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웠다. 그리고 캄캄했다. 너무도 어둡고 두려웠다. 병사가 간신히 눈을 떳을 때 보인건 이게 다였다.

병사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서히 주위를 살펴 보았다.

끔찍할 정도로 잔ㅉㅡㄱ 찌푸린 하늘은 미친듯이 요동치며 회오리바람을 올려댔고 땅은 반쯤 녹아 갈라졌다. 거기선 마치 고름처럼 용암이 치솟았고 무서운 진동이 요동을 쳤다. 하늘과 땅을 가득 메운 먼지구름과 돌더미들이 바람속에서 춤을 추며 그의 시야를 막아섰다.

문득 그의 시야가 한 곳에 머물렀다. 그의 눈앞에 보인 것은 청아한 빛을 내는 통로였다.
푸른색 빛을 뿜어내는 사람 크기만한 환형의 에너지가 와동을 치고 있었다. 이것은 빛의 문... 누가 만든 걸까?

병사는 주위를 보던 시선을 멈추고 자신을 보았다.
쇠장갑에 싸인 두 팔이 보였다.
갑옷을 입은 몸통이 보였다. 갑옷은 뭔지모를 문양이 새겨졌으나, 갑옷의 잿빛 강철은 이미 붉게 달아오랐으며 군데 군데 구멍이 뚫리고 파손되어 있었다. 문양을 알아볼 방도는 없었다.
허리춤엔 무수한 주머니가 붙은 벨트가 있고, 거기엔 칼집 두 자루와 전투 망치가 있었다. 칼집엔 오직 하나의 칼 만이 꽃혀있었다.
다리춤엔 화살통과 물통들이, 무게가 느껴지는 등엔 큰 베낭과 방패, 그리고 활 하나가 장비되어 있었다.

활은 이미 활 시위가 끊어져 있었고, 방패는 메져있었으며 벨트 주머니는 거진 비어 있었다. 모두 어디에 있을까? 한 자루의 칼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동안의 훈련에 익은 대로, 끊어진 활 시위를 새 시위로 교체했고, 전투 망치로 구겨진 방패를 대충 폈다. 비어버린 칼집과 구멍난 물통은 미련 없이 버렸다.

병사는 다시 주위를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케이는? 레베카는? 우리의 영도자 엘렉님은? 모두 다 마검의 빛에 먹힌 걸까...? 마왕 조차 길들일 수 없었던 마검을 믿은게 잘못이었나?

그러나 병사에게 어떤 의문이 스쳤다. 케이? 레베카? 엘렉님? 그들은 누구지? 그리고 마검? 마검이라는 것은...

그러나 병사의 생각은 끝까지 지어지질 못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한없이 큰 두통이 그를 덮쳐왔던 것이다. 병사는 무시무시한 두통에 습격을 받아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어버렸다. 머리 한 구석이 하얗게 될 정도로 무서운 격통에 온몸을 두들부들 떨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리고 보니, 얼마나 힘을 꽉 쥐었는지 쇠장갑에서 핏물이 베어나왔다. 그 격통은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병사는 생각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자신은 무엇 때문에 활과 방패를 수리했나? 전투 때문이다. 싸우기 위해서다. 그렇다. 병사는 [적]이 있었다.

[적]은 [우리]와 비슷했다. 영웅, 군대, 그리고 [마검]까지... 그리고 당연한 듯이 닥쳐오는 격통에 병사는 기절할 지경이었다. 결국 병사는 모든 생각을 하길 포기 했다.

병사는 다시 주위를 살펴 보았다. 세계는 이미 마검에 의해 삼켜진지 오래...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면 분명 다른 세상으로 피난을 갔을 것이리라... 그렇다면 자신도 오래 머물러서 좋을 것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병사는 천천히 빛의 문을 향해 발을 옮겼다.


빛의 문을 통과하면서 몸은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눈은 빛을 갈망하였으나 뜨지를 못했다. 귀는 소리를 듣고자 하였으나 몸을 유지하는 것만도 힘에 부쳤다. 결국 병사는 잠시 주저 않아버렸다.

위와 아래, 앞과 뒤의 경계마저 희미해 지는 통로를 통과할 때 나오는 경계증후군이었다. 병사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베낭에서 약물을 찾아 한웅큼 입안에 털어넣으며 몸을 진정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당연한듯이 그는 속이 뒤집히는 울렁거림과 극심한 갈증을 느꼈으나 극도의 인내로 견뎌냈다.

경계증후군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병사는 훈련대로 초점의 원근을 조절하며 시력을 회복시켜 나갔다. 그리고 그의 눈에 비친 환경은 정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 보였다. 그 중앙에는 미려한 자태를 뽐내며 희미한 빛을 대지에 고르게 비추는 달이 있었다. 주위는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각종 풀이 가득한 땅은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병사를 상냥하게 받치고 있었다.

마치 꿈속과도 같은 광경... 병사는 새롭게 드러난 세계를 보며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여기가 진짜로 세계가 맞는 건가? 적의 환각에 빠진 것인가? 여기가 진짜라면 동포들이 있을까?

동포. 그 단어가 떠오르자 머리가 심한 두통이 몰려 왔다. 그러나 병사는 이에 적응하는 방법을 이미 찾아내었다.

병사는 모든 생각을 멀리 하고 감각에만 집중했다.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신선한 숲내음이 그의 폐를 가득히 채웠다. 숨을 보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내쉬면서 손을 더듬었다. 풀사위가 만져지고 그의 귀에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자 아까의 경이가 다시 그를 환영했다.

환영이 아니다. 적의 술수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새 세상에 온 것이었다. 병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기도를 하듯이 두 팔을 벌리고 달빛을 온 몸에 받았다.

병사는 칼과 방패를 쥐고 달을 길잡이 삼아 숲을 헤쳐 나갔다.

[물고기군] 밤이면 언제나 아름다운 인생을 꿈꾼다. 사랑하고픈 사람과 별을 바라다 보고 싶을때 비오는날 우산들이 공허하게 스쳐갈 때 노래부르는 물고기가 되고 싶고 날개달려 하늘을 날고싶다. 아침의 차가운 바닥에서 눈을돌려 회색의 도시라도 사람의 모습을 느껴본다 부디 꿈이여 날 떠나지 마소서... [까마귀양] 고통은 해과 함께 서려가고 한은 갑갑하메 풀 길이 없네 꿈은 해와 함께 즈려가고 삶과 함께 흩어지네 나의 꿈이여 나의 미래여 나의 길을 밝혀 밤의 끝을 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