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서적 게시판에 올릴까 하다가 헤르만 헤세의 깊은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준은 못 되는지라(…) 일단 여기에 올립니다.

 

개인적으로 헤르만 헤세가 쓴 <유리알 유희>를 SF 소설로 보는 쪽입니다. 싸이-파이 장르는 기본적으로 과학을 응용하여 재미난 이야기를 꾸미는 거지만, 때로는 이게 미래 세계 이야기까지 포괄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SF의 포괄 범위는 현재에 이르러 상당한 범위를 자랑하는데, 사변 소설부터 대체 역사까지 굳이 과학을 응용하지 않더라도 가능한 이야기를 전부 울타리 안에 두기 때문입니다. <높은 성의 사나이>나 <비잔티움의 첩자>에는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상상 과학이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을 넘어서>가 딱히 과학 설정에 기반을 두고 썼나요.

 

물론 협소한 의미의 Science Fiction으로만 따지면, <유리알 유희>에는 과학 설정이랄 게 없습니다. 기껏해야 카스탈리엔 교단이 시기를 따질 수 없는 미래에 생겨났다 정도. 인문학적 위치에서 비슷한 대접(?)을 받는 <멋진 신세계>나 <1984>와 달리 여기엔 아무런 기계 장치도 없습니다. 인간 복제도 없고, 텔레스크린도 없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그저 미래 소설이자 사변 소설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으나 이제 그렇게만 보기엔 사이언스 픽션의 범위가 너무 넓어졌습니다. 블랙홀이 주변 행성을 무작위로 빨아들이듯 <유리알 유희>가 원하든 아니든 이제 SF 쪽으로 원치 않게(?) 빨려들어가는 거라고 봅니다.

 

사실 이러한 구분은 그저 형식상일 뿐이고, 실질적으로 작품을 이해하는 데 그리 큰 도움은 안 됩니다. 뭐, <멋진 신세계>를 SF로 인지하고 읽은 독자가 얼마나 될까요. 다만, <유리알 유희>의 배경은 그만큼 현재가 아닌 미래를 상상했고, 그 상상력을 경원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헤세가 소위 '인문학의 위기'라는 걸 예상하고 쓴 소설이 아니었나 당혹을 금치 못할 따름이니까요. (과연 1900년대에도 인문학의 위기 같은 화두가 있었는지야 모르겠지만)

 

※ 개인적인 <유리알 유희> 소감 : http://www.joysf.com/?_filter=search&mid=world_gac&search_target=content&search_keyword=%EC%9C%A0%EB%A6%AC%EC%95%8C+%EC%9C%A0%ED%9D%AC&document_srl=3326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