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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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End of Childhood)"과 그렉 베어의 "블러드 뮤직(Blood Music)"을 읽으면, 인간의 힘을 넘어선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 이루어지는 인류의 진화를 묘사합니다.
유년기의 끝에서는 초과학문명을 지닌 외계종족 오버로드거 진화를 유도한 덕에 인간은 육체를 버리고 에너지의 형태를 띈 생명체로 화하여 우주를 지배하는 초월적 존재 오버마인드의 곁으로 날아갑니다.
블러드 뮤직에서는 고도의 집단지성을 지닌 인공 세포 누우사이트가 인체를 하나의 세계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내부개조(!)를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인간이 보다 큰 세계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은 누우사이트는 인체를 벗어나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사물들을 흡수하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집단지성의 힘을 이용하여 우주법칙의 근본을 뒤흔들기에 이릅니다.
이 두 소설에 묘사된 인류의 진화는, 장기간에 걸쳐서 본래의 형태가 조금씩 조금씩 점진적으로 달라지는 진화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단기간에 탈바꿈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전자에는 지금의 현 인류와 과거 원시인들 사이에 공통점이 존재하지만, 후자에서는 그 공통점이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기에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존재로 화하는 동시에 현 인류가 사라지므로, 사실상 현 인류의 전멸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새롭게 태어난 인류는 각자 개별적인 육체와 정신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하나인 집단적인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들과 현 인류를 잇는 유일한 점은 신 인류가 현 인류 당시에 지니고 있었던 기억뿐입니다.
제 기억에 인류의 진화나 새롭게 출현하는 생명체들의 묘사가 이와 같이 이루어진 SF작품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압니다. 작가들이 인류의 진화를 이렇게 상상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러한 양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인간은 분명 필연적으로 죽고, 죽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후손과 혈연을 통해,
결국 인간이라는 종은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또 다른 믿음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인간에게 있어 개인적 죽음보다 더 큰 차원의 죽음은 인간이라는 종의
사멸입니다.
문제는 이 종의 사멸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 개인의 죽음에 대한 고찰에서 발생한 것이 내세관과 종교라면,
인간이라는 종의 죽음에 대한 고찰에서 나타난 것이 저런 초월적 존재로의
Shift - up(적당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닐까 합니다.
왜 점진적인 진화가 아니라 갑작스런 진화가 나오냐면 작가는 12권짜리 대하소설이 아니라 1권짜리 장편을 쓰고 싶어서였다고 말하겠습니다만. ;^)
솔직히 아무리 정신이 발달해도 이렇게는 되지 않을 거라 봅니다만. (<유년기의 끝>도 그래서 막판에는 별 공감이 가지 않더군요. 오히려 오버로드들이 더 와 닿았습니다)
사실 정신합일체라는 것은 과학적 사고에서 출발했다기 보다는 인간에게 영이 있다는 전제를 그 뿌리로 하고 있는 종교적 사고방식의 연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현재 인간에게 육을 떠나 존재하는 영은 과학적으로 '전혀' 증명된 바가 없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보면(저도 그렇지만) 그 어느 작가건 결국 인간이 모든것을 뛰어넘는 (혹은 그럴 가능성이 200%인)존재로 묘사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작가가 인정을 하건 않건 소극적 의미로서 인간 우월주의를 기저에 깔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경제와 문화를 벗어난 존재에 대한 상상이란 것은 (인식이 불가능 하므로) 상상이 불가능 하기 떄문에 결국 그렇게 '단순히 초월적'이라고 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