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년 03월 13일. 13시 40분. 뉴욕

"여기 초밥 1인분이요."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주문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아키토는 솜씨 좋게 연어의 살을 횟질한
후 이를 먹기 좋게 겨자를 놓은 밥 위에 올렸다. 유리카는 프론트에
서 손님들로부터 음식값을 받았고, 유키나는 웨이트리스의 일을  맡
아 바쁘게 움직였다.

"야, 너 나랑 같이 놀지 않을래?"
"아저씨, 저는 미성년자에요."
"그게 뭐 어때서? 서로 좋아서 사귄다고 말하면 그만이잖아?"

말쑥하게 차려 입은 흑인 사업가는 거기  까지 말하고는 웃음을 터
뜨렸고, 유키나는 미소로 답했다. 진담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얼마 후 손님들은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만큼 바쁘다는 얘기였다.

"휴... 오늘도 한 고비 넘겼군."
"손님들이 더 오기 전에 빨리 배부터 채우는 게 좋겠어요."

그러던 중 누군가가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고, 세 사람의 시
선은 자연스럽게 문 쪽으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유리카의 인사에 프렌치 코트를  걸친 중년의 백인  남자는 목례로
가볍게 답한 후 때마침 주방에서 나온 아키토 앞으로  걸어갔다. 다
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는 가운데  먼저 백인 남자는 입을
열었다.

"자네가 '아키토 텐카와'인가?"
"네. 당신은?"
"'조셉 와이즈'. 현역 미 공군 준장이네."
"당신들과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찾아온 건가요?"
"전혀. 그것 때문에 제거하고 싶었다면  이렇게 직접 올 필요가  없
지. 그저 자네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거야."
"그게 대체 뭐죠?"
"서두를 필요 없네. 여기선 곤란하니 안쪽에서 더 얘기하지."
"유키나,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텐카와 부인, 저 아이도 알아야 할 일이요."
"하지만..."
"유리카, 이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겠어."
"남편분께선 찬성이군. 그럼 당사자는?"
"당연히 들어야죠."
"하는 수 없네요."

곧 세 사람은 가게와 연결된 집 내부에 자리한 거실에서 와이즈 준
장이 가져온 비디오 디스크에 든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본 화면이
시작되기 전에 준장은 밝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일전에 크사카베 통치하의 목성  연합에서 연구 중이던 모든
물품에 대한 조사를 맡은 적이 있었네. 대부분의 것들은  지극히 정
상적인 것이었는데 그 중에 이상한 게 하나 있었어.  바로 저것이었
지."
"세상에..."
"유적의 컨트롤 박스?"
"안심하게. 저건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물건이니까. 누군가가 저기
에 결합당할 일은 없겠지."
"..."

유리카가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은 것에  개의치 않고 준장은 계속
말하였다.

"나는 상부에서 지시한 대로 보손 점프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다른
국가들이 파견한 해체팀과 공동으로  파괴했어. 일을 맡은지  1개월
동안은 모든 게 순조로웠지. 하지만 곧 문제가 터졌어."
"문제라니요?"
"우리가 확인해둔 목성 연합의 화성내 비밀 저장고 다섯 곳에 신중
하게 분배된 상태로 보관되어 있던  100개에 달하는 컨트롤 박스의
5분의 1이 사라진 거야.  그것들이 사라진 때는 우리가  도착하기도
훨씬 전이었지. 나는 책임을 지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었어.
하지만, 그냥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나름대로 조사를  계속
했고,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네.  이제 그것과 관련된 걸  보여주지.
보고나서 놀라지 말게."

곧 준장은 트랙볼로 디스크에 있던 파일 중 한 개를 선택했고, 얼마
후 세 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저 아이들한테 대체 무슨 짓을?"

유키나는 부르르 떨었고, 유리카와 아키토는 착잡한 표정으로  일관
했다. 의자에 강제로 앉혀진 듯한 소녀에게 동양계로 보이는 과학자
한 명이 주사를 놓은 후 그 근처에 놓여진 노트북 컴퓨터를 조작하
자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 했다.
과학자와 주위에 있던 군인들은 그런 소녀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한
채 계속 작업을 진행했고, 얼마 뒤 소녀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가 다
시 나타났지만,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여기 까지야. 내 생각이 맞다면 저 요정은 죽었을 걸세."
"보손 점프와 관계된 연구로군요."
"대체 누가 저런 짓을?"
"내 얘길 계속 듣게. 방금  화면에 나왔던 그 동양계  과학자는 1급
전범으로 각국이 체포하려는 목성 연합의 '츠요시 오키다'박사네. 크
사카베의 지시로 갖가지 생체  실험을 자행한 악명 높은  인물이지.
그리고 화면상에 나온 그 실험 장비들은 우리군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종류라네."
"장군님께선 모종의 음모가 진행 중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군 내에서 누군가가 손을 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나는 아
무도 믿지 못하게 됐어.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자네들을 찾아온 거라
네."
"우릴 예전의 나데시코 크루로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걱정하지 말게. 내 나름대로 자네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내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자네들에게 연락을
취하겠네."

준장은 잘 있으라는 듯  손을 흔들고 나서 물건을  챙긴 후 조용히
떠났다.

2204년 03월 13일. 14시 30분. 워싱턴

"귀국은 대체 무슨 이유로 사이도니아를  포위한 겁니까? 지금이라
도 늦지 않았으니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포위를 푸시오!"
-전부터 말했듯이 귀국을 포함한 4개국은  사이도니아와 관련해 맺
은 '로마 협정'을 준수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군 점령지내
의 목성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일입
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일부 목성인들의 폭력 행위엔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무슨 이유로 귀국에 총을 들이밀
겠습니까?"
-더는 듣기 싫습니다.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기 전까진 사이도니아에
대한 포위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니 그렇게 아십시오.

곧 통화가 끊기자 스트로 대통령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
나 누군가를 호출했다.

"우리가 예상한 대로네. 화성 주둔군 지휘부에 물자를  계속 공수하
라고 전하게. 이제 외교적으로 그들을 구할 방법은 없네."

스트로 대통령은 곧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러
시아는 자국 점령지 내에 거주하는 목성인들의 무장 투쟁이 심해지
는 것에 대해 서방 각국에게 심한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자국군을 투입해 소탕에 나서면  그들은 어김 없이  미군 점령지로
도망치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미군은 미군 대로  러시아군에게
쫓겨 도망쳐 오는 목성인들은 매우 골치아픈 존재들이었다.  원칙대
로 처리한다면 그들은 전부 체포해서 넘겨줘야 했지만, 그렇게 했다
간 목성 연합의 일반 대중들의 미국에  대한 여론이 나빠질 우려가
있어서 섣불리 처벌할 수는 없었다.
결국 미군이 택한 방법은 그들이 소지한 무기를 압수하고 일정기간
구금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미군 점령지내에서 벌이는  무장 투쟁은 결코 봐주지  않았
다. 멘티스에서 벌어진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미군은 1개 사단을 투
입시켰는데 이로 인해 700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있었
다. 반전 단체에선 이를  두고 미국의 잔악성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맹비난을 퍼부었지만, 그것은 여러 전승국들의 극단적인
목성인 통제 방법의 한 예에 불과했다.

2204년 03월 13일. 화성. 아랑페즈

"여기는 토르3, 토르2 응답하라."
-말하라 토르3.
"정찰 결과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반복한다. 아무것도 발견하
지 못했다. 급유를 받는 대로 다시 수색해 보겠다."
-알았다.

얼마 후 시가지 상공을 비행 중이던  Mi-50 하인드VI는 고도를 높
여 시가지로부터 80Km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IL-25 마이더
스III 급유기와 조우했다.

"여기는 토르3. 즈라스비크(기러기), 우리는 목이 마르다."
-토르3, 즉시 목을 내밀기 바란다.

주조종사인 '미하일 로고프' 중위는 급유기의 지시에 따라 하인드VI
를 가까이 접근시켰다. 얼마 후 기수부에 설치된 급유봉이 마이더스
의 프로브와 연결되면서 항공기용 액체식  고농축 에너지가 하인드
VI의 에너지 저장 구획에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즈라스비크, 급유봉 접속을 해제하겠다."
-알았다.

마악 급유봉을 해제한 후 이탈하려던 로고프 중위는 경보음이 울리
자 재빨리 디코이를 사출하면서 무전기로 동료기와 연락을 취했다.

"토르2, 적이 나를 노리고 있다!"
-이쪽도 확인했다. 빨리 편대에 합류하라!

곧 기만당해 버린 미사일이 흰 꼬리를 남기며 지나쳐갔고,  공격 대
상이 된 Mi-50들은 즉시 반격에 나섰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
로고프 중위는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미사일 발사기를 버리고 도
주하는 목성인들이 탄 차량을 발견했고, 망설일 것 없이  대전차 미
사일을 발사했다.
MV-45와 유사한 이 기체의 무장창에  실려 있던 AT-26 코브라는
빠른 속도로 무장창을 떠나 목표를 노렸다.
곧 차량은 미사일에 직격  당해 폭파당했고,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
다.

-잘했어. 이제 귀환한다!

곧 편대는 정해진 항로를 따라 귀환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녀석들, 오늘도 한 건 했군."
"자기네 방식이 득 될 게 없다는 걸 알기나 하는 걸까?"
"그야 알 수 없지. 한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저녀석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그간의 기술 발전으로 단 네 명에 의해 조작될 수 있는 3연장 중거
리 지대공 미사일 호크VII을 조작하는  미군들은 파괴된 채 불타오
르는 차량을 강건너 불 구경하듯 바라보다가  뜻하지 않은 일을 당
했다. 난데 없이 폐허 속에서 나타난 머신 솔저들이 그들을 향해 총
을 쏜 것이다.

"맙소사!"
"야, 정신차려!"
"틀렸어. 이미 죽었다고!"
"중대, 응답하라! 우린 지금 공격 받고  있다! 제기랄!! 무전기가 말
을 안 들어!"
"씨발! 아군 무기에 죽게 되다니!"
"나, 난 죽기 싫어! 항복할게 쏘지마~!"
"나가면 안돼!"

공포심을 견디다 못한 한 명이 밖으로 뛰쳐나가자 다른 두 명이 말
리려고 했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이미 그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너덜너덜해진 시신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머신 솔저가 발사한 로켓포에  의해 그들은 전부 폭사당했
고, 아무 저항도 받지 않은 채 미사일 통제 콘솔 앞에 선 머신 솔저
한 대가 기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미사일이다!"
-전파 유형 확인 결과 미국제 호크로 판명됐다! 주의하라!
"미국놈들이 제정신인가?"

귀환 중이던 Mi-50 편대는 난데없는 호크의 위협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공격을 받은 이상 대응을 망설이면 곤란했다.

-이런 망할...

그 말을 끝으로 로고프 중위의  동료 조종사가 타고 있던  Mi-50이
호크에 직격당해 공중 분해 되었고, 이로 인해 모두의  눈이 뒤집혀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당할 순 없어! 우리도 갚아야 돼!"
-참아! 성급하게 행동하면...

편대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로고프 중위는  재빨리 기체를 반전시
킨 다음 호크 사이트를 조준하기가 무섭게 중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했다. 얼마 후 호크 사이트는 폭발을 일으켰고, 그 자리에선 검
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2204년 03월 14일. 02시 40분. 멕시코 팔리자다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 따윈 하지마. 이래 뵈도 남미 각국에서 저항하는 반미 저항군
을 위한 물자 수송에서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은 우리야.  설마 눈치
채기야 하겠어?"

트레일러를 몰고 있는 운전수는 조수석에 탄 동료에게 그렇게 말한
후 가볍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자신감  뒤엔 재앙이
따른다고 했던가? 그들이 탄 트레일러의 뒤를 오쉬코쉬사가 미군에
납품한 것과 동일한 형식의 초대형 트럭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뒤쫓
아 오기 시작했다.

"..."

불길함을 느낀 듯 잠에서 깬 글렌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했지만, 그가 밖의 상황을 확인할 수단은 전무했다.

"저 놈은 대체 뭐야? 우리랑 한 판 해보자는 건가?"
"괜히 휘말리면 골치아파. 그냥 지나가게 냅두자고."

자신들을 추월하려는 것으로 여긴 운전수는 대수롭지 않게 길을 양
보해줬고, 얼마 후 대형 트럭은 그들이 탄 트레일러와  평행선을 이
루었다.

"이봐, 지나가겠다면 빨리 지나가."

수신호로 먼저 가라는 운전수에게 맞은편 차량의 조수가 뭐라 말하
려는 듯 트럭의 유리창이 내려졌다. 얼마 뒤 트레일러에  타고 있던
두 명은 수 십발의 기관총탄 세례를 받고 즉사해 버렸다.
통제를 잃은 트레일러는 고속도로 난간을 들이 받더니 이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성공입니다."
"방심하기엔 일러. 반드시 놈의 시체를 확인해야 한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미군 장교들은 피식  웃은 후 고기동차에 몸
을 실었다.

"얼른 나와라. '케빈 글렌'. 항복하면 목숨은 보장하겠다."

전복된 트레일러를 에워싼  추적대의 최하급  지휘관은 메가폰으로
투항을 종용했지만, 트레일러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지휘관은 수신호로 확인 사살을 목적에 둔 사격 명령을 내
렸다. 곧 수많은 화기들이 트레일러에 집중되었고, 트레일러는 곳곳
에 구멍이 나더니 이내 폭발을 일으켰다.
지휘관은 씨익 웃은 후 철수를 명령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노, 놈이다!"
"뭐라고?"
"쏴라! 쏴!"

갑자기 나타난 글렌은 단 한 자루의  소총만 들고 있으면서도 꿀림
없이 추적대를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숫적으론 불리했지만, 다행
히도 이번엔 지휘부에서 SSW에 소속된  재생 병사들의 기억이 되
돌아오는 걸 피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그를 상대하는 적의 대부분이
오합지졸이나 다름 없는 일반 사병들이라는 점이 천만 중 다행이었
다.

"뭘 그렇게 허둥 대! 얼른 죽이란 말이야!"

병사들이 허무하게 쓰러져 나가자 하급  지휘관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그런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얼마 후 추적대
는 전멸해버렸고, 케빈은 지휘관의 머리에 권총을 겨눈 후 말했다.

"네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2주일 전인가? 마을에서 소녀 셋을 강간
하고 죽인 게 너였지?"
"나, 난 아냐."
"쓰레기 같은 놈."

곧 케빈은 방아쇠를 당겼고, 사방에 피와 뇌수가 튀겼다. 씁쓸한 표
정을 지으며 도주하려는 그는 뒤에서 살기를 느끼고는 째빨리 몸을
움직였다. 아니나 다를까?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날아온 총알은  그
가 서 있던 자리에 정확히 박혔다.
글렌은 눈 앞에 선 상대의 모습에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공격한 상대는 검은 눈에, 검은 머리카락을 지녔고, 체격도 좋은 동
양인이었다. 미군의 특수전 부대에선 동양계 대원은 전무하다고  알
고 있던 그로서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싸움은  싸움.
그는 곧 왼손엔 소총, 오른손엔 권총을 들며 말했다.

"임무 때문이라면 포기하시지."
"..."

상대는 그의 위협에 그저 피식 웃더니 곧바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를 피하면서 반격할 기회를 엿본 케빈은  기회 닿는대로 총을 쐈
지만,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얼마 후 탄창에 든 총알이 바닥나자 그는 재빨리 고가도로 기둥 뒤
편에 숨은 후 마지막  무장이나 다름 없는 대검을  뽑은 후 도박을
준비했다.

'총알은 바닥났다. 이제 남은 건 이것 뿐이야!'

곧 케빈은 숨어 있던 기둥 뒤에서  뛰어나와 동양인을 향해 덤벼들
었다. 동양인은 총을  겨누었지만, 케빈은 재빨리  대검을 집어던져
그가 이를 피하게 만들었다. 그의  의도대로 동양인은 틈을 보였고,
케빈은 그를 붙잡기가 무섭게 트레일러를 향해 집어 던졌다. 트레일
러에 부딪히면서 내동댕이 쳐진 동양인은 큰  부상을 입은 듯 피를
흘린 채 헉헉거렸고, 그의 무기를 회수한 케빈은 말없이  그의 머리
에 총을 겨누었다.

'용서해 주시오.'

그렇게 속으로 말한 후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여, 여기는... 다, 다들 어디 간거지...? 유키나, 미나토... 으..."
"!"

상대가 자신처럼 기억을 잃은 채 임무 수행을 강요 받은 자임을 알
게 되자 케빈은 총을 거두고는 말없이 바라보다가 그를 부축했다.

"다, 당신은?"
"사정은 나중에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빨리  서두릅시다. 놈들이 더
몰려오기전에."

곧 두 사람은 북쪽으로 향했다. 자유를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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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설정

'상호확증파괴 전략'의 부활과 비방사선 핵폭탄의 확산.

목성 연합이 붕괴한 후 태양계의 정세는 미국과 러시아를 주축으로
한 양극단을 이루었다. 두 나라 모두 막대한 재래식 전력을 갖춘 군
사 강국임에도 양국의 정치가들은 새로이  급부상한 비방사선 핵폭
탄이 전쟁 억지에 이바지 할  것임을 의심치 않았고, 그 결과  전쟁
종결 후 1년 만에 미국은 429개, 러시아는 239개의 탄두를 만들어내
기에 이른다.
영국과 프랑스도 동일한 연구를 진행한  관계로 100개 내외의 탄두
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지만, 3세계 국가들 입장에선 비방사선 핵폭탄
은 제조 불가능한 미지의 무기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연구와 제조에 이르는 모든 부분이 1세대 핵병기 개발에 필
요한 자원의 1000배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1세대 핵
의 무분별한 확산에 따른 큰 손해를  겪은 강국들은 비방사선 핵폭
탄 제조에 필요한 기술들을 철저히 숨겼고, 이것은 큰  효과를 발휘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냉전시대가 남기고 간  저주 받을
전략을 다시 인류 앞에 들이밀기에 이른다.  바로 MAD(상호확증파
괴)였다.
미국은 정당성 확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펼쳤다.
(1)미국은 20세기와 21세기에 이어 23세기에도 패권 국가로  등극했
다. 필연적으로 이를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3세계 국가들은  도처에
널려 있으며 이들은 미국이 군사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혼을 내주기
전까진 불량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견지했었던 악의 축들이다.
특히 그들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실정에 대한 책임
을 회피하기 위해 반미국, 반서방 노선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들은 힘으로 제압할 필요가 있다.
(2)이들 3세계 국가들은 무능하기 그지 없던 통합 체제를  그리워하
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든 부활시키고 싶어한다. 이는 인류의 점진적
발전에 배치되는 위험한 발상이며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막아
야 한다.
(3)하지만 그런 의도들을 일일이 막겠다고 재래식 전력을  동원하는
것은 여러모로 낭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방사선 핵병기로 위
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미국과 서방 각국은 국방 예산의 증액과 함께 비
방사선 핵병기에 대한 투자를 증대했고, 이것은 인류로 하여금 불안
한 평화를 지내도록 강요했다.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