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변주곡>>
제二장. 一막. [내가 누구란 말이오?]
Moderato risoluto (보통 빠르기로 - 결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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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이런 게 왜…?”
“잘못 받았나….”

여기저기서 의문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늙수그레는 그저 즐거운 듯, 모두의 얼굴에 역력해지는 당황의 빛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잘못 인쇄된 것 아니오?”
“보여준다는 게 이런 것이었습니까?”
“이봐요, 우리가 원하는 게 없지 않소?”

항의소리가 섞이면서 혼란스러워지자 늙수그레는 손을 들었다.

“아아, 조용히 하시오. 조용히- 설명을 해 드릴 테니까,” 그래도 청중은 소란스러웠다. “좀, 조용히 좀 하란 말요!!”

왜 소리를 지르면 귀에 들어가는 것일까. 조금은 진정된 청중에게 늙수그레는 천천히 읊었다.

“내가 부르는 목록들이 모두 들어있는지 한 번 확인해 보시오.” 늙수그레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쪽지를 보며 말했다. “2183년도 낙랑 군수물자에 대한 세부역량분석, 곡후려 진공 철회사건에 대한 고찰, 2190년도 극비 해저실험 자료… 동해만 수위 10.3m상승 관련….”

사람들은 그의 말에 따라 서류들을 넘겨가며 일일이 확인했다. …그 모두가 확실히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왜 그것들이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 여전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대략 다섯가지의 자료제목을 읊은 늙수그레는 고개를 들어 웅성거리는 무리를 향해 눈빛을 쏘아냈다. 그 눈빛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시선을 피할 수 밖엔 없었다.
그 때, 서류를 자세히 살피던 한 사람이 비명같은 목소리로 외마디 탄식을 내뱉었다.

“이, 이것들은- 국사 대외비 자료?!?!”
“뭐라!!”

또 다시 회장이 소란해졌다. 만약 그것들이 ‘국사대외비’의 기밀수준을 가진 것들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었다. 아무리 자유언론이라지만, 거기까지 손을 대는 건 보안법을 지대하게 위반하는 위험천만한 행위였으니까.
아니, 애초부터 그 수준까지의 접근은 절대 불가능…
할 것인데…??

“영감이 대단하구먼. 과연 3대 언론사의 대들보들이군.”

그의 말에선 어느새 존대가 사라져 있었다.
기괴한 늙수그레의 웃음소리와 함께, 회장 안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극도의 불안함이 휘몰아쳤다.

“허나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종업원들이 품속에서 총기를 꺼내며 각 식탁을 점령했다. 모두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며 급변한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갑자기, 어둡던 회실 안으로 눈부신 빛이 쏘아져 들어왔다. 가까스로 실눈을 뜨고 창 밖을 쳐다본 극소수의 사람들은, 정지비행하며 탐조등을 회실 안으로 뿌려대는 수많은 직승기들을 어렴풋이나마 목격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탄식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아우성 속에서 늙수그레는 외쳤다.

“당신들을 보안법 1조 2항- 기밀보안법위반 및 기밀자료 공유의 혐의로 전격연행한다!!”

성격 급한 누군가가 연단 위로 뛰어올라 그를 덮치려 했지만, 종업원들에게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저지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증거는 충분하다. 회실 곳곳에 설치된 촬영기들이 당신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기록했고, 각 식기에 남아있는 지문과 바닥에 떨어져 있을 체모, 그리고….” 그는 그 붉은 케이스를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당신들의 손 위에 있는 바로 이것. 움직일 수 없는 확증이지.”

회실 입구로 무장한 공안들이 몰려들어왔다. 모두의 얼굴에 흑빛 절망이 짙어져갔다.



국장은 바닥이 보이는 빈 찻잔을 흔들고 있었다. 간부들이 청하호텔로 부름을 받아 건너간 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누구도 국장에게 상황보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필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었다.
국장실 창밖으로 보이는, 호텔을 포위하고 있는 공안차량들과 상공을 떠도는 직승기들….
분명했다.
간부들은 전대미문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국장은 늙수그레의 얼굴을 떠올렸다. 깊은 주름을 타고 항상 흐르던 미묘한 웃음- 그것의 의미가 오늘에서야 드러난 것이었다.
국장은 눈을 고요히 감고 기다렸다. 호텔과 이 한청방송출판사는 매우 가까웠다. 그래서….

>콰당!

국장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검은 의상의 무리가 밀려들어왔다. 국장은 눈꺼풀을 천천히 밀어 올렸다. 검은 장벽 너머로, 당황하며 지나치게 허둥거리는 비서의 청초한 얼굴이 잠깐 비쳤다. 이제 다신 볼 일이 없게 될 그녀였다.
그 장벽이 열리더니 갈색 두루마기를 걸친 남자가 국장에게로 걸어나왔다.

“한청방송국장, 자네를 언론조작 및 기밀보안법 위반혐의로 연행하네.”

국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미련을 가질 게 결코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부장은 갓을 고쳐 쓰며 언통1관의 집무실로 향하는 직통전화를 집어들었다.
직통전화가 일개 사무실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개설되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특이한 사실이었다.
…조금 기다린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급히 개설한 것이라 약간 지연된 것이리라.

“나, 언통3관 부장일세.”

그러자 수화기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있네. 뭔 일인가?”

그다지 정감 있는 말투라곤 하기 어려웠다.

“드디어 고기가 낚였다네.” 그게 설령 4년 3개월 동안 같이 일해 온 동료일지라도. “이제 이 짓거리를 그만 둘 때가 된 거지.”
>“자네, 부업으로 낚시질을 시작했는지 몰랐구먼. 그러게 위에서 주는 일은 꼬박꼬박 챙겨먹었어야지.”

이래서 부장은 이 친구가 싫지 않았다.

“흥, 자넨 그 고기나마 낚았나? 내기에 졌다는 걸 꼭 그렇게 돌려말할 필요는 없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골이 난 듯 했다.

>“증거는 있나? 그것도 없이 큰소리치는 건 아니겠지?”

그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카드를 불빛에 비춰보며 대답했다.

“당연해.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큰 거지. …내친김에 이거 빼내서 흥청망청 살아볼 텐가?”

목소리는 코웃음쳤다.

>“허! 필요 없네. 난 잠자리는 편하게 하자는 게 인생의 신조니까.”

이 작전이 시작되기 전엔 그 신조라는 게, 못 올라갈 나무는 뽑아버려라 비슷한 것이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는 부장이었다.

“어쨌든, 물증도 확보했으니 이제 이 삐걱거리는 사무실을 진짜 부장에게 넘겨줘야지. 언제고 서류정리는 머리 아프다니까.”
>“허허- 난 정들어 버렸네. 여기 실장이 아주우~ 싹싹하다니깐….”
“…그런 건 정들었다고 표현하는 게 아니라네.”




“자, 다섯, 넷, ….”

셋과 둘과 하나는 카메라 기술자가 손가락을 접음으로서 신호했다. 아나운서는 그의 손가락들이 모두 접혀 주먹이 되자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 열두시경, 청하호텔의 초 호화 연회실에서 3대 언론사의 간부들이 모여 국가적 기밀사항을 공유하다 현장에서 검거되었습니다. 공안청은 이들이 철저한 사전 모의는 물론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기밀자료를 공유해 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모임을 주도한 이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으나, 상당한 규모의 사건이니만큼 주모자 색출은 금세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 원고가 쓰여 올라가고 있는 탁자 안의 화면에 급히 쓴 듯한 메모가 돌출했다.

[새 소 현 상 입]

마치 암호처럼 난해한 낱말의 배열이었다. …그것들을 풀어 말해야 했다.

“아, 지금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현장 상황을 기록한 영상이 입수되었습니다.”

지금쯤 수상기 앞의 시청자들은 그 영상을 보고 있으리라. 아나운서는 화면의 급조된 대본을 띄엄띄엄 읽어내려갔다.

“지금 보시는 화면은… 검거 당시 연회장의… 모습입니다.”

화면에는 흐릿한 조명 아래 이리저리 넘어져 있는 의자들이 비춰졌다.
그리고 카메라가 한 식탁 위로 옮겨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요리가 담겨진 그릇을 잡았다. 허여멀건 지느러미 위에 진득한 갈색 양념과 흑색 알들이 올려져 있었다.

“…에, 공안청에서는 검거 당시 매우 호화스러운 연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합니다. 보시다시피, 매우 고급의 음식들이 남겨져 있습니다.”

지금 수상기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군침을 한 컵 정도 삼키고 있을 것이었다. …아나운서도 원고를 읽는데 침이 방해될 정도였으니.



“잘 읽고 있군.”

스튜디오를 찍고 있는 촬영기의 뒤에는 검은 옷의 장정들이 십수명 서 있었다. 촬영기사는 등판에 쏟아져 내리는 그들의 눈빛이 뜨거운지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 검은 장정들은, 그들이 준 원고를 앵무새처럼 낭랑하게 읽어내려가는 아나운서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3대 언론사 방송실에 검은옷들이 들이닥친 것은, 청하호텔에서의 대규모 검거작전이 펼쳐진 직후인 새벽 1시쯤이었다. 그들은 신속하게 회사 건물을 점령했고, 청하호텔로 파견된 간부들의 보고를 기다리며 남아있던 국장들을 체포해 연행했다. 그리고 그들은 당직이었던 몇 안되는 직원들을 제압한 후 방송실을 점거, 아침뉴스에서 미리 준비 해 온 방송원고를 읽도록 요구했다. …그리고 그 원고란 것은 회사의 직원들에겐 그야말로 맑게 갠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회사의 중추와 그를 보좌하던 이들이 한날 한시에 모조리 연행되었으니 -(그것도 엄청난 죄목으로)- 건물 지하 3층쯤에서 폭발물이 터졌다 하더라도, 그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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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를 좋아합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상상해 낼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