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의 안에 증오가 잠들어 있음을 안다. 나는 우리의 안에 잔혹이 잠들어 있음을 안다. 나는 우리의 안에 질투가, 분노가, 교만이, 탐욕이, 그 모든 추악하고 일그러진 것들이 잠들어 있음을 안다.
나는 우리의 안에 죄악이 잠들어 있음을 안다. 우리가 경멸해 마지 않는 모든 것이, 우리의 안에 잠들어 있다. 우리의 본성은 결코 선하지 못하다.
...우리는, 인간이다.

신을 믿는 자들은 말한다. 신께서 모든 것을 지으셨으나, 그 피조물인 인간이 스스로 그 분의 사랑을 저버렸다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품에서 달아나, 어둠 속으로, 악 속으로, 죄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고... 그러나 한마리의 양을 잃은 목자가 자신의 모든 양떼를 남겨 두고 없어진 한마리의 양을 찾아 헤매이며,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가 너그럽게 용서하듯이 신께서는 언제나 우리 인간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시며 죄인을 용서해 주신다고 말한다.
인간의 타락이 극에 달했을 때, 영혼을 팔아 사악한 힘과 맞바꾸고 어둠이 세상을 덮었을 때, 무엇이 옳은지 잘못되었는지조차 불분명할 때, 약한 것은 먹히고 강한 것은 먹는 법칙만이 존재할 때, 신께서는 인간을 가엾이 여겨 그 분의 대리자를 내려 보내셨다.
'구원자'... 그 누구도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가 태어난 곳도, 그가 자란 곳도. 마치 천궁으로 부터 천사들에게 떠받들린 채 지상으로 내려온 것처럼, 모든 것은 가리워져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성서에 기록된 '말씀' 뿐. 태초에 '말씀'이 계셨느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모습이 주께서 보기에 좋더라. 그 분의 대리자 '구원자'. 그는 인간들이 등을 돌린 신의 사랑과 자애를 펼치고 어둠과 죄악과 고통과 절망에 맞서서, 마침내 스스로 모든 인간의 죄악을 짊어지고 죽었다. 그리고 삼 일만에 '구원자'는 부활해 승천했다. '구원자'...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첫번째 '구원자'가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짐으로써, 신을 믿는 자들이 말하는 '암흑시대'는 끝났다. '구원자'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할 적에 지반이 흔들리며 모든 지옥의 층들이 뒤집어지고, 지옥의 관문은 쓰러졌으며 스스로 '구원자'의 발이 닿음에 경의를 느낀 지옥의 대지가 무너져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과연 지금은 모든 인간이 더이상 죄를 짓지 않고, 더이상 고통받지 않으며 더이상 절망하지도, 더이상 증오하지도 않는가?

신을 믿는 자들... '임하신 분'인 첫번째 '구원자'가 암흑시대와 죄악을 동시에 무너뜨릴 때부터 그와 함께 있어온 자들, '계시를 이루는 자들'은 내게 말했다. 임하실 분이여, 경배받으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그 분 앞에 모두 엎드릴지어다. 천사들, 불꽃으로 빚어진 자들, 신의 종이며 빛의 날개들, 그들은 내게 노래했다. 찬송, 찬송,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만물의 죄를 짊어지려 오셨네. 만물아, 일어나 춤추어라, 네 죄를 씻어주실 분이 왔노라. 그 분께서 너를 씻어 눈처럼 희게 하실 것이다.

내가? 내가 과연 두번째 '구원자'인가?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그들이 믿는 신을 죽이고, 그의 손에 놀아나는 세상을 내리쳐 깨어버리려는 내가? 어째서 '계시'는 내게 내가 구원자가 되라라고 말한 것일까? 나는 최후의 날의 '대적'이 될지언정 세상을 구원하는 '임하실 분'은 되지 않을 것이다. 결코! 나는 신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나는 그의 뜻에 맞서기 위해서 세상을 파멸시킬 것이다. '구원자'는 말했다... 나는 평화가 아닌 분란을 주기 위해 왔노라.
나 역시 그러할 것이다.

신을 믿는 자들은 인간이 그를 빚은 신을 거역함으로써 원죄를 범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가 죄 속에 수태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죄인이다. 영원토록 죄인. 우리의 피 속에는 죄가 흐르고 있다.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죄...
...그 죄를 빚은 것은, 그들이 그토록 경배해 마지않는 주, 천상의 아버지, 하늘에 계신 주님, 만물을 빚은 이, 군주 중의 군주, 그 분이다.
원죄를 지은 것은 신이다.
그는 모든 것을 창조했다... 심지어 악과 죄조차도. 인간을 고통받게 만드는 모든 것, 인간이 선택함으로써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들, 유혹, 절망, 공포, 가장 추악한 죄악과 어둠, 나약한 인간의 영혼, 너무도 쉽게 부서지는, 그래서 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영혼...
그는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서, 죄악을 창조했다. 우리는 그의 뜻대로 죄를 짓고, 그의 뜻대로 회개한다. 저주받을 윤회의 굴레. 지옥과 연옥과 천국, 그 모든 층을 따라 순환하는 끊이지 않는 고통... ...세상은 고통으로 움직이고, 증오로 구르며, 절망으로 유지된다. 자신을 경배할 존재들을 만들고, 그들이 어둠에 묻히게 함으로써 더욱더 자신에게 매달리게 만드는 자. 만물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한 인간을 넘어서, 그 어떤 영혼, 이성, 지성도 버틸 수 없는 고통과 증오와 절망과 공포와 죄악과 타락이, 그 모두, 그에게 있어서 한갓 유희에 불과할지 모른다. 어쩌면 신이 그로써 슬픔을 느끼는 것도, 유희의 한 가지일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신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 장차 다가올 최후의 날, 심판의 날, 죽음이 자신이 삼키운 자들을 내뱉고 바다가 자신의 밑에 가라앉은 자들을 해안으로 쓸어올릴 날. 나는 '구원'을 본다. 칠층의 천국이 무너진다. 천궁이 박살나 지상으로 떨어지고, 날개에 불붙은 천사들은 길게 꼬리를 끌며 추락한다. 그 자신이 만든 곳, 빛과 어둠이 뒤섞일 것이다. 천국은 지옥 속에 처박힐 것이다. 천사들은 악마의 무리 틈으로 곤두박질 칠 것이다. 그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산아, 무너져 우리를 가려다오, 그분의 진노가 이르렀다, 누가 그분의 진노를 피할 수 있겠느냐, 하고 외칠 것이다.... '그 분'의 진노라고? 일곱의 재앙들, 빛을 잃은 태양, 머리터럭으로 짠 천처럼 검은 달, 쏟아져 내리는 유성들, 피처럼 변하는 물, 무저갱에서 기어 나오는 악마들, 질병, 짐승들의 왕국, 바다에서 올라설 자, 늙은 용, 큰 표상, '대적'.
나는 그를 옥좌에서 끌어내릴 것이다. 그의 천궁에는 오직 파괴와 죽음만이 남게 하리라. 그의 보관을 벗겨 짓밟고, 법의를 찢어 바닥에 내팽겨치고, 권위를 상징하는 홀과 막대는 부러뜨려 지옥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가 이제껏 그의 뜻대로 그의 피조물들이 겪게 했던 모든 것을, 그에게 돌려 주리라.
나는 '구원자'이다. 나는 두번째 '구원자'이며, '임하실 분'이다. 이미 첫번째 '구원자'는 모든 것의 죄를 물과 빛으로써 씻었지만, 나는 피와 불로써 모든 것을 씻을 것이다. 윤회의 굴레를 끊어, 모든 이들이 영원토록 겪는 고통의 순환을 박살내겠다. 나는 죽음의 구원, 파멸의 구원, 무의 구원을 줄 것이다.
만물아, 엎드려 경배할지어다. 여기에 너희의 죄를 씻어줄 이가 왔노라.

잡설---------------------------------------------------------------------
일단 본편과 번외편에 대한 이야기부터-.
으음, 이 글은 쓴지가 2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_= 한동안 판타지를 쓰는데 미쳐 있을 때에, 독서실에 가서 앉으면 세시간 동안 꿈쩍않고 신들린 듯 써내리고 했습니다 -_- 그렇게 상당한 분량을 써서 노트 몇권이 나왔으나 그 가운데 한권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전에 했습니다. 일단 내용상 중요한 전개 부분이 없어져서 심적인 탈력이 큰 데다가 거기다 또 얼마 지나서 보니 이 부분도 고치고 저 부분도 때우고 요기는 없애고 조기도 지우고 해야 될 것 만 같아져 그냥 싸그리 들이 갈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본편에 대한 건 그렇다 치고, 또 그런 와중에 굳이 번외편을 쓰게 된 이유는, 참...
로타에르가 대학생이 된 뒤 하도 폐인 생활을 하다 보니. -_- 기숙사에서 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컴퓨터컴퓨터컴퓨터컴퓨터 게임게임게임게임 이러다 보니 더이상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불타올랐으며 그래서 이것저것 손대던 중에 다시 소설 쓰는데 손대게 된 것입니다. =_- 그러나 당장에 새로운 편을 시작할 엄두는 안나고, (이미 시작만 해 놓고 진전이 없는 것들이 하도 많으니) 그래서 그나마 좀 진척이 많이 되어 뭐가 잡혀 있는... 예전의 소설을 기반으로 쓰려고 했더니 이번엔 또 전에 썼던 게 눈에 밟히더군요. 고심 끝에 계획만 해 두었던 번외편을 먼저 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_- 솔직히 말하면 번외편은 본편처럼 치밀한 구성도 필요 없어 아하하하하하 이런 생각이 컸던 건 사실이지만, 쓰다 보니까 본편이건 번외편이건 역시 소설은 소설이더군요. ㄱ-

그럼 이제 소설 설명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번외편이다 보니 자세한 설명은 뚝 떨어져서 없고, 딸랑 주인공이 처음부터 모험을 시작하니 영 이해하기 힘드실 듯 하군요. -_- 원래 작가는 소설로 말해야 하지만 어쩌겠습니까-_- 본편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 소설의 제목은 '구원자'이고(위 쪽에 몇번이나 나왔으니 뻔하지만) 주인공은 네드 라니프입니다. 참고로 이 이름은 각각 end와 final의 철자를 조합해서 쓴 글자 장난이죠.
원래 한 때는 모든 종류의 지식이 자유로이 허용되던 시대가 있었고 주문학과 자연과학이 번성했습니다(그렇습니다! 마법도 학문인 겁니다!-ㅁ-) 늘 그렇듯이 이런 시대는 항상 고대문명인 법이고 무언가에 의해 멸망해야겠죠? 이 시대는 '구원자'가 강림하면서 파탄을 맞이하는데, '구원자'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만 3일만에 부활해서 승천하고(...) 그 제자들에 의해 성스러운 어머니 교회가 세워진 탓입니다. 구원자의 이름으로 명하는 기도문인 신성언령은 놀랍게도 모든 마법을 파쇄했고 졸지에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수많은 학문들은 이단이 되어 모조리 불타버립니다. 교회는 구원자 강림 이전의 시대를 죄와 타락으로 물든 암흑시대로 규정하고, 그 후 오랜시간동안 대륙에는 교회와 결합한 신성 제국의 통치가 지속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주인공씨가 품은 신념은 확고합니다 : 모든 것을 신이 창조했다. 죄도 신이 창조했다. 죄를 자기가 만들고서 피조물들한테 죄를 지었네 뭐네 하는 신이야말로 못됐다. 그러므로 신을 없애야한다(...) 이건 간단히 말한 경우고, ~ 대강 설명하자면 그노시스 철학 일부를 섞은 개똥철학입니다(...) 신 자체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지만, 세계를 신의 의지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파괴하겠다는 거죠. -ㅁ-
그런데 이렇게 해서 스스로 '대적'이 되겠다고 결심한 주인공에게 다가와서 너는 임하실 분이다! 너는 두번째 '구원자'다! 라고 말하는 비밀의 세력이 있습니다. 파문당한 주인공은 교회에 열심히 쫓겨다니는데-이미 말했듯이 주문은 신성 언령의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죠-그보다 더 강력한 신성 언령을 휘두르며 자신들을 진짜 성당 기사단이라고 칭하는 자들이 주인공을 이끌어주는 겁니다. 위의 독백은 주인공이 어느정도 내린 결론입니다(...)

일단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지만 번외편에서는 직접적으로 성당과 주인공의 갈등은 나오지 않습니다. 또 주인공의 성격이 뭐랄까... 의심이 많달까 교활하달까 음험하달까 여튼 저랑 좀 닮아서...(...) ...예, 그렇구요! 또~ 아차, 여기 등장하는 아가씨가 있는데 설명을 안했군요. -_- 간단히 말하자면 더 로그에서 카이레스 이 녀석이 디모나가 아니라 메이파를 택하기를 바랬(...이자식아!) 여튼 그렇습니다. -_- 그런겝니다. -_- 이 '독백'에는 안 나왔지만, 두번째로 네드가 의뢰를 받았을 때 만나게 되는 아헨 만다렐이라는 어린(이게 중요한 겁니다아아아아-ㅁ-) 성직녀가 있는데 일행이 몰살하고(로타에르의 소설에서는 현실감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함정은 몸으로 해체하고 주문은 몸으로 시험해 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ㄱ-) 겨우 네드의 주문으로 위기를 넘겨 네드가 마법사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 아가씨가 여기서 이런저런 일을 벌여서 결국에는 네드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이 파문당하는 것을 감수하고 끝까지 네드를 쫓아다니죠. 번외편에서는 걸어다니는 야전병원의 역할로 주로 나오지만, 원래는 나름의 아주 중요한 역할이 있긴 합니다. -ㅅ-

이것 참 쓸데없이 주절주절 말이 많군요. -_- 작가는 글로 말해야 하는 법인데... 쩝. 번외편 주제에 다짜고짜로 시작하기는 뭐하고 뭔가 해설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이 독백문을 가져다 붙히고 그걸 핑계삼아 설명한 겁니다.
그러나 일단은 설명해야 될 거 같아서 조금만 덧붙히자면, -_- 이 번외편은 우선 거의 TRPG 시나리오 한회 수준입니다. 던전 하나를 들어갔다 나온다 쯤인데요, 또 거기다가 이제껏 꾸역꾸역 비축한 설정 및 아이디어 중 일부 항목을 꽤나 많이 썼습니다. 거의 편마다 설정글이 우르르 달릴지도. -_-
자 그럼 대략 올리기 시작하겠습니다~ 참고로 작가는 항상 댓글을 참 좋아한답니다. '참 잘봤어요^^'같은 것도 달리면 좋아한답니다(어이...-_-) 여튼 많이들 봐 주시기를.
티끌 같은 세상속에 작은 모래알 하나, 한바탕 미친 바람 불고 나면 그 간 곳을 모르온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