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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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게임 등에서 타락을 소재로한 작품은 꽤 많습니다. 유명한 것만 들어봐도 스타워즈 에피소드 1,2,3 는 아나킨의 타락을 메인테마로 하고 있고 블리자드의 게임들 - 디아블로2는 1의 주인공이 타락 했고 , 스타크래프트 같은 경우 멩스크도 원래는 복수를 다짐하는 혁명가에 가까웠죠. 워크래프트는 워낙 유명해서 할말이 없을 정도- "아임 썩시딩 유" - 고... - 사실 타락이라는 요소는 꽤 현실적으로 흔히 볼수 있는 케이스다 보니 납득하기도 쉽고 전개를 짜기도 비교적 용이합니다.
그에 비해서 악으로 떨어진 캐릭터가 개심하는 이야기를 본건 꽤 오래전 일인듯 하군요. 대표적인게 위에도 언급된 스타워즈 시리즈 에피소드 6에서 다스베이더 같은 경우인데 막판에 반짝! 하는 수준이라 좀 어설프죠.
갑자기 이생각이 난 이유는 얼마전 마일즈 보르코스건 독자와의 대화에서 우연히 김용소설에 관한 쪽으로 이야기가 튀어서 생각이 난겁니다. 금방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긴 했지만 , 그분 말씀이 아직 김용 소설에 대해선 매력을 발견하지 못해 유보적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김용소설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의천도룡기 - 사조3부작의 마지막 편이고 국내엔 영웅문 3부로 번역된 그책 - 의 거의 막판에 나오는 금모사왕 사손의 회개 장면이죠. 실은 이장면 때문에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와 의천도룡기는 3개 작품이지만 하나로 이어질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 영웅문 1부(사조영웅전 ) 끝에서 어린 양과에게 곽정이 이름을 "과 (과오)" 라고 짓고 자를 "개지 (그것을 고치다) " 라고 붙이는 장면이 나오죠. 그래서 인지 2부격인 신조협려에서 양과는 어릴적부터 나이먹어서 까지 무지 고생하면서 사고도 많이 치고 후회도하고 하지만... 그성격은 고쳐지지 않죠. ^^ 더불어 자신이 일으킨 재앙이나 과오 보다는 오히려 선대의 악업을 청산하는 쪽이라...... 이름값한다고 하긴 조금 모자랍니다.
그래서 아쉬웠는지 3부 - 의천도룡기에서 금모사왕 사손의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사손은 어떤의미에선 진주인공 격인 인물이라고도 볼수 있는데 , 운명의 재앙으로 가족을 잃고 복수에 미쳐살게된 그는 무리하게 무공을 익히다 주화입마로 미쳐 무수한 인명을 해치게 됩니다. 결국 나름의 깨달음을 얻어 과오를 청산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원수들의 처분에 목숨을 맡기게 됩니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과 그결과는 의천도룡기 최고의 명장면이므로 네타를 피하고 암튼 그 장면은 김용소설 중에서도 보기드문 명장면이었고 , 무협소설 전체를 통털어 가장 강렬한 장면중의 하나였습니다. 결론만 말하면 결국 사손은 과를 개지 했습니다.
그후로 나름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소설이나 영화 , 게임, 각종 오락물 컨텐츠를 많이 접했지만 타락이 아나라 회개를 , 과거에 얽매이거나 혹은 과거를 얼버무리는게 아니라 진짜로 대면하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보기 힘들더군요. 아마도 납득할만한 전개를 짜내기가 힘들어서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듣자니 2천년대이후 나온 김용소설 개정판은 대부분이 여기저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사조영웅전도 나중에 한번 틈내서 다시 신판을 읽어 봐야 겠군요. 제가 수십번 본건 아무래도 오래전의 고려원 영웅문 판본이었어니까요.
과거의 죄를 참회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그런 작품을 보고 싶습니다.
하이텔의 '장혁'님 글을 보고 가입하는데요?
1. 은 아쉽게도 제가 읽은 엔더시리즈는 1편인 엔더의 게임과 최신간에 속하는 엔더의 그림자 뿐이라서 그런 후속내용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외 나머지 작품들은 전부 이름만 들어본 수준이라... 그야말로 평소 취향에 깊이가 없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차분히 읽어볼 기회를 갖고 싶은데 살아 갈수록 여유가 없어져 위에 언급된 고전명작들을 읽어볼만한 마음의 여유를 내기가 힘들어지고 시간이 나도 가볍고 생각없이 볼수 있는 것만 찾게 됩니다. 언급하신 작품들은 모두 가볍게 보기는 힘든 꽤 묵직한 작품들이란게 공통점이네요.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소화에 공을 들여야 하는 책을 보기가 쉽지 않네요.
2. 은 확실히 그런 경향이 있죠. 작가가 젋은시절에서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과 관점이 변화한 거라고 보입니다. 아마도 나름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자신이 지적인 글이라고 보기 힘든 무협소설로 돈을 버는데 대한 일종의 자책심리가 투영된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위소보가 사악하다랄까? 그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타인을 해치고 배신을 일삼는 건 아닙니다. 그저 외압 때문에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대충 합리화를 잘하는 편이죠. ^^ 솔직히 대의를 중시하는 초반형 주인공 - 곽정이나 그의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친 사부 가진악 보다 오히려 더 친근감이 느껴지는 캐릭터입니다.
ps. 그런데 회계인가요? 회개인가요? 이거 철자법도 잘 기억이 안나네요.
타락이라는 소재는 사실 생각만큼 많이 사용되지 않습니다.
블리자드의 악당들이 그렇고, 스타워즈의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그런데, 여기서 타락이라는 것은 단순히 탐욕 등에 의해서 악에 빠진다는 개념보다는 "지나친 정의를 추구한 끝에 본래 손에 넣어서는 안 될 것을 손에 넣은 결과로서의 타락"이라는 모습이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 같은 '타락의 구도'는 일반적으로 서양의 작품에서 흔히 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성경 속 '루시퍼'->'사탄'이라는 구도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스도교의 전통이 이야기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지요.
반면 참회나 회개는 타락보다도 훨씬 많은 작품에서 선보입니다. 작은 후회부터 큰 후회까지... 스토리텔링에서 '무언가를 추구하지만 실패하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서 극복한다.'라는 것이 거의 기본 패턴이다보니 말입니다.
여담) 개인적으로 이른바 '타락'이라고 할만한 이야기로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대부(The Godfather)"였습니다. 주인공 마이클 콜리오네는 평범한 삶을 바랬지만, 패밀리라는 환경 속에서 변화하고 결국 '대부'로서 자리잡게 됩니다. 마지막에 대부로서 세례식에 참석하는 와중에 부하들을 동원하여 가차없는 복수극을 가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지요.
대부 3부작은 모두 공통적으로...
Step 1) 즐거운 파티로 영화가 시작되어서
Step 2) 흥겨움이 가시기도 전에 기습 공격을 당하고
Step 3) 위기 속에 적의 실체를 파악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는
Step 4) 결국 적을 모조리 싹쓸이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3부작 모두 "파티로 시작해서 싹쓸이로 끝난다"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항상 최후의 승리를 거두지만, 매변 혈육의 희생을 동반한 승리여서 허망하고 비참합니다.
1편에서는 배반한 매제를 죽이고, 2편에서는 배반한 형제를 죽이며, 3편에서는 딸이 살해됩니다.
대부 3부작은 주인공이 악에 물들어 타락해 가고, 어렵게 승리하지만 허망하고 점점 더 고독해지는 과정을 다룹니다.
회개는 게임에서는 자주 나오는 소재죠.
가장 유명한건 파이널판타지4의 주인공 세실 일겁니다.
암흑기사로 업을 쌓아가다 여주인공을 만나고 심경의 변화를 겪고
속죄하다가 암흑을 버리고 성기사의 시험에 들어 빛의 힘을 얻지요.
이거 써놓고 보니 타이의 대모험 흉켈과도 똑같네요ㅎㅎ
그리고 보니...
아예 책 제목에서부터 타락하여 지은 죄에 대해 회개와 구원을 강조하는 작품이 있죠.
톨스토이 <부활>
타락과 회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를 작품 속에 잘 담아내느냐 혹은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작품의 무게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과 자아를 찾는 과정을 다룬 책 중에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말년에 쓴 장편 <프라이데이>가 있습니다.
미래사회를 손에 잡힐 듯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있고, 자유주의 가치관을 다루는 좋은 작품이죠.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스파이로서의 과거 삶을 불편하게 여기지만 "죄"라고는 인식하지도 않고,
평범한 삶을 갈구하여 새 인생을 찾는 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은 "모험"일 뿐이지 결코 "회개"가 아닙니다.
너무나 어려운 것을 너무 쉽고 즐겁게 해 치운다는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요 - 무거운 것이 가볍게 느껴집니다.
<프라이데이>를 다른 작가가 썼다면 원죄와 회개, 구원의 메시지로 담는 쪽으로 전개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로버트 하인라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래서 하인라인 작품 답게 자유주의 가치관을 강조하는 책이 되었죠.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아무래도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추가 가벼운 느낌을 주고 있기도 합니다.
1.
종교적 테마를 다루는 작품들은 죄에 대한 회개, 용서, 구원을 테마로 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본래 목사 출신으로 작가가 된 올슨 스콧 카드의 <엔더의 게임> 연작이 딱 그 케이스죠.
버거 종족을 멸망시키는 원죄를 다루는 <엔더의 게임>, 고행과 회개를 다루는 <사자의 대변인>,
최종적으로 버거 여왕을 부활시킴으로써 원죄의 멍에를 벗고 영혼이 구원받는 <제노사이드>...
미우라 야아꼬의 <빙점>과 <속 빙점> 연작도 원죄와 용서, 구원을 다루는 종교적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고,
토머스 만의 <선택된 인간> 역시 근친상간의 원죄를 고행으로 이겨내고 구원을 받는 테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빅톨 위고의 <레미제라블>도 원죄, 고행, 용서, 구원의 테마를 다루는 전형적인 구도를 가진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죄를 짓고 이를 씻기 위해 평생 음지에서 선행을 행하며 구원받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그려져 있죠.
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은 어떨까요.
주인공은 "나름대로 악을 응징하는 영웅이 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서
멀쩡한 사람을 두 명씩이나 도끼로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릅니다.
죄의 공포와 두려움에 몸부림치던 주인공은 비천한 창부의 깨끗한 영혼을 만나 회개하기로 결심하고,
자수를 함으로써 지은 죄에 대하여 고행을 통해 구원을 얻고자 시베리아 유배 길을 떠납니다.
딱 봐도 원죄, 회개, 구원의 구도로 되어 있습니다 - 종교 소설 구조로 되어 있는 작품이죠.
2.
김용 소설에서는... 죄를 짓고 회개하려는 사람들이 꽤 많이 나옵니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에 등장하는 남제 일등대사의 경우에도...
본래 대리국의 황제였지만 질투심 때문에 어린 아이의 목숨을 외면하면서 씻을 수 없는 원죄를 짓고,
이후 평생 회개와 고행을 통해 그 죄를 씻고 영혼을 구원받으려 애쓰지만 쉽게 용서받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사조영웅전>의 악역 중 한 사람인 철장방주 구천인도 회개하고자 애쓰는 사람인데...
화산논검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음모를 꾸며 갓난아이를 해치는 등 무수히 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일등대사의 제자로 들어가 불문에 귀의하고 <신조협려>에서는 용서를 받기 위해 무던히 애를 씁니다.
끝내 몽고족 고수와 악전고투끝에 목숨을 잃지만, 마지막에 그의 영혼은 구원받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죠.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이 가장 절절한 인물 중 하나가 매초풍입니다.
동사 황약사의 제자였지만 사형과 눈이 맞아 구음진경을 훔쳐 도화도를 빠져나와 스승을 배신하고,
이후 수 많은 사람들을 해치면서 악의 화신으로 행동합니다.
하지만 평생의 소원은 자신이 과거 배반하였던 스승으로부터 진정으로 용서를 받는 것이었고,
목숨을 버리면서 스승을 구하게 되어 끝내 스승이 용서해 주고... 숨이 끊어지면서 그 영혼은 구원받습니다.
김용 작품은 초기에는 권선징악과 죄에 대한 회개를 유독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차츰 후기 작품으로 가면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용서와 회개가 무의미해지죠.
자기 자신은 정의로운 쾌남아이면서도 사악한 스승을 저버리지 못하는 <소오강호>의 영호충은
실제로 자신은 지은 죄가 없지만 사악한 스승 앞에서 끊임없이 죄인이 되어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실은 스승이 사악한 게 진정으로 심각한 근본 문제이므로, 용서를 빌어 봐야 무의미할 뿐이죠.
<녹정기>의 위소보는 근본이 사악한 이기주의자이고, 자신의 사악한 행위에 대해 가책이 전혀 없습니다.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오직 친구를 배반하는 것뿐이고, 그 양심도 아주 얇디 얇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