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데시코 외전 : 호넷 - 작가 : Frank
글 수 87
2204년 03월 16일. 11시 00분. 워싱턴
"맥밀란 원수,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정말 그들과는 아무런 관련
이 없습니까?"
"맹세합니다. 저는 그들과 어떠한 관련도 맺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들과 접선하고 연락망을 유지하겠습니까?"
늙은 몸으로 청문회에 출두한 맥밀란 원수는 한 의원의 질문에 한
사코 고개를 저으며 극구 부인했다. 오늘 청문회는 전쟁 이전부터
목성 연합과 미국이 밀월 관계를 가졌을지 모른다는 일부 언론의
의혹 제기에 따라 열린 것이었다. 사안의 중요성 때문인지 방청석엔
각국 기자단과 군인들도 앉아 있었으며, 루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증인들이 부인하는 것 외에도 질문을 던지는 의원들이 필요한 정보
를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청문회가 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너무나도 부실하기 그지 없던 청문회는 얼마
후 종료됐고, 방청객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위선자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힘 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던 루리는 미 국회 의사당의 본관 가운데
로 나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소령, 시간 좀 내 줄 수 없겠나?"
아래쪽에서 올라온 미 공군 장성이 자신에게 말을 걸자 루리는 내
심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조셉 와이즈', 미 공군 현역 준장이네."
한 동안 그를 바라보던 루리는 고민 끝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고맙네. 일단 내 차로 뉴욕 까지 같이 가세."
곧 두 사람은 차에 올랐고, 운전대를 잡은 뒤 엑셀을 밟은 준장은
조용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동료들한테서 나에 관한 얘기는 들었을 거라 생각하네. 실은 그 때
얘기하지 않았던 게 있었어. 물론 얘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긴 하지
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듣게. 이건 소령의 신상과 관계된 얘기야."
"?"
"이걸 보게. 연방 문서 보관소에서 우연히 발견한 거라네."
"..."
루리는 준장의 가방 안에 들어 있던 앨범을 펴보기 시작했고, 이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사람들은..."
"놀랄만도 하겠지... 그들은 모두 스쿨 오브 아메리카에서 교육 받은
자들이었어. 그 앨범 자체가 스쿨 오브 아메리카를 거쳐간 자들을
담은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게 제 신상과 관련이 있다는 거죠?"
앨범에 실린 자들의 면면에 그녀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것엔 그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목성 연합의 대표적인 군부내
강경인사들이기 때문이었다. 스쿨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이 우방국의
군인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일종의 군사 학교였으니 그러한 반응
은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때론 피로 목욕을 해야 한다.'고 말한 칠레의 악명 높은
독재자 피노체트, 아르헨티나의 갈티에리 장군 등 독재자 경향을 띈
군인 정치가들이 교육 받은 곳이 바로 스쿨 오브 아메리카였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게..."
그 말을 듣고 마지막 페이지로 시선을 옮긴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이, 이건..."
2204년 03월 16일. 12시 30분. 멕시코 누에보라레도
"..."
"이제 정신이 드십니까?"
마악 눈을 뜬 '시라토리 쓰크모'는 '케빈 글렌'이 담배를 건네주자
씨익 웃고는 사양했다.
"우린 서로의 이름 말고는 아는 것이 없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
이니 얘기나 하지. 난 목성 연합의 장교였네. 친구가 쏜 총에 맞았
을 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지..."
"배신당했군요..."
"얘기하면 그렇지만... 자넨?"
"저도 비슷한 일을 당한 것 같지만,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아요. 지
금 내 머리 속에 든 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스쿨 오브 아메리카를 아나?"
"!"
"모를리 없겠지. 자넨 미국의 군인일테니까... 나는 거기서 위탁 교
육을 받았어. 자네 나라 교관한테서... 그 때는 참 신났었지. 목성에
선 꿈도 못꿀 산과 바다도 보고... 모든 것이 풍족한 곳에서 지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더군."
"..."
케빈은 유개 화차에 몸을 실은 가운데 옆에 누운 쓰크모의 얘기를
묵묵히 듣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 내용에 의구심을 품게 됐지. 그들은
군사 훈련 외에도 통치술에 대한 내용도 가르치곤 했었어. 그것도
비중있게...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나?"
"자국 정치에 관여하라는 얘기죠. 그리고 반대 의견은 철저히 파괴
하라는 것도..."
"그래 자네 말대로야. 목성도 결국 남미 각국이 그랬던 것처럼 어두
운 시기를 맞이하고 말았어. 그들과 손을 잡아 국가를 유지한 대가
로... 크사카베 각하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분 같았
지. 그래서 그 분에게 평화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밝혔어... 그리
고 거의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을 때..."
"당한 거군요."
"말하긴 뭣 하지만... 그렇게 됐지."
"돌아가시는 대로 뭘 하실 겁니까?"
"내 지인들을 찾아갈 생각이야. 다들 깜짝 놀랄테지만... 자네는?"
"저요? 글쎄요... 반길 사람이나 있을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바깥 쪽으로 시선을 옮긴 케빈은 주변 사람
들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호시노 소령, 에이미, 동료들은 무사할까? 내가 다시 나타난다면 날
받아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내 어두운 표정을 지은 그는 몇 시간 뒤에 통과할 국경에서의 검
문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2204년 03월 16일. 화성 아랑페즈
-이번 사태는 귀측의 책임이다.
-아니다. 당신들의 책임이다.
경계선 앞에 서 있는 미군과 러시아군의 방송차는 이전에 발생한
사건의 책임을 서로 떠넘겼고 그 뒤에 있는 양측의 군인들이 여차
하면 싸우겠다는 듯이 으르렁대고 있었다. 현장 근처에서 살고 있는
목성 연합 민간인들은 두 강대국 군인들의 미묘한 대립을 구경하느
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야, 너희들은 병력 절반이 로리타 컴플렉스라며? 세계 평화와 인권
을 지킨다는 것들이 창피하지도 않냐?
-밤낮으로 그 독한 보드카에 취해서 민간인들한테 해꼬지나 하는
네들보단 낫다!
러시아군 심리전 부대가 화성 주둔 미군 병사들이 목성 연합의 여
아들을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을 비난하자 미군은 러시아
군의 만취 상태에서의 상습적인 민간인 학대로 맞받아쳤고 이는 양
측 병사들의 분위기를 더더욱 험악하게 만들었다.
"야, 너희들은 실은 우리가 부러운 거지? 네들은 달러가 없으니까
여자애들을 못 사는 것 뿐이야. 한 번 그렇다고 말해 보시지."
"말 다했냐?"
"그래 했다! 어쩔래? 쏠래? 쏴봐! 쏴보라고!"
미군 병사 한 명이 주머니에 든 지폐를 꺼내어 흔드는 것으로 자신
들의 경제적 우위를 자랑하면서 웃옷을 벗고 도발하자 러시아 군인
들은 붉으락 푸르락 하기만 할 뿐 딱히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
았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러시아군 병사 한 명이 갑자기 돈을
꺼내어 흔들던 미군 병사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린 것이다.
보기 좋게 그 미군이 쌍코피를 흘리며 바닥 위에 나자빠지자 그대
로 양측간 패싸움이 벌어졌다.
"야, 어차피 맞기는 마찬가지야! 한 방이라도 더 때리고 맞아!"
"우리가 순순히 맞을 줄 아냐!"
양측 군인들의 싸움은 무기만 들지 않았을 뿐 치열하기 그지 없었
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저 친구들, 참 단순한데요."
"그저 그러려니 해. 일단 장군님께 보고나 드리자고."
2204년 03월 16일. 화성 멘티스
"뭐야? 양측간 패싸움?"
"네. 그렇습니다. 일선 지휘관들은 어떻게 해서든 말려야 한다고 합
니다."
"그냥 내버려둬."
"괜찮겠습니까? 감정이 더 악화되는 날엔..."
"그런 일이 하루 이틀인가? 듣자하니 여자 아이 한 명을 서로 납치
해 가려고 하다가 시비가 붙어서 싸웠다는 얘기도 있지 않나?"
"어린 딸을 둔 아버지로서 참 부끄러운 노릇입니다."
"하하하... 자네는 너무 순진하군. 요즘엔 11살 짜리가 성 관계를 갖
는 경우가 다반사야. 그것도 본국 안에서 말일세."
"..."
'킬 고어' 소장의 말에 그의 부관은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부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어 소장은 업무상의 얘기를
했다.
"문제가 커지지 않는 한 내버려 둬. 서로 쌓인 감정은 그렇게라도
풀게 해야지."
2204년 03월 16일. 12시 50분. 뉴욕
브루클린 다리가 보이는 전망 좋은 주차장에 차를 세운 가운데 루
리와 와이즈 준장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
고 있었다.
"이제 의문이 풀려요. 그들이 어디서 싸울 힘을 얻었는지..."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네.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진실임을 믿
게 할 증거가 더 필요해."
"만약에 이 사진 안에 있는 두 명이 나와 그이라면..."
거기 까지 말하고는 루리는 한 숨을 쉬었다. 앨범 마지막 페이지에
붙은 사진에 찍힌 사람은 분명히 셋이었다. 하지만, 얼굴이 가려지
지 않은 두 사람은 영락없는 케빈과 루리였다. 하지만 맨 왼쪽에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사람이 문제였다. 그의 얼굴은 마치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은 듯 철저히 지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가? 나를 도와주지 않겠나?"
"..."
와이즈 준장의 제안에 루리는 잠시 아마 말도 하지 않은 채 앨범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위험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 일이
자신의 진짜 과거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
다. 얼마 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네."
***********************************************************
설정~
러시아의 검은곰 Tu-35
1.새로운 항공기의 심장
멘티스에 가해진 공격으로 인해 보손 점프의 붕괴가 기정 사실화
되면서 각국은 이를 상쇄할 이동 수단의 혁신에 모든 과학력을 쏟
아 붓기 시작했었다.
이와 관련된 계획에 참여한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은 우스개 소리로
'이건 어차피 걱정할 필요도 없어. 지구에서 목성 까지 가는데 단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 추진 기관을 만들어 보는 거야.'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것을 100퍼센트 허풍으로 취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영국의 롤스로이스, 미국의 GE와 P&W, 러시아의 투만스키는 독일
의 '오토 폰 노이만' 박사가 충분한 검증을 받은 여러 학계의 이론
을 토대로 개발한 '알파 제트' 추진 기관을 본바탕으로 한 여러 시
제 엔진을 활발하게 연구 및 개발했기 때문이다.
사실 노이만 박사 본인은 '알파 제트'가 과연 위에서 언급된 용도로
쓸만한지에 관해선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투만스키사에서 연구
개발의 중핵을 담당한 '세르게이 브론코비치' 박사는 낙관적인 시각
을 견지했었다. 이 때문인지 투만스키의 연구는 매우 여유있게 진행
된 반면 다른 회사들의 연구는 그렇지 못하는 대조적인 광경을 연
출했다.
시기상으론 영국의 롤스로이스가 먼저 시제품을 내놓았지만, 군용으
로 전용하기엔 개량의 여지가 많았던 반면에 투만스키는 당장 장착
해서 써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엔진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투만스키는 이를 비밀로 하고 러시아 공군과 접촉해 차후
우주 공간에서 작전할 군용기에 '알파 제트'를 탑재해 시험해 보겠
다는 답변을 얻었고, 그 기회는 일찍 찾아왔다.
2.검은곰 태어나다
2201년, 러시아 전략 공군은 큰 두려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미 공군이 '알파 제트' 추진 기관 탑재 폭격기인 B-36 피스메이커II
를 실전에 배치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장래 있을 목성 연합과의 결전으로 인해 시작될 태양계의 패권을
건 대립에서 미국에게 밀릴지도 모른다는 러시아 수뇌부의 우려는
곧 새로운 추진 기관 탑재 폭격기의 제작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낳
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공군은 신형 폭격기 사업 계획서를 일류신,
투폴레프사에 보내었고 양사는 즉시 제안서를 제출했다.
일류신은 XL-34, 투폴레프는 XU-35를 제안하는데 두 계획안은 '알
파 제트'를 탑재한다는 것부터 시작해 대부분 유사한 점이 많은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XL-34)
길이 - 45m
전폭 - 20m(주익 후퇴시), 35m(주익 전개시)
무게 - 45톤
승무원 - 3명
우주 공간에서 자력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 - 3일
(XU-35)
길이 - 60m
전폭 - 25m(주익 후퇴시), 55m(주익 전개시)
무게 - 100톤
승무원 - 4명
우주 공간에서 자력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 - 1주일
결국 두 기체 중 XU-35가 승자가 되는데 본토에만 해도 대형 기체
를 받아줄 수 있는 기지가 수도 없이 많았던데다 미 공군의 B-36이
상당한 대형 기체인 만큼 거기에 대응할 기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한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시제기가 2202년 후기에 등장하고, 이후
추가 개량을 거쳐 2204년 1월에 실전형 30기가 투폴레프사의 공장
에서 출고되어 초기 작전 운용에 들어갔다.
3.첫 등장, 그리고 미 공군의 오판
북극해 상공에서 F-12 전투기에 의해 검게 칠해진 채로 비행 중이
던 Tu-35가 발견되면서 그 존재자 알려지자 미 공군은 이 기체를
대기권내 작전용인 Tu-28 폭격기를 대체하기 위한 교체기 정도로
취급했다. 그들의 입장에선 러시아가 '알파 제트'를 사용하는 항공기
를 만들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Tu-35는 이후 행한 공개 실험을 통해 지구와 화성을 오갈
경우 2일, 목성은 3일이 걸리는 대기록을 세움으로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단기간에 자신들을 뒤쫓아오자 그저 놀라기
만 할 뿐이었다.
이리하여 등장한 Tu-35는 전 세계를 통틀어 B-36의 유일한 라이벌
로 30년간 군림하기에 이른다.
"맥밀란 원수,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정말 그들과는 아무런 관련
이 없습니까?"
"맹세합니다. 저는 그들과 어떠한 관련도 맺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들과 접선하고 연락망을 유지하겠습니까?"
늙은 몸으로 청문회에 출두한 맥밀란 원수는 한 의원의 질문에 한
사코 고개를 저으며 극구 부인했다. 오늘 청문회는 전쟁 이전부터
목성 연합과 미국이 밀월 관계를 가졌을지 모른다는 일부 언론의
의혹 제기에 따라 열린 것이었다. 사안의 중요성 때문인지 방청석엔
각국 기자단과 군인들도 앉아 있었으며, 루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증인들이 부인하는 것 외에도 질문을 던지는 의원들이 필요한 정보
를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청문회가 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너무나도 부실하기 그지 없던 청문회는 얼마
후 종료됐고, 방청객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위선자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힘 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던 루리는 미 국회 의사당의 본관 가운데
로 나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소령, 시간 좀 내 줄 수 없겠나?"
아래쪽에서 올라온 미 공군 장성이 자신에게 말을 걸자 루리는 내
심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조셉 와이즈', 미 공군 현역 준장이네."
한 동안 그를 바라보던 루리는 고민 끝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고맙네. 일단 내 차로 뉴욕 까지 같이 가세."
곧 두 사람은 차에 올랐고, 운전대를 잡은 뒤 엑셀을 밟은 준장은
조용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동료들한테서 나에 관한 얘기는 들었을 거라 생각하네. 실은 그 때
얘기하지 않았던 게 있었어. 물론 얘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긴 하지
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듣게. 이건 소령의 신상과 관계된 얘기야."
"?"
"이걸 보게. 연방 문서 보관소에서 우연히 발견한 거라네."
"..."
루리는 준장의 가방 안에 들어 있던 앨범을 펴보기 시작했고, 이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사람들은..."
"놀랄만도 하겠지... 그들은 모두 스쿨 오브 아메리카에서 교육 받은
자들이었어. 그 앨범 자체가 스쿨 오브 아메리카를 거쳐간 자들을
담은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게 제 신상과 관련이 있다는 거죠?"
앨범에 실린 자들의 면면에 그녀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것엔 그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목성 연합의 대표적인 군부내
강경인사들이기 때문이었다. 스쿨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이 우방국의
군인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일종의 군사 학교였으니 그러한 반응
은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때론 피로 목욕을 해야 한다.'고 말한 칠레의 악명 높은
독재자 피노체트, 아르헨티나의 갈티에리 장군 등 독재자 경향을 띈
군인 정치가들이 교육 받은 곳이 바로 스쿨 오브 아메리카였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게..."
그 말을 듣고 마지막 페이지로 시선을 옮긴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이, 이건..."
2204년 03월 16일. 12시 30분. 멕시코 누에보라레도
"..."
"이제 정신이 드십니까?"
마악 눈을 뜬 '시라토리 쓰크모'는 '케빈 글렌'이 담배를 건네주자
씨익 웃고는 사양했다.
"우린 서로의 이름 말고는 아는 것이 없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
이니 얘기나 하지. 난 목성 연합의 장교였네. 친구가 쏜 총에 맞았
을 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지..."
"배신당했군요..."
"얘기하면 그렇지만... 자넨?"
"저도 비슷한 일을 당한 것 같지만,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아요. 지
금 내 머리 속에 든 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스쿨 오브 아메리카를 아나?"
"!"
"모를리 없겠지. 자넨 미국의 군인일테니까... 나는 거기서 위탁 교
육을 받았어. 자네 나라 교관한테서... 그 때는 참 신났었지. 목성에
선 꿈도 못꿀 산과 바다도 보고... 모든 것이 풍족한 곳에서 지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더군."
"..."
케빈은 유개 화차에 몸을 실은 가운데 옆에 누운 쓰크모의 얘기를
묵묵히 듣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 내용에 의구심을 품게 됐지. 그들은
군사 훈련 외에도 통치술에 대한 내용도 가르치곤 했었어. 그것도
비중있게...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나?"
"자국 정치에 관여하라는 얘기죠. 그리고 반대 의견은 철저히 파괴
하라는 것도..."
"그래 자네 말대로야. 목성도 결국 남미 각국이 그랬던 것처럼 어두
운 시기를 맞이하고 말았어. 그들과 손을 잡아 국가를 유지한 대가
로... 크사카베 각하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분 같았
지. 그래서 그 분에게 평화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밝혔어... 그리
고 거의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을 때..."
"당한 거군요."
"말하긴 뭣 하지만... 그렇게 됐지."
"돌아가시는 대로 뭘 하실 겁니까?"
"내 지인들을 찾아갈 생각이야. 다들 깜짝 놀랄테지만... 자네는?"
"저요? 글쎄요... 반길 사람이나 있을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바깥 쪽으로 시선을 옮긴 케빈은 주변 사람
들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호시노 소령, 에이미, 동료들은 무사할까? 내가 다시 나타난다면 날
받아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내 어두운 표정을 지은 그는 몇 시간 뒤에 통과할 국경에서의 검
문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2204년 03월 16일. 화성 아랑페즈
-이번 사태는 귀측의 책임이다.
-아니다. 당신들의 책임이다.
경계선 앞에 서 있는 미군과 러시아군의 방송차는 이전에 발생한
사건의 책임을 서로 떠넘겼고 그 뒤에 있는 양측의 군인들이 여차
하면 싸우겠다는 듯이 으르렁대고 있었다. 현장 근처에서 살고 있는
목성 연합 민간인들은 두 강대국 군인들의 미묘한 대립을 구경하느
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야, 너희들은 병력 절반이 로리타 컴플렉스라며? 세계 평화와 인권
을 지킨다는 것들이 창피하지도 않냐?
-밤낮으로 그 독한 보드카에 취해서 민간인들한테 해꼬지나 하는
네들보단 낫다!
러시아군 심리전 부대가 화성 주둔 미군 병사들이 목성 연합의 여
아들을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을 비난하자 미군은 러시아
군의 만취 상태에서의 상습적인 민간인 학대로 맞받아쳤고 이는 양
측 병사들의 분위기를 더더욱 험악하게 만들었다.
"야, 너희들은 실은 우리가 부러운 거지? 네들은 달러가 없으니까
여자애들을 못 사는 것 뿐이야. 한 번 그렇다고 말해 보시지."
"말 다했냐?"
"그래 했다! 어쩔래? 쏠래? 쏴봐! 쏴보라고!"
미군 병사 한 명이 주머니에 든 지폐를 꺼내어 흔드는 것으로 자신
들의 경제적 우위를 자랑하면서 웃옷을 벗고 도발하자 러시아 군인
들은 붉으락 푸르락 하기만 할 뿐 딱히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
았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러시아군 병사 한 명이 갑자기 돈을
꺼내어 흔들던 미군 병사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린 것이다.
보기 좋게 그 미군이 쌍코피를 흘리며 바닥 위에 나자빠지자 그대
로 양측간 패싸움이 벌어졌다.
"야, 어차피 맞기는 마찬가지야! 한 방이라도 더 때리고 맞아!"
"우리가 순순히 맞을 줄 아냐!"
양측 군인들의 싸움은 무기만 들지 않았을 뿐 치열하기 그지 없었
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저 친구들, 참 단순한데요."
"그저 그러려니 해. 일단 장군님께 보고나 드리자고."
2204년 03월 16일. 화성 멘티스
"뭐야? 양측간 패싸움?"
"네. 그렇습니다. 일선 지휘관들은 어떻게 해서든 말려야 한다고 합
니다."
"그냥 내버려둬."
"괜찮겠습니까? 감정이 더 악화되는 날엔..."
"그런 일이 하루 이틀인가? 듣자하니 여자 아이 한 명을 서로 납치
해 가려고 하다가 시비가 붙어서 싸웠다는 얘기도 있지 않나?"
"어린 딸을 둔 아버지로서 참 부끄러운 노릇입니다."
"하하하... 자네는 너무 순진하군. 요즘엔 11살 짜리가 성 관계를 갖
는 경우가 다반사야. 그것도 본국 안에서 말일세."
"..."
'킬 고어' 소장의 말에 그의 부관은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부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어 소장은 업무상의 얘기를
했다.
"문제가 커지지 않는 한 내버려 둬. 서로 쌓인 감정은 그렇게라도
풀게 해야지."
2204년 03월 16일. 12시 50분. 뉴욕
브루클린 다리가 보이는 전망 좋은 주차장에 차를 세운 가운데 루
리와 와이즈 준장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
고 있었다.
"이제 의문이 풀려요. 그들이 어디서 싸울 힘을 얻었는지..."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네.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진실임을 믿
게 할 증거가 더 필요해."
"만약에 이 사진 안에 있는 두 명이 나와 그이라면..."
거기 까지 말하고는 루리는 한 숨을 쉬었다. 앨범 마지막 페이지에
붙은 사진에 찍힌 사람은 분명히 셋이었다. 하지만, 얼굴이 가려지
지 않은 두 사람은 영락없는 케빈과 루리였다. 하지만 맨 왼쪽에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사람이 문제였다. 그의 얼굴은 마치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은 듯 철저히 지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가? 나를 도와주지 않겠나?"
"..."
와이즈 준장의 제안에 루리는 잠시 아마 말도 하지 않은 채 앨범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위험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 일이
자신의 진짜 과거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
다. 얼마 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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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러시아의 검은곰 Tu-35
1.새로운 항공기의 심장
멘티스에 가해진 공격으로 인해 보손 점프의 붕괴가 기정 사실화
되면서 각국은 이를 상쇄할 이동 수단의 혁신에 모든 과학력을 쏟
아 붓기 시작했었다.
이와 관련된 계획에 참여한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은 우스개 소리로
'이건 어차피 걱정할 필요도 없어. 지구에서 목성 까지 가는데 단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 추진 기관을 만들어 보는 거야.'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것을 100퍼센트 허풍으로 취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영국의 롤스로이스, 미국의 GE와 P&W, 러시아의 투만스키는 독일
의 '오토 폰 노이만' 박사가 충분한 검증을 받은 여러 학계의 이론
을 토대로 개발한 '알파 제트' 추진 기관을 본바탕으로 한 여러 시
제 엔진을 활발하게 연구 및 개발했기 때문이다.
사실 노이만 박사 본인은 '알파 제트'가 과연 위에서 언급된 용도로
쓸만한지에 관해선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투만스키사에서 연구
개발의 중핵을 담당한 '세르게이 브론코비치' 박사는 낙관적인 시각
을 견지했었다. 이 때문인지 투만스키의 연구는 매우 여유있게 진행
된 반면 다른 회사들의 연구는 그렇지 못하는 대조적인 광경을 연
출했다.
시기상으론 영국의 롤스로이스가 먼저 시제품을 내놓았지만, 군용으
로 전용하기엔 개량의 여지가 많았던 반면에 투만스키는 당장 장착
해서 써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엔진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투만스키는 이를 비밀로 하고 러시아 공군과 접촉해 차후
우주 공간에서 작전할 군용기에 '알파 제트'를 탑재해 시험해 보겠
다는 답변을 얻었고, 그 기회는 일찍 찾아왔다.
2.검은곰 태어나다
2201년, 러시아 전략 공군은 큰 두려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미 공군이 '알파 제트' 추진 기관 탑재 폭격기인 B-36 피스메이커II
를 실전에 배치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장래 있을 목성 연합과의 결전으로 인해 시작될 태양계의 패권을
건 대립에서 미국에게 밀릴지도 모른다는 러시아 수뇌부의 우려는
곧 새로운 추진 기관 탑재 폭격기의 제작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낳
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공군은 신형 폭격기 사업 계획서를 일류신,
투폴레프사에 보내었고 양사는 즉시 제안서를 제출했다.
일류신은 XL-34, 투폴레프는 XU-35를 제안하는데 두 계획안은 '알
파 제트'를 탑재한다는 것부터 시작해 대부분 유사한 점이 많은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XL-34)
길이 - 45m
전폭 - 20m(주익 후퇴시), 35m(주익 전개시)
무게 - 45톤
승무원 - 3명
우주 공간에서 자력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 - 3일
(XU-35)
길이 - 60m
전폭 - 25m(주익 후퇴시), 55m(주익 전개시)
무게 - 100톤
승무원 - 4명
우주 공간에서 자력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 - 1주일
결국 두 기체 중 XU-35가 승자가 되는데 본토에만 해도 대형 기체
를 받아줄 수 있는 기지가 수도 없이 많았던데다 미 공군의 B-36이
상당한 대형 기체인 만큼 거기에 대응할 기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한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시제기가 2202년 후기에 등장하고, 이후
추가 개량을 거쳐 2204년 1월에 실전형 30기가 투폴레프사의 공장
에서 출고되어 초기 작전 운용에 들어갔다.
3.첫 등장, 그리고 미 공군의 오판
북극해 상공에서 F-12 전투기에 의해 검게 칠해진 채로 비행 중이
던 Tu-35가 발견되면서 그 존재자 알려지자 미 공군은 이 기체를
대기권내 작전용인 Tu-28 폭격기를 대체하기 위한 교체기 정도로
취급했다. 그들의 입장에선 러시아가 '알파 제트'를 사용하는 항공기
를 만들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Tu-35는 이후 행한 공개 실험을 통해 지구와 화성을 오갈
경우 2일, 목성은 3일이 걸리는 대기록을 세움으로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단기간에 자신들을 뒤쫓아오자 그저 놀라기
만 할 뿐이었다.
이리하여 등장한 Tu-35는 전 세계를 통틀어 B-36의 유일한 라이벌
로 30년간 군림하기에 이른다.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