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겸임 교수'라는 이름의 시간 강사입니다.


그래서 학기가 끝나고 나면 지갑이 상당히 쓸쓸해 지는 문제가 있지요.

게다가 시간 강사인 만큼 강의를 받지 못하거나, 강의가 줄어들면 삶이 팍팍해 지는 문제도 있고요.

(사실, 클럽을 유지하는게 힘들어진 것은 SF&판타지 도서관이라는 곳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동시에, 결혼을 했고, 독립해서 생활하고 있으며, 게다가 이번 학기에 강의가 다소 줄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종합 소득세 환급은 생각보다 많이 받을 수 있어 보여서 다행이지만요. 거의 95%쯤?)


뭐, 삶의 이야기는 그렇다 치고....


강사건 교수건 학기가 끝나고 나면 성적을 처리해야 합니다. 리포트를 검사하고, 출석부를 정리하고, 점수를 입력하곤 해야 하는 것이지요.


제 경우 상당히 다양한 리포트를 내주는 편이며, 실습도 자주 하곤 합니다. 그 결과는 모두 성적에 반영되는데... 문제는 이게 꽤 다양하고 복잡하다는거죠.


오랫동안 하다보니 리포트를 훝어보기만 해도 점수가 머리속에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살짝 훝어보고 지나갈 수는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제대로 보고 고민해야만 하죠.


그러다보면 시간이 훌쩍 넘어가 버립니다. 게다가 맡은 학생의 숫자가 많고 과제의 숫자도 그에 비례하여 많으니 골치아프죠. 게다가 올해는 학생들 간에 서로를 평가하는 것까지 진행했는데, 이걸 정리해서 점수에 반영하고, 나아가 학생들에게 메일로 보내주거나 게시판에 올리거나 해서 그 평가들을 참고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학교에서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학생들은 나름대로 좋아하지만, 사실 과제가 많은 걸 좋아하는 학생은 생각보다 적죠. 그래도 열정 하나만으로 전체적인 평가는 우수한 편이지만, 단지 그것 뿐. 그렇게 한다고 해서 강사료가 더 나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리포트 숫자를 대폭적으로 줄이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리포트가 아니라 시험으로 대체한다면 아마도 좀 더 쉬워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은 거의 열흘간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상태인데, 그게 2,3일로 줄어들겠지요.


무엇보다도 채점 기간에는 강사료가 나오지 않습니다.


겸임 교수라고 해 봐야 한 달에 20만원 정도 더 나오는 것인데, 저는 상담을 하게 되면 한 학생당 기본 30분 정도. 상담 기간에는 매일같이 2시간 이상 늦어지곤 하죠.


다른 교수님들은 수업 시간에 상담하기도 하는 것 같지만, 다른 수업을 빠지게 하기에 미안하다보니 끝난 후에....(뭐, 학생으로선 그게 더 안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역시 이런다고 해서 강사료가 늘어나거나 하지 않지요.



강사로서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지 3년째... 매년 새로운 강의를 맡고, 강의 내용을 업데이트하면서 발전시켜가곤 합니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고민하고 새롭게 시도하고 보완해나가고 있죠. 열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저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열정이 얼마나 갈까요?



열정 페이라는 것은 결국에 끝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제게 열정이 사라지게 되면, 수업은 평범하게 진행될 것이고, 과제가 줄어들고 시험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채점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일도, 새로운 수업 개발에 고생하는 일도 줄어들겠지요.


하루만 제대로 못자도 노화가 빨라진다고 하는데, 그런 일로 잠을 못 이루는 일이 줄어들면 좀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겠지요.



사실 저는 많은 부분에서 열정으로 해 왔습니다. 조이 SF 클럽도 그냥 다른 이들과 SF 얘기를 나누는게 좋아서 만들고 키우고 유지해 온 것이며, SF&판타지 도서관도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열정이라는 것으로 시작하고 이끌어가고 있는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릅니다. 제게 있어서는 둘다 자식과 같은 느낌이라서 쉽게 버리지는 못하겠지만, 열정을 갖고 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분명히 다를 거에요.


지금은 조이 SF 클럽에 대해서도, SF&판타지 도서관에 대해서도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되지만, 삶에 치여서 충분히 열정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열정 페이'에 의존하며 돌아가는 것은 비단 저만이 아닐 겁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많은 이가 그 열정에 의해서 뭔가를 시작해서 이어나가고 있죠.


말하자면 한국 사회는 그러한 '희생'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촛불은 결국 다 타버리게 마련이며,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열정이라는게 사라지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열정의 촛불이 하나둘 꺼져가는데 말입니다.



여담) 사실 남의 얘기 할 때는 아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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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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