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ADEND - 작가 : 레가드(kasi)
글 수 80
레스토랑의 주차장에 차를 그대로 두고 올림픽 공원을 걸으며 조는 원의 가느다란 손은 잡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기억할 수 없었지만 그의 이야기에 원이 자주 웃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슈퍼맨 로고가 박힌 붉은 후드 카디건을 입은 조와 단정한 겨자 색 트윈 니트를 입은 원을 스쳤다. 조는 바람에 날리는 긴 앞머리를 왼손으로 쓸어 올렸다. 원의 새하얗고 날씬한 목의, 가을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비치는 솜털이 눈에 들어오자 조는 오른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매만지고 싶었다. 하지만 주먹을 꼭 쥐며 강렬한 충동을 애써 참았다.
원을 다시 집에 내려주고 호텔로 돌아올 때까지는 조는 들뜬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느라 고생했다. 원과의 달콤했던 시간의 여운을 돌이키기 위해 헤드 유닛에는 아무런 CD도 걸지 않았다. 가로등과 네온사인의 불빛이 오늘따라 찬란해보였다. 호텔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사무실 겸 숙소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했을 때 담배 연기와 함께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다.
“데이트 즐거웠냐?”
조는 제이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빙긋이 웃어보였다.
“술 한 잔 어때?”
“지금?”
조의 질문에 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는 난색을 보였다.
“솔직히 좀 피곤해.”
“사랑에 취한 기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는 거군.”
“알았어. 알았어. 나는 가볍게 칵테일이나 한 잔 할 테니 너는 위스키라도 마셔라.”
제이는 조의 말에 어깨를 툭 치며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랐다. 제이가 이끈 곳은 놀랍게도 호텔 안의 술집도, 호텔 밖의 바도 아니었다. 호텔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곳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이 들끓는 클럽이었다. 가요를 믹싱한 엄청난 볼륨의 댄스 음악과 함께 천 조각만 걸친 듯한 남녀들이 머리와 팔다리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이라 빈 테이블이 없을 것 같았지만 제이는 아는 웨이터가 있었던 듯 용케 구석의 자리를 얻었다. 과일 안주와 맥주, 그리고 위스키와 생수, 우유가 나왔다.
“여잔 어떤 스타일이야?”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제이가 목청을 높이며 물었다.
“키는 작고 마른 편. 이마가 넓고 눈이 크고. 광대뼈가 나왔지. 아직 볼 살이 남아 있어서 아기 같아. 말수가 적고 성실해.”
제이는 조의 대답에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하나하나 눈앞에 그려보 듯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연애란 말야. 세 가지가 맞아 떨어져야 할 수 있어. 첫째는 타입의 문제. 서로 타입이 맞아야 할 수 있지. 남녀 관계라는 건 알 수 없는 거라서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자기가 아니면 아니란 말이지. 둘째는 마음의 문제야. 누군가를 받아들일 마음이 되어 있지 않으면 타입이 마음에 들어도 사귀기 힘들어. 셋째는...”
제이는 시가를 꺼내 입에 질끈 물으며 이어 나갔다. 아직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조는 생수를 마셨다.
“셋째는 타이밍의 문제야. 이를 테면 골키퍼 있는 사람을 사귀는 것은 어려운 것처럼 말야.”
“흐음...”
“넌 이 세 가지가 충족된다고 생각해?”
“그런 걸 일일이 따져야만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건가?”
“초짜 티를 내는군. 아무리 사람을 사귀어 본 적이 없다지만 너무 물불 안 가리는 거 아냐? 감정만으로 밀어 붙인다고 되는 건 아니라고.”
“그 애를 반 년 정도 지켜봤어. 서서히 내 마음에 들어오더라고. 난 불성실하거나 긴장감이 없는 사람은 싫은데 반 년 동안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어.”
제이는 조의 변호를 들으며 곧바로 반론하지 않고 자신의 글라스에 위스키를 따랐다. 조는 병맥주의 뚜껑을 손으로 따고는 제이의 위스키 잔과 가볍게 건배했다.
“겉으로 성실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내면적으로는 곪거나 신경질적일 확률이 높아. 사실 네가 그런 타입인데 너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는 공통점을 발견하며 기뻐하겠지. 하지만 나중에 비슷하지 않은 점, 그러니까 다른 점을 찾아내면서 배신감을 느낄 거야. 견디기 힘들 걸.”
“처음부터 초치는 거야?”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넌 말야, 보다 쾌활한 사람을 만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네가 견디기 힘들어 질 거야.”
“이런 이야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어. 그나저나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 온 이유는 내 연애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아니지?”
“알았어. 그만 하지. 하지만 사랑은 집착일 뿐이야. 시작만 달콤할 뿐, 결국 그 이상의 고통이 따라오지.”
조와 제이는 사정없이 쿵쿵거리는 음악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굳이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었다.
“도청을 피하기 위해서인 거야?”
제이는 수긍하듯 말없이 위스키 잔을 비웠다.
“지난 번 한현철 건 이후로 진전이 있는 거야?”
“너에게 자세한 것을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아.”
“팀장과 정?”
“그래. 뭔가 꾸미고 있는데 내가 나서서 그들을 처리하겠다는 걸 노인네는 말리고 있어. 친구라서 판단력이 무뎌진 걸까? 늙어서 그런 걸까?”
제이는 시가에 불을 붙이고는 이마를 긁적거렸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모른 척 가만히 있어줘.”
원을 다시 집에 내려주고 호텔로 돌아올 때까지는 조는 들뜬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느라 고생했다. 원과의 달콤했던 시간의 여운을 돌이키기 위해 헤드 유닛에는 아무런 CD도 걸지 않았다. 가로등과 네온사인의 불빛이 오늘따라 찬란해보였다. 호텔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사무실 겸 숙소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했을 때 담배 연기와 함께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다.
“데이트 즐거웠냐?”
조는 제이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빙긋이 웃어보였다.
“술 한 잔 어때?”
“지금?”
조의 질문에 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는 난색을 보였다.
“솔직히 좀 피곤해.”
“사랑에 취한 기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는 거군.”
“알았어. 알았어. 나는 가볍게 칵테일이나 한 잔 할 테니 너는 위스키라도 마셔라.”
제이는 조의 말에 어깨를 툭 치며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랐다. 제이가 이끈 곳은 놀랍게도 호텔 안의 술집도, 호텔 밖의 바도 아니었다. 호텔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곳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이 들끓는 클럽이었다. 가요를 믹싱한 엄청난 볼륨의 댄스 음악과 함께 천 조각만 걸친 듯한 남녀들이 머리와 팔다리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이라 빈 테이블이 없을 것 같았지만 제이는 아는 웨이터가 있었던 듯 용케 구석의 자리를 얻었다. 과일 안주와 맥주, 그리고 위스키와 생수, 우유가 나왔다.
“여잔 어떤 스타일이야?”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제이가 목청을 높이며 물었다.
“키는 작고 마른 편. 이마가 넓고 눈이 크고. 광대뼈가 나왔지. 아직 볼 살이 남아 있어서 아기 같아. 말수가 적고 성실해.”
제이는 조의 대답에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하나하나 눈앞에 그려보 듯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연애란 말야. 세 가지가 맞아 떨어져야 할 수 있어. 첫째는 타입의 문제. 서로 타입이 맞아야 할 수 있지. 남녀 관계라는 건 알 수 없는 거라서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자기가 아니면 아니란 말이지. 둘째는 마음의 문제야. 누군가를 받아들일 마음이 되어 있지 않으면 타입이 마음에 들어도 사귀기 힘들어. 셋째는...”
제이는 시가를 꺼내 입에 질끈 물으며 이어 나갔다. 아직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조는 생수를 마셨다.
“셋째는 타이밍의 문제야. 이를 테면 골키퍼 있는 사람을 사귀는 것은 어려운 것처럼 말야.”
“흐음...”
“넌 이 세 가지가 충족된다고 생각해?”
“그런 걸 일일이 따져야만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건가?”
“초짜 티를 내는군. 아무리 사람을 사귀어 본 적이 없다지만 너무 물불 안 가리는 거 아냐? 감정만으로 밀어 붙인다고 되는 건 아니라고.”
“그 애를 반 년 정도 지켜봤어. 서서히 내 마음에 들어오더라고. 난 불성실하거나 긴장감이 없는 사람은 싫은데 반 년 동안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어.”
제이는 조의 변호를 들으며 곧바로 반론하지 않고 자신의 글라스에 위스키를 따랐다. 조는 병맥주의 뚜껑을 손으로 따고는 제이의 위스키 잔과 가볍게 건배했다.
“겉으로 성실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내면적으로는 곪거나 신경질적일 확률이 높아. 사실 네가 그런 타입인데 너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는 공통점을 발견하며 기뻐하겠지. 하지만 나중에 비슷하지 않은 점, 그러니까 다른 점을 찾아내면서 배신감을 느낄 거야. 견디기 힘들 걸.”
“처음부터 초치는 거야?”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넌 말야, 보다 쾌활한 사람을 만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네가 견디기 힘들어 질 거야.”
“이런 이야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어. 그나저나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 온 이유는 내 연애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아니지?”
“알았어. 그만 하지. 하지만 사랑은 집착일 뿐이야. 시작만 달콤할 뿐, 결국 그 이상의 고통이 따라오지.”
조와 제이는 사정없이 쿵쿵거리는 음악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굳이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었다.
“도청을 피하기 위해서인 거야?”
제이는 수긍하듯 말없이 위스키 잔을 비웠다.
“지난 번 한현철 건 이후로 진전이 있는 거야?”
“너에게 자세한 것을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아.”
“팀장과 정?”
“그래. 뭔가 꾸미고 있는데 내가 나서서 그들을 처리하겠다는 걸 노인네는 말리고 있어. 친구라서 판단력이 무뎌진 걸까? 늙어서 그런 걸까?”
제이는 시가에 불을 붙이고는 이마를 긁적거렸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모른 척 가만히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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