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직업 때문에...
소위 '고객 관점의 품질'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로 읽고 보고 합니다.
말 그대로 "상품의 품질은 고객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꽤 난폭한 개념입니다.
여기서 상품이란 공산품일수도 있고 서비스일수도 있고, 하여간 팔리는 것은 뭐든 됩니다.

일례로 어떤 영화를 기획자와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서 의도했던 대로 아주 잘 만들어 냈다고 칩시다. 영화를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꽤 만족할 것이고, 이 영화의 품질은 좋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 영화 다 보고 "별로였어" "돈 아까워" 이렇게 말한다면? 이 영화는 실패작이고, 그 상품은 실패이고 불량이고, 즉 '불량품'이 될 뿐입니다. 즉, 영화의 합격/불합격을 판단하는 것이 고객 마음이고, 이게 고객 관점의 품질이라는 겁니다.
대단히 주관적이고, 정성적이고, 엿장수 맘대로인 이야기같지만, 사실 소비자에게는 이런 게 유일무이한 진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물건이든 서비스든 뭐든 돈 주고 사서 써 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건 아닌 것이죠. 공장에서 아무리 설계 사양에 맞추어 정확하게 모든 기능이 이상 없이 잘 작동하도록 생산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고객이 사용하기 불편하면 그건 불합격입니다.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데 음식이 맛 있으면 고객은 만족하고 합격점을 주지만, 맛이 없으면 불합격입니다. 요리사가 그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는 전혀 알 바 아니죠. 모든 판단은 고객 즉 소비자가 하는 것이고, 품질이 좋다 나쁘다는 고객 맘대로입니다. 무지하게 주관적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게 세상을 가르는 가장 강력한 잣대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책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팬터지도 마찬가지이구요.
지은이가 머리 다 빠지게 애 써서 글을 쓴다고 한들, 그 생산 과정에서 어떤 고난이 있었는지 읽는 사람은 알 바 아닙니다. 지은이가 얼마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의도했던 바를 제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는가는 독자에게 별문제입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품질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생산자가 아무리 최신 기술을 개발하여 적용하고 설계 사양에 맞게 다양한 기능을 가진 제품을 만들어 제공해도, 고객이 써 보고 불편해하거나 만족하지 못하면 그건 불량품입니다. 꼭 기능적인 오작동이나 고장이 발생해야만이 불량품인 것은 아닙니다. 고객이 싫어하면 그게 바로 불량이고, 불량품은 그저 욕 얻어먹고 시장에서 퇴출될 뿐이죠. 고객의 '평판'이라는 것은 아주 주관적인 것이지만, 합격과 불량을 가르는 것은 오로지 고객의 판단 밖에 없습니다.
독자가 읽고 나서 아니다 싶으면 그건 아닌 겁니다. 그건 그 독자에게 불량품일 뿐이죠. 독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글 쓰는 사람이 애쓴 정도가 아니라, 결과물이 쓸만한가 아닌가 오직 그것 뿐입니다. 그 판단은 독자 마음대로입니다. 읽고 나서 좋은 느낌이면 합격이고, 그렇지 못하면 불합격일 뿐이죠. 대단히 주관적이고 난폭하게 들리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사실 책의 가치를 가르는 잣대는 현실적으로 이 것밖에 없습니다. 즉, 독자 입장에서 "꼬진 것은 꼬진 것이고, 훌륭한 것은 훌륭한 것이다" - 이렇게 나뉠 뿐이죠. (인용구는 본래 고장원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글을 발표한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읽고 평가하는 것을 다 감수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글쓴이가 그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는 별문제죠. 독자가 읽어보고 좋다고 여기면 좋은 것이고, 별로라고 생각하면 별로인 겁니다. 불량으로 낙인 찍혀도 할 수 없는 것이고, 엉터리라고 욕을 먹어도 당연한 겁니다. 품질의 판단은 오로지 고객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책의 경우 독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글쓴이가 왜 나의 노고를 몰라주느냐, 왜 비난하느냐 이렇게 푸념하고 괴로워하고 화를 내더라도 그건 다 헛된 일입니다. 글의 품질이라는 것은 독자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고, 읽는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 자기 생각을 갖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렇게 쌓인 평판이 그 작품의 합격과 불합격을 판별하게 됩니다.

어떻게 모든 것이 고객 마음대로일 수 있는가, 도저히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고 이해 못하겠다, 납득하기 어렵다 -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유일한 해결책은 생산을 중단하는 겁니다. 즉 글을 발표하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팬터지를 창작한다고 나선 젊은 (혹은 어린) 작가라는 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작품에 대한 판단은 모두 고객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오직 독자 마음대로라는 것을 잘 이해하라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기업들이 여기에 승복하고 사업을 합니다. 세상의 모든 가게가 이러한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장사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음식점은 요리하는 사람의 노고보다는 음식이 맛있는가를 가지고 승부하고 있습니다.
나도 한 번 팬터지를 써 보겠다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무언가 글을 만들어 내 놓았는데, 대뜸 욕부터 들어 먹으면 사람인 이상 당연히 몹시 기분이 상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독자의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게 이 바닥에서 통하는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꼭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이겨내려면 보통 강심장이 아니어야 겠지요. 이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그것을 감수하면서 글을 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써서 발표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