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동무 한명이 늘었다. 20대 중후반쯤의 누님이시다. 뭐가 그렇게 어색한지 3일정도가 지난 지금에서도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악의는 아니었지만 내가 그녀에게 한일을 생각하면 얼굴 맞대고 웃으면서 대화 할 수 있을것 같지가 않았다. 어찌되었든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뭐 이쪽에서 꼭 친해져야 할 이유도 없고, 별로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런데도 여자끼리라 마음이 맞기라도 하는지, 내 여동생 수영이랑은 곧 잘 말을 나눈다.

이젠 제법 '남쪽이다.' 라고 할 수 있을만큼 내려왔다. 여기저기에 '살아있는' 사람도 부쩍 눈에 띈다. 라고는 해도 이건 예상보다 너무 적다.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난을 왔을텐데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만큼 사람이 많지 않다는것이다. 약간은 머리에 혼란함을 느끼며 근처의 빈 가게로 들어갔다. 이제까지완 다르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다른사람이 가져간 모양이다. 확실히 전쟁중이긴 전쟁중이나 보다라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나온다. 몇일째 씻지도 못하고 더러운 옷에.. 이제 배까지 곪게 생겼으니 영락없는 거지새끼일까. 목적지 까진 얼마 남지 않았지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그 아버지 친구분이 우리를 반겨주실지.. 문전박대 하진 않으실지.. 몰라보진 않으실지.... 별의 별 걱정이 다 들기 시작했다.

"야."

그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참 별일이다.

"이제 대충 목적지를 말해 줄때도 되지 않았니? 동생한테도 안가르쳐준것 같던데."

그러고보니 수영이한테도 말을 안해줬었다. 지금까지 혼자 이상한 생각만 해대며, 다른 사람 생각도 안하고 현실 도피를 즐기고 있었던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흥이라는 곳으로 가고 있어요."

"고흥?"

"네. 한번도 안가본 곳이지만. 그 곳에 지인이 계서서 말이에요. 그 분이 우릴 반길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대로 서울에 있을려고 하는 것 보단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 했어요."

"그래.. 그렇구나. 그리고 하나 더 물어볼게 있어."

뭘 잡수셨는지 궁금증도 많은 분이셨다.

"말 하세요."

"너 이름이 뭐니?"

그러고보니 이름도 가르쳐주지 않았었다. 이쯤되면 전쟁통에 정신이 없었다는 변명도 안통할것 같다.

"수영이가 말 안해주던가요?"

"뭐.. 이거 만큼은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어서 말이야."

그래도 이름을 가르쳐 줄때의 이미지는 좋아야 하지 않겠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살짝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곽사영 이라고 해요."

이름을 듣고난 후의 그녀의 표정은 왠지 납득하기 힘든 표정이었다.

"왜요?"

"... 우리나라에 곽씨도 있었니?"

이번엔 이쪽에서 납득하기 힘들어졌다. 아니 어찌된 여자가 곽재우장군도 모른단 말인가? 오냐. 이번엔 이쪽에서 물어봐 주겠다. 김,이,박 아니면 똑같이 응수해 줄거라고 다짐하면서 이름을 물어보았다.

"누나 이름은 뭔데요?"

"나? 나는 신태희라고 해."

"이쁜 이름이네요."

나의 다짐은 그 누나의 이름을 들으면서 바로 무너졌고, 뭔가 이유모를 부끄러운 느낌에 빈 가게를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뭔 박스가 눈에 띈다. 심봤다. 라면박스였다. 이걸로 앞으로 한 4일 정도는 배채우면서 살 수 있으리라.

"라면만 먹으면 위에 구멍 뚫리지 않니?"

태희 누나가 라면박스를 보며 한마디 했다. 나는 피식 웃고는 누나에게 말을 했다.

"만약 그렇다면..."

라면 박스를 어깨에 짊어지고 말을 이었다.

"난 이미 예전에 위에 구멍이 났을거에요."

나무젓가락 적당히 챙기고 밖으로 나가는데. 밖의 분위기가 약간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지막하니 술에 취한 아저씨가 다짜고짜 수영이 에게 수작을 부리기 시작한듯 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이 터진다. 얼마전에 맨손으로 땅판것 때문에 손가락이 성치 않아서 왠만하면 이런 상황에 끼고 싶지 않지만.. 별 수 있나.

"어허! 아저씨가 딸 생각이 나서 그런다니까."

"이.. 이거 왜 이래요. 놔요."

수영이는 계속해서 소극적인 저항을 하고있다. 쟤는 학교에서도 저랬는지 모르겠다. 내 동생이라 이런말 하고 싶진 않지만 말수도 없고 시원한 맛도 없고 톡톡튀지도 않고 솔직히 인기없을 타입이다. 외모는 출중하니 아닐 수도. 어쨋든 이 상황을 종식시키는게 중요하다. 뭐라고 표현할까. 그래. 설레바리 치는 아저씨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아저씨. 제 동생에게서 떨어지셔야 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알코올의 위력으로 그 사람은 평소보다 깡이 쌔진것 같다.

"이 놈! 땍끼 왠놈이 아버지같은 사람한테.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댁같은 아버지 둔적 없거든요. 왠만하면 조용히 다른대로 가세요."

그 아저씨의 얼굴이 독기가 서린것 처럼 붉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자식이 녹말이쑤시게 구워먹는 소리를 하네."

"아저씨야 말로 밥에 알로에즙 비벼먹는 소리하지 마시죠."

아아. 조용히 끝내긴 글렀다.





--------------------------------------------------

이번엔 대화중심으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The Man's Wo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