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 스포츠. 그러니까 스타크래프트나 철권 같은 게임을 보는 것을 즐깁니다. 피지알이나 포모스 같은 게임 커뮤니티에도 자주 들락거리고요. 그러다가 보게 된 게시글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글이 있습니다. 해외 유저들의 프로게이머 아이디 토론이었죠. 말이 토론이지 사실상 어떤 아이디가 간지다, 어떤 아이디는 xx 같다는 잡담을 늘어놓기 였지만 말입니다. 


 (사정 모르는 분들에겐 좀 신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해외에서도 e - 스포츠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해외의 매니아 층이지요. 그들에게 한국은 성지나 다름없습니다. 누가 더 게임 잘하나 하느냐를 텔레비에서 틀어주는 나라는 한국뿐이 없으니까요)


 어쨌거나 꽤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였죠. 한국 사람들은 아무 관심없는 아이디를 가지고 뭐가 좋네 나쁘네 죽자로 입씨름을 해대었으니까요. 한국 사람들에겐 게임 아이디 같은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냥 이름으로 부르니까요. 하지만 외국 사람들은 사람을 이름이 아니라 아이디로 인식합니다. 임요환이 아니라 '슬레이어즈 박서'로 인식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디는 그 사람 이름이자 간판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아이디가 이상한 것은 이름이 이상한거나 마찬가지인거에요. 전화번호부에 실린 이상한 이름 같은 것이 유머 사이트에 돌아다니곤 하지 않습니까? '피바람' '강간범' '설사해' 같은 이름을 가지고 웃고 떠드는 것과 마찬가지였죠. 


 이런 일은 외국만의 일만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철권 크래쉬' 같은 프로그램에선 이름 대신 아이디로 통합니다. 시청자들에겐 '배재민'이란 이름보다 '무릎', '채동훈'이란 이름보다 '구라' 란 아이디가 익숙합니다. 아이디가 인터넷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쓰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이디가 이름 대신 쓰이는 일이 벌어지는 거에요. 



 어쩌면 이것은 하나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애들은 걸음마 뜨면 마우스부터 잡는 것 같더군요. 그 아이들에겐 컴퓨터가 아주 익숙합니다. 인터넷도요.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런 사람들이 더 늘어나겠죠. 인터넷이 더욱더 발달하면,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학교도 인터넷 강의로 때우는 시대가 온다면 그리고 가상현실이라도 개발된다면...


 아마 그런 시대가 오면 현실도 게임 방송처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디가 제 2의 이름이 아니라 제1의 이름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 



 사족으로 외국인들이 보는 최악의 아이디는 '저스틴' 이었습니다. 그들 입장에선 '철수' 처럼 흔한 이름인데 어째서인지 도저히 이런 이름은 용서할수가 없다고 하는군요. 프로게이머 정도되면 이름도 가상현실에 걸맞는 요상한 이름이어야 된다는 고정관념이라도 있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