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들고 휘두르는 그 역동성은 많은 장르물의 필수 요소입니다. 칼집에서 칼을 뽑아 곡선을 그리며 상대를 베는 모습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어디서나 로망이었죠. 이름부터가 검과 마법장르인 판타지는 말할 것도 없고, SF에서도 도검을 등장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판타지에서야 일반적인 칼을 쓰면 그만이지만, SF에서는 여기에 설정이 붙어야 합니다. SF쯤 되면 온갖 로봇이나 외계인, 괴물, 돌연변이 등이 설치는데, 이런 놈들을 칼로 벤다고 처치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창작가들은 온갖 오버 테크놀러지를 응용해 별의별 희한한 칼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검들은 각 작품의 기술력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 중에 자주 나오는 설정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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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오비완 케노비의 광검입니다.]

 

*에너지 병기를 칼날 형태로 출력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검이 대표적일 듯. 광검은 플라즈마를 일정한 장에 가두어 칼처럼 휘두른다는 식이죠. 써먹기가 좋은 설정이라 여러 작품에서 두루 활용합니다. 시각적으로 보면 칼자루에서 칼날을 뽑아내는 광경이 꽤 멋집니다. 칼집에서 칼을 뽑는 게 아니라 독특한 액션이 가능하죠. 칼날이 고온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밝게 빛나는데 이것도 뽀대에 한몫 하고요. 칼자루가 기계라서 검이면서도 기계 같은 느낌을 주기에 로봇이 득실거리는 SF에 나와도 그리 어색해 보이지 않습니다. 플라즈마 칼날 정도 되면 못 자르는 물질이 없으므로 성능도 킹왕짱! 단점이라면 에너지 출력 때문에 칼날이 막대 형태로 고정되는 것. 허나 가끔씩 특별한 자기장을 형성해 요상한 곡선을 그리는 칼날도 있긴 하니 큰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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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2호기가 쓰는 고진동 커터칼.]

 

*고진동 칼날로 절단

칼날이 엄청난 속도로 진동하기 때문에 그 칼날에 닿은 물질은 분자 수준으로 분해된다는 것. 겉모양은 일반적인 칼일 경우가 많습니다. 진동한다고 해도 워낙 고진동이라 육안으로는 칼날이 떨리는지 구분이 안 되니까요. 칼날이 항상 진동하면 보관할 방법이 없으므로 겉모양이 그냥 칼이더라도 어딘가에 진동 스위치가 있긴 합니다. 진동 강약을 조절함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기도 하죠. 엄청난 진동을 견뎌야 하니까 칼날도 보통 금속은 쓰지 않고, 칼날과 칼자루의 연결에도 높은 기술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칼을 가지고 서로 칼부림을 벌이면, 글쎄요, 어떻게 될지 상상이 잘 안 가는군요. 강도가 낮고 진동이 더 느린 쪽이 부서질까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나왔던 프로그레시브 나이프가 이런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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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타이라니드를 갈아버리는 스페이스 마린의 전기톱칼.]

 

*전기톱을 칼처럼 개조

전기톱은 체인처럼 휘감긴 톱날이 연속해서 돌아가 닿는 물질을 잘라내는 도구입니다. 위이잉~ 작동하는 소리가 상당히 섬뜩한데다가 대상을 갈아버리기 때문에 호러 영화의 단골 소재. 실제 위력이야 둘째치고 외관상 대단해 보이기에 호러 영화 외에도 더러 나오는 편입니다. 검처럼 쓸 때는 한 손으로 들 수 있도록 손잡이 부분을 축소하고, 톱날 부분을 길게 늘리도록 개조하죠. 써는 맛이 제대로 살려면 생물을 썰어야 하기 때문에 좀비나 거대 벌레와 싸울 때 주로 씁니다. 사실 전기톱은 사슬처럼 연결되었다는 개념이 중요한지라 이 연결부위가 망가지면 일반 톱보다도 못한 물건이 됩니다. 사슬 부위가 그리 튼튼한 것도 아니고요. 이걸 들고 괴물이나 좀비와 싸울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여하튼 <워해머 40K>의 스페이스 마린은 타이라니드를 잘도 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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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보다는 둔기가 이런 쪽에서 더 유명하더군요. 어쨌든 지랄하네가 자주 쓰는 중력 해머.]

 

*접점에 충격을 주도로 설계

전기 막대기라는 게 있습니다. 동물을 잡을 때 쓰는 물건인데, 막대기 안에 전기 장치가 있어요. 이걸로 무언가를 때리면 닿는 접점에 전기 충격을 가합니다. , 동물을 때리면 충격으로 죽거나 기절하죠. 이를 응용해 칼처럼 쓰는 겁니다. 전기 충격을 많이 쓰지만, 화약을 장비해 폭발시켜서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기술력이 좀 되면 아예 중력장을 장치해서 상대를 홈런 시키기도 해요. 현실에서 쓰이는 무기를 바탕으로 했으니 그럴듯해 보이지만, 작동 원리상 그 형태가 제한적이라는 게 단점. 칼집에서 칼을 뽑아 멋지게 휘두르는 거랑은 거리가 좀 멉니다. 아무래도 생긴 게 뭉툭하고 베는 게 아니라 도검이 아니라 둔기 형태가 많습니다.


*단분자 칼날

분자 하나 두께로 얇게, 아주 얇게 만든 칼날. 도대체 얼마나 얇은 건지 상상도 안 갑니다만, 몇몇 창작물에서 이렇게 나옵니다. 물론 얇다고 다가 아니라서 강도는 튼튼합니다. 이렇게나 얇으니 그 날카로움이야 말할 필요도 없어 금속이고 바위고 서걱서걱 잘 썰어댑니다. 하지만 공학적으로 이런 칼날은 만들 수 없다고 하더군요. 만들기 어려운 게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하다고요. 이 칼은 시각적으로 보면 문제가 많은데, 칼날이 워낙 얇아서 제대로 보이지 않고 덕분에 주인공이 폼 나게 싸울 수 없다는 겁니다. 면을 넓히면 육안으로 보이기야 하겠지만, 날이 얇으니 모양이 좀 괴악할 거에요. 검의 로망과는 좀 안 어울리는 무기. 칼자루에 장식을 달아놓거나 하면 더욱 괴악해지므로 대개 단순하게 생기거나 나이프 형태입니다.


*초합금속으로 제조

아예 칼날 자체를 상상의 금속으로 만듭니다. 뭐든지 벨 수 있고 어떠한 경우에도 안 부러진다는 식으로 금속 하나만 설정해두면 됩니다. 오리하르콘, 미쓰랄, 아다만티움 끌어와도 됩니다. 설정 짜기가 편해서 쉽게 써먹을 수 있으나 그만큼 진부하다는 게 단점. 게다가 어떠한 경우에도 안 부서진다면, 그 금속을 무슨 수로 가공하는가?’ 하는 문제가 뒤따릅니다. 금속만 뛰어날 뿐 생김새는 그냥 평범한 장검이라 SF 분위기에는 안 어울리는 단점도 있죠. 그래도 고진동 칼날이니 플라즈마 역장이니 이런 골치 아픈 소리를 싫어하는 창작가에게는 속 편한 설정. 이쪽 계열로 유명한 게 <엑스맨>의 울버린이나 세이버투스죠. (칼이 아니라 발톱에 가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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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라리스크를 두부처럼 썰어버린 제라툴의 사이오닉 검.]


*싸이킥 능력을 칼날 형태로 발현

SF에서는 초능력자가 많이 나옵니다. 이 초능력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정신으로 물건에 영향을 주는 싸이킥과 오감과 전혀 다른 감각인 ESP가 있습니다. ESP는 어디까지나 감각일 뿐이라 세상을 인식하는 데 쓰이지만, 싸이킥은 물리적인 영향을 주기에 곧잘 무기화하죠. 순간이동과 염동력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그 중에는 정신을 물질화하는 초능력자도 있습니다. 이런 능력자가 칼날 모양으로 정신력을 뿜어내서 싸우기도 해요. 총알이나 화살은 능력자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날아가니까 정신력 집중을 위해 칼로 쓴다는 거죠. 정신력으로 만든 거라서 역시 뭐든 베고 부러지지도 않습니다. 다만, 정신력이 무너지면 그걸로 필패. <스타크래프트>의 제라툴은 이런 형태의 검으로 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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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벌레 이빨로 만든 크리스나이프. 그 특성상 아라키스에서만 나오는 칼입니다.]

 

*괴물 이빨이나 발톱이 재료

각종 창작물에는 철근을 떡볶이처럼 씹어먹는 괴물이 많습니다. 그런 괴물의 이빨이 빠지거나 우연히 바닥에 떨어졌을 때 이걸 주우면 레어템 획득! 원래부터 막강한 이빨이니 별다른 가공 없이 그대로 사용해도 훌륭한 무기가 됩니다. 그래서 이빨이나 발톱을 쥘 수 있도록 손잡이만 달랑 매달아놓은 게 보편적이죠. 특징이라면 신체 부위를 재료로 사용하는 데다가 원래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어 꽤 야만적으로 보인다는 것.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설정입니다. 그냥 데미지만 센 게 아니라 괴물의 특성이 더해져 부가효과가 나기도 합니다. 칼에 찔리면 치명적인 독이 퍼지거나, 상처가 영원히 아물지 않거나, 특정한 신체적 리듬을 타야 쓸 수 있다거나 등등. <>에 나오는 크리스나이프가 모래벌레 이빨로 만든 물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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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형 화염방사기 같은 느낌의 쉬쉬케밥.]

 

*칼날을 매개체로 하여 기타 피해를 주는 방식

판타지에는 화염속성 검이 곧잘 나오는데, SF라고 안 될 거 없습니다. 물론 도검을 항상 불타게 할 수는 없으니까 칼날에 불이 붙는 장치를 해야죠. 연료통을 등에 지거나 허리에 찬 다음, 노즐로 칼날과 연결하고, 칼날에 발화 장치를 장착하는 겁니다. 그리고 밸브를 누르면 연료가 노즐을 통해 칼날의 발화 장치에 도달한 다음, 그대로 파이어~!! 이러면 보통 칼로는 상처 입히기 어려운 것들도 태워버릴 수 있으며, 불타는 칼날이 멋지기 때문에 폼도 납니다. 항상 연료통을 지고 다녀야 한다는 점이 에러지만. 이걸 응용하면 냉각 가스를 뿜어 상대를 얼리는 냉기속성 검도 가능합니다. 화염속성 검보다 이쪽이 더 강력할 수도 있겠군요. <폴아웃 3>에 나오는 불타는 꼬챙이 쉬쉬케밥이 이런 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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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칼은 주로 일본 창작물에서 자주 보이네요.]

 

*총기와 도검의 결합

대검(bayonet)은 각종 총기류가 발달한 지금도 군인의 무장 수단입니다. 총에 칼을 꽂아 찔러서 쓴다는 거죠. SF에서는 이걸 반전시켜 칼에 총을 장착한 다음, 칼을 휘두르다 총으로도 쏘기도 합니다. 작품에 따라 여기서 설정이 갈리는데, 우선 완전한 총기처럼 사격이 가능한 종류가 있습니다. 혹은 총을 쏘면 (사격이 아니라) 근거리 폭발이 일어나 피해를 입히는 식이기도 합니다. 뭐가 되었든 간에 칼로 베는 것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죠. 상대가 빈틈을 보이는 순간 한방 날릴 수도 있으니 칼로만 싸우는 것보다 유리하고요. 도검에 총기를 결합하는 디자인이 난해한 터라 디자인 실력이 없는 창작가는 써먹기 좀 어려운 설정. 그래서 총기에 도검을 갖다 붙인 다음 총보다 칼을 더 많이 쓰는 식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파이널 판타지>에 나오는 스콜 레온하트가 건 블레이드라는 칼을 들고 다닙니다.

 

 

이 정도면 SF에 나오는 여러 도검을 살펴본 것 같네요. 물론 이런 도검들은 어디까지나 로망을 채워주려고 나온 물건입니다. 따라서 설정에 빈틈이 꽤 많아요. 아무리 대단한 설정을 짜내도 결국 칼은 총을 당하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도검을 등장시키려는 창작가들의 노력이 한편으로는 대단합니다. 그 중에는 나름대로 공학적인 로망을 건드리는 물건도 있긴 하니까요. , 현실에서 안 되는 걸 좀 되게 해보려는 게 결국 창작물 아니겠습니까. 너무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