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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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허브는 성씨입니다. 그러면 선장의 이름은 뭘까요.]
성춘향은 성씨가 성이요, 이름이 춘향입니다. 하지만 성씨와 이름을 모두 합쳐서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죠. 흔히들 춘향이라고 부릅니다. 작품 속에서도 종종 그렇게 나옵니다. 국어 교과서를 살펴보면, 성씨를 빼고 ‘춘향이 이러이러했다’는 식으로 서술하죠. 사실 소설에서 어떤 인물을 가리킬 때, 성씨와 이름을 완전히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일일이 거론하기에 불편하고 거북스러우니까요. 작가나 상황에 따라 그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또는 박씨, 최가, 고대리 등등 성을 중심으로 부르거나.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이름만 호명하는 편이죠. 이는 해외 창작물도 비슷한 사정입니다. 성씨와 이름을 매번 부르는 건 쓰는 작가도, 읽는 독자도 귀찮은 일이니까요. 여기다 중간 이름까지 더하면 더욱 가관이죠. 그래서 성씨만 지칭하거나, 이름만 부르거나 하는 식입니다. 작가에 따라 성씨를 주로 지칭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이름을 더 많이 부르기도 하죠. 둘 다 섞어서 쓰거나.
그런데 이름이나 성씨가 아예 안 나오는 작품도 종종 있습니다. 편의상 안 부르는 게 아니라, 아예 이름 자체가 안 나와요. 예를 들어 <백경>은 인물을 희한하게 지칭합니다. 성씨+이름 조합이 아니에요. 그냥 이름만 있거나, 아니면 성씨만 있습니다. 소설 화자는 밑도 끝도 없이 자기를 이스마엘로 불러 달랍니다. 아예 소설 첫 문장이 ‘이스마엘이라고 불러 주오.’라고 시작하는 걸로 유명하죠.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이허브 선장은 이름이 뭔지 모릅니다. 에이허브가 성씨인 건 분명한데, 이름을 부르는 건 못 본 듯해요. 선장 말고 항해사도 그렇죠. (커피 대명사가 된) 스타벅을 비롯해 스텁과 플라스크도 이름만 불러요. 작살잡이 다를 건 없어서 퀴케크나 태슈테고, 대구도 이름만 부릅니다. 어차피 이들은 출신지 때문에 성이 없겠지만. 그 밖에 조연으로 나오는 래드니나 스틸킬트도 줄곧 이름만 부릅니다. 작가가 이런 식으로 지칭하는 이유는 신화적인 느낌을 부여하고, 좀 더 캐릭터 특징을 뚜렷하게 잡기 위해서인 듯합니다. 성씨와 이름이 둘 다 있으면, 좀 더 평범한 사람처럼 보일 테니까요. (개인적인 추측이긴 합니다만.)
웃기게도 유일하게 이름+성씨가 나오는 주요 캐릭터는 인간이 아니라 고래인 모비 딕이죠. 이걸 성씨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요. 알고 보면, 이런 식으로 이름이나 성씨만 따로 지칭하는 소설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아예 <로드>처럼 이름 없이 대명사로 지칭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남자, 소년, 노인 등등. 어차피 등장인물이 한줌도 안 되는지라 저런 식으로 불러도 헛갈리지 않아요. 한 장면에 네 명 이상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죠. 많아 봐야 3명이 고작이고, 그래서 대명사를 써도 헛갈리지 않습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자와 소년 이름은 안 와요. 덕분에 멸망한 세상을 떠도는, 근거 없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이 짙습니다. <반지전쟁>은 (성씨가 있음에도) 대부분 작가 시점에서 이름을 지칭합니다. 호비트 4명은 물론이고, 간달프나 아라곤, 김리, 레골라스 등은 성씨가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대 느낌을 풍기려는지 '누구의 아들', '어느 지방의 누구'라는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죠.
그럼에도 굳이 <백경>을 언급한 건 사람들은 이름이 안 오는데, 정작 고래는 모비 딕이라는 풀 네임으로 불러서 그렇습니다. 영문으로 Moby-Dick이라고 써서 풀 네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하이픈(-)을 빼고 쓸 때도 많거든요. 일반적인 이름 유형에 비교하면, 이름+성씨 조합처럼 보이죠. 만약 하이픈을 고려하면, 훨씬 특이한 이름이 되고요. 사람들은 단순한 이름으로 부르고, 고래는 복합적인 이름으로 부르는 거니까요. 어쨌든 에이허브나 스타벅의 이름이 뭐냐는 건 오래 전부터 독자들의 궁금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논란이 되는 사항은 아니에요. 어차피 기독교 성경에서 따온 지라 상징성을 중요시 여기지, 설정으로 따질 사항이 아니니까요. 이름이 인물의 정체성을 가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느라 이런 식으로 서술하는 작품도 많은 편이죠. 인상적인 장르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이런 것도 따져봐야 할 지도?
요즘 여름 휴가철이라서 바다괴물 나오는 책을 읽는 중인데, 문득 궁금해져서 몇
글자 적어 봤습니다.
모비 딕은 커다란 거시기란 뜻이라죠. 향유고래의 형태를 생각하면 썩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모비 딕이 성+이름 조합이라면 꽤 골때리는 이름이겠군요;;
제가 작명을 한참동안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설프게 공부한바론(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안나지만),
보통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경우,
이름을 부르고요(가족, 친척, 직장, 학교 모임 등등) ,
거기다 더욱 친근함을 더하기 위해서는, 애칭을 부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이름과 아주 유사한 별명을 부르거나, 이름 석자가 x_1 x_2 x_3이라면, 이중 x_3만 부른다거나...비슷한 맥락입니다.
서로 잘 모르는 경우는, 성만 부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다 알아도 말이죠.)
또한 누군가 헷갈리지만 않는다면 편의상 성만 부르는 경우도 있구요.
(때론 자신이 그 대상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 싶음, 그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이럴땐 반말이나 예의상의 존칭이 따르죠.)
또한 어떤 칭찬하는 일이 생길경우, "풀 네임"을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경우 그 사람 뿐만 아니라 이름에는 성씨, 부모, 가문, 지역 등이 포함된 경우가 있어 아울러 그것에 대해 칭찬하고 존경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간혹, 풀 네임도 모자라, 문파, 본관 등 앞에 붙일 수 있는 것은 다 붙이고, 직급 계급 등을 붙이는 경우도 있죠.
그때도 뭔가 이유는 있습니다.
소설 작가들의 경우, 처음에는 info-의 의미로 풀네임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성만 부르던가, 이름만 부르던가 뭔가 생략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독자들이 보다 친밀을 느끼게 함으로써 스토리의 인물과 독자 사이의 거리를 줄여 몰입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입니다.
이런걸 감안한다면,
어느 상황에서 '그런 호칭'을 쓰는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3인칭 시점이라도 마치 옆에 있는 동생 부르듯 호칭하는 경우가 생기는 법이죠.
에이허브는 성이 아니라 이름입니다.
선장의 풀네임은 김에이허브죠.(틀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