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버트 웰즈의 소설 <타임머신>의 내용 누설 있습니다.


올해 여름에 개봉했던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평론가와 관객에게 두루 호평을 받았습니다. 어떤 인물이 똑같은 사건을 되풀이하는, 소위 루프 장르에 속하죠. 일종의 시간여행물인데, 과거로 돌아가는 시점이 고정되었다는 게 특징입니다. 비록 똑같은 시점으로 돌아가도 미래를 알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끝내 불가능해보이는 업적까지 이룩할 수 있죠. 비단 이 영화만 아니라 대개의 시간여행물은 다른 시간대의 개입을 주제로 내세웁니다. 현대인이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로 앞서가서 역사를 바꿉니다. 흔한 사례가 2차 대전 시기로 돌아가서 히틀러를 없앤다거나, 헤어진 여자 친구를 다시 만난다거나, 며칠 후로 날아가 복권 번호를 확인하거나, 10년 후의 사회 문제를 알아본다거나 하는 식이죠. 타임슬립이든, 루프든, 타임머신이든, 시간여행자가 관조적으로 남는 경우는 드뭅니다. 시간여행물은 '역사에 만약이 없다'는 명제를 뒤집습니다. 그래야 역사적 가정이라는 로망을 충족하니까요.


그런데 의외로 시간여행자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작품도 있습니다. 그것도 최초의 SF 시간여행물이라고 불리는 <타임머신>이 그렇습니다. 가만히 보면, 이 소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간여행이랑 거리가 멉니다. 주인공 시간여행자는 타임머신이라는 전무후무한 장비가 있음에도 그저 시대를 관찰하기만 합니다. 여타 주인공들은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현재를 수정하느라 바쁩니다. 하지만 <타임머신>에서는 현실을 수정하려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바로 잡거나, 선구적인 지혜로 위기를 경고하지도 않아요. 시간여행자는 엘로이 여성인 위나를 연인처럼 대했지만, 결코 되살리려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자기 잘못으로 연인이 죽었으니, 여타 시간여행 주인공이라면 되살리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을 텐데요. 또한 인류 사회가 먼 미래에 파탄이 난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죠. 몰록이 어쩌다 생겼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증거 보여주겠다며 전혀 상관없는 선사 시대로 돌아갑니다.


요약하자면, <타임머신>은 주인공이 다른 시간대에 개입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연인의 죽음과 인류 멸망이라는 비극 앞에서도 결코 타임머신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시간여행자가 멸망한 세계에서 겪는 모험에 가깝습니다. 미래에 인류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지구 생태계가 얼마나 바뀌는지 이야기만 들려줍니다. 아예 본인조차 자신이 시간여행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지경이죠. 덕분에 <타임머신>은 다른 시간여행물과 추구하는 재미가 다릅니다. 다른 시간여행물은 시간대 간섭의 재미를 추구합니다. 실타래처럼 얽힌 과거-현재-미래를 정신 없이 넘나 듭니다. 반면, 이 소설은 멸망한 사회와 변화한 미래를 조망합니다. 행복할 것 같은 인류의 미래가 사실 멸망 직전이고, 종국에 지구 생태계마저 광대하게 뒤바뀐다는 충격이 뒤통수를 때립니다. 인류가 스러져가는 과정은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마침내 태양이 커져 기존 생명체가 멸종한 장면은 눈 앞이 아득해집니다. 허버트 웰즈 소설 중에서도 가장 스케일이 큰 부분일 겁니다.


따라서 <타임머신>은 일반적인 시간여행물과 궤도가 다릅니다. 최초의 SF 시간여행물이고, 타임머신이 등장했기 때문에 시간여행 이야기로 분류하긴 합니다만. 오히려 시간여행을 빌미로 한 디스토피아에 가깝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해당합니다. 문명 사회는 진작 붕괴했고, 남은 이들은 천천히 쇠락하는 중이니 묵시록 소설이 따로 없죠. 그것도 그냥 인류만 망하는 게 아니라, 태양 여파 때문에 기존 생태계 자체가 싸그리 사라지니까요. 타임머신이란 장비는 어디까지나 멸망한 세계를 체험하게 해주는 매개체에 불과합니다. 웰즈가 이렇게 쓴 까닭은 사실 19세기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엘로이와 몰록의 관계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갈등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겉보기는 엘로이(부르주아)가 사회를 통치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은 몰록(프롤레타리아)에게 먹히는 신세죠. 웰즈는 당시 공장 노동자들을 보면서 그들이 혁명을 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참고로 웰즈가 쓴 <우주전쟁> 역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성향에 가깝습니다. 이것도 최초의 본격적인 외계전쟁물이라는 점이 각광을 받습니다만. 사실 지구인과 화성인은 대등하게 전쟁한 적이 없습니다. 삼발이가 나오자 인류가 탈탈 털리는 편이죠. 그나마 썬더 차일드처럼 반격하는 전함도 있지만, 산발적인 몸부림에 불과할 뿐입니다. 지구인의 운명은 사실상 바람 앞의 등불이었죠. 삼발이가 가동한 이후에는 오로지 피난, 피난 또 피난입니다. 시민들은 공항에 빠져 사방팔방으로 달아나고, 그 와중에 혼란과 무질서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집니다. 도시는 쑥대밭이 되었고, 군인들은 헛된 싸움을 이어나갑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실의에 빠지거나 심하게 절망하는 이들이 대다수입니다. 주인공이 만나는 풍경은 파괴와 죽음의 잔재일 따름요. 작가는 어디까지나 외계인이 침공해서 사회가 붕괴된 이후를 주력으로 묘사했습니다. 포소트 아포칼립스 <트리피드의 날>을 쓴 존 윈덤도 자신이 웰즈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회상했죠.


<우주전쟁>을 이렇게 쓴 이유는 역시 당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영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제국주의가 얼마나 비참한지 고발하려는 취지였죠. 화성인은 다짜고짜 지구로 쳐들어와 우수한 병기로 인류를 학살합니다. 이는 우월한 전함과 총기류를 이용해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인도의 등골을 빨아먹는 유럽 강대국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른 대륙이 유럽에 저항도 못한 것처럼 지구인 역시 화성인에게 일방적으로 발리는 입장이죠. 비단 이것만이 아니라 웰즈는 <투명인간>에서도 보이지 않는 힘의 정치를 논하는 등 사회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아마 본인이 힘든 환경에서 자랐고, 그 덕분에 19세기 영국의 부정적인 측면에 날카롭게 반응했겠죠. 학창 시절 배운 생물학 지식을 활용해 계급 갈등이나 국가 문제를 조성했고요. 자연 과학 지식을 가지고 사회 과학을 풀어냈다고 할까요. <모로 박사의 섬> 정도가 순수하게 자연 과학에 가깝지만, 역시 독재 정치나 사이비 종교를 은유하는 면도 있습니다.


잠깐 샛길로 빠졌는데, 요점은 <타임머신>이 그저 시간여행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애초에 웰즈는 시간여행의 기발함보다 인류 사회 붕괴와 지구 생태계 변화를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겉보기는 시간여행 같지만, 알맹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그런 고로 다른 시간여행물에서 중요하게 나오는 타임 패러독스라든가 역사 창조/제거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여행자는 자신이 역사를 바꿀지 모른다는 점을 전혀 인식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바꾸려는 의도도 없고, 자신이 목격한 장면의 의미를 되새기기만 합니다. 애초에 시간여행자가 머물렀던 시대와 현재 사이에 어떤 접점이 없습니다. 웰즈가 소설을 썼던 19세기에는 혼돈 이론 같은 게 없었지만, 있었다 해도 작품 플롯과 주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듯합니다. 작가가 처음부터 시간대 간섭 따위에 흥미가 없었으니까요. 이후 영화나 팬픽 등에서는 나름대로 시간대 개입이 들어가지만, 그건 원작 소설의 골자를 잘못 파악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원작의 유지를 이어가고 싶다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쓰는 게 맞겠죠.


※ 전에도 이야기했는데, 이렇게 보자면 <백 투 더 퓨처>의 브라운 박사가 허버트 웰즈가 아니라 쥘 베른을 좋아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브라운 박사는 과학적인 낭만을 꿈꾸는 인물이죠. 그런데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두 편이나 쓴 작가는 취향에 맞지 않았을 겁니다. 시간여행을 하면서도 허버트 웰즈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까닭이겠죠. 아예 자식들 이름까지 쥘 베른을 따서 지었을 정도이니. <백 투 더 퓨처>는 대표적인 시간여행 영화지만, <타임머신>과는 별로 인연이 없습니다.


※ 개인적으로 SF 작품의 여성 캐릭터 중에서 위나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하나는 <화씨 451>에서 등장한 클라리스.)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위나가 죽었는데도 시간을 되돌리지 않은 시간여행자를 원망하기도 했네요. 머리가 굵어지면서 원망은 사라졌지만, 위나의 죽음은 다시 읽어봐도 마음이 짠~해집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성의를 다했고, 금지 구역까지 함께 했는데, 정작 그 때문에 불타는 지역에 홀로 남았으니. 어차피 시간여행자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물귀신 신세였겠지만.


※ SF 작품에서 가장 뒤통수를 강타한 장면이라면, 주저 않고 <타임머신>의 생태계 변화 장면을 꼽겠습니다. 어린 시절에 이 장면을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게다가 그 책에 삽화까지 있어서 훨씬 실감 났어요. 이것 때문에 시간여행을 어떻게 하는지는 별로 눈에 안 들어왔을 정도입니다. 그 삽화를 다시 보고 싶은데, 어떤 출판사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의외로 어렸을 때 읽은 SF 소설에는 괜찮은 삽화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찾을 수가 없어서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