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시내에 나갔다가 문득 눈에 띄어서 산 책입니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간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그 날은 왠지 서점에서 이 녀석이 눈에 확 띄더군요.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책이던데 직원에게 부탁하지 않으면 손도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딱 한 권 박혀 있던건 조금 눈물났지만요...


하인라인의 책은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밖에 안 봤지만, 이 책도 그 책처럼 어마어마한 흡입력이 있더군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장 하나하나에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느껴지는게, 과연 거장은 거장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위기나 무게 자체도, 자유를 찾는 해방전쟁(...)을 다루고 있는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보다 훨씬 가벼웠고, 그래서 읽기도 편했습니다.

도입부를 보면서 자기를 배신한 친구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는 내용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정작 복수는 김빠지게 끝났고 신나게 미래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면서 모험(?)을 하고 여자아이를 미래로 데려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렇다할 큰 갈등 없이 시원시원 넘어가서 더욱 읽기 쉬웠는지도 모르겠네요.

제일 흥미있었던 부분은 역시 미래세계로 떨어져내린 댄의 이야기였습니다. 고작 30년이지만 얼마나 세상이 변할 수 있고 또 그거에 적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표지 안쪽을 보니 1957년에 쓰여진 소설이라는데, 지금 1970년과 2000년이 얼마나 변했는지 생각해보면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 여행쪽으로 들어가면... 뭔가 시간흐름을 따라가는게 조금 헷갈립니다. 시간 여행에 따라오는 수많은 패러독스들이 있는데, 주인공인 댄 자신은 패러독스를 일으킬만한 행동들을 절묘하게 피해나가면서 행동하죠. 대략 1970년->2000년->1970년->2000년의 순서로 전개되는데, 첫번째 2000년으로 갔을 때에는 두번째 2000년에 간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고, 1970년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과거의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죠.
뭔가 패러독스나 문제를 일으키고 싶으면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는 헷갈리는 흐름입니다만 벨과 마일즈에게 복스하고 리키를 미래로 데려오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시간여행이란 소재를 제한적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시간여행을 마칠 수 있습니다.
소설의 전체적인 무게와 딱 어울리는 정도의 복잡성인 것 같더군요. 괜찮은 기분이었습니다.

독특한 소재도 눈에 띄는 작품이었는데, 고양이가 매우 큰 비중으로 나오고, 과정이 어찌되었든 어린 여자아이와 사랑하는(-_-)  내용이 조금만 각색하면 오타쿠용 일본애니메이션... 으로 딱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뭔가 이것 원작의 무언가가 나왔던 것 같기도 합니다만 잘 기억이..

주인공은 30년 냉동수면을 하고, 리키는 20년 냉동수면을 시켜서 나이를 얼추 비슷하게 (그래도 10여살 차이) 맞추는 대목은 여러가지로 재미있기도 하고 실소도 나는 대목이었죠. 시간여행으로 인해서 나이가 달라지는 건 신카이 마코토의 '별의 목소리'가 생각나기도 했고요.

전체적으로 아주 즐겁게 읽은 책이었군요. 생각날때마다 꺼내보는 작품이 또 하나 늘어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


ps. 내용 밖의 얘기를 잠깐 쓰자면, 책이 가벼워서 좋더군요. 다른 책들도 이렇게 가볍게들 나왔으면 좋겠네요.
ps2. 어디선가 (아마 여기?) 아이작 아시모프의 나이트폴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찾아서 보고 싶었는데 도저히 그게 실린 책을 찾지 못하겠더군요. 혹시 어느 책을 보면 나와있는지.. 번역이 되긴 되었는지 궁금하네요.