐승이라는 중요한 표현을 아무런 상징도 없는 괴물로 끌어내린 거죠. 자막을 볼 때마다 상당히 걸리더군요. 짐승이라고 번역하는 게 그리 어렵거나 어색한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 야생동물이 사람을 함부로 습격한다는 사실에는 여러 오해가 섞여 있지만, 이 글에서는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