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한 2주일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SFWAR클럽의 행사가 공식적으로 끝난 이후에 주당이라고 불리우는 클럽 내의 사조직들의 순회 행사아닌 행사가 있다. 이름하여 여관에서 날밤 까기! 오해는 하지 말도록. 그저 SF(혹은 사람 사는 이야기)가 좋은 사람들이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하지만, 병나발도 간혹 있다.) 이야기를 하는 관습일 뿐이다.

평소에 죄 지은게 많아서 이 일을 맡았다고 생각한다. 바빌론의 작가분의 간곡한 요청과 협박, 회유에 못이겨 이렇게 감상문 아닌 감상문을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클럽내에 한 글 하신다는 작가분의 작품을 봐야 하는 이유가 생겨서 내심 기대를 하기도 했다. 비록, 어깨 위에 얹혀진 책임감이 다소 무겁긴 하다만.

SF작가가 판타지를 쓰는데 있어서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고 본다.

첫 느낌은 그거였다. 사실, 나는 작가의 전작들을 모르는 백지 상태에서 바빌론부터 읽었다. 작가 자신도 이전에 쓴 작품이라는 백그라운드 없이 해당 작품만으로 평가해줄 사람으로 본인을 지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 본 느낌은 판타지라고 보기에는 다소 당황스러웠음을 먼저 밝힌다. 좋든 나쁘든 이전까지 한국에서 발매된 판타지적인 냄새와는 다른 낯선 냄새를 맡았다. 판타지라기 보기에는 너무 기계적인 접근이었지 않나 싶다. 작가의 본래 글 태생이 SF라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그 보다는 교육에 의한 습관적인 글 쓰기가 가장 큰 영향이었다고 생각한다.

바빌론의 작가의 글투는 내가 보기에는 이우혁과 비슷하다. 완전히 판에 박은듯이 똑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과학적인 냉철한 접근과 논리적인 앞뒤 문장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전개는 다분히 이공계생 냄새를 풍긴다. 나쁘다거나 흠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전까지 판타지를 비롯해서 문학 작품들은(순수, 대중 모두 합쳐서) 상당히 인문학적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따뜻한 인간의 온기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적인 태도의 글들이 직관에 의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라면, 소위 공대적인 글쓰기란 것은 귀납법적인 이전에 증명된 토대를 짓고 그 위에 조립된 구성을 얹는 방법의 차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말이 길어졌다. 작가의 문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거다. 판타지쪽보다는 아무래도 SF에 가까운 글쓰기라고. 작가 자신도 농담삼아 던진 말이지만, 이 글은 판타지라는 설명이 없다면, 충분히 SF적인 스팀 펑크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신섬함이 20% 부족하다고 말한 이유는 바로 이거다. 이전부터 이러한 소재는 많이 써먹었다는 것이다. 판타지를 배경으로 했지만, 실상 오래된 고대의 문명이 놀라운 오버테크놀러지라는 설정은 TRPG의 익절티드는 물론이거니와, 신비의 바다의 나디아, 바스타드, 파이날 판타지등등에서 즐겨 써먹은 설정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그저 그런 소재들이 차용된 덩어리들로 구성된 작품일까? 아니다. 내가 부족한 건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80%는 새롭다. 20%의 상투적인 소재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80%의 새롭게 재조립된 것들이 보인다. 그렇다. 앞서 말했다 시피 이 글은 이공계적인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존에 바왔던 모든 것들이 20%라의 소재라면, 나머지 80%는 이러한 것들이 재조립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

언어 기호학적인 말장난-쿠루마나 아키콤같은-은 이미 움베르토 에코식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다빈치 코드에까지 적용되었고, 인터넷 상에서 심심치 않게 장난삼이 쓰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한국어를 영어 발음식 표기로 음차하는 방법을 택했다.

전문가 눈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상당히 어설픈 시도일라고 평가할런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도리어 반문하고 싶다. 그 어설픈 시도를 기존 작가들은 왜 않했는가? 단순히, 문화적인 사대주의-영어 발음이 더 멋지다는 식의-이상의 의미가 있던가?

문체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흠 아닌 흠을 잡았지만, 또 하나 이야기 할 게 있다. 순전히 본인의 개인적인 감상에 불과하지만, 보고 있으면 어쩐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떠올려 진다. 수도승 후보인 아카릴과 그의 스승의 등장이나 기타 여러가지 상황 묘사를 보면 그 장면을 쉽게 떨쳐 버릴 수 없다.

움베르토 에코식의 화법은 이야기 진행 도중에 갑자기 역사학적인 배경으로 뛰어 오른다. 그것도 대단히 변화 무쌍해서, 어떤때는 주인공들의 대화로써 진행되는가 하면, 다른 어떤때는 시공간을 완전히 넘어 서 버리는 경우도 있다. 바빌론에서도 이러한 장면들이 보인다. 불과 1~10편까지만 읽었는데도 매우 눈에 띈다.

이러한 방법은 대중 소설에서 가장 모법적인 답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중 소설, 특히나 장르 소설이라면 재미를 위해서 상당 부분 화려한 볼거리나 잡학 지식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시드니 셀던의 소설이 세계 여러 곳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그 곳의 풍경을 그려내고, 톨킨이 "그러니까 그 반지가 말이지.."라는 식의 느릿하지만, 자기 페이스적인 옛날 이야기식 전개등.

바빌론(1~10)에는 이러한 것들이 대부분 들어 있다. 우마릴의 회상씬이나 중간 중간 끊어진 연재분 첫머리에 들어간 시구(혹은 성격 구절?)의 제시 등등. 상당히 모범적이고, 적절하게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킬만한 배치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장점이자 단점인 글의 전체적인 딱딱함이다.

이것이 설명식의 전개에는 상당히 잘 들어 맞지만, 전투신에 들어가면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마치 스톱 모션 에니메이션을 보는 느낌이랄까? 초반에 들어간 전투 장면은 처음 부분에 우마릴의 심리를 묘사함으로써 그러한 약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본격적인 전투씬에 들어가면서 우마릴을 비롯한 우리의 기사들은 상당히 경직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조금 러프하게 말하자면 전장의 극박함 대신 미니어쳐 게임의 병사들 배열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개인적인 사족 아닌 사족을 달자면, 묘사된 전투 장면은 비교적 소규모였다. 그렇게 장황하게 대열이라든지 심리 상태에 대해서 길게 늘어 놀만한 상황은 아니었지 않나 싶다. 어디까지나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일뿐이지만, 속된 말로 무협지 식의 차 한잔 마실 시간(15분이던가?)과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적인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야 하는데, 묘사는 매트릭스의 블릿 타임 액션처럼 너무 여유로왔다.

그 외에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으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순전히 이것은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인상 비평식의 감상일뿐이니까. 다만, 10편까지 현재 본 입장에서는 다음 편을 클릭 할 기대를 갖게 한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인터넷 소설의 특징인 현재 진행형 글쓰기라는 것에 기대어 예측해 보건데 이 소설은 재미있을 것이다. 본인같은 불만자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작가에게 압박은 거세게 될 것이고, 작가는 싫든 좋든 간에 최선의 노력을 할 수 밖에 없다. 기본적인 첫 클릭에서의 감상은 10점 만점에 7점 정도이다.-무척이나 싸가지 없게 보일런지 모르지만, 20%의 신선함 부족과 약간 루스한 전투 장면으로 3점을 뺐다...-_-a

아직 안 보신 분들은 한 번쯤 클릭할 기회를 가져 보는 것도 좋다. 적어도 판협지라고 불리우는 물건보다는 확실히 품질 보증(?)은 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생업에 따라서 연재 중단이 될 위험도 크지만, 개인적인 채널로 독촉을 한다면 완결이 날때까지 당신은 한 동안 즐거운 유희거리 하나가 느는 셈이 될 것이다.

p.s.이후에 감상문은 11~20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