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데시코 외전 : 호넷 - 작가 : Frank
글 수 87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탐사 함대
"선거 때문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서 직접 확인했다고 합니다.
"시기가 너무 좋지 않군."
보고를 받은 햄튼 제독은 그렇게 말한 후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
었다. 장기간의 항해를 통해 이곳에 왔건만 켄타우로스 연방은 내부
사정을 이유로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 같지가 않았다. 차라리
지구에 임무 수행이 불가능함을 통보하고 함대를 철수시키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찰을 중지하고 함대로 복귀하게."
-알겠습니다.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15시 10분. 켄타우로스 뉴햄프턴
"함대로 돌아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게 아닌지요..."
"이해해 주십시오. 저희는 명령에 따라야 하는 입장인지라..."
"알겠습니다. 여러분을 우주로 모실 셔틀을 준비하겠습니다. 일단
공항으로 갑시다."
연방군 장교는 그렇게 말한 후 호텔 밖으로 나갔다. 곧 시찰단원들
은 켄타우로스 연방군이 준비한 버스에 몸을 싣고 공항으로 향하였
다.
"이거 너무 급하게 가는 거 아닙니까?"
"명령은 명령이야. 게다가 저들은 우릴 그리 반기는 게 아닌 것 같
기도 하니..."
시찰을 제대로 시작해야 할 때에 함대로 복귀하게 된 것을 적지
않은 장교들이 아쉬워하는 가운데 버스를 호위하기 위해 동행하던
장갑차가 갑자기 날아온 미사일에 맞아 폭발을 일으키더니 가드 레
일을 들이받았다.
"맙소사?"
"여기는 호송대! 습격을 받았다! 증원 바란다!"
-그리로 기동 타격대가 이동하고 있다. 추가 공격을 받기 전에 빨리
공항으로 가라.
"알았..."
운전을 맡은 연방군 헌병이 대답하려는 찰나 깜짝 놀랄 일이 벌어
졌다. 버스의 진로 앞에 트럭 한 대가 나타나 길을 막은 것이다.
"젠장!"
헌병은 돌파하기로 마음 먹은 듯 그대로 엑셀을 밟았지만, 트럭을
뚫고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충돌시 크
고 작은 충격을 받아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였다.
"으..."
"중령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도 알 수 없네..."
모두들 당황해하는 가운데 버스 문을 뚫고 들어온 서너명의 군인
이 모두에게 총을 겨눈 채 말하였다.
"모두 가만히 있어. 거기 두 사람, 우리를 따라와."
리더처럼 보이는 자가 손가락으로 루리와 케빈을 가리키며 동행할
것을 요구하자 케빈이 물었다.
"납치할 작정인가?"
"그렇다."
그는 케빈의 물음에 그렇게 답하고는 권총식 마취총으로 두 사람
을 기절시킨 후 소리쳤다.
"저 둘만 데리고 가면 된다. 나머지는 내버려 둬."
"당신들 대체 누구요?"
"당신은 대한민국 군인입니까?"
"그렇소."
"나는 예전에 당신네 혈맹의 군인이었소. 그렇게만 아시오. 자 가
자!"
곧 목표인 두 사람의 신변을 확보한 군인들은 즉시 현장을 떠났다.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탐사 함대
"뭐야? 두 사람이 납치당했다고?"
-유감스럽게도...
"이런 망할! 그쪽에선 뭐라고 하던가?"
-최선을 다해 구출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배후에 대한 확인은?"
-조사중이라고 합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 두 사람이 해를 입게 되면 문제가 이만저
만이 아니야. 어떻게든 우리쪽에서도 조사에 착수할 수 있게 손을
쓰게."
-알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두 사람이 납치당했다는 소식은 나데시코에도 전해졌
고, A때부터 함께 움직인 핵심 승조원들은 크게 술렁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루리쨩이 납치당하다니..."
"두 사람 혹시 아키토하고 유리카 함장처럼 해를 입는 건 아닐까?"
"그런 소리는 꺼내지마."
"두 사람이 무사해야 할텐데..."
"이네스씨, 모두가 안심할 수 있게 설명 좀 해주세요."
"좋아요. 먼저 두 사람을 납치할 법한 사람들을 생각해야 되요. 그
들은 대략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죠. 한 쪽은 우리를 매우 싫어
하는 자들, 다른 한 쪽은 그 반대인 사람들이죠."
"예? 어째서 우리를 반기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납치하죠?"
"잘 생각해 보세요. 그간 저들은 100년이 넘게 지구와는 인연이 없
었어요. 덕분에 나름대로 평온함을 유지해 왔겠죠. 그런데 우리의
등장이 그 흐름을 깨버린 거예요. 권력을 유지해온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가 일반에 알려지면 벌어질 혼란과 그로 인한 권력 상실을 바
라지 않을 거예요. 반면에 기존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실권을
가져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면서 동시에 우
리가 기존 권력자들과 별도의 협정을 맺는 걸 바라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겠다는 생각에서 두 사람을 납치한 것
이죠."
"그러면 두 사람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얘기인가요?"
"그렇죠. 저들이 이성적이라면 두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거예
요."
"그러면 루리루리가 돌아올 때까지 함장을 맡을 사람이 필요해요."
"누구에게 맡기죠?"
"함장 대리직이라면 제가..."
"아오이씨보다는 유리카씨가 맡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우린 반대야."
한국 해병대원들이 반대를 표명하자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곧 '고트 호리'가 한국 해병대 장교들 중 가장 상급자인 '임길용' 소
령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어째서 유리카 함장을 반대하는 건가?"
"먼저 나데시코에 승선한 사람들의 신분을 상기해야 합니다. 부부
관계인 사부로 대령과 료코 대위는 UN 상비군의 장교이고, 아오이
준 소령 역시 상비군 해군의 장교입니다. 원칙대로라면 아오이 소령
에게 맡기는 것이 합당합니다."
"임 소령, UN 상비군의 인사 조항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
네. '함장은 부재시에 대비하여 대리를 지명할 수 있으며 상황 발생
시 대리자는 모든 권한을 대행할 수 있다.'"
"이쪽의 견해도 결코 뒤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
"거기에 대비하고자 다음의 조항이 있습니다. '대리 자격을 지닌 자
가 두 명 이상일 경우 해당자들이 합의하에 대리 자격 이행자를 선
출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좋아. 그러면 두 사람이 합의하게."
"네?"
"함장직을 대행할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겠나?"
"저, 저는..."
"아오이 소령, 무얼 망설이나. 빨리 해야하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곧 두 사람은 마주 본 채 얘기하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하면 좋지?"
"함장직은 당연히 내가 맡아야 하지 않겠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엄연히 군인인 내가 맡아야 해."
"그러면 가위, 바위, 보로 정하자."
"뭐, 뭐야?"
"빨리 대리를 뽑아야 하잖아?"
"흠... 좋아."
곧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가위, 바위, 보를 시작하였
다. 처음엔 둘 다 가위를 내었고, 두 번 째에도 바위를 동시에 냈다.
결국 결판이 난 것은 세 번 째에서 였다. 유리카가 이긴 것이다.
"이겼다~!"
"유리카 함장~."
핵심 멤버들이 유리카를 헹가래 해주며 축하해주는 가운데 죽상을
지은 아오이 주위에 모인 한국 해병대원들이 위로해주듯 말하였다.
"소령님, 걱정마세요. 언젠가 또 기회가 올 겁니다."
"우린 끝났... 저런 나태한 함장 밑에서 싸우다간 제 명도 못 채우고
저 세상으로 가고도 남을거란 말이야."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19시 20분. 켄타우로스 프레즈너
"..."
루리는 의식이 반쯤 몽롱한 상태에서 눈을 떴다. 모든 것이 흐릿하
게 보이는 가운데 그녀는 옆으로 시선을 돌린 후 소파에 눕힌 채
잠들어 있는 남편을 확인하자 안도하였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들어
왔다.
"이제 정신이 드나?"
"당신은?"
"곧 내 소개를 하겠네. 여보게 중위, 자는 척 하지 말게. 내 눈은 못
속여."
"이런 금방 들통났군요."
"내 소개를 하기로 하지. 내가 바로..."
"알고 있습니다. 미 육군 3보병사단의 마지막 사단장인 '찰스 헤스
턴' 소장님이시죠."
"잘 알고 있군. 이렇게 해서라도 두 사람을 만나고 싶었네. 내 행동
이 불쾌했다면 사과하지."
"괜찮습니다."
"저도..."
"고맙네. 저간의 설명을 해줘야 하겠지?"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그렇게 답하니 기분이 좋군. 자네들도 예상했겠지만 우리는 태양계
를 떠나서 여기에다 나라를 세웠네. 매우 '괜찮은 나라'를 말일세."
"왜 하필 태양계를 떠나신 겁니까? 월면 독립파와 함께 행동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을텐데..."
"본국에선 자네에게 아무런 사실도 얘기해주지 않았나?"
"무얼 말입니까?"
"월면 독립파는 그 뿌리를 살펴보면 일본의 극우 집단과 연결되어
있네. 지구 연합 창설과 동시에 국제적 영향력을 증대하는데 성공한
일본의 정계와 일반 국민들이 극단주의에 흥미를 잃자 일본 극우의
한 파벌이 월면 독립 여론을 부추기고 다녔지. 자기들 나름대로의
공영권을 만들어 보기 위한 첫 발판으로 말일세. 잘 알테지만 그들
은 민중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아니었어. 망상에 가까운 대동아
공영권에 사로잡힌 독재 세력일 뿐이었지."
"예견하셨겠지만 그들이 세운 나라는 그 때문에 패망했습니다."
"어느 나라인가?"
"목성 연합입니다."
"일본은?"
"추락했습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그쪽 인사들에게 그렇게 경고했건만... 조국은 어
떻게 됐나?"
"태양계의 패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20세기 때처럼?"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때와 같은 행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바보들..."
"그나저나 이 나라는 어떻게 세우신 겁니까?"
"갖은 고생을 하면서 세웠지. 이 영상을 보게나."
헤스턴은 그렇게 말한 후 다용도 영상 재생기에 저장 매체를 집어
넣은 후 이를 재생시켰다. 곧 방 안이 어두워지면서 전체가 화면으
로 뒤덮였다. 마치 입체 극장처럼. 화면에 처음 나온 것은 가도 가
도 끝을 알 수 없는 밀림 뿐이었다. 그 위에 기화 폭탄을 터뜨려 공
터를 확보한 후 착륙한 이민선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내려와 불도저
를 비롯한 중장비로 땅을 다지는 장면이 나온 후 다음에 펼쳐진 것
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풍토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고생이 심했군요."
"우린 종교의 자유를 얻으려고 북미에 터를 잡았던 청교도들보다도
심한 고생을 했었네. 그때보다도 과학과 의료 기술이 발전되었다지
만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건국 초기엔 1000만명이던 인구가
800만명으로 줄었지... 그런 와중에 우리는 그들을 만났지. 이곳 행
성의 원주민들을 말일세."
"뉴햄프턴에서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관계된 일로 다
투는 것을..."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좀 더 신경을 써 주었어야 하는 건데... 우리
를 괴롭히던 풍토병에 대한 항체를 찾기 위해 그들의 도움을 받았
지. 우리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들은 우리로부터
사정을 듣자 기꺼이 자원해 주었다네. 그때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강했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원치 않았던 일이 벌어지더
군."
"노예제도 말씀입니까?"
"그래. 바로 그거였어. 그걸 실행에 옮긴 자들은 내가 집단을 이끄
는 것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었네. 이 행성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적지 않은 물자를 가지고 첫 착륙지를 떠나 서쪽으로 가더군... 그들
을 강제로 막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또 한 차례의 분쟁으
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걸 막기 위해서 묵인해야만 했지. 공교롭
게도 그들은 월면 독립파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일본계 이민자들
이었네."
"장군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에 만족한 이들은..."
"대부분 월면 독립파의 주장에 별 흥미가 없었던 유럽계와 중국, 한
국계였네. 그들은 월면 독립을 원치 않았는데도 강제적으로 분쟁에
휘말려서 이리로 쫓겨온 순수한 피해자들이었어."
"왜 태양계를 떠나셔야 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러면 3사단의 생존자들은..."
"고맙게도 모두 나를 등지지 않았네. 그들이 이 나라에서 가장 지각
있는 정치 집단을 형성하고 있지. 문제는 일본계의 영향력이 강한
서부야. 현실적 필요성에 따라 그들이 연방에 잔류하고 있지만, 내
가 다시 집권하게 되면 그들은 분리 독립을 외칠 걸세. 듣자하니 그
들 중 일부는 지구를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군."
"맙소사? 그건 절대로 안돼요."
루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헤스턴 소장은 한 숨을
쉬며 말하였다.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이 이 모양이네. 물질적으론 훌륭하지만, 그것
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게 하는데 필요한 정신적 소양은 한참 밑
바닥이야."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대통령에 반드시 당선되어서 노예제를 폐지시킬 걸세. 지구 각국과
평화 협정을 맺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지. 그러기 위해선 자네들
의 역할이 중요하네."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생각같아선 상황 발생시 자네들의 무력을 빌리고 싶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중립을 지켜주게. 나는 그렇다쳐도 서부가 이기기를
바라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목성 연합 강경파와 뿌리를 공유하는 자들의 집단이라
면 지구 각국에게도 적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백만 대군을 얻은 기분이로군... 이 디스크를 자네
상관들에게 갖다주게. 그들도 자네처럼 생각하게 될 거야."
"선거 때문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서 직접 확인했다고 합니다.
"시기가 너무 좋지 않군."
보고를 받은 햄튼 제독은 그렇게 말한 후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
었다. 장기간의 항해를 통해 이곳에 왔건만 켄타우로스 연방은 내부
사정을 이유로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 같지가 않았다. 차라리
지구에 임무 수행이 불가능함을 통보하고 함대를 철수시키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찰을 중지하고 함대로 복귀하게."
-알겠습니다.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15시 10분. 켄타우로스 뉴햄프턴
"함대로 돌아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게 아닌지요..."
"이해해 주십시오. 저희는 명령에 따라야 하는 입장인지라..."
"알겠습니다. 여러분을 우주로 모실 셔틀을 준비하겠습니다. 일단
공항으로 갑시다."
연방군 장교는 그렇게 말한 후 호텔 밖으로 나갔다. 곧 시찰단원들
은 켄타우로스 연방군이 준비한 버스에 몸을 싣고 공항으로 향하였
다.
"이거 너무 급하게 가는 거 아닙니까?"
"명령은 명령이야. 게다가 저들은 우릴 그리 반기는 게 아닌 것 같
기도 하니..."
시찰을 제대로 시작해야 할 때에 함대로 복귀하게 된 것을 적지
않은 장교들이 아쉬워하는 가운데 버스를 호위하기 위해 동행하던
장갑차가 갑자기 날아온 미사일에 맞아 폭발을 일으키더니 가드 레
일을 들이받았다.
"맙소사?"
"여기는 호송대! 습격을 받았다! 증원 바란다!"
-그리로 기동 타격대가 이동하고 있다. 추가 공격을 받기 전에 빨리
공항으로 가라.
"알았..."
운전을 맡은 연방군 헌병이 대답하려는 찰나 깜짝 놀랄 일이 벌어
졌다. 버스의 진로 앞에 트럭 한 대가 나타나 길을 막은 것이다.
"젠장!"
헌병은 돌파하기로 마음 먹은 듯 그대로 엑셀을 밟았지만, 트럭을
뚫고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충돌시 크
고 작은 충격을 받아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였다.
"으..."
"중령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도 알 수 없네..."
모두들 당황해하는 가운데 버스 문을 뚫고 들어온 서너명의 군인
이 모두에게 총을 겨눈 채 말하였다.
"모두 가만히 있어. 거기 두 사람, 우리를 따라와."
리더처럼 보이는 자가 손가락으로 루리와 케빈을 가리키며 동행할
것을 요구하자 케빈이 물었다.
"납치할 작정인가?"
"그렇다."
그는 케빈의 물음에 그렇게 답하고는 권총식 마취총으로 두 사람
을 기절시킨 후 소리쳤다.
"저 둘만 데리고 가면 된다. 나머지는 내버려 둬."
"당신들 대체 누구요?"
"당신은 대한민국 군인입니까?"
"그렇소."
"나는 예전에 당신네 혈맹의 군인이었소. 그렇게만 아시오. 자 가
자!"
곧 목표인 두 사람의 신변을 확보한 군인들은 즉시 현장을 떠났다.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탐사 함대
"뭐야? 두 사람이 납치당했다고?"
-유감스럽게도...
"이런 망할! 그쪽에선 뭐라고 하던가?"
-최선을 다해 구출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배후에 대한 확인은?"
-조사중이라고 합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 두 사람이 해를 입게 되면 문제가 이만저
만이 아니야. 어떻게든 우리쪽에서도 조사에 착수할 수 있게 손을
쓰게."
-알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두 사람이 납치당했다는 소식은 나데시코에도 전해졌
고, A때부터 함께 움직인 핵심 승조원들은 크게 술렁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루리쨩이 납치당하다니..."
"두 사람 혹시 아키토하고 유리카 함장처럼 해를 입는 건 아닐까?"
"그런 소리는 꺼내지마."
"두 사람이 무사해야 할텐데..."
"이네스씨, 모두가 안심할 수 있게 설명 좀 해주세요."
"좋아요. 먼저 두 사람을 납치할 법한 사람들을 생각해야 되요. 그
들은 대략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죠. 한 쪽은 우리를 매우 싫어
하는 자들, 다른 한 쪽은 그 반대인 사람들이죠."
"예? 어째서 우리를 반기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납치하죠?"
"잘 생각해 보세요. 그간 저들은 100년이 넘게 지구와는 인연이 없
었어요. 덕분에 나름대로 평온함을 유지해 왔겠죠. 그런데 우리의
등장이 그 흐름을 깨버린 거예요. 권력을 유지해온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가 일반에 알려지면 벌어질 혼란과 그로 인한 권력 상실을 바
라지 않을 거예요. 반면에 기존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실권을
가져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면서 동시에 우
리가 기존 권력자들과 별도의 협정을 맺는 걸 바라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겠다는 생각에서 두 사람을 납치한 것
이죠."
"그러면 두 사람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얘기인가요?"
"그렇죠. 저들이 이성적이라면 두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거예
요."
"그러면 루리루리가 돌아올 때까지 함장을 맡을 사람이 필요해요."
"누구에게 맡기죠?"
"함장 대리직이라면 제가..."
"아오이씨보다는 유리카씨가 맡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우린 반대야."
한국 해병대원들이 반대를 표명하자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곧 '고트 호리'가 한국 해병대 장교들 중 가장 상급자인 '임길용' 소
령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어째서 유리카 함장을 반대하는 건가?"
"먼저 나데시코에 승선한 사람들의 신분을 상기해야 합니다. 부부
관계인 사부로 대령과 료코 대위는 UN 상비군의 장교이고, 아오이
준 소령 역시 상비군 해군의 장교입니다. 원칙대로라면 아오이 소령
에게 맡기는 것이 합당합니다."
"임 소령, UN 상비군의 인사 조항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
네. '함장은 부재시에 대비하여 대리를 지명할 수 있으며 상황 발생
시 대리자는 모든 권한을 대행할 수 있다.'"
"이쪽의 견해도 결코 뒤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
"거기에 대비하고자 다음의 조항이 있습니다. '대리 자격을 지닌 자
가 두 명 이상일 경우 해당자들이 합의하에 대리 자격 이행자를 선
출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좋아. 그러면 두 사람이 합의하게."
"네?"
"함장직을 대행할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겠나?"
"저, 저는..."
"아오이 소령, 무얼 망설이나. 빨리 해야하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곧 두 사람은 마주 본 채 얘기하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하면 좋지?"
"함장직은 당연히 내가 맡아야 하지 않겠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엄연히 군인인 내가 맡아야 해."
"그러면 가위, 바위, 보로 정하자."
"뭐, 뭐야?"
"빨리 대리를 뽑아야 하잖아?"
"흠... 좋아."
곧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가위, 바위, 보를 시작하였
다. 처음엔 둘 다 가위를 내었고, 두 번 째에도 바위를 동시에 냈다.
결국 결판이 난 것은 세 번 째에서 였다. 유리카가 이긴 것이다.
"이겼다~!"
"유리카 함장~."
핵심 멤버들이 유리카를 헹가래 해주며 축하해주는 가운데 죽상을
지은 아오이 주위에 모인 한국 해병대원들이 위로해주듯 말하였다.
"소령님, 걱정마세요. 언젠가 또 기회가 올 겁니다."
"우린 끝났... 저런 나태한 함장 밑에서 싸우다간 제 명도 못 채우고
저 세상으로 가고도 남을거란 말이야."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19시 20분. 켄타우로스 프레즈너
"..."
루리는 의식이 반쯤 몽롱한 상태에서 눈을 떴다. 모든 것이 흐릿하
게 보이는 가운데 그녀는 옆으로 시선을 돌린 후 소파에 눕힌 채
잠들어 있는 남편을 확인하자 안도하였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들어
왔다.
"이제 정신이 드나?"
"당신은?"
"곧 내 소개를 하겠네. 여보게 중위, 자는 척 하지 말게. 내 눈은 못
속여."
"이런 금방 들통났군요."
"내 소개를 하기로 하지. 내가 바로..."
"알고 있습니다. 미 육군 3보병사단의 마지막 사단장인 '찰스 헤스
턴' 소장님이시죠."
"잘 알고 있군. 이렇게 해서라도 두 사람을 만나고 싶었네. 내 행동
이 불쾌했다면 사과하지."
"괜찮습니다."
"저도..."
"고맙네. 저간의 설명을 해줘야 하겠지?"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그렇게 답하니 기분이 좋군. 자네들도 예상했겠지만 우리는 태양계
를 떠나서 여기에다 나라를 세웠네. 매우 '괜찮은 나라'를 말일세."
"왜 하필 태양계를 떠나신 겁니까? 월면 독립파와 함께 행동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을텐데..."
"본국에선 자네에게 아무런 사실도 얘기해주지 않았나?"
"무얼 말입니까?"
"월면 독립파는 그 뿌리를 살펴보면 일본의 극우 집단과 연결되어
있네. 지구 연합 창설과 동시에 국제적 영향력을 증대하는데 성공한
일본의 정계와 일반 국민들이 극단주의에 흥미를 잃자 일본 극우의
한 파벌이 월면 독립 여론을 부추기고 다녔지. 자기들 나름대로의
공영권을 만들어 보기 위한 첫 발판으로 말일세. 잘 알테지만 그들
은 민중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아니었어. 망상에 가까운 대동아
공영권에 사로잡힌 독재 세력일 뿐이었지."
"예견하셨겠지만 그들이 세운 나라는 그 때문에 패망했습니다."
"어느 나라인가?"
"목성 연합입니다."
"일본은?"
"추락했습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그쪽 인사들에게 그렇게 경고했건만... 조국은 어
떻게 됐나?"
"태양계의 패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20세기 때처럼?"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때와 같은 행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바보들..."
"그나저나 이 나라는 어떻게 세우신 겁니까?"
"갖은 고생을 하면서 세웠지. 이 영상을 보게나."
헤스턴은 그렇게 말한 후 다용도 영상 재생기에 저장 매체를 집어
넣은 후 이를 재생시켰다. 곧 방 안이 어두워지면서 전체가 화면으
로 뒤덮였다. 마치 입체 극장처럼. 화면에 처음 나온 것은 가도 가
도 끝을 알 수 없는 밀림 뿐이었다. 그 위에 기화 폭탄을 터뜨려 공
터를 확보한 후 착륙한 이민선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내려와 불도저
를 비롯한 중장비로 땅을 다지는 장면이 나온 후 다음에 펼쳐진 것
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풍토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고생이 심했군요."
"우린 종교의 자유를 얻으려고 북미에 터를 잡았던 청교도들보다도
심한 고생을 했었네. 그때보다도 과학과 의료 기술이 발전되었다지
만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건국 초기엔 1000만명이던 인구가
800만명으로 줄었지... 그런 와중에 우리는 그들을 만났지. 이곳 행
성의 원주민들을 말일세."
"뉴햄프턴에서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관계된 일로 다
투는 것을..."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좀 더 신경을 써 주었어야 하는 건데... 우리
를 괴롭히던 풍토병에 대한 항체를 찾기 위해 그들의 도움을 받았
지. 우리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들은 우리로부터
사정을 듣자 기꺼이 자원해 주었다네. 그때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강했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원치 않았던 일이 벌어지더
군."
"노예제도 말씀입니까?"
"그래. 바로 그거였어. 그걸 실행에 옮긴 자들은 내가 집단을 이끄
는 것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었네. 이 행성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적지 않은 물자를 가지고 첫 착륙지를 떠나 서쪽으로 가더군... 그들
을 강제로 막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또 한 차례의 분쟁으
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걸 막기 위해서 묵인해야만 했지. 공교롭
게도 그들은 월면 독립파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일본계 이민자들
이었네."
"장군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에 만족한 이들은..."
"대부분 월면 독립파의 주장에 별 흥미가 없었던 유럽계와 중국, 한
국계였네. 그들은 월면 독립을 원치 않았는데도 강제적으로 분쟁에
휘말려서 이리로 쫓겨온 순수한 피해자들이었어."
"왜 태양계를 떠나셔야 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러면 3사단의 생존자들은..."
"고맙게도 모두 나를 등지지 않았네. 그들이 이 나라에서 가장 지각
있는 정치 집단을 형성하고 있지. 문제는 일본계의 영향력이 강한
서부야. 현실적 필요성에 따라 그들이 연방에 잔류하고 있지만, 내
가 다시 집권하게 되면 그들은 분리 독립을 외칠 걸세. 듣자하니 그
들 중 일부는 지구를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군."
"맙소사? 그건 절대로 안돼요."
루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헤스턴 소장은 한 숨을
쉬며 말하였다.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이 이 모양이네. 물질적으론 훌륭하지만, 그것
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게 하는데 필요한 정신적 소양은 한참 밑
바닥이야."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대통령에 반드시 당선되어서 노예제를 폐지시킬 걸세. 지구 각국과
평화 협정을 맺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지. 그러기 위해선 자네들
의 역할이 중요하네."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생각같아선 상황 발생시 자네들의 무력을 빌리고 싶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중립을 지켜주게. 나는 그렇다쳐도 서부가 이기기를
바라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목성 연합 강경파와 뿌리를 공유하는 자들의 집단이라
면 지구 각국에게도 적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백만 대군을 얻은 기분이로군... 이 디스크를 자네
상관들에게 갖다주게. 그들도 자네처럼 생각하게 될 거야."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