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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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피트 안에 떠있던 홀로그램들도 에너지 공급이 차단되자 스르륵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코크피트 내부의 무게중심을 제어하던 중력제어장치가 힘을 잃고 김진을 내려놓았다.
스타시커가 완전 정지된 것을 확인한 김진이 고개를 끄덕이곤 코크피트를 열어 재꼈다.
“어? 이봐 뭐 하려는 거야? 뛰어내리려고?”
크레인을 코크피트에 연결하려던 정비원이 그러한 김진의 모습을 보곤 당황한 얼굴을 하였다.
무장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스타시커는 순수한 전장만 13M에 달하는 기체.
아파트로 치면 5층 높이의 크기였다.
그 정도면 결코 낮은 높이라 할 수 없는 상황. 그러한 높이에서 안전장치 없이 코크피트를 여는 것은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더군다나 아므레아는 지구보다 중력이 더 강한 곳.
설혹 잘못해서 떨어지기라도 했다간 결코 좋은 꼴은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정비원의 우려완 다르게 김진은 새처럼 가뿐하게 뛰어내리며 바닥에 무사 착지하였다.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표정.
그 모습에 정비원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진이 태연히 몸을 일으켰다.
정비원은 파일럿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으나 김진은 현재 고위급 파일럿만 입을 수 있다는 팔라딘 슈트를 입고 있었다.
우주에서 인류의 개별 활동 영역을 늘리기 위해 고안된 전방위 보호 장비 팔라딘 슈트(*1)
그야말로 고위 파일럿들의 필수품 1호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이것을 입고 있는 이상 여별의 목숨이 하나 더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가격이 무지하게 비싸단 점.
여기에 사용된 사이오닉 크리스탈만 해도 현금으로 환산하면 무려 6만 달러 어치였으니 일반 유저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슈트라 할 수 있었다.
팔라딘 슈트를 입고 김진이 걸어가자 도킹 스테이션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옹기종기모여 그를 구경하기 바빴다.
대다수가 평범한 쫄쫄이 파일럿 슈트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삐까뻔쩍한 갑옷을 입고 있는 김진에게 이목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임 상에서 팔라딘 슈트를 입고 있는 고위 파일럿을 볼 기회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외관도 중세시대의 판금 갑옷과 맞먹는 모양새였기에 그 위용이 한층 더하였다.
아이템에 자부심을 가진 유저라면 으쓱거리기 좋은 상황.
그러나 김진은 자신이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아 인상을 찌푸렸다.
기능성은 더할 나위 없는 장비였건만 외관은 마음에 드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대체 제작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만든 거야.”
그렇게 구시렁거리길 잠시.
그런다고 주변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기에 결국 김진이 할 수 있는 일은 발걸음 속도를 높여 이 장소를 벗어나는 행동밖에 없었다.
* * *
“……이상으로 전투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G-535 지부의 지휘관급 브리핑 룸.
김진이 보고를 끝내고 착석하자 반대편 여성이 눈을 빛냈다.
“대단하네요. 카잣두르를 홀로 잡는 이가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에요.”
리리아 블로섬.
별 두 개의 견장을 달고 있는 장성급 인사로 최전방 기지. G-535의 사령관임과 동시에 아므레아를 총괄하여 관리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종족은 알카르 안나.
위관급에 불과한 김진에게는 감히 비교조차 불허하는 높은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설정상으로는 A급 임무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기에 알카르 안나 내부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란다.
뭐, 그래 봤자 게임 속 인물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준비를 많이 했을 뿐입니다.”
가상 인물에게 딱히 비위를 맞추고 싶은 생각도 없기에 김진이 단순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의 반응에 리리아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다른 이들의 준비는 부족하다고 힐책하시는 건가요?”
그녀의 반응이 다소 좋지 않았다.
하긴 어찌 보면 총 책임자인 사령관의 무능함을 꼬집는 말로 들릴 수도 있으리라.
전문적인 무력 집단이 일개 개인이 이룬 성과를 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전력만 충분하다면 저뿐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카잣두르와 대적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정론.
김진은 안색도 바꾸지 않고 말하였다.
개인적으로 쇼미더머니 보다 강한 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리리아는 반대 의견이었는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그건 지극히 극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카잣두르와 일대일이라니, 아무리 좋은 장비를 장착했다 한들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랍니다.”
“제가 딱히 특별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아니요. 당신은 특별합니다. 그 사실을 굳이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요. 우주 세기에 들어서면서 파일럿의 수요가 아무리 늘었다 한들, 그중에서도 A급 파일럿은 극히 극소수라 할 만합니다. 알카르 안나, 투르라우, 실-닐. 피테쿠스. 그 네 개의 인종을 통틀어도 당신같이 뛰어난 파일럿이 나오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아무리 시나리오상의 멘트라지만 이러한 금칠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은 김진이었다.
“예. 그러니 앞으로도 우주공동체연합을 위해 많은 활약 부탁드립니다. 또한 지휘관급인 카잣두르의 섬멸. 어려운 임무였음에도 훌륭하게 완수하신 점. 알카르 안나를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지휘관인 리리아의 정중한 인사.
등 뒤의 날개를 고이 접어 꾸벅 인사하는 모습에 김진은 묵묵히 일어나 경례로 화답했다.
플레이어들의 소속은 피테쿠스.
NPC인 알카르 안나와는 같은 국부은하군에 속하나 엄연히 지휘체계가 다른 기관인 만큼 접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임무수락과 정보 공유. 그리고 임무완료에 대한 보고뿐.
그 외에는 논터치의 원칙대로 대할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위관급에 불과한 김진이 장성급인 리리아에게 감사인사를 받다니.
이러한 리리아의 인사는 꽤 이례적이라 할 수 있으리라.
아무리 피테쿠스가 알카르 안나측의 우방이라 하여도 어느 정도의 거리는 있는 법이다.
고작 임무 하나에 일일이 인사를 받을 정도는 아닌 상황.
그럼에도 감사 인사를 받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모르지크와의 최대 격전지인 알카르 안나.
그중에서도 최전방 기지인 아므레아 행성.
하루에도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나오는 상황 속에서 혈혈단신으로 적의 수뇌를 격파하였으니 어찌 그 공이 적다고 할 수 있을까. 하물며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말이다.
아무리 무한의 가능성이 있는 게임이라지만 종족을 불문하고 개인의 한계는 있는 법이다.
그것을 김진이 깨트린 것이다.
우주세기에서도 길이 남을 업적.
자일리언의 대적자.
그 위업으로 인하여 김진이 A급 파일럿을 달성하게 된 것이니, 그 예우로서 인사를 받게 된 것이라면 영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카잣두르에게서 나온 사이오닉 크리스탈은 정화하는 대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소유자의 몫이니까요. 그리고 임무 완료 보상은 공과담당관에게 방문하시면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면서 리리아가 품 안에서 한 장의 편지를 꺼내 건네주었다.
“이건?”
“A급 파일럿이 되신 것에 대한 선물입니다.”
김진은 리리아가 내민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현실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편지를 이렇게 게임에서 받을 줄이야.
설마하니 가상현실에서 이런 구시대적 유물을 볼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다.
그것도 여성에게서 말이다.
“읽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리리아의 승낙에 김진은 편지를 받아 펼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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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팔라딘 슈트 :
고탄성 광물 아마릴리스와 초강도 광물 테라마스를 나노분자로 배열하여 만든 보호장비로, 자체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변환하여 산소를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최대 60G의 중력까지 버틸 수 있으며 인간의 근력, 지구력, 내구력을 획기적으로 보강해준 작품.
위기시 충격 흡수력도 더할 나위 없어서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탑승자가 생체기 하나 나지 않게 도와주는 보호 장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