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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데시코 외전 : 호넷 - 작가 : Frank
글 수 87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13시 30분. 켄타우로스 세컨드 뉴욕
"각하, 국부께서 권한 방법이 과연 효과적일지 걱정됩니다."
"하지만 지금 까지 올라온 보고로는 저들이 멋지게 속아 넘어 가고
있다고 하지 않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야지요. 언제까지 그런 위장책에만 골몰해서
는 안 됩니다. 우리 입장을 분명히 밝혀둬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외교에 있
어서 가장 큰 무기는 저쪽으로 하여금 이쪽의 힘을 과대 평가하도
록 하는 것에 있습니다. 국부께서 우리에게 권한 방법은 그 점에서
매우 성공적입니다."
"그래도 저는 두려움을 씻어내기가 힘듭니다..."
그렇게 말한 후 국방장관인 '제라드 클랜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씻은 후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모어 대통령은 이쯤에
서 지구에서 보낸 사절들에 대한 논의를 중지시킬 필요성을 느끼고
는 좌중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자, 이쯤에서 지구에서 온 손님들에 대한 논의는 접어둡시다. 그러
면 조만간 있을 뉴 텍사스의 주 승격 문제로 넘어갑시다. 그러면 의
회를 제외했을 때 1차 관계자가 되는 내무부 장관이 이 문제에 대
해 발언하시오."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뉴 텍사스는 정식 주로 승격되는 데 필요
한 최소 인구인 200만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여러 산업 생산력에
서부터 소득 수준 까지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만, 유일한 문제는 이
주가 노예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있습니다."
"뉴 텍사스는 연방의 동남부의 맨 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지역
에 대한 연방의 영향력 향상을 위해서라면 뉴 텍사스가 노예제를
반대해야 합니다."
"그 반대라면?"
"당연히 우리 연방의 영향력 증대를 반대하는 서부의 입김이 그쪽
으로도 작용할 겁니다."
"적어도 노예제 문제에 관해서는 각 주의 의사에 맡기게 되어 있지
만, 이것이 연방의 영향력 확대 여부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이 우스울 따름입니다."
"아무런 권리도 없는 노예들이 정가에서 자주 거론되는 논란의 핵
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대통령의 노예에 대한 언급에 각료들은 하나 같이 헛기침을 하였
다. 그들 자신이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표시였
다. 사실, 노예제를 반대하는 정치가들은 결코 드물지 않았다. 그리
고 그것의 부당성을 자주 언급했다. 하지만, 행동에 나서는 이는 전
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행동이 가져다 줄 결과를 감당해낼 자
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개척 초기와 비교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게 된 유권자들이 노예 해방 정책이 현실화 될 경우 빚어질지
모를 서부와 동부의 내전을 매우 두려워 한다는 것도 노예 해방 정
책이 상정되는 것을 막는 한 요인이었다. 유권자들 중 대다수가 노
예 제도의 부당함을 잘 알고 있었고, 또 그러한 문제를 고발하는 뉴
스와 시사 프로그램에 적지 않게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폐지하는데
수반될 내전이 자기 앞마당에서 벌어질지 모른다면 과연 얼마나 찬
성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나라는 건국된 이후로 어느 누구의 침입도 받지 않은
채 계속 성장해 왔고, 군사력도 거기에 비례하듯 그 덩치를 키어왔
다. 한편으론 노예 제도와 같은 몇몇 부조리함을 제외한다면 문제
없이 지속된 평화에 지쳐버린 사람들은 무언가로 인해 촉발될 지
모를 전쟁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어 대통령은 대국적
인 견지에서 이 나라의 미래를 상상하게 되자 큰 유혹에 빠지지 않
을 수 없었다. 만에 하나 국부인 헤스턴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
어 노예 제도 폐지를 천명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게 되면 거기에
반발한 서부가 연방 탈퇴를 선언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맞서 동부는 연방 분열을 저지한다는 명분하에 군대
를 일으킬 것이고 이로 인해 촉발된 내전이 켄타우로스에 큰 피해
를 안겨주리라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대신 동부
가 이기게 된다면 연방은 매우 강력해 질 수 있는 여지를 얻음으로
서 훗날 인류 사회의 강력한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성공할 수만 있다면 해볼만한 일이 아닌가? 국부, 당신만 믿겠습니
다!'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14시 30분. 켄타우로스 뉴햄프턴
"뭐야? 자네 둘이 밖에 다녀오겠다고?"
"네. 이대로 죽치고 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됩니다. 누군가가 직접 밖
으로 나가서 이곳 상황을 확인해야 합니다."
"..."
시찰단에 속한 이들 중 계급이 가장 높은 한국 해병대의 '문성철'
중령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음을 던졌다.
"대체 어떻게 호텔 밖으로 나가겠다는 건가? 그들의 감시가 철저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나?"
"물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저들의 경비가 허술한 데가 한 둘이 아닙니다. 그 중요도가 높은
우리들이 와 있는데도 주위 경계를 크게 강화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버스를 타고 이리로 오면서 공장 경비를 위해
배치된 것처럼 보이는 군인들의 행동을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는데
평시 근무자가 보일 수 있는 몸짓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장
갑차들은 유일한 무장인 중기관총에 아예 총알이 든 박스를 붙여두
지도 않았습니다. 즉, 그들은 외부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 일부러 보안 태세를 평시 상태로 유지하도록 조치한 것입니
다. 아마도 그들 스스로 언급한 민감한 시기 때문일 겁니다."
"과연 그럴만도 해. 문 중령님, 무사 복귀가 가능하다면 저는 찬성
입니다."
장교 한 명이 거들자 문 중령은 잠시 헛 기침을 한 후 말하였다.
"좋아. 두 사람의 억세게 강한 운을 믿어보기로 하지. 하지만 만에
하나 일이 터지면..."
"전적으로 저희의 책임입니다."
"행운을 빌겠네."
얼마 후 케빈과 루리는 헛점이 드러난 감시망을 뚫고 밖으로 나가
게 되었다. 물론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리 가져
온 평상복을 입는 것도 잊지 않았었다.
"이렇게 밖으로 나오니까 기분이 묘하네요."
"그러게 말이야."
곧 루리는 케빈과 손을 맞잡은 후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
였다.
"이렇게 걷는 것 참 오랜만이죠?"
"그러게 말이야."
길지 않은 시간이 흘러 어느 식기점 앞에 서게 된 두 사람은 서로
의 얼굴을 바라보며 얘기하였다.
"한 번 들어가 볼까?"
"좋아요."
케빈은 곧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간 후 말하였다.
"계십니까?"
"어서오세요."
"!"
두 사람은 계산대에서 자신들에게 인사한 가게 여주인의 옷차림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옷차림이 왜 그렇습니까?"
"네? 아, 이 옷 말씀이시군요... 실은 저희 집안이 영국계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번거롭게 설명할 필요 없이 빅토리아 시대 하녀복을 입
은 거랍니다."
그렇게 말한 후 여주인은 가볍게 웃은 후 말하였다.
"두 분, 구경하러 오신 거죠?"
"네?"
"호호호, 겉보기엔 어려 보일테지만 이래 뵈도 10년 이나 장사를 해
온 어엿한 주부랍니다. 손님들이 오면 물건을 사러 오신 것인지, 아
니면 구경을 하러 오신 건지는 단박에 알 수 있지요."
여주인의 말에 두 사람은 뒤늦게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스스로가 지구의 전유물로만 여기던 생명 공학 기술과 관련해 켄타
우로스도 결코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가게의 여주인은
그러한 기술 발전의 혜택을 받은 이들 중 한 명이었던 셈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들러야 할 곳이 많거든요."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도 꼭 들러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두 사람이 가게를 나서고 나서 여주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
하였다.
"두 사람, 그 분과 만나시기 전까지 많이 구경해 두세요. 그게 바로
우리의 바람이랍니다."
두 사람은 멎적은 표정을 지으면서 얘기하였다.
"그 아주머니,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 들지 않으세요?"
"뭐가? 내 눈엔 그저 친절해 보였던 걸."
"그러니까 말이에요. 마치 예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우릴 대하는
게..."
루리가 자기가 품은 의문에 대해 마저 말하려는 순간 사람들이 어
딘가로 우루르 몰려가기 시작하였다.
"아니, 대체 왜들 저러는 겁니까?"
"노예 반대파하고 찬성파간에 충돌이 벌어졌대요. 다들 그걸 구경하
러 가는 겁니다."
지나가던 행인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진 두 사람은 곧 사람들이
몰려간 곳으로 향하였고,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노예 제도 철폐하라! 철폐하라!"
"자유의 이름, 더럽힌다! 노예 제도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그와 같은 구호를 외치고 플렛카드를 흔드는 사람들에 맞서 반대
쪽도 같은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노예는 재산일뿐 인간이 아니다!"
"노예 없인 서부 농업 없고, 서부 농업 없인, 식량도 없다!"
"자유를 들먹여 노동 착취 숨기지 말라!"
선두에 서 있던 양측의 시위 참가자들이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가운데 두 사람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 노인이 탄식조로 말하였
다.
"말세야. 말세...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갈는지..."
"..."
그 말을 듣고 잠시 노인에게 시선을 돌린 케빈은 곧 루리의 손을
잡은 후 인파를 헤치며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어디로 가려는 거예요?"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자. 우린 있어봤자 아무 소용도 없어."
"하, 하지만..."
"내가 하자는 대로 해."
곧 두 사람은 인파를 계속 헤치고 나아간 끝에 밖으로 나올 수 있
었다.
"미안, 방금전의 일로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아니요. 당신은 당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에 따른 것 뿐이
에요. 오히려 저는 당신에게 감사해요."
"루리..."
"당신, 이대로 있으실 거예요? 이제 다른 곳으로 같이 가요."
루리가 먼저 뛰어가다가 되돌아 보며 말하자 케빈은 그 뒤를 따랐
다.
"아가씨, 저들의 안전은?"
"당신에게 일임하겠습니다. 책임지고 저 두 사람을 보호하세요."
"네."
광장을 살펴보기 좋은 장소에서 두 사람을 확인한 긴 생머리의 소
녀는 벨이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을 귀에 갖다댄 후 말하였다.
"여보세요? 할아버지? 네, 아무 일 없었어요. 그 두 사람은 조만간
호텔로 들어갈 거예요. 네. 안전은 걱정하지 마세요. 두 사람을 빨리
만나고 싶다구요? 제가 어떻게든 틈을 노려볼게요."
"각하, 국부께서 권한 방법이 과연 효과적일지 걱정됩니다."
"하지만 지금 까지 올라온 보고로는 저들이 멋지게 속아 넘어 가고
있다고 하지 않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야지요. 언제까지 그런 위장책에만 골몰해서
는 안 됩니다. 우리 입장을 분명히 밝혀둬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외교에 있
어서 가장 큰 무기는 저쪽으로 하여금 이쪽의 힘을 과대 평가하도
록 하는 것에 있습니다. 국부께서 우리에게 권한 방법은 그 점에서
매우 성공적입니다."
"그래도 저는 두려움을 씻어내기가 힘듭니다..."
그렇게 말한 후 국방장관인 '제라드 클랜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씻은 후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모어 대통령은 이쯤에
서 지구에서 보낸 사절들에 대한 논의를 중지시킬 필요성을 느끼고
는 좌중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자, 이쯤에서 지구에서 온 손님들에 대한 논의는 접어둡시다. 그러
면 조만간 있을 뉴 텍사스의 주 승격 문제로 넘어갑시다. 그러면 의
회를 제외했을 때 1차 관계자가 되는 내무부 장관이 이 문제에 대
해 발언하시오."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뉴 텍사스는 정식 주로 승격되는 데 필요
한 최소 인구인 200만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여러 산업 생산력에
서부터 소득 수준 까지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만, 유일한 문제는 이
주가 노예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있습니다."
"뉴 텍사스는 연방의 동남부의 맨 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지역
에 대한 연방의 영향력 향상을 위해서라면 뉴 텍사스가 노예제를
반대해야 합니다."
"그 반대라면?"
"당연히 우리 연방의 영향력 증대를 반대하는 서부의 입김이 그쪽
으로도 작용할 겁니다."
"적어도 노예제 문제에 관해서는 각 주의 의사에 맡기게 되어 있지
만, 이것이 연방의 영향력 확대 여부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이 우스울 따름입니다."
"아무런 권리도 없는 노예들이 정가에서 자주 거론되는 논란의 핵
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대통령의 노예에 대한 언급에 각료들은 하나 같이 헛기침을 하였
다. 그들 자신이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표시였
다. 사실, 노예제를 반대하는 정치가들은 결코 드물지 않았다. 그리
고 그것의 부당성을 자주 언급했다. 하지만, 행동에 나서는 이는 전
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행동이 가져다 줄 결과를 감당해낼 자
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개척 초기와 비교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게 된 유권자들이 노예 해방 정책이 현실화 될 경우 빚어질지
모를 서부와 동부의 내전을 매우 두려워 한다는 것도 노예 해방 정
책이 상정되는 것을 막는 한 요인이었다. 유권자들 중 대다수가 노
예 제도의 부당함을 잘 알고 있었고, 또 그러한 문제를 고발하는 뉴
스와 시사 프로그램에 적지 않게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폐지하는데
수반될 내전이 자기 앞마당에서 벌어질지 모른다면 과연 얼마나 찬
성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나라는 건국된 이후로 어느 누구의 침입도 받지 않은
채 계속 성장해 왔고, 군사력도 거기에 비례하듯 그 덩치를 키어왔
다. 한편으론 노예 제도와 같은 몇몇 부조리함을 제외한다면 문제
없이 지속된 평화에 지쳐버린 사람들은 무언가로 인해 촉발될 지
모를 전쟁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어 대통령은 대국적
인 견지에서 이 나라의 미래를 상상하게 되자 큰 유혹에 빠지지 않
을 수 없었다. 만에 하나 국부인 헤스턴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
어 노예 제도 폐지를 천명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게 되면 거기에
반발한 서부가 연방 탈퇴를 선언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맞서 동부는 연방 분열을 저지한다는 명분하에 군대
를 일으킬 것이고 이로 인해 촉발된 내전이 켄타우로스에 큰 피해
를 안겨주리라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대신 동부
가 이기게 된다면 연방은 매우 강력해 질 수 있는 여지를 얻음으로
서 훗날 인류 사회의 강력한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성공할 수만 있다면 해볼만한 일이 아닌가? 국부, 당신만 믿겠습니
다!'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14시 30분. 켄타우로스 뉴햄프턴
"뭐야? 자네 둘이 밖에 다녀오겠다고?"
"네. 이대로 죽치고 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됩니다. 누군가가 직접 밖
으로 나가서 이곳 상황을 확인해야 합니다."
"..."
시찰단에 속한 이들 중 계급이 가장 높은 한국 해병대의 '문성철'
중령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음을 던졌다.
"대체 어떻게 호텔 밖으로 나가겠다는 건가? 그들의 감시가 철저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나?"
"물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저들의 경비가 허술한 데가 한 둘이 아닙니다. 그 중요도가 높은
우리들이 와 있는데도 주위 경계를 크게 강화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버스를 타고 이리로 오면서 공장 경비를 위해
배치된 것처럼 보이는 군인들의 행동을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는데
평시 근무자가 보일 수 있는 몸짓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장
갑차들은 유일한 무장인 중기관총에 아예 총알이 든 박스를 붙여두
지도 않았습니다. 즉, 그들은 외부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 일부러 보안 태세를 평시 상태로 유지하도록 조치한 것입니
다. 아마도 그들 스스로 언급한 민감한 시기 때문일 겁니다."
"과연 그럴만도 해. 문 중령님, 무사 복귀가 가능하다면 저는 찬성
입니다."
장교 한 명이 거들자 문 중령은 잠시 헛 기침을 한 후 말하였다.
"좋아. 두 사람의 억세게 강한 운을 믿어보기로 하지. 하지만 만에
하나 일이 터지면..."
"전적으로 저희의 책임입니다."
"행운을 빌겠네."
얼마 후 케빈과 루리는 헛점이 드러난 감시망을 뚫고 밖으로 나가
게 되었다. 물론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리 가져
온 평상복을 입는 것도 잊지 않았었다.
"이렇게 밖으로 나오니까 기분이 묘하네요."
"그러게 말이야."
곧 루리는 케빈과 손을 맞잡은 후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
였다.
"이렇게 걷는 것 참 오랜만이죠?"
"그러게 말이야."
길지 않은 시간이 흘러 어느 식기점 앞에 서게 된 두 사람은 서로
의 얼굴을 바라보며 얘기하였다.
"한 번 들어가 볼까?"
"좋아요."
케빈은 곧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간 후 말하였다.
"계십니까?"
"어서오세요."
"!"
두 사람은 계산대에서 자신들에게 인사한 가게 여주인의 옷차림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옷차림이 왜 그렇습니까?"
"네? 아, 이 옷 말씀이시군요... 실은 저희 집안이 영국계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번거롭게 설명할 필요 없이 빅토리아 시대 하녀복을 입
은 거랍니다."
그렇게 말한 후 여주인은 가볍게 웃은 후 말하였다.
"두 분, 구경하러 오신 거죠?"
"네?"
"호호호, 겉보기엔 어려 보일테지만 이래 뵈도 10년 이나 장사를 해
온 어엿한 주부랍니다. 손님들이 오면 물건을 사러 오신 것인지, 아
니면 구경을 하러 오신 건지는 단박에 알 수 있지요."
여주인의 말에 두 사람은 뒤늦게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스스로가 지구의 전유물로만 여기던 생명 공학 기술과 관련해 켄타
우로스도 결코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가게의 여주인은
그러한 기술 발전의 혜택을 받은 이들 중 한 명이었던 셈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들러야 할 곳이 많거든요."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도 꼭 들러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두 사람이 가게를 나서고 나서 여주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
하였다.
"두 사람, 그 분과 만나시기 전까지 많이 구경해 두세요. 그게 바로
우리의 바람이랍니다."
두 사람은 멎적은 표정을 지으면서 얘기하였다.
"그 아주머니,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 들지 않으세요?"
"뭐가? 내 눈엔 그저 친절해 보였던 걸."
"그러니까 말이에요. 마치 예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우릴 대하는
게..."
루리가 자기가 품은 의문에 대해 마저 말하려는 순간 사람들이 어
딘가로 우루르 몰려가기 시작하였다.
"아니, 대체 왜들 저러는 겁니까?"
"노예 반대파하고 찬성파간에 충돌이 벌어졌대요. 다들 그걸 구경하
러 가는 겁니다."
지나가던 행인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진 두 사람은 곧 사람들이
몰려간 곳으로 향하였고,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노예 제도 철폐하라! 철폐하라!"
"자유의 이름, 더럽힌다! 노예 제도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그와 같은 구호를 외치고 플렛카드를 흔드는 사람들에 맞서 반대
쪽도 같은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노예는 재산일뿐 인간이 아니다!"
"노예 없인 서부 농업 없고, 서부 농업 없인, 식량도 없다!"
"자유를 들먹여 노동 착취 숨기지 말라!"
선두에 서 있던 양측의 시위 참가자들이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가운데 두 사람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 노인이 탄식조로 말하였
다.
"말세야. 말세...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갈는지..."
"..."
그 말을 듣고 잠시 노인에게 시선을 돌린 케빈은 곧 루리의 손을
잡은 후 인파를 헤치며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어디로 가려는 거예요?"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자. 우린 있어봤자 아무 소용도 없어."
"하, 하지만..."
"내가 하자는 대로 해."
곧 두 사람은 인파를 계속 헤치고 나아간 끝에 밖으로 나올 수 있
었다.
"미안, 방금전의 일로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아니요. 당신은 당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에 따른 것 뿐이
에요. 오히려 저는 당신에게 감사해요."
"루리..."
"당신, 이대로 있으실 거예요? 이제 다른 곳으로 같이 가요."
루리가 먼저 뛰어가다가 되돌아 보며 말하자 케빈은 그 뒤를 따랐
다.
"아가씨, 저들의 안전은?"
"당신에게 일임하겠습니다. 책임지고 저 두 사람을 보호하세요."
"네."
광장을 살펴보기 좋은 장소에서 두 사람을 확인한 긴 생머리의 소
녀는 벨이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을 귀에 갖다댄 후 말하였다.
"여보세요? 할아버지? 네, 아무 일 없었어요. 그 두 사람은 조만간
호텔로 들어갈 거예요. 네. 안전은 걱정하지 마세요. 두 사람을 빨리
만나고 싶다구요? 제가 어떻게든 틈을 노려볼게요."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